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품전/2016. 8.18~24/백악미술관
逸品殿, 詩味로 書美를 살펴보다
정태수(월간 서예문화 주간)
1. 일품전(逸品展)이 두 번째로 열린다. 1940년생부터 1960년생까지 국내 저명한 중진 ‧ 원로서예가 35인이 참여하는 전시이다. 여기에서 일품(逸品)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주지하듯이 남조 양(梁)의 유견오(庾肩吾, 487~551)가 그의 저서 『서품(書品)』에서 한(漢)부터 양(梁)까지 저명한 서예가 123인을 상지상 ‧ 상지중 ‧ 상지하... 등의 9품으로 서예가의 품계(品階)를 나누었고, 뒤이어 당나라 이사진(李嗣眞, ?~696)이 『서후품(書後品)』에서 종래의 9품 등급 위에 일품을 두어 새 평가 기준을 제시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필자는 일품에서의 일(逸)은 단순하게 서가들의 서열을 매긴 것이 아니라 세속적 경계를 초월하여 자연스러움을 획득한 경지를 의미한다고 판단한다. 한 작가의 우열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다분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법(常法)을 벗어난 새로운 발묵법(潑墨法)이나 뛰어난 솜씨를 지칭하는 품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오히려 타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에서 어떤 요소가 일품의 경지에 이른 것일까. 필자는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작가들의 작품을 일별해 보았다. 그 결과 명실상부하게 두드러진 필사력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창작한 작가가 여러 사람이다. 다수의 작가들은 법첩을 텍스트로 삼아 자신의 작품세계를 형성한 현대서단의 1세대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의 고전자료를 중시하면서 독자적인 조형미감으로 법첩을 재해석한 작가는 다수인데 반해 미래서예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한 실험적인 작가는 소수였던 점이 아쉬운 점 가운데 하나로 살펴진다.
이 글에서는 일품전에 출품된 작가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전통적인 서예감상법과는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서외구서(書外求書)라고 했던가. 이런 시도의 하나로 이시관서(以詩觀書)의 방법을 고려해 보았다. 즉 한시를 가름하고 비평하는 지침으로 활용되어 온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 이후 『시품』으로 줄여 말함)으로 작가들의 작품을 견주어 보려고 한다. 이런 시도가 일품전에 어울리는 색다른 감상방법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일찍이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이십사시품을 오묘하게 깨닫는다면 글씨의 경계는 곧 시의 경계가 된다(有能妙悟二十四品, 書境卽詩境耳)”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시품』은 한시의 예술적 특성, 성질을 24개로 구별하여 각각의 특성에 대해 네 글자씩 12구, 즉 48자의 운문으로 써 내려간 글이다. 매우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스물네 개의 풍격을 일종의 시로 표현하여 문인묵객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유행한 시학 텍스트였다. 저자는 1200년 전 당나라 말엽의 사공도(司空圖, 837~908)로 알려졌다. 여기서 풍격이란 직관적이고 상징적인 말로 동양의 미학을 설명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동아시아에서 시는 물론이고 회화, 서예, 인장 분야까지 이 텍스트가 활용되었다. 18세기 이후 『시품』은 본격적으로 조선 예술가의 문예에도 영향을 끼쳐 19세기에는 중요한 미학적 근거의 하나로 널리 읽혔다. 조선의 문인 ‧ 화가 ‧ 서예가들은 그림 ‧ 글씨 ‧ 인장으로 이를 표현했고 비평용어로도 널리 사용했다. 