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산 통도사 법사스님 이야기 ♧♧
조선의 정조대왕 시절에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훌륭한 법사 스님이
계셨다
그 법사 스님은 아주 핏덩이
일때
그 추운 겨울에 양산 통도사의 일주문
앞에
보에 쌓여 놓여
있었는데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스님 한 분이
통도사로
데리고 와
절에서
기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통도사 일주문
앞에
놓이게 된 것에는
사연이
있었다.
어느날 젊은 부인이 한 사람
찾아와
주지 스님을 친견 하였는데
그 때 갓난 아이를 보듬고
왔었다.
그 젊은 보살이 주지 스님에게 말
하기를 스님
제가 이 절에서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공양주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엄동 설한에 우리
모자는
굶어 죽지 않으면
눈 속에
얼어 죽을 것 같으니
해동을 할 때 까지
만이라도
제가 여기서 일을 하면서
이 갓난
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
그때 주지 스님은
대중
공사
(사찰에서 말하는 일종의 재판같은 회의를
말함)
모든 대중이 모인데서
붙혔다.
그 때의 결론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너무 젊다는
것이었다.
사부 대중이 많은 이 사찰에
살면서
헛 소문 만들기 좋아 하는 자들로
인하여
어떤 불미스런 헛
소문이 날지를 모른다.
젊은 스님 누군가와 눈이 맞아 애를
놓았다느니
아니면 젊다 보니 앞으로 있을 어떤
스님과의
연분이 생길 수도있기 때문에
이 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였다.
그 때 그 보살은 통도사를 빠져
나오다가
눈이 오는데 어린 갓난
아이를
일주문 옆에 두고서 떠나 버린 겄이었다.
그것을 다른 스님이
지나다 데리고 와서 키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크면서 얼마나
신통한지
스님들이 법문을 하실라 치면 늘
앞에
정좌하고 앉아서 요지부동도 않은체
듣는 즉시 외워
버리는것이었다.
그러다 나이 18세에 훌륭한 법사스님이
되셨다.
그 스님이 법문을 하실
때면
사방 천지에서 구름처럼 사람이 모여
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날도 그 법사 스님이 법문을 하고
계실 때
법문을 듣고 있던 어떤 노 보살님이 혼자
말로
대체 저 법사 스님의 어미니는 어떤
분일까 ?
어떤 분이 어머니 이시길래 아들을
저리도
훌륭하게 잘 키우셨을까
?
그렇게 혼자 말로 중얼 거리고
있는데
그때 옆에 앉아 있던 한
보살이
예~ 제가 저 법사 스님의 애미
입니다.
그 한 마디가 순식간에 법당 안과 도량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쫙 퍼진
것이었다.
마침내는
법사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는 그 사이에 듣게
되었다.
법문을 마치고 나온
법사스님이 그
어머니라는
사람 보고 좀 기다리라고
하고는
모든 사부대중을 불러
놓고 의논을 하였다.
지금 저기에는 내 어머니라는 보살이
와있는데
모든 스님들의 생각은 어떠 하신지요
?
제가 만나뵈어도 되겠습니까
?
그러자 모두가 하나 같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아니 그 엄동 설한에 눈까지 오는데
죽으라고
일주문 앞에 두고 갈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훌륭한 법사 스님이
되시니까
내 아들이네 하고
자랑을 하는것이
어디 애미된 도리 입니까?
그런 사람 이라면
불러서 혼을 내 주고 두 번
다시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중공사가 그렇게 결정이 나자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 되는 사람을 들어 오게
하여서
마주 앉아서 하는
말..
정말 그대가 내 어머니가
맞소?
예 제가 예전에 일주문에다 두고
갔었지요.
그러자 법사 스님 됐오 그러면
이제
두 번 다시는 나를 아들이라고도 하지 말고
또
그대가 법사 스님의 엄니 이네 하는 말도
마시오.
죽으라고 버리고 갈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내 아들이네 하는것은 무슨 심보요
그러니
앞으로는 내 법문을 들으러 오는것은
좋으나
절대로 어디 가서 법사 스님이 내 아들이란
소리는
마시고 두번 다시는 나를 아는채도
마시구려.
그러면서 어머니를 돌려 보냈던
겁니다.
그 무렵 정조
대왕의 귀에도 양산의 통도사에는
아주 훌륭한 법사 스님이
있는데
그 스님이 법문을 할 때면 사람들이
구름 처럼 모여 든다는 소문이 들린
것이다.
그 소문을 듣고 있던 정조 대왕이
그럼 그토록
훌륭한 법사스님을 낳으신
어머니가 있을 테니 양산으로
내려가서
그 어머니를 모시고 오도록
하시요.
