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스크랩] 옛 선인들의 시와 동양화 / 충성 다한 성삼문

含閒 2017. 11. 20. 08:21
충성 다한 성삼문-김학수 作

▷ *…'성삼문의 호는 매죽헌이었다. 문과 중시에 장원한 후 요직에서 많은 일을 하였다 … 어린 임금 단종 복위 사건으로 세조의 온갖 악형을 받았으나 끝까지 굴하지 아니하였더라…'. 성삼문이 수레에 실려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순간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섬세한 붓 터치와 화려한 색감, 은은히 퍼져 나가는 먹의 농담이 살아 있기에 더욱 사실적이다. 그림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붓글씨로 적어 놓았다.

혜촌 김학수 화백(2009년 작고)은 평생을 역사 풍속화와 산수화 등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경과 생활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품 활동을 했다. "내 그림을 보며 후세들이 한국의 역사를 되돌아보길 바란다"며 김 화백이 작품을 기증했던 인제대 백인제기념도서관(경남 김해시 어방동)에서 그의 뜻을 기려 '혜촌 김학수 화백, 시대정신을 그리다' 전이 개최되고 있다. 통일 신라부터 조선까지 세종대왕 황희 성삼문 신윤복 안중근 등과 관련한 일화를 한 토막씩 보여 주는 기록화 60여 점을 통해 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위인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臨死賦絶命詩 (임사부절명시)

    (죽음에 임하여 절명시를 쓰노라)

    성삼문(成三問​), 조선세종~세조 때 문신

    북소리가 울리면서 생명을 재촉하고

    서풍에 밀린 해는 기울어져만 가네

    황천길에는 주막도 없다는데

    오늘밤은 어디에서 쉬어 갈것인가



    새남터 사형장에서 망나니의 칼춤을 채촉하는 북소리가

    자꾸 내 생명의 종말을 재촉하는 것 같다. 서풍에 밀려가는

    태양은 서서히 기울어져 가는구나. 조금 있으면 저 태양이

    지듯이 이내 목숨도 곧 끝이 나겠지. 황천길은 머나먼 길

    누군가 말하기를 그 길은 주막도 없는 길이라 하였다

    오늘 나는 죽어서 황천길로 먼 여행을 떠날 것인데,

    노점 하나 없는 그 길에서 힘들어도 쉬어 갈 곳 없으니

    그 점이 아쉽도다


    이 시는 단종 복위 음모가 발각되어 어버지인 성승, 유응부

    박팽년, 등과 함께 성삼문이 새남터에서 사형당하기 직전에

    읊은 시라고 알려져 있다. 원래의 단종 복위를 위한 세조 암살

    계획은 당시 운검(경호실 대원)으로 있던 성승(성삼문아버지)

    유응부 등이 세조임금과 세자를 칼로 내려치고,뒷일은 젊은

    성삼문,박팽년 등이 책임지기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세자가 현장에 나타나지 않자, 경험많은 성승,유응부는 임금

    암살해도 되니 그냥 추진하자고 하였고, 젊은 층은 나중으로

    연기하자고 하였다. 결국 연기하자는 쪽이 우세하여 연기했다가

    질의 밀고로 일당은 다 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중에 남효은이 이 사건을 육신전(六臣傳)에다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이 책에서 성삼문,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을 사육신(死六臣)이라 부르게 되었는데,이로 말미암아 당시에

    여섯명만 죽은 것으로 오해 되기도 한다. 사육신은 세조 측에서

    보면 역적이나, 단종 측에서 보면 충신이다. 수백년 뒤에는 충신

    으로 재 평가되어 영조 때에 모든 관직이 복직되기도 하였다


    새남터는 한강 철로변에 있는데, 전철을 타고 용산쪽으로

    한강을 건널때 한강에 이르기 직전에 오른쪽에 보면 보인다.

    여기서 옛날에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순교되어 지금은

    이것을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져 있다


    [출처] 臨死賦絶命詩(임사부절명시) '성삼문'

     


    ★ 잠시 옛 선인들의 시와 동양화




    김홍도의그림 (호암미술관 소장)

    탄노가 (嘆老歌)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 (1263~1343) 호는 역동,
    고려 충숙왕때의 학자


    하여가 (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려보세
    이방원(1371~1422) 조선 제3대 임금 태종
    이 아직 임금이 되기전 정몽주가 이성계의
    병문안을 왔을때 정적 정몽주의 의향을 떠
    보며 회유를 하려는 '하여가' 노래다.




    단심가(丹心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포은 정몽주 (1337~1392) 고려 공민왕때
    벼슬은 문하시중 이방원의 '하여가' 에
    대한 정몽주의 응답의 노래이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목은 이색 (1328~1396) 고려말의 대유학자로
    공민왕때 문하시중 우국충정을 담은 노래로
    여기서 세 가지는
    '구름: 이성계의 신흥세력
    '매화: 우국지사
    '석양: 고려 왕조를 의미.




