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나서(讀書後)

추사를 넘어, 김종헌

含閒 2008. 8. 25. 12:55

一筆揮之 氣韻生動

 

飛白 : 종이에 붓을 대고 순간 날아갈듯 일필휘지할 때 획의 일부분에 먹물이 묻지 않은 흰 부분

 

潑墨 : 먹물이 종이에 닿는 순간 먹물의 번짐.

 

臨書 : 위대한 서예가가 남긴 유명한 글씨들을 모범으로 삼아 수없이 반복하고 모방

 

意臨 : 작가가 표현하려 하였던 의도를 파악하고 포착하여 써보는 임서

 

退筆成塚不足珍 讀破萬卷始通神(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

 

志于道 據于德 依于仁 游于藝 (論語 述而篇 6章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 )

 

不計工拙 : 잘 되고 못 되고를 가리지 않는다.(추사의 遊印 중의 하나)

 

書畵同源

 

心正筆正 / 思無邪

 

繪事後素 : 그림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가능하다.

 

죽은 글씨

 

 -   글과 글, 행과 행, 열과 열 사이에 行氣(붓의 움직임에 따른 기운의 흐름)가 끊어져 없는 글씨

 

 -   글자간의 강약과 리듬이 없어 율동미가 없는 글씨

 

 -   반복되는 글자를 똑같이 쓰는 글씨

 

 -   여백의 멋이 없는 글씨

 

 -   뜻도 모르며 쓴 글씨

 

姓名印  陰刻     雅號印  陽刻

 

難得糊塗

 

"難得糊塗"

이 말은 청(淸)나라 문학가인 정 판교(정섭)가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데

서화가이자 문학가였던 그는 어려서 가난했지만
과거에 합격해 관직에 올랐으며
蘭과 竹을 잘 그려서 '양주팔괴'의 한 사람으로 꼽혔습니다.

그는 관직에 있는 동안
농민들을 힘껏 돕고 어려운 일을 처리해줬지만,
그것이 도리어 권력가의 미움을 사게 되고
관직에서 쫓겨났답니다.

그때 그는 "난득호도"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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聰明難 糊塗難 (총명난 호도난)
由聰明轉入糊塗更難(유총명전입호도갱난)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방일착 퇴일보 당하심안)
非圖後來福報也(비도후래복보야)

 

 

 

 

 

추사를 이해하기 위한 몇가지 중요한 개념들

淸高古雅 : 진정한 글씨와 그림을 쓰고 그리기 위해서는 맑은 마음과 높은 뜻, 예스럽고 우아한 인품과 정신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文字香 書卷氣 : 글씨와 그림에는 깊은 학문과 인품의 향기가 배어 있어야 하며, 많은 앞선 사람들이 쓴

                   책들의 정신과 정기가 배어 있어야 한다.

奇崛奔放(기굴분방) : 글씨의 획과 형태가 남다르게 특이하고 기이하며 걸림이 없이 자유롭다.

畵法有長江萬里  書勢如孤松一枝 : 그림 그리는 법에는 장강 일만 리와 같은 멀고 긴 연원이 있고 글씨의

                        필획의 힘은 외로운 소나무 가지의 굳세고 곧음과 같다.

 

 

그의 대표적인 글씨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다 떨어진 책과 무뚝뚝한 돌이 있는 서재'라는 뜻의
제주도 유배후 강상(한강 용산변의 강마을)시절의 대표작
글자의 윗선을 맞추고 내리긋는 획은 마치 치맛자락이 휘날리는 듯 변화를 주었다.
이렇게 자유분방한 글씨는 추사 김정희밖에 없다.
빨래줄에 빨래 걸린 듯하지만 필획이 맞으니 자유분방하다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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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歲寒圖
 영어음역  Sehando
 영어의미역  Winter Scene; A
 분야  문화·교육/예술, 문화유산/유형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말기
 집필자  김유정  
   유사검색어
 성격   회화
 제작시기/일시   1844년 추정
 제작지역   제주도
 작가   김정희
 양식   문인화
 재질   지본수묵
 서체/기법   갈필(渴筆)/검묵(儉墨)
 가로   146.4㎝
 세로   23.3㎝
 소장처   개인(손창근 소장)
 소유자   손창근
 문화재 지정번호   국보 제180호
 문화재 지정일   1974년 12월 31일

[정의]
추사 김정희제주도 유배 중에 그린 문인화.

