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모음(垃圾)

[스크랩] 돼지의 변신

含閒 2018. 2. 8. 13:36

돼지의 변신 

             최영미, 2005년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 

감방에서 한 이십년 썩은 뒤에 

그는 여우가 되었다 

그는 워낙 작고 소심한 돼지였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감옥을 나온 뒤 

사람들이 그를 높이 쳐다보면서 

어떻게 그 긴 겨울을 

견디었냐고 우러러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다 

그는 자신이 실제보다 

돋보이는 각도를 알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방향으로 몸을 틀고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무슨 말을 하면 학생들이 좋아할까? 

어떻게 청중을 감동시킬까? 

박수가 터질 시간을 미리 연구하는

머릿속은 온갖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지만 카메라 앞에선 

우주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심각해지는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 

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 

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 

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 

변치 않을 오래된 역설이… 

나는 슬프다. 



그 돼지가 바로 신영복이리라. 뱅모 박성현 뉴데일리 주필의 의견이다. 그 장례식에 온갖 새끼돼지들과 여우들이 모였었다.


 

위키) 신영복(申榮福, 호 쇠귀, 1941년8월23일~ 2016년1월15일)

작가, 대학교수 등으로 활동했다. 진보적 학자로 분류된다. 중앙당인 조선로동당의 통제를 받았던 공산혁명조직 지하당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주범인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사형을 당했고, 신영복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다가 1968년 희대의 간첩단 사건인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전향서를 쓰고)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88년에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출소 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를 역임하였고 2006년말에 정년 퇴임하였다. 퇴임 당시 소주 포장에 들어가는 붓글씨를 써주고 받은 1억 원을 모두 성공회대학교에 기부하였다. 이후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나눔과 소통을 하였다.

신영복은 사상전향을 하여 1988년 출소하였다. 감옥에서 쌓은 20년간의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학식과 인격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훌륭하나, 어릴적부터 가진 사상적 편향성으로 대학시절 사회주의 사상서클의 리더로 활동하다 통혁당사건의 주범인 대학선배 김질락이 "혁명을 원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며, 포섭된 그를 통혁당사건에서 사형당한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 세명을 제외한 최고의 지위에 있는 자로 법원이 판단하여 무기징역을 받게 된다. 통일혁명당은 김종태가 월북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령•자금을 받고 결성된 혁명 조직이었다. 신영복과 박성준(한명숙 남편)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내 동아리인 '경제복지회'를 지도했는데 신영복은 통일혁명당의 김질락의 지도를 받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 '더불어 숲'(2003) 등의 저서가 있다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18292

재미언론인 안치용 씨가 공개한 당시 외교부 비밀문서의 일부. 아래 북한 측이 "보내달라"고 요구한 사람들의 이름 

사이공 함락 시에 교민들을 끝까지 구출하려다 월맹에 억류된 이대용 공사 등 한국외교관 세 명을 구출하기 위한 비밀 협상이 1970년대 말에 진행됐었다. 북한은 1대70의 조건으로 남한에 수감돼있는 북측 인사들과 교환을 요구하다가 나중에는 1대7, 즉 3명대 21명 교환으로 의견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중월간의 갈등과 북한의 친중노선에 분노한 공산 베트남이 세 외교관을 그냥 한국에 보내면서 이 교섭은 무산됐다.

그런데 이 교섭 중에 북한이 “인도”를 요청한 인사들의 명단이 있는 공식문서에 놀랍게도 (또는 전혀 놀랍지 않게도) 통일혁명당 사건의 주역으로 무기징역형을 살던 신영복 교수의 이름이 기재돼 있다. 당시 북한정권은 상당히 집요하게 신씨의 “북송‘을 요구했다. 역사의 진실은 의외로 빨리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있다. 통일 후 우리는 더 완연한 모습으로 그 실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KBS 조우석 이사의 용기 있는 발언 동감한다”

미디어내일 박필선기자 승인 2016.01.17  

조우석 KBS 이사가 별세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추모열기에 대해 “정상에서 멀다”고 비판한 것을 두고, 미디어오늘이 신 교수의 추모열기를 폄훼했다고 보도하자 네티즌들이 이를 강하게 비판하는 모습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댓글로 의견을 낸 이들은 미디어오늘 등 이른바 진보좌파 언론들의 목소리가 사이버 공간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인터넷 언론환경의 ‘기울어진 운동장’ 현황을 꼬집는가 하면, 이들 매체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한 조우석 이사에 공감의 뜻을 전했다.

미디어오늘은 17일 ‘KBS 조우석 이사 “신영복 추모 열기, 도무지 정상에서 멀다” 폄훼’ 제하의 기사를 통해, 조우석 이사의 칼럼을 소개했다. 기자는 “조우석 KBS의 이사의 막말이 또 한 번 도마에 올랐다”면서, “공정성, 공영성을 추구해야 할 공영방송 이사로서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성 문구로 조우석 이사의 주장을 폄훼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1994년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 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최영미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사학과 졸업.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199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등 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시작. 1994년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1997년 산문집 '시대의 우울', 1998년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2002년 산문집 '화가의 우연한 시선', 2005년 세번째 시집 '돼지들에게' 출간.

펌, 매일) 스물넷에 이혼했다. 그리고 부모님 집에 눌러 앉아 뒹굴었던 시절이 있었다. 직장도 돈도 남자도 없었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뒹구는 그녀에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나이 서른에 남자가 있냐? 직장이 있냐? 돈이 있냐? 네 인생은 실패다." 그녀는 어머니의 그 한마디에 시인이 됐던 것 같다고 했다. 곧바로 친구한테 100만원을 빌렸다. 우선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생활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값싸게 머물수있는 곳, 고시원으로 들어갔고, 고시원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펌, 경향) 최씨는 ‘스캔들’과 함께 살았다. 한 해에 50만부가 팔린 첫 시집이 스캔들이었고, 그 시집이 나온 뒤 서점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화’에 스토커가 뛰어들었다. 세번째 시집 <돼지들에게>는 실명을 거론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만한 사람들을 ‘돼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시인 자신에게 가장 큰 스캔들은 줄곧 따라다닌 ‘나쁜 시’란 오명이었다.


출처 : 숲길의 사색
글쓴이 : 눈솔-강판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