이처럼 『시품』은 비평서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한국, 일본에서 그림이나 글씨로 널리 수용되었다. 예컨대 겸재 정선(1676~1759)이 그의 나이 일흔에 『시품』을 그림으로 그렸고, 신위, 이광사, 권돈인, 김정희 등이 글씨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렇듯이 『시품』의 경지는 동아시아 시학(詩學)의 범주 뿐 아니라 철학 · 문학 · 서예 · 그림 등 거의 모든 콘텐츠 부문에서 활용되고 추구되었다. 즉 동아시아 문화 전체를 관통하는 미학 모티브로 간주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서예미학의 관점에서 『시품』을 보면, 추사 김정희는 이를 높이 평가해 누구보다 예술적 미학의 원천으로 중시한 인물이었다. 그러기에 『시품』은 동시대 그를 따르던 서예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그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제공했다. 추사의 경우, 『시품』 중에서도 웅혼(雄渾)을 유독 비중있게 다루었다. “이를테면 전한시대의 고대 예서는 못을 꺽고 쇠를 잘라 낸 것 같으며 흉험하여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곧 굳건한 힘을 쌓아 웅장함을 세운다는 뜻과 같다(如西京古隸之斬釘截鐵, 凶險可畏, 卽積健爲雄之義)”라고 하면서 웅혼(雄渾)을 중시하는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따라서 추사는 누구보다 중국 전한(前漢) 시대 한비(漢碑)의 웅건하고 고졸한 멋, 반듯하고 굳센 특징을 되살려내고자 애썼다. 그 결과 고대 예서를 공부한 바탕 위에서 추사체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잡지(雜識)」에서 “서예의 법은 시의 품격, 그림의 정수와 오묘한 경지를 공유한다(書法與詩品畫隨, 同一妙境)”는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보아 서예와 시는 궁극에서 만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시품』으로 서예를 가늠해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3. 이제 『시품』으로 이시관서(以詩觀書)의 막을 열어볼까 한다. 『시품』은 스물네 개의 풍격으로 분류된다. 작가의 생활을 논한 것은 소야, 광달, 충담이고, 작가의 사상을 논한 것은 고고, 초예이며, 작가와 자연의 관계를 논한 것은 자연, 정신이다. 시학 자체를 다룬 것은 두 가지로 세분 할 수 있다. 하나는 음유(陰柔)의 아름다움을 논한 것으로 전아, 침착, 청기, 표일, 기려, 섬농이고, 다른 하나는 양강(陽剛)의 아름다움을 논한 것으로 웅혼, 비개, 호방, 경건으로 나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작법을 논한 것은 진밀, 위곡, 실경, 세련, 유동, 함축, 형용으로 가름된다.
안대회 교수에 의하면, 『시품』은 스물네 개의 특징으로 나뉜다. “①웅혼(雄渾)영웅의 품격, ②충담(沖淡)선비의 담백한 미학, ③섬농(纖穠)여인의 향기, ④침착(沈著)내성적이고 비관적인 성향, ⑤고고(高古)높고 예스러움, ⑥전아(典雅)명사의 종류, ⑦세련(洗鍊)단련하고 정제됨, ⑧경건(勁健)굳세고 힘이 셈, ⑨기려(綺麗)화려한 인생의 노래, ⑩자연(自然)대자연의 섭리에 순응, ⑪함축(含蓄)말하지 않고 말한 글, ⑫호방(豪放)신화적 세계에서 노니는 원시의 미학, ⑬정신(精神)사물의 핵심을 싱싱하게 표현, ⑭진밀(縝密)치밀한 구성과 맥락, ⑮소야(疏野)거침과 시골티의 미학, ⑯청기(淸奇)청결하고 기이함, ⑰위곡(委曲)파란과 곡절, ⑱ 실경(實境)진실과 즉흥의 미학, ⑲비개(悲慨)비극적 파토스의 미학, ⑳형용(形容)세밀하고 정확한 묘사, ㉑초예(超詣)초월을 꿈꾸다, ㉒표일(飄逸)표연히 날다, ㉓광달(曠達)활달하게 살다, ㉔유동(流動)흘러 움직이다” 등이다.
이 가운데 일품전에 출품된 작가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풍격을 출품작에 대입해 보려고 한다. 물론 직관적이고 주관적인 대입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미세하게나마 감상자들과 작품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4. 구체적으로 일품전 출품작을 『시품』의 풍격으로 가름해 보자.