어명을 받고 양산 통도사로
내려온
신하들이 다시
정조대왕
에게 이르기를
그 어머니 자초
지종을 모두 고하자 정조대왕이
통도사의 법사 스님에게 편지 한통을
전했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을 좋아
한다
사랑 한다 하여도 그 어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님 만큼이나
하리오.
내가 듣기로는 그 추운 겨울에
스님을
버렸다 하나
그것은
그렇지가 않구려
둘이 같이
다니면 얼어 죽고 배 고파
죽게 생겻으니
파리의 목숨도 귀하게 여기는
스님들은
자식을
여기 두고 가도
분명 살려 주었으면 주었지
어찌 산 생명을 죽도록 내 버려
두겠는가.
하는 생각 으로 살릴려고 두고 간
것이지
절대로 죽으라고 버리고 간 것이
아닙니다.
이 편지를 받아든 법사 스님
갑자기
오늘이
아니면 그 어머니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수소문
하여서 길을 떠나 찾아 다니기 시작을
했었다.
그러다 해가 거의 다 질 무렵
한 마을에
이르러
한채 뿐인 집에 들어가서 묻기를
혹시 이러
이러한 노 보살이 이 부근에
사시는거 모르시요?
그러자 그 집의 노인이 나와서 언덕밑의
집 한체를 가르키며
저기 저 집인데
오늘은 불이 켜 있지가
않군요.
불이 켜 있으면
그 노인네가 살아있거나
집에 있는 것이고 불이
꺼졌다면
약방에 갔거나 아니면 죽었을
것이요.
법사 스님이 그 소리를 듣고는
호롱불을
하나 빌려 숨이 목에 차도록 뛰어
갔다.
그리고 그 집안에 당도
하니
인기척이 없어 법사 스님이 주인을 불러
본다.
주인장 계시요 ? 주인장 계시요
?
아무 대답이없자 법사스님이 토방을 올라
방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분명
누군가가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법사 스님이 호롱 불을 들고
다가가서
이불을 젖히니
어머니가
거의 죽어 가는
모습으로 누워 있는데
머리 맡에는
언제 먹었던 죽 그릇 인지는
몰라도
바싹 말라서 쩍쩍 갈라져 있었고 방안은
냉기가 흐르고 입에서는 입김이 솟아
나왔다.
그 모습을 보던 법사
스님이
어머니
~~~!
그러자 가물 가물 죽어 가던
어머니가
희미한 정신으로
뉘시요? ..뉘시길래
나 보고 어머니라
하시오..
그 호롱 불로 얼굴좀 비쳐
보구려..
그때 법사 스님이
호롱 불을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갖다
대자
어머니가 하시는 말
이제 되었오
어서 양산 통도사로 빨리 가시어
더 많은
법문으로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부디 훌륭한 스님이
되시구려..
이제 나는 내 마지막 소원을
들었구려..
어머니..라는
그 말 한 마디..
못 듣고
죽을줄 알었었는데..
법사
스님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어머니를
들쳐 업고는 양산 통도사로 뛰기 시작
했었다.
통도사에 도착한 법사 스님이 있는
정성 다 들여
미음을 쑤고 약을 다리어 그 어머니를
살렸고
그렇게 지내던 어머니가
양산 통도사에 온지
3년이
되는 해에 세상을 뜨셨다.
그 때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를
위하여
49제를 드리는데
법문을 한
곡조 올린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귀한
부자 인가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궁한 가난
인가
부모님이 살았을 때 가장 귀한 부자
이고
부모님이 안 계시니 가장 궁한 가난
일세
어머님이 살았을 땐 밝은 낮과
같더니만
어머님이 안 계시니 해가 저문 밤과
같네
어머님이 살았을 땐 마음 든든
하더니만
어머님이 안 계시니 온 세상이 텅
비었네
그렇게 49제 마지막 막제에서
법문을 하자
그의 어머니 음성이 다시 법당안을
멤돈다.
훌륭하신 법사
스님.....자랑스런 내 아드님.
어머니란 그 한마디 다 못 듣고
갈까봐서
조마 조마 하더니만 그 소원 이제
풀고
오늘 내가 떠나 가니 너무 성념
마시구려.
자랑스런 내 아드님
..훌륭하신 법사 스님..
자식 옆에 두고 살며 어미 소리 못 들을
때
메어지는 그 가슴은 수만 개의 송곳
끝과 같고
그 어머니 소리 듣고 귀를 번쩍 떴을
때는
세상을 다시 얻었는데 이제 내가
가는 길에
훌륭 하신 법사 스님 그 법문에
감사하니
부디 부디 좋은 법문 많이 하여
세상을
환히 밝히소서
이제 나는 올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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