[개설]
세한도(歲寒圖)는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와 함께 김정희 그림의 쌍벽을 이루는 백미(白眉)이다. 갈필(渴筆)과 검묵(儉墨)의 묘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문인화로서, 제주도 유배 중에 그려졌다.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세한도김정희가 원악절도(遠惡絶島)라고 하는 제주도 유형지에서 힘겨운 유배 생활을 하던 1844년(헌종 10)에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북경에서 두 번이나 귀한 책을 구해 보내준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의 인품을 칭송하며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다.

[형태 및 구성]
종이에 먹으로 그려진 두루마리 형식이다. 그림이 그려진 화면 오른쪽에는 화제(畵題) ‘歲寒圖(세한도)’라고 가로로 쓰여 있고, 세로에 작은 글씨로 ‘藕船是阮堂(우선시 완당)’이라는 관지(款識)가 있으며, 正喜(정희), 阮堂(완당)이라는 圖印(도인)을 찍어놓았다.

그림 왼편으로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제일 늦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드는 것을 안다”는 이치에 빗대어, “권세와 이익으로 합친 자들은 그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사귐이 시들해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또한 이상적의 인품을 칭송하여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함에, 귀양 오기 전이라고 해서 더 잘한 것도 없지만, 귀양 온 뒤라고 해서 더 못한 것도 없네. 그러나 귀양 오기 전의 그대는 특별히 일컬을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귀양 온 이후의 그대는 또한 성인에게 일컬음을 받을 만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는 내용의 발문을 그림 끝에 붙여놓았다.

그 뒤를 이어서 이상적이 이듬해 북경에 가서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 등 그곳의 명사 16명의 찬시(讚詩)를 곁들어놓았다. 또한 훗날 이 그림을 본 추사의 문하인 김석준(金奭準)의 찬(讚)과 오세창(吳世昌), 이시영(李始榮)배관기 등이 긴 두루마리에 적혀 있다.

[특징]
세한도는 거친 필묵만 단아하게 그려진 그림으로, 화면 중앙에서 무게 중심이 좌우 두 그루의 나무 가운데 소나무에 쏠려 있고, 그 소나무의 가지가 세월과 추위를 이기듯 강고하게 표현되었다.

갈필로 빠르게 그려진 집 한 채는 군더더기를 뺀 사의(寫意)가 집약된 표현인 듯하다. 여백의 배분 또한 세 개의 화면 분할로 이루어져 화면의 정적인 안정감이 높다. 절제되고 고아(高雅)한 서화 일치의 멋을 풍기는 세한도는 조선 말기 추사 김정희 일파의 서화 이념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의의와 평가]
김정희 자신의 그림 솜씨와 문장, 그리고 여러 명사들의 시와 감상문이 어우러진 시·서·화의 품격이 전해지는 작품이자, 외롭고 고된 귀양살이에서도 단아하고 고고한 품위를 잃지 않았던 추사 자신의 사의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歲寒圖의 편지 내용(?)
去年以晩學大雲二書寄來今年又以
藕耕(?)文編寄來此皆非世之常有購之
千万里之遠積有年而得之非一時之
事也且世之滔滔惟權利之是趨爲之
費心費力如此而不以歸之權利乃歸
之海外蕉萃枯槁之人如世之趨權利
者太史公云以權利合者權利盡而交
疏君亦世之滔滔中一人其有超然自
拔於滔滔權利之外不以權利視我耶
太史公之言非耶孔子曰歲寒然後知
松柏之後凋松柏是毋四時而不凋者
歲寒以前一松柏也歲寒以後一松柏
也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今君之於
我由前而無加焉由後而無損焉然由
前之君無可稱由後之君亦可見稱於
聖人也耶聖人之特稱非從(?)爲後凋之
貞操勁節而已亦有所感發於歲寒之
時看也烏乎西京淳厚之世以汲鄭之
賢賓客與之盛衰如下邳榜門迫切之
極矣悲夫阮堂老人書

“그대가 지난해에 책 수백권을 보내주니 이는 세상에 흔한 일은 아니다. 지금 세상을 온통 휩쓸고 있는 권세와 이득을 좇는 풍조 속에서 이렇게 서책을 구하여 바다멀리 시들어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이득을 좇듯이 하였구나! 사마천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자들은 그것이 다하면 교제 또한 성글어진다’고 하였다. 그대는 세상의 도도한 흐름 속에 사는 한사람으로 세상 풍조의 바깥으로 초연히 몸을 빼내었구나. 공자왈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도 같은 소나무 잣나무요, 추위가 닥친 후에도 여전히 같은 소나무 잣나무다. 그런데도 성인께서는 굳이 추위가 닥친 다음의 그것을 가리켜 말씀하셨다.