1) 웅혼(雄渾)은 글씨 또는 기운 따위가 웅장하고 막힘없는 경지나 특징을 의미한다. 웅혼의 풍격은 대단히 역동적이며 강하고 남성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중국의 전통적인 서예미학에서는 양강(陽剛)과 음유(陰柔)로 크게 나누는데 양강은 밝고 강하며, 음유는 어둡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띤다. 웅혼은 양강 가운데 최고의 경지이다. 당나라 손과정이『서보』에서 서예의 오합(五合) 가운데 우연욕서(偶然欲書)는 자연스러운 감흥의 중요성을 언급한 내용이다. 『시품』에서 “무리하게 붙잡지 않으면 다함없이 가져올 수 있다(待之匪强, 來之無窮)”는 대목이 바로 웅혼의 풍격이다. 웅혼의 풍격을 보여주는 작가는 다음과 같다.
박원규(이후 작가의 존칭은 생략함)의 <합장(合章)>은 문자를 이용한 서예의 진정한 맛을 음미하게 하는 작품이다. 운필의 속도감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갈필효과로 시선의 변화를 도모하고 점획의 강약과 공간경영의 묘미를 보여줌으로써 눈과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이돈흥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양강의 기운이 넘쳐나고 점획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아 웅혼의 입신적 경지를 보여준다. 화(和) 자는 하늘이고, 동(同) 자는 땅으로 튼튼하게 휘호하고 그 사이에 있는 두 글자는 공기가 소통되게 작게 휘호하여 단조로운 네 글자이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인영선의 <무량수(無量壽)>는 추사의 거침없는 필의를 방불하게 한다. 무(無) 자와 량(量)자의 조형미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전정우의 <나옹선사시(懶翁禪師詩) 경세(警世)>는 자간과 행간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막힘없는 역동적인 운필의 묘를 보여주고 있고, 고전의 익숙한 자형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문자형태미를 제시하고 있다. 정도준의 <빙호추월(氷壺秋月)>은 풍성한 발묵과 골법용필, 묵직한 획질을 통해 웅장함을 드러내고 있다. 월(月) 자의 아래 공간을 비움으로써 여백의 미를 살렸고, 그 곳에 성명인을 눌러주는 작가의 조형감각을 엿보게 된다.
2) 충담(沖淡)은 맑고 깨끗함을 의미한다. 충(沖)은 비어있음이고, 담(淡)은 글자 그대로 담담함이니 평화롭고 담백한 상태이다. 선비나 예술가의 영혼이 살아 있음이니 형사를 넘어서 정신을 모사, 즉 신사(神似)를 지향함이다. 인영선의 문인화 작품 <심중유산(心中有山)>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담묵과 농묵의 조화, 그리고 사의적 표현에서 오는 의경미(意境美)가 농후하게 발현된다.
3) 섬농(纖穠)은 섬세하면서 화사한 상태나 모양을 가리킨다. 섬(纖)은 본래 비단무늬를 가리키니 섬세함을 뜻하고, 농(穠)은 꽃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섬농은 부드럽고 섬세하며 짙은 감정을 드러낸다. 전상모의 <서산대사어(西山大師語)>는 필획의 연미함과 먹의 농담이 어울어져 섬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최민렬의 <농가월령가 시월령>은 편지글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강약(强弱)과 지속(遲速)의 운필능력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4) 침착(沈著)은 행동이 들뜨지 않고 차분함을 가리키는 말이나 미학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착(著)은 착(着)으로 줄여 쓰나 의미상 같다. 침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는 상태이고 착은 무엇인가 꽉 잡고 놓지 않은 상태이다. 경쾌함 보다 무겁게 가라앉은 형상이다. 신두영의 한글작품 <난초>는 판본체의 묵직함에 협서도 가볍지 않게 무게감을 주고 있다. 정양화의 <서보구>를 보면 굵은 철근을 구부려 놓은 듯 강렬한 역감을 느끼게 된다. 협서도 들뜨지 않은 차분함을 주고 있다. 안종중의 <정지용 시 소양정(鄭之容 詩 昭陽亭)>은 우측이 올라간 자형에 기필의 강렬함이 눈에 띈다. 필획에서 가볍지 않은 침착함이 묻어난다.
