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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국 4대 미인 1 - 서시(西施)

含閒 2008. 12. 30. 10:27

중국 4대 미인 1 - 서시(西施) 

이름

서시

(西施)

왕소군

(王昭君)

초선

(貂蟬)

양귀비

(楊貴妃)

별칭

침어(浸魚)

낙안(落雁)

폐월(閉月)

수화(羞花)

나라

월(越)

한(漢)

후한(後漢)

당(唐)

 

◆ 춘추전국시대의 서시 (西施)

침어(浸魚) -서시(西施)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먹다 "

서 시는 춘추말기의 월나라의 여인이다. 어느 날 그녀는 강변에 있었는데 맑고 투명한 강물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 을 비추었다. 수중의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래서 서시는 침어(浸魚)라는 칭호 를 얻게 되었다. 서시는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 구천(勾踐)의 충신 범려(範려)가 보복을 위해 그녀에게 예능을 가르쳐서 호색가인 오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잡혀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어 마침내 월나라에 패망하였다

 

 

※ 기원전 496년 오나라의 왕 합려는 절강성 가흥 부근에서 월나라의 왕 구천과의 싸움에서 대패하였다. 합려는 요행히 도망하였으나 이미 화살에 입은 상처가 악화되어 죽고 말았다. 임종시 그는 태자 부차에게 복수를 통해 자신의 원한을 풀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아버지의 유언을 기억하며 부차는 오나라 왕이 되었다. 그느 복수를 결심하며 밤마다 거친 장작더미(신薪)에 누워(와臥) 복수의 그날을 기다렸다. 부차가 복수를 결심하고 있다는 소식은 월왕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 월왕은 충신의 간언을 물리치고 오왕을 무모하게 토벌할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월나라의 토벌전이 시작되었으나 복수심에 불타 치밀하게 준비해왔던 오나라의 군대를 이길 수 없었다. 월나라는 오나라 부초산에서 패퇴하여 회계산으로 도망쳤으나 오나라 군대에 포위되어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결국 월나라는 오나라에게 영토를 넘겨주고 신하가 되는 조건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결국 월나라는 오나라에게 영토를 넘겨주고 신하가 되는 조건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구천은 영토를 양보하는 대가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지만 그의 나라 대부분은 이미 오나라의 소유가 되어 버렸다. 이제 구천은 일찍이 오왕이 거친 장작더미에 누워 복수할 날을 기다린 것과 같이 쓴 쓸개(담膽)를 늘 옆에 놓고 맛보며(상嘗) 회계산에서의 치욕을 복수할 날만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거친 밥을 먹으며 사람을 잘 써서 충신들을 많이 거느리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국력의 회복에 온 힘을 다하였다. 그리고 오나라 왕이 미인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인계를 써서 오왕을 유혹하고자 하였다. 이에 선택된 미인이 서시였다. 예상대로 오왕은 서시를 매우 총애하였으며 매일같이 서시를 가까이 하며 월나라에 대한 경계를 늦추었다. 12년 뒤 구천은 충신 범려와 더불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오나라 왕이 제후들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해 급습하였다. 그리고 몇년 동안 대대적인 공격을 통해 오나라의 수도 고소(현재의 쑤저우)를 포위하여 마침내 항복시켰다. 회계산의 치욕을 씻은 월왕은 오왕 부차를 저장성으로 귀향 보내 여생을 보내도록 조치하였으나 부차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로써 월은 다시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복수심을 품고 온갖 고통을 감내한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성어는 이와같이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고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또한 오나라와 월나라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오월吳越'이라는 말은 '대단히 사이가 안 좋다'는 말로 쓰이고 있으며, 잘 알려진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도 '원수끼리 같은 배 또는 장소에 함께 있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서시는 월왕의 충신이던 범려가 처음부터 사랑하던 여인이었다. 월왕이 승리한 후 서시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회자되었다. 서시가 다시 범려를 만났으며, 범려는 큰 돈을 벌어 둘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설, 오나라가 멸망한 이후 서시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설, 오나라가 망하자 월나라 왕이 서시를 깊은 강물에 버렸다는 설, 서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설 등 후대의 많은 문학작품들 속에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시의 최후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사료가 없기 때문에 그녀의 최후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녀는 4대 미인이 되어 침어(고기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는 고사에서 유래)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러한 고사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녀에 대한 많은 동정과 시대의 관심이 있었음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 교양세계사, p.93~94, 동서역사문화연구회, 2007. 4, 우물이 있는 집 中에서

 

 

출처 : 세상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글쓴이 : 黎明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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