이제 그대가 나를 대하는 처신을 돌이켜보면, 그 전이라고 더 잘한 것도 없지만, 그 후라고 전만큼 못한 일도 없었다. 예전의 그대에 대해 따로 일컬을 것이 없지만, 그 후에 그대가 보여준 태도는 역시 성인에게서도 일컬음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닌가? 성인이 특히 추운 계절의 소나무 잣나무를 말씀하신 것은 다만 시들지 않는 나무의 굳센 정절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역시 추운 계절이라는 그 시절에 대하여 따로 마음에 느끼신 점이 있었던 것이다.

아아! 전한시대의 어질던 사람조차 그들의 형편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곤 하였다. 세상 인심의 박절함이 극에 다다른 것이라. 슬프다!

완당노인이 쓰다“

 
 
  
道德經   四十五.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躁勝寒, 靜勝熱, 淸靜爲天下正.

아주 완성된 것은 도리어 훼손된 듯하나 그 활용은 다함이 없고, 가장 충만한 것은 도
리어 빈 듯하나 그 활용은 역시 다함이 없다. 매우 곧은 것은 도리어 굽은 것 같고, 매
우 교묘한 것은 도리어 서투른 것 같고, 뛰어난 웅변가는 도리어 더듬는 것 같다. 조하
면 추위를 이기고 정하면 더위를 이긴다. 청정하여 천하의 표준이 된다. 
 

 

 

한자와 서체의 발전

甲骨文 - 金文 - 貨幣/木簡/竹簡/綿帛/漆器 - 종이

篆書(大篆/小篆) - 隸書 - 草書 - 楷書 - 行書

 

중국 서예가들

 

王羲之 (晉, 321 ~ 379 혹은 303 ~ 361) ---- 書聖, 蘭亭敍(천하제일의 행서,행서체의 전범)

 

歐陽詢 (唐, 557 ~ 641) ----  九成宮醴泉銘, 해서의 필법을 완성한 서예가

 

顔眞卿 (唐, 709 ~ 785) ---- 祭姪文稿(천하제이의 행서)

 

懷素(唐, 725 ~ 785) ----  서예 역사상 가장 초서를 활달하게 잘 썼던 승려 서예가. 狂草

 

柳公權(唐, 778 ~ 865) ----  强骨의 기세, 玄秘塔碑, 金剛經                            顔筋柳骨

 

蘇東坡(宋, 1036 ~ 1101) ---- 唐宋八大家의 일인 三絶(시문/서예/그림),  "詩中有畵畵中有詩"

 

趙孟頫(元, 1254 ~ 1322) ---- 松雪體 , 赤璧賦

 

董其昌(明, 1555 ~ 1636) ----  명나라의 대표적 서예가. "讀萬卷書 行萬里路"

 

吳昌碩(淸, 1844 ~ 1927) ---- 淸나라 때 크게 일어난 서예이론과 금석학 연구, 시서화 모두 능함

 

 

근현대 한국 서예가

 

 安重根 (多默)

   - 獨立, 敬天, 忍耐

   [問成人]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 不忘平生之言

         利를 보면 義를 생각하고, 위급할 때에는 생명을 바치고, 오래된 약속이라도 평생 잊지 않아야 한다

       (論語 14篇 憲問篇)

   - 澹泊明志 寧靜致遠 : 욕심없이 마음이 깨끗해야 뜻을 밝게 가질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원대한 포부를 이룰 수 있다.

  - 爲國獻身軍人本分 : 순국하던 날 감방을 나서기 직전 일본군 특무조장 지바 도시치(千葉十七)에게 써준 글

 

693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보물 569-2호 서울 중구 대한제국
 
안중근의사유묵 (보물 569)


 

 

 

697 견리사의견위수명 보물 569-6호 부산 서구 대한제국
 
안중근의사유묵 (보물 569) 참조요


 

 孫在馨(素筌)

 - 素筌體, 한글소전체, 書藝라는 단어 사용 주장

 

 

 

柳熙綱 (劍如)  ....劍如,石如,瓢如  추구

뇌출혈로 실어증, 오른쪽 반신마비 ( 오른 손에서 왼손 시대로, 大巧若拙)

 

 

 

 

 

 

 

 

 

 

 

 

 

 

 

 

 

蘭愛石潔 石愛蘭香 君子之交 不在顔色

 작품명  작가명 유희강

 

昭志道人  姜昌元

  

- 서예란 선비가 학문과 더불어 스스로 즐기며 수양하는 예술이지 이를 이용해 입신양명하거나

   권력을 휘두르는 예술이 아니다.(국전불참) 

 

昭志, 燒紙, 掃地

 

臨池學書 池水盡墨 : 연못가 집에서 글씨를 배우며, 연못의 물을 다 먹물색으로 만드네.