5) 고고(高古)는 세속을 초월하여 고상하고 고풍스러운 것이다. 고(高)는 낮은 것과 반대되는 것, 고(古)는 세속적 현세와 상대되는 것이니 문예의 풍격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이용의 <동계선생 시(桐溪先生 詩)>에서는 금문의 현대적 변주를 엿보게 된다. 자간과 행간을 두지 않고 혼연일체의 장법으로 구성하였고 농익은 필사력으로 예스러움을 운치있게 드러내고 있다. 채순홍의<단오유감(端午有感)>은 대전(大篆)을 철필로 긋듯이 골기가 살아있다. 먹의 농담과 윤갈이 특히 눈에 들어오며 고박한 운치가 엿보인다. 최민렬의 <무명씨 시조>는 담벼락에 누군가 낙서를 해 놓은 듯 천연스럽고 고풍스러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글서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6) 전아(典雅)는 법도에 맞고 아담하다는 뜻이다. 전아는 시와 글씨, 인품을 평하는 미학용어로 사용되며 정통성을 지닌 규범을 준수하는 태도와 관련이 깊다. 오명섭의 대련작품 <이순신장군 무제애국시(李舜臣將軍 無題愛國詩)>는 붉은 색 큰 글씨로 오언 두 구를 휘호하고 좌우에 협서로 율시 전문을 배치한 안정적인 장법으로 눈길을 끈다. 임재우의 <위최경파묘지명임(魏崔景播墓誌銘臨)>은 임서작품으로 정간선 안에 굳세면서 단아한 해서로 전아한 멋을 되살려 내고 있다.
7) 세련(洗鍊)은 서투르거나 어색한 데가 없이 능숙하고 미끈하게 갈고 닦음이라 풀이된다. 연(鍊)은 연(練,煉)으로도 쓴다. 예술이나 기술에서 상당히 단련된 솜씨와 능숙한 태도를 가리킨다. 세(洗)는 깨끗하게 씻어서 맑고 투명하게 보인다는 뜻이고, 연(鍊, 練, 煉)은 단련한다는 의미이니 거듭하여 작품을 조탁한다는 뜻이다. 결국 세련은 작품을 거칠고 미완성의 상태로 내어 놓은 것이 아닌 다듬고 고쳐서 미끈하게 잘 만든 것을 말한다. 박용설의 행초 <진묵대사 시(震默大師 詩)>는 물이 흐르듯 유려한 운필로 단숨에 휘호하면서도 세련미가 진하게 느껴진다. 양상철의 행초 <이원진 시(李元鎭 詩)>는 문자의 변형과 운필의 절주감이 있어 묘미를 느끼게 된다. 전윤성의 행초 <채근담 구(菜根譚 句)>는 글자의 강약과 먹의 농담, 그리고 몇 글자에서 보이는 가는 세로획에 시선이 모인다. 세련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양화의 행초 <조순선생시(趙淳先生詩)> 는 해행에 가까운 작품으로 방원(方圓)이 들어있고 가는 획도 철사를 구부린 듯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8) 경건(勁健)은 글씨에 힘이 있어 굳세고 튼튼하다는 뜻이다. 우세남(虞世南)은 「필수론(筆髓論)」에서 왕희지의 글씨를 경건하다고 평했다. 이영철의 전서 <풍죽석천(風竹石泉)>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이지만 글자의 구성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고, 정(正)보다 기(奇)의 미감을 보여주고 있다. 필획에서 입목삼치의 굳셈이 읽혀진다. 이용의 예서 <불참어영(不慙於影)>에서는 경직되지 않은 유동함 속에서 굳셈을 잃지 않은 필획의 미감을 엿보게 된다. 글씨가 획의 예술임을 실감케 하는 작품이다. 정도준의 전서 <인심일진(人心一眞)>은 구성이 독특하여 마치 추사의 작품을 보는 느낌이다. 특히 일(一) 자를 진(眞) 자의 위에 써서 한 글자처럼 보이게 한 것은 압권이다. 한글세대를 배려하여 한글로 오른쪽에 석문을 붙인 것은 전체적인 공간 경영까지 감안한 작가의 심미안으로 읽혀진다.
