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가 DJ 숨겨진 딸?…‘각종 說 난무’ | ||||||||||||||||||||||||
특히, 이번에 신정아 의혹과 관련해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의 이름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문제가 커지고 있고 각종 의혹과 설들이 난무하면서 사건의 본질인 학력 위조 보다 다른 쪽으로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재 각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한 네티즌들은 신정아씨가 임용과정에서부터 상식적으로 통하지 않은 여러 가지 의혹스런 일이 많이 있었고 광주비엔날레 감독에 선발되는 점에서도 정치권 로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으며, 고가 사치품에다가 외제차가 몰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이라면 확실한 지원 세력이 있을 것이라면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사실 이러한 논쟁의 배경에 네티즌들이 펼치는 중 그럴 듯 한 음모이론(?)이 신정아씨가 감독으로 선임된 배경에는 광주비엔날레 사무소가 김대중 컨벤션 센터내에 위치해 있으며,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광주 비엔날레 측 추천 위원들이 누구인지 밝히지 못하는 배경에 바로 DJ측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고 생각하고 있다.
권노갑씨는 동국대의 총동문회장을 지낼 정도로 동국대의 간판 정치인으로 그가 마음만 먹으면 교수하나 임용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학교 내에서는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한편, 신정아씨가 재직한 금호미술관 역시 금호 그룹이 호남을 대표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신정아 의혹에 더욱 불을 지핀다고 네티즌들은 생각하고 있다.
현재 이와 관련한 각종의 설들에 관해 민주당 대변인을 지낸 유종필씨는 "처음 듣는다. 들어 본적도 없는 황당한 이야기"라며 신정아씨와 관련된 항간의 소문을 일축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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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닮았다.....
신정아씨의 편지를 친구가 읽어보라고 보내왔네요
2005년 12월 13일
전화하고 싶었어요. 낮부터요.
정오에는 우리 미술관에서 일하게 될 큐레이트랑 면담을 좀 하느라 바빴고 참 제가 얘기했던가요.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복원미술을 전공한 젊은 친군데 실력이 만만찮아요. 전공이 아니라 이쪽에서 일하는게 글쎄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경험삼아 큐레이트일을 좀 해보겠다해서 임시로 채용하게 되었거든요. 아무래도 곧 성곡을 떠날것 같기도 해서 제 뒤를 맡아줄 사람도 필요한 시점이구요.
우리 미술관에서 소장중인 조선중기 작품 몇점이 상태가 시원찮아 보관중인게 몇점있는데 그 친구에게 한번 맡겨 봐야겠어요. 미술품 복원작업은 한두사람 손을 거치는게 아니라 그 친구에게 전적으로 의지할수는 없지만 장비로 숨어 있는 손상부위도 찾아내야 하고 복원 부위를 정해 아주 디테일한 작업이 들어가야 하거든요. 작업이 끝나면 대중앞에 선보이기전에 당신께 제일 먼저 보여 드리고 싶어요.
당시의 풍속도이긴 한데 선비차림의 양반신분으로 보기 드물게 젖가슴을 풀어 헤치고 있는 아낙의 젖가슴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그림이예요 자세히 보면 선비도 바지를 허리춤까지 내려 있는걸 볼수 있어요. 풍속화라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춘화는 절대 아니죠. 예나 지금이나 다들 체면 차리고 살지만 가능하다면 아낙의 젖무덤 아니라 어디라도 여자라면 -그 여자가 그사람의 연인이라면 더 깊은 곳에 얼굴을 파묻고 하루를 나고 싶지 않을까요.
당신은 전설속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여걸 유디트손에 죽은 홀로페르네스처럼 나에게 성적으로 유혹당해 죽음에 가까운 정사를 한번 했으면 하셨지만 저는 빈 시내 남쪽에 있는 바로크 궁전 벨베데레에 소장된 클림트 그림 키스 처럼 두 남녀가 꼭 껴안고 성적 교감의 여명을 틀며 시작하는 정사를 당신과 꿈꾸고 있어요. 에로티시즘이 순간적인 육체의 환락이 아니라 영원으로 진입하는 일종의 관문처럼 순간적인 정사의 덧없음을 초월해 욕망의 숭고한 충족에 이르도록 노력한 클림트 처럼 숭고한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당신과 나누고 싶어요.
