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형 칼럼] 사회주의 개헌론 왜 나오나
▲ 아랍에미리트(UAE)를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전 (현지시간) 바라카 원전 1호기 완공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숙소 호텔에서 국무회의를 통과한 개헌안의 국회 송부와 공고를 전자결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세형 칼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으로 탄핵에 이르게 된 것은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폐단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권력 구조를 개편해 이런 국가적 불행의 재발을 막자는 게 개헌론의 출발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에도 신고리 1·2호기 원전으로 인한 1000억원 손실 발생, 검찰의 정권 목적용 수사 동원 등에 대해 야당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적폐가 여전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1947년 5월 이래 71년 동안 한 번도 개헌하지 못했고 우리도 87년 체제 이후 31년 동안 개헌론을 말하지 않은 정권이 없었지만 하지 못했다. 그만큼 개헌은 어렵다. 따라서 모처럼 개헌 논의가 무르익은 이번에 이념 편향, 당파적 이해에 함몰돼 밀어붙이려 해선 안 된다. 니체의 말대로 애초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망각해서도 안 되며 처칠의 말마따나 중요한 일일수록 집중해야 한다.
이번 개헌의 집중 타깃은 딱 하나, 제왕적 대통령 권한 축소다. 다른 건 하나도 안 해도 된다. G20 국가 중 한국 외에 순수 대통령제는 미국뿐이고 나머지는 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프랑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공화당을 이래라저래라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번 개헌에서 권력 구조 개편은 내각제로 가는 게 최선, 분권형은 차선, 권한 축소 없는 대통령 4년 중임은 채택 불가가 아닐까.
권력 배분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치는 지지율 40%로 대통령에 당선돼도 대통령과 여당이 모든 권력을 독식해 대통령을 찍지 않은 60% 다중의 정치 의사는 소외된다. 불만이 커지면 길거리 투쟁에 나서고 촛불이 되는 것이다.
야당은 대통령 발목을 잡아 실패한 정권으로 만들어야 다음 선거에 자신들에게 기회가 올 것이므로 조선 당파싸움을 능가하는 싸움에 몰두하고 '협치'는 말뿐이다. 중장기 발전계획 하나 없는 게 한국 실정이며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것을 갈아엎어 결국 국민만 손해 본다. 이번 개헌에선 이 모순 구도를 깨부숴야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희망이 생긴다. 따라서 4년 중임제가 선이고 책임총리제라면 이를 무조건 반대하는 발상은 독선이라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말이 옳다.
청와대의 개헌안이 파기되고 국회에서 발의한 안을 놓고 성안하더라도 이런 정신을 망각하지 말기 바란다.
다음으로 사회주의 이념 요소가 너무 강하다는 비판에 관해서다.
그 핵심은 1) 노동문제 2) 토지공개념 3) 경제민주화 등 3가지 분야로 모아진다.
●노동 관련 헌법 조항
먼저 국민기본권 33조 3항 '동일노동은 동일임금'을 명문화했는데 가령 똑같이 자동차 바퀴를 갈아끼우는 노동자가 한 명은 입사 20년 고참, 또 한 명은 신입사원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동일임금을 주자면 호봉제를 폐지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공기업 성과급제를 폐지시켜 호봉제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헌법에 넣으면 어쩌라는 것인가. 그리고 노동 가치는 미묘한 차이가 나는 법인데 판단 기준은 누가 정할 수 있을까.
33조 4항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노동 조건을 정하라고 했는데 이는 현행 노동법에 잘 규정돼 있는 내용이다. 이를 헌법으로 격상하면 갈등을 키울 소지가 너무 많다. 가령 기업에서 이 조항을 근거로 노동자가 경영 참여를 주장하거나 노동이사제를 국영기업이 아닌 사기업에서도 들고 나올 수 있다. 그러면 한국은 순수 자본주의의 궤도를 이탈하는 것이다.
또한 이번 개헌으로 공무원도 노동자가 되므로 공무원복무규정에 따르지 않고 국가를 상대로 파업하는 근거가 된다. 노동관계법에 둬도 충분한 것을 헌법으로 올리면 싸움판만 키우고 헌법 조항은 누더기가 된다는 평가다.
●토지공개념
현행 헌법에도 토지공개념 정신이 충분히 포함돼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재산권(23조 3항) 행사에서 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 사용 제한 및 보상은 법률로 한다. 더 구체적으로 토지 부분은 122조에서 국토의 균형 있는 이용 개발과 보전을 위해 법률에 따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한다고 돼 있다. 그리고 이번에 문제의 2항이 새로 마련됐는데 '국가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노태우 정부 당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 택지상한제 등 공개념 관련 3개 법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무릎을 꿇어 투기와 불로소득 환수에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항하기 위해 2항을 마련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헌법학자들 눈에 1항과 2항이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면 현행 122조가 2항의 정신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공공성이란 단어만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재산권 조항에 있으므로 굳이 새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결정적 차이는 23조, 122조에 재산권이나 토지(땅) 수용을 위해서는 '법률에 따라'라는 규정이 꼭 붙어 있는데 이번 2항은 그게 빠졌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헌법 37조 ②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 보장·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개헌 40조 2항).
그러므로 공개념을 강화한 2항은 헌법 조항이면서도 위헌이라는 모순을 낳는다.