9) 기려(綺麗)는 수놓은 비단처럼 화려하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여성구의 <주역구(周易句)>에서는 필획의 수필을 노출시켜 내달리게 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함께 동조하게 한다. 문자구성미가 빼어나고 중봉세를 유지하여 군더더기 없는 기려함이 물씬 풍긴다. 정태희의 <이인로선생시(李仁老先生詩)>는 화려한 조명 아래 다양한 출연자를 보듯이 문자의 대소강약이 있고 잘 안배된 장법을 통해 행초의 묘미를 보여준다. 우아하고 다정다감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채순홍의 자작시 <매유쟁춘송(梅柳爭春頌)>에서는 굳건하고 활달한 운필, 안정되면서 유동하는 필력으로 매화와 버드나무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화려한 문자의 외형과 문장의 내용이 어울려 문질빈빈해 보인다.
10) 자연(自然)은 대자연의 속성이나 질서를 따르는 미적인 태도라서 문자 그대로 저절로 그러함(不知所以然而然)의 뜻을 지닌다. 무릇 자연스러움이 최상(自然之最爲上)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자연스러움은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높은 수준의 풍격이다. 권시환의 <自安(자안)>은 문자의 내용처럼 감상자로 하여금 저절로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억지로 필세를 강조하거나 자형을 왜곡하여 과장하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러움을 한껏 느끼게 한다. 정형화된 문자의 형태미에서 일탈하여 작가의 조형의지를 드러낸 보기 드문 작품으로 보인다. 정웅표의 <산(山)>은 힘을 들이지 않고 쉽게 쓴 것 같지만 천연스러운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무심의 경지에서 일필휘지한 듯하다.
11) 함축(含蓄)은 말하지 않고 말한 작품의 풍격이다. 함(含)은 “머금다”는 의미이고, 축(蓄)은 “쌓아두다”는 뜻이 있다. 작품에서 뜻을 다 드러내지 않아 음미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명옥의 <일신(日新)>은 작가가 꾸준히 닦아온 현대서의 진면목을 보여준 작품이다. 붉은 태양을 상징하는 일(日)자와 신(新)자의 자형구성이 놀랍다. 두 글자로 문장은 짧지만 긴 여운이 느껴지는 함축의 미가 녹아있는 작품이다.
12) 호방(豪放)은 의기가 장하여 작은 일에 거리낌이 없다는 뜻이 있다. 작품의 풍격을 말할 때는 호매(豪邁)하여 구속됨이 없는 성향을 의미한다. 이는 신화적 세계에서 노니는 원시의 미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권창륜의 작품 <진경통이신경생(眞境通而新境生)>은 참된 경지에 통하면 신의 경지가 열린다는 글귀처럼 무심의 경지에서 호탕하게 휘호한 작품이다. 마치 소식과 이백이 시에서 호방함의 절창을 이루었듯이 이 작품에서 우리는 운필이 자유롭고 결구의 법에 얽매이지 않은 호방함의 진수를 엿보게 된다. 여성구의 예서 <채근담구(菜根譚句)>는 팔분의 형태는 취하지만 파책(波磔)을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삽상함을 느끼게 된다. 거침없는 호방함으로 인해 필획의 직진하는 역감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전정우의 <김극기 선생 월영대 시구(金克己 先生 月影臺 詩句)>에서는 자유자재로 다룬 문자의 결구와 곡선의 여유로운 획질을 통해 호방한 운치를 마음껏 느끼게 된다. 일찍이 “과거의 양식만 답습하면 사산된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는 추상미술의 선구자 칸딘스키의 말처럼 과거의 법첩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문자조형에 관심을 보이는 작가의 조형미가 탁월해 보인다. 최은철의 <장자구 보광(莊子句 葆光)>에서 ‘보광’ 두 글자를 보면, 모필의 효용성을 극대화하여 운필이 활달하고 서사자의 의기(意氣)마져 호탕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호방함을 느끼게 한다. 이는 왕희지가 말한 붓 앞에 마음이 있어야 하는 의재필전(意在筆前)의 진정한 멋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혀진다.