곱슬머리의 남자가 꼭 껴안은 여자의 더 없이 행복한 표정, 오르가즘 직전의 환희가 표현된 얼굴의 그 그림을 보면 저도 언젠가 그런 정사를 하리라 했죠. 그 남자가 내게 당신으로 다가왔다는걸 저는 본능적으로 느낄수 있었죠. 지난 가을 저의 미술관에 들렀던 당신을 본 순간 저는 부끄럽지만 클림트의 그림을 떠올렸죠.
그림속의 곱슬머리는 부드럽게 컬이 져서 넘어간 당신의 희껏한 머리로 대체되었고 나는 속옷옷을 입지 않고 화려한 노란 무늬의 긴원피스만 겉옷으로 걸치고 있었죠.
당신은 당시 중국현대작가 초대전을 관심있게 둘러 보셨죠. 내게 다가와 왕청의 작품에 대해 물어 왔을때 저는 알몸을 내 보인듯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상상이 아니더라도 당신은 충분한 성적매력을 지닌 남성이였죠.
두 번째 만남에서 당신이 남한강을 따라 드라이브만 하고 저를 저의 집앞에 내려 주셨을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르셨을거예요. 키스라도 없었더라면 저는 체면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당신을 나의 아파트로 유인하여 죽음에 가까운 정사를 펼쳤을지도 몰라요. 저는 너무 뜨거워져 있었거든요.
키스? 뭐랄까 당신의 키스에서 저는 오월에 청보리가 익어가는 맛을 느꼈어요. 청보리 말이죠. 풋풋한 풀내음과 알곡이 영글때 풋알들이 껍질에 밀착되어 밀도가 촘촘해 지는 질감 그 모든 것이 당신의 키스속에 있었죠. 고백하지만 제가 예일에 다닐때 조금 사귀었던 의대생인 스티븐과도 나누지 못한 영적인 키스였어요. 당신도 그러셨잖아요. 정아는 자그마한 체구로 그곳 친구들에게 인기가 짱이였을거라구요. 스티븐은 아버지가 상원이였는데 저를 무척 좋아 했죠. 결혼도 생각했었지만 후후. 그랬더라면 당신과 나누고 싶은 숭고한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이룰수 없겠죠.
당신과 나는 앞으로 긴 길을 걸어갈거예요. 당신이 그 옷을 입으려 하실지 모르지만 첫 정사를 저는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어요. 클림트에 나오는 남자가 입었던 황금색 가운 그리고 저는 비슷한 패턴의 쉬폰실크 원피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 키스씬으로 시작해서 클림트의 유디트1으로 끝나는 섹스말이죠.
have nice day
당신의 신다르크로부터.(저를 신데렐라라고 부르지 마세요 꼭요). |
클림트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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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최고의 뉴스메이크 변양균, 신정아다......
"세상을 너무 쉽게 살려고 했습니다…" 신정아 법정서 눈물파기환송심서 선처 호소
학력위조 혐의 등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 받았지만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1심부터 다시 재판을 받게 된 신정아(37)씨가 법정에서 "선처를 부탁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2일 서울서부지법 형사2단독 김래니 판사의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신씨는 "세상을 너무 쉽고 편하게 살려고 했다. 1년6개월 동안 구치소에서 마음깊이 반성하고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며 "판사님이 보기에 부족하더라도 더 이상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선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영등포구치소에 수감 중인 신씨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면 이 달 10일 형기가 끝나지만, 재판이 1심부터 다시 시작됨에 따라 변호인은 곧 보석을 신청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이날 신씨에게 "불구속 상태에서도 재판을 성실히 받을 것이냐"고 물어 보석을 허용할 것임을 시사했다. 지난 1월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부가 범죄사실을 특정할 수 없다며 공소기각했던 '예일대 박사학위 위조'에 대해 판단을 다시 하라는 취지로 파기 환송했고, 이에 서울서부지법 형사 합의부는 "1심부터 사실관계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며 단독 재판부로 내려보냈다
신정아 “다시태어나면 평범한 가정의 아내 되고 싶어”
구속당시 신정아 ⓒ YTN [SSTV | 최윤진 인턴기자] ‘학력위조 파문’으로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씨가 3년여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석방 후 근황과 심정, ‘부적절한 관계’로 알려졌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관계 등에 대해 월간조선 9월호에 밝혔다. 신 씨는 그동안 가장 억울했던 점 하나를 꼽아보라고 하자, “하나를 꼽을 수 없을 것 같다”며 “‘신정아’라는 이름 앞에는 항상 ‘학력위조’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고, 신정아의 이미지는 ‘꽃뱀’으로 불린다. 정확한 내용도 모르면서 온갖 추측과 억측으로 파렴치하고 더러운 인간으로 치부하는 것은 제 개인적으로 많이 아프고 다친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신정아 스캔들’은 2007년 7월 신씨의 학력위조 논란에서 시작됐다. 신 씨가 예일대 박사학위를 위조해 동국대 조교수에 임명됐다는 내용. 이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던 변씨와 신 씨가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변 씨의 외압으로 신 씨가 동국대 교수로 임명되는 등의 비리가 저질러졌다는 의혹이었다. 