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환자만 바라본 윤한덕.."아들과는 1주에 3시간뿐"

含閒 2019. 2. 9. 09:20

환자만 바라본 윤한덕.."아들과는 1주에 3시간뿐"

이해진 기자 입력 2019.02.09. 06:30

               
아내 민영주씨 "아이들 기사 보고 아빠 일 알아, 자랑스러워 한다"
이달 7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국립중앙의료원 고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일주일 168시간 중 고작 3시간.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생전 두 아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다. 센터장이면서도 동료를 배려해 당직을 자처했던 그는 정작 자신과 가족을 위한 시간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8일 중앙응급의료센터 내 빈소에서 만난 윤한덕 센터장의 아내 민영주씨는 “아이들이 일주일에 3시간밖에 아버지와 함께 하지 못했다"며 "아이들은 아버지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사고 직전 아내와 두 자녀에게 "이제 가정을 잘 챙길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한 달에 집에 들어가는 날은 고작 2~3일 뿐. 그나마도 자정이 다돼야 귀가한다.

자녀들은 이미 잠들어 있기 일쑤였고, 아이들이 깨기 전 새벽 바람과 함께 병원으로 나서는 일이 허다했다는 게 동료의 전언이다. 가족을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민영주씨는 "남편 변고 후 여러 기사가 나오면서 자녀들이 윤 센터장이 생전 해온 일을 알게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아들이 최근 며칠 언론 기사를 접하고 아버지를 굉장히 자랑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장례 이틀째인 이날 빈소에는 윤 센터장의 동료들 발길도 이어졌다. 이들은 늘 과로할 수밖에 없었던 윤 센터장을 떠올렸다.

윤 센터장과 5년간 함께 일했던 유병일씨(57)는 "센터장님은 이불 없이도 잘 주무셨는데 만성피로로 눕자마자 잠드셨기 때문"이라며 "늦게 발견된 것도 '으레 집에 안 가시려니'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턴 시절 레지던트인 윤 센터장을 만났던 박찬용 원광대 외상센터장(47)은 "윤한던 선생님은 센터장이면서도 응급상황실 당직을 섰다"고 설명했다. 워라밸(일과 생활의 밸런스)라는 신조어를 듣고도 "그게 무슨 말인고?"라고 농담했다는 일화도 전했다.

박 센터장은 "윤 센터장은 정작 업무시간엔 자기 일을 하지 못해, 당직을 선 뒤 남들은 다 퇴근한 밤부터 일하셨다"며 "방에 불 켜져 있는 것이 당연했고 사망 당일에도 뒤늦게 발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윤 센터장은 사고가 있기 직전까지 국내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고민했다고 한다. 생전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해 규제 개선을 고심해왔다고 한다.

전남대병원 응급구조사 김건남씨(45)는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도 센터 앞 카페에서 두시간여 (열띤) 논의를 했다"며 "국내 응급구조사가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적재적소에서 실력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김씨는 "선생님은 떠나셨지만 선생님과 한 약속은 절대 잊지 않고 실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윤한덕 센터장은 지난 4일 오후 6시쯤 센터장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날 윤 센터장은 설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고향인 광주에 내려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자 윤 센터장 부인이 병원을 찾았고 이후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윤 센터장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해 달라고 보건복지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윤 센터장의 영결식과 발인은 이달 10일 중앙의료원에서 진행된다.

이해진 기자 hjl1210@, 권용일 기자 dragon1_1211@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