13) 진밀(縝密)은 촘촘하게 잘 짜여진 작품의 풍격을 가리킨다. 잘 짜여진 옷감처럼 구성이 치밀해야하고 구성의 흔적이 알려지지 않아야 된다. 임재우의 <후적벽부(後赤壁賦)>를 보면, 형식이나 운필이 경직되지 않아 진밀에서 요구되는 정취가 물씬 풍긴다. 오른쪽 상단에 전서로 자간과 행간을 무시하고 문자를 붙여서 휘호하고 나머지 부분에 작은 글씨로 공간경영을 한 장법이 이채롭다. 전각을 통해 익힌 솜씨를 서예작품에 도입하였고, 치밀한 구성력을 보여주는 작가의 전각역량이 엿보인다. 전도진의 <매월당 시(梅月堂 詩)>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서사한 특이한 구성을 보여준다. 가운데 행의 도(到) 자는 세로획을 길게 내려 시각적으로 주목되게 함으로써 휴지(休止)의 여운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각의 장법을 서예작품에 잘 활용한 것으로 살펴진다.
14) 소야(疏野)는 거칠지만 얽매인 데 없이 방종한 태도를 가리킨다. 즉 진솔(眞率)의 일종으로 본성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도록 내맡기고 인위적 조탁과 수식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권시환의 <(팽수(彭壽)>는 『사기(史記)』에 나오는데 팽조(彭祖)처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통적인 결구에서 일탈하였고, 세련됨을 중시하거나 격식을 갖춘 글씨와는 격조가 다르기에 볼수록 여운이 남는다. 선주선의 <좌종선실기(坐鍾禪室記)>는 격식을 벗어나 군더더기 사설없이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읊은 느낌이 든다. 투박한 사람의 행동이랄까 거침없는 운필에 매료된다. 야인의 구수한 인간미가 시선을 사로잡는데 소동파의 한식첩을 보는 기분이 든다. 안종중의 <정원용 시(鄭元容 詩)>는 본성이 가는 곳을 따라 천진하게 거침없이 휘호하였다. 하늘이 내버려둔 듯 천방(天放)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최인수의 <번지 없는 주막>은 다듬지 않은 거친 고향의 정서가 들어있다. 꾸밈이 없고 솔직하고 생기가 돈다. 낙서하듯이 형식에서 벗어난 일탈이요 하늘 아래 그대로 내버려둔 방종함이 이 작품의 멋이다.
15) 청기(淸奇)는 맑고 기이하다는 뜻이다. 이는 평범한 사람은 생각하지 못할 독특하고도 기발한 내용과 기교를 의미한다. 올바름[正]이나 평범함[平], 일상성[常]과는 상반되는 특징이 있다. 권창륜의 <고운 시(孤雲 詩)>는 예스럽고 기이한 느낌이 가득하다. 허목(許穆, 1595~1682)의 미전(眉篆)을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평범하고 저속한 세계와 차별화된 차가운 감성이 가히 독보적이다. 익숙한 양식, 늘 보든 것이 아니어서 더욱 신선해 보인다. 이곤순의 <근심엽무(根深葉茂)>는 뿌리가 깊으면 잎이 무성하다는 의미와 같이 새벽달과 같은 듯, 가을 기운 같은 듯 맑고 기이함이 배어있다. 대교약졸이라고 할까. 무딘 정신과 감각을 깨우치는 절제된 미감이 스며들어 있다. 황방연의 <박관(博觀)>은 두루 보되 요점을 취하며, 두텁게 쌓되 함부로 드러내지 말라는 소동파의 말을 휘호한 작품으로 맑고 기이하다. 맑음은 저속하고 탁한 것과는 상반되고 기이함은 평범하고 용렬한 것과는 상대되는 것이다. 작품에 예스럽고 기이함이 담겨있어 독특한 아취가 드러난다.