그는 또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의 관계에 대해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는데 누가 ‘꽃뱀’이고 누가 ‘제비’냐를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면서 “사건 당시 직책을 놓고 보면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평범한 공무원일 뿐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 중책을 맡을지 예상하고 만남을 시작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신 씨는 “한 남자를 사랑한 것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면서 “(변 실장과는) 세상의 모든 위선과 제약을 넘어서서 서로 교감하고 사랑하는 관계였다”고 전했다. 더불어 “저에게는 지나간 그 사랑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 씨는 ‘다시 태어난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신정아 책 출판사 "정치적 의도 없다"연합뉴스 | 고미혜 | 입력 2011.03.24 11:01 | 수정 2011.03.24 11:06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대전
사월의책 안희곤 대표 "소명 기회 줘야한다 생각"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신정아 씨의 자전적 에세이 '4001'을 출간한 사월의책의 안희곤 대표는 24일 책 출간에 정치성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안 대표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책이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졌다면 출간 시점에 대해 의혹이 일수도 있겠지만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작업이 다 끝나서 나온 것이지 시기를 따로 조정한 것은 아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책 출간에 정치권 인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안 대표는 "저자와 내가 서로 알고 있는 예술계나 출판계 인사가 있긴 하지만 정치권 인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2007년 사건이 터졌을 때 신씨가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러한 내 태도와 적당한 출판사를 물색하던 신씨의 상황이 지인들을 통해 서로 전달된 것"이라고 출간 경위를 소개했다. 안 대표는 이어 "지난해 8월에 받은 초고는 원고지 8천매 분량이었는데 불필요한 부분, 수위가 높은 부분, 시시콜콜한 부분들을 대부분 저자 판단으로 뺐다"며 "저자가 글을 잘 써 편집작업도 오탈자를 고치거나 소제목을 붙이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책에 거론된 일부 인사들이 명예훼손이라며 법적 대응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해 "아직까지 출판사에 문제가 제기된 것은 없다"며 "검토를 모두 마친 상태라 법률적으로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고 단언했다. 안 대표는 고려원, 김영사, 씨앗을뿌리는사람 등 여러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편집자 생활을 하다 2009년 사월의책을 설립, '박애자본주의' '파리는 깊다'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 등 인문, 예술서를 선보였다. 그는 "부정적인 인물에 대해 책을 냈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신씨를) 부정적인 인물로 만들어버린 것은 사람들이지 신씨 자신이 아니다"며 "내용에 정말 문제가 있었다면 출간 여부를 고민했겠지만 상당부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소명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인세 등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며 "1-2만부만 팔아도 문제없다는 생각으로 낸 것"이라며 "출판사도, 저자도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월의책은 '4001'을 출간한 지 하루 만인 23일 초판 5만부를 모두 출고했고 현재 2만~3만부 추가 인쇄작업에 들어간 상태라고 출판사측 관계자는 전했다. 신정아 씨에게 지급된 선인세는 소액이며 인세는 일반적 수준인 10%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신씨는 초판 판매만으로 7천만원 가량의 인세를 벌어들일 것으로 추산된다. 신정아, “내 진심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시사저널 | 김지영 | 입력 2011.03.28 14:54 | 최근 자신의 수인번호를 제목으로 한 자전 에세이집 < 4001 > 을 발간해 큰 파장을 일으킨 신정아씨가 책 출간 후 처음으로 < 시사저널 > 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신씨는 일부 유명 인사를 실명으로 거론한 책 내용과 관련해 이번 에세이집에 담지 못한 민감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다고 밝히고, 최근 언론 보도가 자신의 진심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와 곤혹스럽다는 심경도 내비쳤다.