    삼은(三隱)?

    고려 시대의 선비들은 아호에 '은'(隱) 자를
    많이 썼는데 이는 망한 고려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키며 숨어서 은거(隱居)한다는 뜻으로
    포은(圃隱)정몽주, 목은(牧隱)이색,
    야은(冶隱)길재 등 세 사람을 말한다.




    회고가(懷古歌)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도랐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야은 길재 (1353~1419) 고려말 공민왕때의
    학자 이방원이 태상박사의 벼슬을 내렸으나
    고사하고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이를 '회고가' 라고 한다.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가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조히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이 씨 (정몽주의 어머니)
    '새오나니: 시기하나니
    '조히: 깨끗이
    아들에 대한 훈계의 노래다.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 뿐인가 하노라

    태종조때의 영의정 이직, 호는 형제,
    사람을 겉 모습만으로 비평하지 말것이며 겉
    모양은 훌륭하여도 마음이 검은 사람도
    많다는 경계의 노래다.

    강호에 봄이드니 이 몸이 일이하다
    나는 그물 깁고 아희는 밭을 가니
    뒤뫼에 엄 긴 약초를 언제 캐려 하나니

    황희(1363~1452) 호는 방촌, 공민왕~문종
    때의 영의정
    이 노래는 정계를 은퇴하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전원 생활을하며 평화롭고 아름
    다운 농촌의 봄 풍경을 읊은 노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세월이 하 수상하니 올동 말동 하여라

    김상헌 (1570~1652) 인조때의 정치가
    병자호란때 끝까지 싸울것을 주창한 척화
    신으로 심양에 인질로 가며 읊은 우국
    충정의 노래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칠 아이는 여태 이럿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남구만 (1629~1711) 효종때 등제하여
    영의정 역임, 낙향하여 전원생활을 하며
    농촌의 평화로움을 그린 노래.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야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을손 바위 뿐인가 하노라.

    윤선도 (1587~1671)호는 고산, 효종의 스승
    이기도함. 오우가(五友歌) 중에 일생을
    유배지에서 보내다 싶이한 불운한 학자요
    정치가였다. 인생무상을 읊었다.

    자네 집에 술 익거던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술 익거던 나도 자네 청하옵세
    백년 덧 시름 잊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김육 (1580~1658) 호는 잠곡, 영의정을 역임
    술도 술이려니와 우정을 잘 표현.




    술을 취케 먹고 둥글게 앉았으니
    억만 시름이 가노라 하직한다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하리라

    정태화 (1602~1673) 호는 양파,
    영의정을 지냄, 낙향하여 벗들과 더불어
    술 마시는 심경을 노래로 표현.


    붕우가(朋友歌)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라도 지척이요
    마음이 천리오면 지척이라도 천리로다
    우리는 각재 천리오나 지척인가 하노라

    (작자미상)
    여기 각재의 '재' 는 있을 '在'자,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처세가(處世歌)

    들은 말 즉시 잊고 본 일도 못 본듯이
    내 인사 이러하매 남의 시비 모르로다
    다만 손이 성하니 잔 잡기만 하노라

    송인 (1517~1854) 중종~선조 중종의 부마
    일일히 참견하지 말고 듣고도 못 들은체
    보고도 못 본체하는 처세술을 노래.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산 절로 물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중에 절로 자란몸이 늙기도 절로하여라

    김인후 (1510~1560) 호는 하서,
    중종~명종 학자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내어 님 계신 데 보내고져
    님이 보신 후에야 녹아진들 어떠리

    정철 (1536~1593) 호는 송강,
    사랑하는 님에게 흰 눈과 같은 자신의 맑은
    마음을 알리려는 연군의 정을 노래.


    탄로가(嘆老歌)

    뉘라서 날 늙다던고 늙은이도 이러한가
    꽃 보면 반갑고 잔 잡으면 웃음난다
    추풍에 흩날리는 백발이야 낸들 어이하리요

    김정구 (연산군때 사람)
    이 노래에서의 꽃은 여자를 의미.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고야
    두어라 알 이 있을지니 흙인듯이 있거라

    윤두서(1668~?) 호는 공제, 유선도의 증손
    겸허한 처세관으로 현인은 아무리 초야에
    묻혀 있어도 자연히 알려지게 된다는..


    오륜가(五倫歌)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부모옷 아니시면 내 몸이 없으렸다
    이 덕을 갚으려니 하늘 끝이 없으리

    주세붕의 오륜가 (1495~1570)
    백운동 서당을 창건하며 서원의 창시자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간들 엇더리

    황진이 (본명은 진, 기명은 명월) 중종때의
    송도 명기, 시 서화 음률에 뛰어남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라
    황진이(스승의 죽음을 노래함)
출처 : 演好마을
글쓴이 : 銀海(황용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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