 

 

 

 

아유일권경



 

붕비

붕鵬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새이다. 소
지도인 강창원은 ‘붕鵬’ 자를 쓰면서 큰 부리와 발톱과 벼슬을 거친 필획으로 파자破字를 하여
잘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비飛>는 아주 바르고 균형 잡힌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내가 대학을 막 졸업하고 취직을 한 다음 선생님께 세배를 드리러 갔을 때
일필휘지로 써 주신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을 소지도인 강창원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손꼽는다.
<鵬>자와 <飛>자의 여러 자획을 잘 살펴보면 자연스러운 가운데 잘 조화되고 짜임새 있는
결구를 알 수 있다. 특히 <鵬>자의 오른쪽 공간에 커다란 유인遊印을 찍어 조금 빈 듯한 공간을
붉은 인주의 색깔로 잘 메우고 대비시키고 있다.
 
특히 <鵬>자의 벼슬과 발톱을 처리한 획과 점의 과감한 운필은
이 작품이 일필휘지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숨은 실력이 순간적으로 잘 발휘되었다고 하겠다.

 

 

반야심경 (부분)









포덕취의

공명덕

 

 

 

 

 

 

 

덕한재

만법귀일

일체유심조

소동파연구





 

 

만년장수

 

 

 

 

대변여눌


소지도인 강창원의 또 다른 대해大楷 작품 <대변여눌大辯如訥>을 보자.
나는 가끔 어떻게 스스로 일진자一塵子라고 부르며 겸손해 하고 작은 체구를 가진 분의 몸에서
이런 힘차고 대범한 큰 글씨와 행서의 발문과 같은 활달한 글씨가 나올 수 있는지 놀라곤 하였다.
노자老子의 금구金句를 쓴 이 작품의 글씨는 그 내용의 뜻과 같이 눌訥하고 졸拙하다
 
 

산주다순



 

 

 

 

 

거량 아호 풀이



내가 틈만나면 부지런히 서실로 나가 열심히 글씨 공부를 하자, 소지도인 강창원은 나에게 <거량居亮>이란 아호雅號를 지어주셨다. 나는 이미 중학생 때 시절 원곡 김기승 선생으로부터 “일재一齋”란 호를 이미 받아 쓰고 있었는데, 이 새로운 호를 받은 다음부터는 줄곧 “거량”이란 호를 쓰고 있다. 소지도인 강창원은 이 때 다음과 같은 뜻풀이를 문장으로 지어 자그마한 작품으로 써 주셨다.
 
 
 
居亮
大丈夫處世以明道爲本   대장부 세상 살아가는데 밝은 도를 근본으로 삼는다
何不景行此法達其鴻志也    어찌 이 밝은 법도를 즐겨 행하여 그 큰 뜻을
이루지 않겠느냐
 
그러면서 소지도인 강창원은 나에게 백거이白居易 같이 글을 잘 짓고, 제갈량 諸葛亮같이 총명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유인遊印으로는 “계명繼明’”선인들의 밝은 도를 이어간다)는 뜻의 글자가 새겨진 도서를 찍어 주셨다. 나는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도록 선인들의 밝은 도를 이어가지도 못하였고, 백거이같이 글도 잘 못 쓰고, 제갈량같이 총명함도 얻지 못하였으니 소지도인 강창원이 지어준 과분한 호의 값도 못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가화다복

 

 

 

鄭夏建(松泉 ) 

평균적으로 잘 쓰는 작가는 많아도 독특하고 새로운 미적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글씨를 쓰는 작가는 드물다.

'法古創新'의 정신 

 

 

 

 

 

경희궁 자정문 & 자정전 현판

호압사 범종루 현판

 

수락산 학림사 현판

 
 


  

홈페이지 참조 바랍니다. http://www.songchun.co.kr/

 

 

서예는  동아시아의 철학, 역사, 문학, 예술 등 모든 학문을 바탕으로 그 위에 시대정신과 개성을 불어넣어 꽃피워야 하는 총체적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