신정아씨에 대한 세인의 관심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염문설'로 옮겨붙으면서 폭발력을 더했다.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변양균씨와의 불륜 관계가 드러나면서 '신정아 파문'은 학계, 미술계에 이어 정치권까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권력'과 '치정'이라는 극적 요소가 한데 뒤얽히면서, 이를 바라보는 세상 모든 사람을 마치 관음증 환자인 양 몰아가기도 했다. 기자는 지난해 6월, 검찰의 핵심 인사로부터 신정아씨가 2007년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했던 진술 내용의 일부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신씨가 변양균 전 실장과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는지와 그녀의 숨겨진 가족사 등에 대한 얘기였다. 이후 기자는 신씨의 변론을 맡고 있는 김 아무개 변호사를 통해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변호사는 "신씨가 자서전을 준비 중이니 그때까지만 기다려달라"라고 했다. 그렇게 약 7개월을 기다린 끝에 지난 3월22일 신씨의 자전 에세이집 < 4001 > 이 발표되었다. 신정아씨의 책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신씨는 2007년 이후 4년 만에 또다시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받는 무대 위로 올려졌다. 사람들은 다시 신씨를 찾느라 아우성이었고, 신씨는 다시 꽁꽁 숨고자 했다. 김변호사는 "신정아씨의 출판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정치권으로 파문이 일어서 지금 신씨가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신씨의 책이 나오자마자 세간의 관심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국회의원 C씨 등의 부도덕한 언행에 초점이 맞춰졌다. "책에 담지 못한 민감한 내용 굉장히 많다" 신정아씨는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책이 나온 뒤에 < 시사저널 > 과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신씨는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서도 3월24일 저녁 6시에 기자와 만나 약속을 지켰다.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그녀는 "너무 시끌시끌해서 상당히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항상 내 진심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라는 심정부터 털어놓았다. "2007년의 악몽이 되살아난 것 같다"라는 말까지 했다. 2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자서전 출간 후 첫 단독 인터뷰에서 신씨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단호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기자의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말할 수 없다"라고 딱 잘랐다. 그러면서도 "책에 담지 못한 민감한 내용들이 굉장히 많다"라는 말로 책에 담긴 내용은 상당히 절제된 것임을 강조했다. 여전히 폭발력 있는 '뇌관'을 남겨두고 있는 셈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 차례 더 후폭풍이 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씨는 "참여정부 때 정치하라는 제안을 받았다"라는 비화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변양균 전 실장에 대한 감정, 가족들과 연락을 단절한 사연 등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3월22일 기자간담회 이후 어떻게 지냈나? 간담회가 열리기 전날 얼굴에 열꽃이 피고 두드러기가 났다. 내게 남았던 마지막 울화가 치밀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간담회장에 안 나갈까도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나갔다. 간담회 후 병원에 갔다가 집에 가서 저녁 약속에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정운찬 전 총리와 C의원 등에 집중된 기사가 터지면서 그날 저녁 약속도 취소했다. 그리고 계속 집 안에만 있었다. 밖으로 나갔다가 누가 알아볼까 봐 못 나갔다. < 시사저널 > 인터뷰 때문에 오늘 처음 외출한 것이다. 애초에 이 책이 파문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나?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이렇게 언론 보도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나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파문이 일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책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서전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나는 2007년 7월부터 지금까지 4001번(신씨의 수인번호)으로 살아왔다. 감옥에 있는 것과 집에 있는 것으로 공간만 바뀌었을 뿐이다. 너무 많은 콤플렉스가 생겼다. 루머나 소문도 나를 압박했다. 하루를 살아도 '신정아스럽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사실은 사실대로 얘기하고 내가 잘못한 부분은 더 혼 날 각오를 했다. '사건 속의 신정아' '소문 속의 신정아'하고 완전히 이별하고 싶었다. 