이 같은 법률에 위임한다는 내용을 쏙 빼고 무시무시한 토지공개념 규제를 휘두르겠다는 결의가 조 수석의 설명에 포함돼 있지 않아 두렵다. 즉 과거 택지상한제나 초토세 개발이익 환수는 물론 토지가격 상승은 불로소득이므로 국가가 환수해버린다는 헨리 조지의 생각을 실천할 의향이 있지 않냐는 것이다.
초등학교가 학력의 전부인 조지는 1879년 '진보와 빈곤'이란 책에서 대도시 개발로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게 빈부격차의 근본 원인이며 토지는 유일하게 재생산이 안 되는 재화로서 신(神)이 인간에게 공동으로 사용토록 부여한 선물이므로 소유권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소유권을 허용해 도시 개발로 땅값이 오른다면 불로소득이므로 국가가 환수해 국민 복지에 쓰는 게 타당하다는 논지다.
현재 토지공개념 정신은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23조, 122조에 의거해 신도시 개발을 할 경우 공공 목적이 아닌데도 수천만 평을 수용해 민간주택을 짓거나 세종시 건설 등을 하고 있다. 이 정도 공개념 실천은 세계 최강 수준이라고 토지 분야 권위자인 손재영 건국대 교수는 평가한다.
조지가 활동한 미국을 비롯해 서방 어느 나라도 토지 소유권을 국가가 보유하거나 부당이익 환수를 시행하지 않는다. 오로지 예외가 있다면 토지를 100%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중국이다. 부당이익 환수조항이 있다. 왜 미국은 토지공개념을 강화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조지의 주장 이후 상속세·양도세·재산세 등 세제를 도입해 시행하면서 이미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상속세 최고세율만 50%이고 미국은 재산세 1%인 주(州)가 많고 양도세는 한국에서도 40~50%에 달한다. 이미 충분한 세제 개발이 돼 있는데 또다시 토지공개념을 강화하자는 발상은 곧 중국식 모델로 가자는 말이냐는 의심을 사게 된다. 그것은 공산주의이지 자본주의 방식이 아니다. 실제 법 시행에선 도움이 안 되면서 헌법만 그렇게 해놓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면 외국 자본이 한국에 투자하지 않도록 내쫓는 나쁜 역할만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토지는 재생산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틀렸다는 점이다. 건축기술 발달로 지상 1000m 이상 초고층 빌딩이 가능한 시대다. 이제 제도의 문제일 뿐이고 토지는 그렇게 하면 얼마든지 재생산이 가능하다. 사막에 건설한 라스베이거스는 개발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자본주의가 아니면 건설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익을 환수한단 말인가.
일부 국회의원들이 네이버 등 포털에 토지공개념 강화 논리를 펴는데 이치에 안 맞는 게 너무 많다.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 관련 현행 헌법 119조는 다음과 같다.
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여기서 2항에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개헌안에는 '상생과 조화'로 '상생'이란 단어를 넣고 3항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상생은 기업이 세계를 상대로 경쟁력에 의해 생존하는 게 아니라 재벌의 혜택으로 중소기업이 생존하자는 개념을 머리에 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1987년 개헌 때 경제민주화 조문을 넣었던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통화해보니 "자본주의가 첨단화되면서 시장 실패를 정부가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경제민주화 개념을 넣었는데 자꾸 덧붙여봐야 동의어 반복"이라고 비판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민주화라는 단어 자체가 지닌 모순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은 선거철만 되면 경제민주화가 반재벌과 동의어적 구호로 요란한데 외신은 경제민주화를 번역하지 못한다. 경제는 효율을 좇고 민주화는 평등을 추구하는 개념이다. 효율은 인센티브로 차이를 키움으로써 달성된다. 따라서 '경제민주화=차별+평등'의 묶음이다. 두 단어는 동그란 네모처럼 형용 모순이다. 그래서 영어사전에 경제민주화가 없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모습이 아니다.
이제 좀 더 넓은 시야로 헌법에 경제의 장(章·chapter)의 존재를 볼까.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경제의 장이 따로 없다(불문법 체계인 영국도 물론 없다). 우리의 현행 헌법 제9장 <경제>는 119~127조에 걸쳐 있는데(개헌안은 125~134조) 조항을 세세히 읽어 보면 소작농 금지 정도를 제외하고 의미 있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작농 금지를 명문화한 주요 국가도 없다. 헌법에 경제 챕터를 자꾸 키우기보단 필요한 부분은 기본권의 장에 합치고 아예 경제 전체를 들어내버리는 게 개헌 시 좌파이념화를 막는 데도 일조할 것 같다.
●기타
이 밖에도 지방분권화는 국민 여론의 60% 이상이 반대하며 지방재정 자립도가 무척 취약한 실정에서 개헌안 1조 3항에 대한민국은 분권국가를 지향한다는 내용은 어색하다. 개헌안 130조에 중소기업 관련 내용에서 소상공인을 별도로 또 분리하는 내용도 다분히 이념편향적이고 헌법의 단순성을 훼방한다.
국민을 모든 사람으로 바꾸고 근로를 노동으로 변경한 데 대해서도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근로라는 용어를 쓰게 된 배경이 일제 잔재나 독재 청산이라고 조 수석은 설명했으나 그것은 진실이 아님을 본인도 알 것이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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