16) 위곡(委曲)은 파란을 뜻하는 위(委)와 곡절을 뜻하는 곡(曲)으로 길에 비유하면 곧게 뻗은 큰길이 아니라 구불구불 에둘러 난 작은 길이다. 즉, 한 눈에 다 들어오는 것보다는 곡절이 있어 쉽게 눈에 뜨이지 않게 배치한 구조가 더 좋다는 미학적 태도가 스며들어 있다. 양상철의 <상도(常道)>는 노자의 도덕경 일장이다. 대전(大篆)으로 작게 샛길을 만들고 행초(行草)로 큰 길을 열었다. 서체에 변화를 주고 복선과 암시의 기복을 느끼게 함으로써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보이게 한다. 단조로움은 재미가 적다. 기복의 반전을 보면서 작가의 조형미감에 무릎을 치게 된다.
17) 초예(超詣)는 평범함을 뛰어넘은 높은 수준의 조예를 뜻하는 말이다. 일상을 벗어난 언외(言外)의 멋과 형외(形外)의 미학을 의미하기도 한다. 노자가 도덕경 41장에서 “너무도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고 너무도 큰 음악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종주의 <희망>은 물체 위로 태양이 떠오르는 형상이다. 도의 기운이 있어 세속과 다른 길을 가는 작가의 조형미감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수많은 산봉우리는 높이 솟아 있고 햇살은 반짝인다. 작가가 선보인 작품은 평범하지 않고 현실을 초월하려는 드문 조형어법이다.
18) 표일(飄逸)은 처음에 매인 데 없이 자유롭고 활달한 사람의 성품을 가리켰던 말이, 나중에는 서체가 활달한 것을 가리켰다. 자유자재로 붓을 움직이는 작품의 풍격을 말한다. 송종관의 <김부의 시 낙산사(金富儀 詩 洛山寺)>는 표표하여 마치 하늘에 치솟고 허공을 걸어가는 기상이 엿보인다. 꽃에 홀리고 바위에 기대다 보니 어느새 저물었다고 할까. 곡선의 유려한 운필이 머리에 남는다. 전명옥의 <강백년 시(姜柏年 詩)>는 거침없이 속사된 필의를 따라가노라면 선경(仙境)에 다다른 느낌이 든다. 물은 출렁출렁 안개를 피워 올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우레가 치니 돌문이 쩍하고 순식간에 열리는 형국이다. 여기엔 온갖 운필의 묘가 숨어있고 조형적 재미가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황방연의 행초서 <면암선생 시(勉菴先生詩)>는 행초가 글씨의 꽃이라는 의미를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허공을 가로질러 노을 위를 노니는 신선의 형국이다. 형식면에서 활달하고 표일함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19) 광달(曠達)은 마음이 크게 트여서 활달함을 뜻한다. 이는 활달하다는 말과 같이 쓰이며 도량이 넓고 크다는 의미이다. 도연명· 이백 · 소식과 같은 인물이 광달의 전형이다. 광달은 시비와 명예를 초월하여 인생을 호쾌하게 살아가자는 것이다. 운필도 거침없어 얽매임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선주선의 <이상은 시(李商隱 詩)>에서는 다양한 서체를 혼융하여 녹여 내었고 예리함과 둔중함, 필획의 지속(遲速) 등 다양한 서예미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가운데 부분의 정(情) 자에서는 광달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영철의 <평화>에서는 훌훌 털어버리고 달관한 경지에 이른 활달함이 엿보인다. 특히 평자는 바로 쓰고 화자는 눕혀서 쓴 작가의 의도가 놀랍다. 활달함 속에 문자를 눕혀 놓은 해학이 있어 작가의 조형미감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전상모의 <안진경 근학(顔眞卿 勤學)>에서는 고전의 사슬로부터 벗어날 때 비로소 획득되는 광달의 멋을 보여준다. 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운필의 묘를 살려내고 있다. 최은철의 <장자 구 수진(莊子 句 守眞)> 에서는 "부드럽고 강한 것이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노자(36장)의 언설이 떠오른다. 광달한 기운이 곡선의 부드러움 속에 스며들어 있어 강한 기운미를 발산하고 있다. 참된 것을 지키면 번거로움에서 벗어난다는 내용과도 일치되는 형태미를 보여줌으로써 내용과 형식의 일체감을 이뤄내고 있다. 최인수의 <춘난관용변 추고청록명(春暖觀龍變 秋高聽鹿鳴)>은 팔분의 자형에서 부분적인 점획의 변화를 도모하면서 활달함을 보여주고 있다. 거침없이 호쾌하게 운필함으로써 광서(曠書)의 맛을 살려내고 있다.