정 전 총리와 C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관련해 기사가 나올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신정아'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아, 사실은 이랬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읽어주기를 바랐다 . 어떤 점을 특히 얘기하고 싶었나? 가장 억울한 부분이 '학력 위조'와 '꽃뱀' 부분이다. 내가 학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학위를 내가 위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징역을 살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국대와 미국 예일 대학의 소송 결과에서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학력 위조와 꽃뱀이라는 부분을 털고 싶었다. 책에서 대부분 실명을 밝혔고, 일부는 익명으로 처리했다. 그 기준이 뭔가? 2007년 7월16일부터 4년 동안 썼던 일기로 된 오리지널 원고에는 전부 실명으로 되어 있다. 책에서 일부 익명으로 처리한 것은 법적인 문제를 고려해서였다. 정 전 총리와 C의원, 전직 청와대 간부 등은 당신의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책에 있지 않나.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정 전 총리와 C의원 외에 책에 담지 못한 사람들이 더 있나? 물론이다. 유명한 분들도 있다. 왜 책에 안 담았나? 이 책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폭로를 하거나 나쁜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그저 지난 4년간 4001번으로 살아온 신정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두 사람만 공개했나? 그렇다면 왜 유독 두 사람만 공개했나? 내가 2007년 검찰 조사를 받고 있을 때, 두 사람의 얘기 때문에 내가 거짓말쟁이로 몰렸다. 당시 정 전 총리가 '서울대 교수직을 제안한 적이 없다'라고 하면서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그래서 최대한 사실을 밝혀야 했다. 꼭 정 전 총리이기 때문에 (공개)한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없었다. C의원에게서도 당시 그런 얘기가 나왔다. 정 전 총리의 경우, 4월 재·보선 출마설과 이익 공유제 논란 등으로 요즘 언론의 큰 관심 대상인데, 공교롭게도 이 시점에 책이 나왔다. 정치적 의도나 혹은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것이 아닌가? 나는 정치적인 사안은 모르겠다. 이 책은 원래 지난해 8월쯤 나오려고 했다. 그것이 미루어지다 지난 설날 전에 나오려 했다. 하지만 책 표지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디자인하다 보니 늦어졌을 뿐이다. 지난해에 출판하려 했던 원고에도 정 전 총리와 C의원 얘기는 있었다. 일각에서는 "유부남과 불륜 관계였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도덕성을 운운하는 것은 모순이다"라고 지적한다. 그 사람들의 도덕관념을 얘기한 것이 아니다. 당시 내가 거짓말쟁이로 몰린 것에 대해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부터 책 얘기를 좀 하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는 못했다. 감추고 싶은 것, 부끄러운 것도 조금씩 가려두었다'라고 했는데. 어떤 부분인지 말씀드릴 수 있으면 책에 썼을 것이다. 남들에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얘기하지 않았다. 일부는 법리적인 문제 때문에 얘기하지 못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 편집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책에 실었다. 책에 담지 못한 내용 가운데 민감하거나 큰 파문을 일으킬 만한 것이 있나? 물론이다. 그런 부분이 굉장히 많다.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어서 책에 담지 않았다. 변양균 전 실장을 '똥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부른 것은 성 때문인가? 그렇다. 내가 짓궂어서 '똥아저씨'라고 놀려먹기 위해 오래전부터 썼던 호칭이다. 다른 호칭들도 있었는데 '똥아저씨'가 편한 것 같아서 책에도 썼다. 사람들이 의도적인 만남으로 오해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면도 있다. '아빠였고, 친구였고, 한 남자'였던 '똥아저씨'에 대한 현재의 감정은 어떤가? 이 부분은 내가 가장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고, 기자들은 반드시 물어보는 질문이다. 그래서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책에도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인연이었지만 타의에 의해서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상황에서 마무리되었다. '내가 (2007년 9월16일 미국에서) 서울로 귀국하려 하자 노대통령은 한사코 나의 귀국을 반대했다고 한다'라고 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서 전해 들었던 이야기이다. 그런데 노대통령님 얘기도 책에 쓰지 않으려고 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고, 아직도 좋아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쓰는 것 자체가 누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07년 사건 당시 나에 대한 무궁무진한 배후설이 나오지 않았나. 그 배후설이 틀렸다는 점을 해명할 필요가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분향소에는 갔나? 