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이어 또 한번 쾌거, 스물여덟 청년 美 최고대회 품다
김경은 기자 입력 2017.06.12. 03:02
2009년 손열음이 2위 했던 대회
"1위로 호명된 순간 머릿속 하얘져.. 결선 전날 고열로 고생했지만 연주는 늘 자신 있었어요"
미국 최고(最高)의 피아노 경연대회에서 스물여덟 한국 청년이 또 한 번 기적을 일으켰다. 10일(현지 시각) 미국 텍사스주(州) 포트워스에서 막 내린 제15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8)이 1위인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콩쿠르 역사상 한국인 첫 우승이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2015년 조성진이 우승한 폴란드의 쇼팽 콩쿠르에 버금가는 피아노 전문 경연대회다. 전설적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가 1966년 대회에서 우승했고, 손열음이 2009년 2위를 했다.
우승 직후인 10일 밤(현지 시각) 전화 통화에서 선우예권은 우승자로 호명되던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했다. 우승 상금 5만달러(약 5600만원) 못지않게 값어치 있는 부상(副賞)으로 3년간 미국 전역을 돌며 연주와 음반 녹음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결선에서 드보르자크 피아노 5중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특히 자신의 기량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에너지를 몰아친 협주곡 3번에서 관객들의 기립 박수와 환호를 이끌어냈다.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예선을 시작으로 5개월간 살얼음판 같은 다섯 단계를 밟았지만 "연주에 자신 없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감기를 앓았어요. 결선 전날 열이 끓고 콧물이 났죠.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28도 넘는 더운 날씨에도 옷을 두세 겹 껴입고 자면서 땀을 뺐어요. 후반부로 오면서 연습할 시간이 줄어 힘들었지만 '시험'이란 생각을 떨쳐버리고, 제가 느낀 순간순간의 감정들을 충실히 표현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선우예권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누나를 따라 학원에 갔다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보다 나이 어린 애가 더 어려운 곡을 치면 질투가 나서 연습에 매달렸다"고 고백할 만큼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열여섯에 미 커티스 음악원에 유학 가 실내악을 자주 접했다. 그러면서 "귀가 새롭게 열리는 순간을 경험"했다.
선우예권은 2015년 7월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한국인 최초로 독주회를 열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예브게니 키신 등 당대 최고 피아니스트들이 서는 무대다. 지금은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베른트 괴츠네에게 배우고 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미국의 명(名)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해 만든 대회다. 그는 옛 소련이 1958년 창설한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해 냉전 당시 미국에서 팝스타급 인기를 누렸다. 1962년부터 그의 고향인 포트워스에서 4년마다 열리고 있다.
쇼팽과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이 시대 최고 피아니스트를 뽑는다는 목표가 뚜렷해 규모와 예산, 지원 면에서도 영향력이 남다르다. 음악적 재능을 보이는 젊은 연주자들을 발굴해 데뷔 기회를 주는 유럽 콩쿠르들과 달리 반 클라이번은 처음부터 무르익은 연주력을 갖추고 있고 티켓 파워도 있어서 홍보와 기획만 뒷받침해주면 이름을 날릴 수 있는 피아니스트를 골라 체계적인 매니지먼트를 펼친다.
선우예권으로선 미국 무대를 휘어잡을 수 있는 기회를 단번에 거머쥔 셈이다. 이번 대회엔 영국 매니지먼트 '키노트'와 협업해 유럽 시장 진출까지 넘보게 됐다. 오는 12월 2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600석)에서 열리는 선우예권의 독주회 티켓은 11일 콩쿠르 우승 소식을 타고 불티나게 팔려나가며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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