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蔽月山房詩 왕양명

含閒 2008. 8. 15. 13:51

                                                                                                                                                                          

 

산에서 보는 달                         왕양명

 

 

산이 가깝고 달이 먼지라 달이 작게 느껴져
사람들은 산이 달보다 크다 말하네
만일 하늘처럼 큰 눈 가진 이가 있다면
산이 작고 달이 더 큰 것을 볼 수 있을텐데.

 

 

 

蔽月山房詩(폐월산방시)

山近月遠覺月小,便道此山大於月.
산근월원각월소   편도차산대어월

若人有眼大如天,還見山小月更闊.
약인유안대여천   환견산소월경활

 

 

하늘처럼 큰 눈을 가진 사람

 

 

명나라 시인 왕양명(王陽明·본명은 수인)이 열한 살 때 지었다는 <폐월산방시(蔽月山房詩)>다. 어린 나이에 우주의 이치를 이처럼 명료하게 꿰뚫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세파에 시달리는 어른들에게는 보이지 않아도 해맑은 아이들의 눈에는 다 보이는 법.

용평 숲에서 사흘을 보낸 적이 있다. 발왕산 정상에 올랐더니 전망대 안의 식당 벽에 수백 장의 편지가 매달려 있었다. 아무개 왔다 간다는 메모부터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문구까지 갖가지 ‘말씀’들이 가득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쯤 되는 아이의 ‘고해’였다. ‘아빠 그동안 말 안드러서 좨송해요. 아프로는 잘 드러께요.’ 녀석은 어떻게 알았을까. 높은 곳에 오르면 누구나 잘못을 빌고 싶어진다는 것을.

산에서는 모두가 겸손해진다. 자연의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날 밤 발왕산 이마에 걸린 달은 유난히 커 보였다. 늘 거기 있는 산이지만 그 속에 들어 자신을 돌아보면 큰 잘못이 없어도 ‘죄송’해지는 이치와 닮았다.

과학자들은 달이 하늘 높이 떠 있을 때보다 지평선 가까이에 있을 때 더 커 보인다고 한다. ‘달 착시’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발왕산에서 본 달도 착시현상 때문에 그랬을까. 그것은 낮에 본 꼬마녀석의‘고해성사’처럼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나를 비춰주는 우주의 반사경이었다.

육체적인 ‘뇌의 인식작용’은 종종 착시현상을 불러온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감성작용’은 우리 영혼의 촉수를 건드려준다. 세상의 높낮이와 내면의 크기를 스스로 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세상이 복잡할수록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慧眼)이 더욱 필요하다. ‘산이 작고 달이 더 큰 것’을 볼 줄아는 ‘하늘처럼 큰 눈 가진 이’가 가장 눈 밝은 사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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