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6.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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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욱 세종대 교수·前 환경부 차관
메르스 확산 사태가 우리의 국가 자존심을 짓밟으며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우리 사회를 더 높은 단계로 성숙시키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국민경제를 지탱하는 3대 축은 가계·기업·정부다. 메르스 사태에서 미숙한 초기 대응과 비밀주의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곳은 정부다. 가정에 대해서도 얘기할 거리가 많을 터이다. 하지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경제주체는 기업이다. 뜻밖의 사태로 초래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려는 기업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한류 덕에 잘나가던 기업, 몰려오는 관광객 덕에 돈 세기 바빴던 기업, 장사 잘되는 면세점을 하겠다고 뛰어들었던 기업들은 다 어디로 갔나. 얼마 전까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때문에 정부를 상대로 소송도 불사하겠다던 이들도 있지 않았나.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메르스로 경제가 위축돼 큰일이라고 정부와 언론이 대신 걱정하는 동안 기업은 이 사태를 지켜만 볼 셈인가.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확산되고 기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팽배해지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사회 공헌 조직을 만들어 연탄 나르고 김장 담그던 그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공조직은 한계가 있다. 정해진 법과 제도, 한정된 인력과 예산 등 운신의 폭이 정해져 있다. 정부는 합법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할 수 없는 조직이다. 하지만 민간은 다르다. 효율성을 지향하며 신속히 대응하는 것이 특장이다. 이런 때 그들의 기민한 모습을 기대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된 뒤 국회가 정부를 질책하며 새로운 법을 만들고 조직·예산을 늘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으로 나설까 봐 지레 걱정된다. 그 돈은 또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 국민 혈세의 낭비를 막으려면 예외적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민간이 나서 완충 역할을 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요즘처럼 공공 부문의 일손과 예산이 아쉬울 때 민간이 거들어 주면 어떨까. 한 예로 격리 대상자의 생필품 구입을 민간 기업이 지원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경제단체의 사회 공헌 조직이 앞장선다면 보건소 직원에게 시장 보기를 도와달라는 하소연은 줄지 않겠는가. 생계가 힘든 격리 대상자에게 기업 임직원의 성의를 모은 생필품을 전달한다면 그 또한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과 행동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길이며, 궁극적으로 기업이 살아남고 성장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