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여제’ 박인비(28·KB금융그룹)의 집에 메이저대회 트로피 4개에 금메달이 하나 더 추가됐다. 골프 역사상 최초의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대업에 성공한 결과로 받은 짜릿한 선물이다.
21일(한국시간) 116년만에 올림픽 종목으로 복귀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골프 금메달을 딴 박인비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결전의 땅’ 리우데자네이루에 입성 한 후 일주일만에 처음 지어보이는 미소다. 결연한 의지로 가득찼던 박인비의 굳은 표정을 바꾼 건 목에 건 금메달과 ‘이제 끝났구나’라는 안도감, 그리고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겨냈다는 성취감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대회에 앞서 “투어 데뷔 10년차, 최고의 감각이 있을 때 올림픽이 열려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싶다”는 바람을 이뤄냈다는 만족감이다.
골프 역사상 최초의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 박인비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5대 메이저대회 중 US 여자오픈(2회),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3회), ANA 인스퍼레이션(1회), 브리티시 여자 오픈(1회)까지 4개 대회를 제패해 지난해 여자 선수로는 7번째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리고 여기에 올림픽 금메달이 추가되며 타이틀이 황금빛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박인비는 “테니스 선수들이 ‘골든 슬램’ 얘기하는 것을 보고 나도 이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주인공이 됐다”고 말한 뒤 “2·3라운드에는 1위를 해도 금메달을 딸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했다. 이제 골프 선수로서 더 이상 바랄 순 없는 것 같다”며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올림픽 금메달까지 목에 걸며 ‘살아있는 골프 전설’이 된 박인비. 하지만 지금까지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이 아니다. 좌절과 은퇴 위기, 그리고 부활을 거치며 더욱더 단단해진 결과물이다.
지난 2007 LPGA 투어에 합류한 박인비는 이듬해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박인비는 당시를 떠올리면 “공을 치면 오른쪽으로 날아가거나 OB가 났다. 힘들고 괴로웠다”고 말한 뒤 “비행기를 타는 것도 매주 짐을 싸는 것도, 골프도 다 싫었다. 그 때 포기했다면 지금의 기쁨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위기의 박인비를 구한 것은 지금의 스윙 코치이자 남편인 남기협씨. 박인비는 2011년 프로골퍼 출신 남편을 만나 스윙을 교정한 후 제대로 된 스윙을 다시 하게 되면서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지금의 가장 독특한 ‘박인비표 스윙’으로 여제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묵묵하게 ‘외조’를 한 남편에 대해 박인비는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준 사람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한명”이라며 “남편을 만난 뒤 세상에는 골프 외에도 할 일이 많고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떠올렸다.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도 박인비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방황’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지도 모른다. 박인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했고 코치 박세리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박세리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다. 대답은 명쾌했다. “모든 사람이 너를 좋아할 수는 없다. 네가 결정했다면 너를 믿어라.” 큰 울림이 왔다. 박인비는 결정했다. 용기를 내기로. 박인비는 “올림픽 금메달을 걸기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첫째로 나 자신에게 끝도 없이 줬던 ‘용기’다.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냈기에 금메달도 가능했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물론 박인비의 가장 큰 힘은 가족이다. “결정의 순간 가장 큰 역할은 역시 가족이다. 당시 정상 컨디션도 아니고 나가서 못 치면 진짜 돌아올 게 비난밖에 없었다. 안 나가면 어쨌든 욕은 안 먹을 것인데…”라고 말한 박인비는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포기하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혀 보자고 결정했고 대신 만반의 준비를 다 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야 어떤 결과에도 내 자신에게는 당당하니까”라고 털어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멘탈’이었다. 박인비는 지금까지 숱한 부상 속에서도 집념의 우승을 이룬 바 있다.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는 스스로 ‘올림피언’으로 생각을 바꿨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올림픽 정신을 마음에 새겼다. 무엇보다 ‘골든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만든 가장 큰 힘은 바로 ‘태극마크’다. 박인비는 “태극마크는 무한적인 힘을 내게하는 에너지다. 초인적인 힘을 준다”고 말했다.
‘비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 처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박인비는 여전히 진화중이다. ‘침묵의 암살자’, ‘돌부처’로 불리는 박인비는 “출전 후에 번복하고 싶었다. 실수에 민감했고 남편에게 안될 것 같다고 수도 없이 말했다”고 말한 뒤 “하지만 나 자신을 다독이며 버텼고 한 단계 성장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또 자신만의 ‘스윙’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통증을 피하기 위해 스윙을 교정한 박인비는 “아직 진행중이다. 아직 마음에 드는 단계는 아니고 계속 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살아있는 골프 전설’의 길을 걷는 박인비는 자신의 골프 인생에 대해 ‘현재 진행형’으로 설명했다.
박인비가 116년만의 ‘골프 금메달리스트’가 됐지만 아쉽게도 한국의 금·은·동 싹쓸이 계획은 무산됐다. 양희영(27·PNS창호)이 마지막 4개홀 연속 버디를 잡았지만 1타가 부족해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노무라 하루(일본)과 공동 4위에 올랐다. 전인지는 합계 5언더파 279타 공동 13위, 김세영(23·미래에셋)은 합계 1언더파 283타 공동 25위를 차지했다.