20) 유동(流動)은 액체 상태의 물질이나 전류 따위가 흘러 움직인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끊임없이 흘러 움직여서 가변적이고 탄력적인 현상을 가리키면서 흘러 움직인다는 뜻이다. 유동을 활용한 말 가운데 천기유동(天氣流動)이란 표현이 있는데 천기(天氣) 또는 생기(生氣)가 흘러넘쳐 움직이는 자연현상을 가리킨다. 박영진의 <추사선생 시(秋史先生 詩)>는 오른쪽에 전서로 일곱 글자를 쓰고 왼쪽에 시 전문을 휘호했다. 전서에 행기(行氣)를 넣었고 바탕에 물결을 그려넣어 내용에 맞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왼쪽 초서에서도 유동하는 기운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정해천의 다산선생 시 <제보은산방(題寶恩山房)>은 물흐르듯이 유동하는 기운미가 엿보인다. 생기가 넘쳐흐르는 역동적인 상태는 마치 돌부리를 울리면서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물과 같이 유려해 보인다. 정웅표의 <초정선생 시(楚亭先生 詩)>는 공중에 구름이 떠서 흘러가듯이 비동하는 형상을 보여준다. 생기가 활발하게 유동하는 작품으로 부드럽고 생동감이 넘친다. 자간과 행간에 공간이 있어 기운이 유영하는 듯하고 천진스럽게 배치한 문자의 조형미와 어울려 깊은 메아리를 남긴다.
5. 지금까지 『시품』으로 일품전 출품작가들의 작품을 조망해 보았다. 이 글에서는 세 가지의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에게 제공된 작품이 원본이 아닌 사진자료였기에 가독의 한계가 있었고, 시(詩)의 미학으로 서(書)의 미학을 재단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으며, 필자의 노둔함과 무지함으로 인해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문학과 회화와 서예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안다면 시와 서는 상통하는 요소가 있기 마련이고, 이를 통해 시와 서를 미학적으로 교감하여 본 의의는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서예가는 문자의 형상을 다루는 존재다. 그러나 문자의 고정불변하는 고전적인 형상에 매여선 안 된다. 한국현대 서단의 선두에서 향도역할을 하는 일품전 출품작가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에 작품양식에 있어 상고적이기 보다 미래지향적인 창작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한다. 각 작가 스스로 타자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개성미를 뚜렷이 갖춰나갈 때 정체성이 있는 다채로운 서예, 현대인이 동감하는 현대적인 서예로 거듭날 것이다. 작가분들의 건필을 기원한다.
도봉산이 보이는 관산재에서 (521)
권시환
권창륜
박영진
박용설
박원규
백영일
선주선
신두영
송종관
안종중
양상철
여성구
이곤순
오명섭
이돈흥
이영철
최인수
이용
인영선
인영선
임재우
전도진
전명옥
전상모
전윤성
전정우
전종주
정도준
정양화
정웅표
정태희
정해천
채순홍
최민렬
최은철
황방연
*작품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출처 : 서예세상(http://cafe.daum.net/calli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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