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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빈 갈수록 ‘매운맛’…한국 21년 만에 첫 금

含閒 2021. 10. 7. 09:54

신유빈 갈수록 ‘매운맛’…한국 21년 만에 첫 금

중앙일보

입력 2021.10.07 00:03

키만큼 기량도 성장한 신유빈.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고도 그는 평범한 일상을 바랐다. [뉴시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거요? 제가 좋아하는 떡볶이가 먹고 싶어요. 참, 집에서 잠도 푹 자고 싶고요!”

아시아 여자탁구 정상에 선 신유빈(17·대한항공)의 대답은 이랬다. 10대다운 발랄하고 소박한 소원이었다. 전지희(29·포스코에너지)와 짝을 이룬 신유빈은 5일 카타르 도하에서 끝난 2021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복식 결승에서 두호이켐-리호칭(홍콩) 조를 3-1로 꺾고 우승했다. 한국 선수가 아시아선수권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낸 건 2000년 대회 이은실-석은미 조 이후 21년 만이다.

신유빈은 메이저 대회 금메달을 처음으로 목에 걸었다. 앞서 열린 여자 단식과 여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딴 그는 이번 대회를 통틀어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수확했다. 여자 탁구 차세대 에이스로 부족함이 없는 성과다. 신유빈은 중앙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첫 메이저 대회 금메달을 (전)지희 언니와 힘을 합쳐 이뤄냈다. 함께 만든 결과여서 기쁨도 두 배”라고 답했다.

여자 복식 파트너 전지희(오른쪽)와 금메달을 걸고 웃는 신유빈. [사진 탁구협회]

이번 대회를 앞두고 신유빈의 입상을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세계 최강인 중국이 코로나19 방역 등을 이유로 불참하긴 했지만, 일본·대만 등 강호들이 나서는 대회였기 때문이다. 세계랭킹 80위 10대 선수에겐 아직 버거운 무대로 보였다. 그러나 신유빈은 예상을 깼다. 기존 분석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날카로운 기술과 베테랑 같은 경기 운영을 선보였다.

실전을 통해 성장할 시기였지만 신유빈은 코로나19 탓에 지난 2년 동안 그럴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8월 도쿄올림픽을 통해 신유빈의 ‘탁구 성장판’이 활짝 열렸다. 세계적인 강호들과 맞붙은 감각과 데이터를 그대로 흡수하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김경아 대한항공 코치는 “유빈이가 올림픽을 경험하면서 위기관리와 돌발 상황 대처 능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강한 상대를 만날 때마다 상대 기술을 학습하더라. 스스로 해법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김택수 대한탁구협회 전무이사는 “신유빈은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상대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바뀌는 능력도 타고났다”고 칭찬했다.

김 코치는 이 대회 단식 최대 고비였던 안도 미나미(일본)와 8강전을 예로 들었다. 안도는 2019년 세계 29위까지 올랐던 강자다. 신유빈은 안도를 상대로 지난달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스타컨텐더 8강, 이번 아시아선수권 단체전 결승에서 모두 졌다. 하지만 세 번째 대결에선 플레이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 승리했다.

김 코치는 “안도는 박자가 빠른 선수다. 유빈이가 앞서 두 차례 대결에선 파워로 승부해서 상대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세 번째 대결에선 힘을 줄이고 박자를 따라가는 플레이를 해서 놀랐다. 유빈이가 스윙 모션을 작게 만들어 스피드를 끌어올리니, 상대가 당황해 범실을 저질렀다”고 분석했다.

신유빈은 지난 2년 동안 키가 5㎝나 크면서 공격형 선수로 진화했다. 1m69㎝까지 자란 그는 또래 선수들을 파워에서 압도하고 있다. 하루 8시간씩 훈련하며 스피드와 지구력도 힘에 맞춰 키웠다. 강점인 백핸드 드라이브를 살리면서 상대적으로 약했던 포핸드 드라이브를 보강했다.

포핸드 드라이브는 세계적인 공격형 선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필살기다. 김 코치는 “포핸드는 힘과 정확성이 동시에 필요한 기술이다. 신체 조건이 좋아진 덕에 최근 유빈이가 포핸드를 적극적으로 구사하기 시작했다. 더 자유자재로 기술을 쓸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신유빈의 다음 목표는 11월 미국 휴스턴 세계선수권대회다. 여기에는 중국과 유럽 등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한다. 그래도 기대할 만하다. 김 코치는 “유빈이는 지금 ‘도장 깨기’ 중이다. 성장 속도가 워낙 빨라서 잘하는 선수와 붙을수록 더 세진다. 무엇보다 정신력이 강하다”고 말했다.

신유빈은 “매 경기 준비한 것을 다 보여주고 후회 없이 경기장을 나오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출전하는 종목마다 금메달 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떡볶이보다 매운 소감이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