21일(한국시간) 116년만에 올림픽 종목으로 복귀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골프 금메달을 딴 박인비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결전의 땅’ 리우데자네이루에 입성 한 후 일주일만에 처음 지어보이는 미소다. 결연한 의지로 가득찼던 박인비의 굳은 표정을 바꾼 건 목에 건 금메달과 ‘이제 끝났구나’라는 안도감, 그리고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겨냈다는 성취감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대회에 앞서 “투어 데뷔 10년차, 최고의 감각이 있을 때 올림픽이 열려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싶다”는 바람을 이뤄냈다는 만족감이다.
골프 역사상 최초의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 박인비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5대 메이저대회 중 US 여자오픈(2회),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3회), ANA 인스퍼레이션(1회), 브리티시 여자 오픈(1회)까지 4개 대회를 제패해 지난해 여자 선수로는 7번째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리고 여기에 올림픽 금메달이 추가되며 타이틀이 황금빛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박인비는 “테니스 선수들이 ‘골든 슬램’ 얘기하는 것을 보고 나도 이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주인공이 됐다”고 말한 뒤 “2·3라운드에는 1위를 해도 금메달을 딸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했다. 이제 골프 선수로서 더 이상 바랄 순 없는 것 같다”며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올림픽 금메달까지 목에 걸며 ‘살아있는 골프 전설’이 된 박인비. 하지만 지금까지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이 아니다. 좌절과 은퇴 위기, 그리고 부활을 거치며 더욱더 단단해진 결과물이다.
지난 2007 LPGA 투어에 합류한 박인비는 이듬해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박인비는 당시를 떠올리면 “공을 치면 오른쪽으로 날아가거나 OB가 났다. 힘들고 괴로웠다”고 말한 뒤 “비행기를 타는 것도 매주 짐을 싸는 것도, 골프도 다 싫었다. 그 때 포기했다면 지금의 기쁨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위기의 박인비를 구한 것은 지금의 스윙 코치이자 남편인 남기협씨. 박인비는 2011년 프로골퍼 출신 남편을 만나 스윙을 교정한 후 제대로 된 스윙을 다시 하게 되면서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지금의 가장 독특한 ‘박인비표 스윙’으로 여제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묵묵하게 ‘외조’를 한 남편에 대해 박인비는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준 사람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한명”이라며 “남편을 만난 뒤 세상에는 골프 외에도 할 일이 많고 다른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떠올렸다.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도 박인비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방황’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 지도 모른다. 박인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했고 코치 박세리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박세리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다. 대답은 명쾌했다. “모든 사람이 너를 좋아할 수는 없다. 네가 결정했다면 너를 믿어라.” 큰 울림이 왔다. 박인비는 결정했다. 용기를 내기로. 박인비는 “올림픽 금메달을 걸기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첫째로 나 자신에게 끝도 없이 줬던 ‘용기’다.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냈기에 금메달도 가능했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물론 박인비의 가장 큰 힘은 가족이다. “결정의 순간 가장 큰 역할은 역시 가족이다. 당시 정상 컨디션도 아니고 나가서 못 치면 진짜 돌아올 게 비난밖에 없었다. 안 나가면 어쨌든 욕은 안 먹을 것인데…”라고 말한 박인비는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포기하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혀 보자고 결정했고 대신 만반의 준비를 다 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야 어떤 결과에도 내 자신에게는 당당하니까”라고 털어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멘탈’이었다. 박인비는 지금까지 숱한 부상 속에서도 집념의 우승을 이룬 바 있다.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는 스스로 ‘올림피언’으로 생각을 바꿨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올림픽 정신을 마음에 새겼다. 무엇보다 ‘골든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만든 가장 큰 힘은 바로 ‘태극마크’다. 박인비는 “태극마크는 무한적인 힘을 내게하는 에너지다. 초인적인 힘을 준다”고 말했다.
‘비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 처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박인비는 여전히 진화중이다. ‘침묵의 암살자’, ‘돌부처’로 불리는 박인비는 “출전 후에 번복하고 싶었다. 실수에 민감했고 남편에게 안될 것 같다고 수도 없이 말했다”고 말한 뒤 “하지만 나 자신을 다독이며 버텼고 한 단계 성장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 또 자신만의 ‘스윙’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통증을 피하기 위해 스윙을 교정한 박인비는 “아직 진행중이다. 아직 마음에 드는 단계는 아니고 계속 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인비가 116년만의 ‘골프 금메달리스트’가 됐지만 아쉽게도 한국의 금·은·동 싹쓸이 계획은 무산됐다. 양희영(27·PNS창호)이 마지막 4개홀 연속 버디를 잡았지만 1타가 부족해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노무라 하루(일본)과 공동 4위에 올랐다. 전인지는 합계 5언더파 279타 공동 13위, 김세영(23·미래에셋)은 합계 1언더파 283타 공동 25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