그때 자유롭게 밖을 나다닐 처지가 아니어서 그렇게 못했다. 그 심정, 죽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심정을 나는 이해했다. 책에도 썼지만 오죽하면 그러셨을까 싶은 생각에 되게 참담했다. 비보를 듣고 마음이 아팠고, 지금까지도 마음이 아프다. 당시 청와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글쎄. 노 전 대통령이 당신에게 '홍보나 대변인 같은 일을 해도 잘하겠다고 하셨다'라고 했는데, 청와대에서 제안은 없었나? 참여정부와 연결되는 부분이니까 내가 굳이 말씀드릴 부분은 아닌 것 같다. 그 정부 시절 얘기니까, 민폐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신씨는 기자에게 갑자기 "제가 (홍보나 대변인) 소질이 있어 보이세요? 없어 보이세요?"라고 물었다. 기자는 "소질이 있어 보인다"라고 답했다. 신씨는 "그러면 '소질이 있어 보인다'라고 써 달라"라며 웃었다.) '내가 미술계 밖의 일에는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심지어 노대통령은 측근인 '모 의원'을 소개해주셨다. 언론에서는 '대통령의 남자'라며 여러 사람을 거론했지만, 실제로 대통령이 생각하는 당신의 사람은 내게 소개해준 의원이라는 것이 내 직관적인 느낌이었다'라고 했다. 그 '모 의원'은 누구인가? 말씀드릴 수 없다. 내가 좋은 이미지의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그 '모 의원'에게도 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하고 나하고는 그 사실을 아니까 그러면 된 것이다. '모 의원'은 현재도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도 나와 연락한다. 아주 좋은 분이다. '미술계가 아니라 더한 일도 할 수 있는 그럴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거절했다'라고 했는데, '그 기회'는 무엇인가? 참여정부 때, 정치 쪽이었는데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어렸으니까. 정치 쪽에 관심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내 전문 분야에서 연륜이 쌓이고 웬만큼 일했다고 생각했을 때 할 일이었다. 그때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미술계를 떠나 더 잘되었을지도 모른다. '신정아 누드 사진'을 보도한 문화일보와의 민사 소송이 재판부의 조정 결과, 지난 1월 배상금 8천만원을 받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그런데 이번 출판 이후 문화일보에서 '신정아 사진은 진본'이라고 다시 주장했다. 조정으로 끝난 소송이었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해 책에서도 일체 내 주장을 싣지 않았다. 그런데 문화일보가 다시 진본이라고 주장하는 기사를 보고서 정말 더럽고 구질구질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 일각에서 당신의 책에 대해 대필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내 일기를 어떻게 남이 쓸 수가 있겠는가. 만약 내가 대필 작가를 내세웠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내가 워크홀릭(workholic : 일 중독자)인데 책을 인쇄하고 나니 허무하더라.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직장이 있으면 정말 소개시켜달라. 좋은 직장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소개시켜달라. 진짜다. 김지영 / young@sisapress.com [단독]신정아, 방송MC로 컴백…논란 후 6년만에 ‘학력위조 논란’ ‘정권 측근과의 부적절한 관계’ 등 2007년 사회적 이슈를 양산했던 신정아씨(41)가 방송MC로 데뷔한다. 앞서 신씨는 횡령 등의 혐의로 2007년 10월 구속된 후 18개월 만인 2009년 4월 10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 신씨는 2011년 3월 자전 에세이 ‘4001사건 전후’를 출간하며 활동을 재기하는 듯 보였으나, 이내 잠행에 들어갔다. ‘4001’은 신정아씨의 수인번호다. 신씨가 방송을 통해 재기할 것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파급효과도 예측이 불가능하다. 신씨의 재기무대는 TV조선 신설 토크프로그램 ‘강적들’(가제)이다. 프로그램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집단MC 체제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면면 역시 ‘강적들’이다. 신씨를 비롯해 정치인에서 방송인으로 거듭난 강용석 변호사,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준석씨 등이 합류했다. 지난 6월부터 신씨를 4개월여 쫓아다니며 출연을 확정지은 은경표 PD는 “최종적으로 추석 연휴 직후 출연을 확정졌다”며 “여성으로 큰일을 겪은 만큼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신씨의 방송MC로 성공 가능성에 대해 “사고방식이 정돈되어 있고, 이런 프로그램에 적합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은PD는 MBC 출신으로 현재 프리랜서 연출자로 활동하고 있다. 송창의 tvN 부대표와 함께 쇼·공개오락 프로그램의 신기원을 이룩한 PD로 평가받고 있다. TV조선 ‘강적들’의 첫 방송은 내달 중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첫녹화는 10월초다. 토크프로그램으로 사회적인 이슈와 시사·문화·트렌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이다. 주 1회 70분 분량으로 방송된다. 정확한 편성일자는 확정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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