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는 2007년 12월 19일 실시한 제17대 대통령선거에 있어서 당선인으로 결정되었으므로 당선증을 드립니다.”
2007년 12월 20일.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오전 이 당선인에게 당선증을 교부했다.
이 당선인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식 집계 결과 총 1148만7688표(48.7%)를 얻어 617만3579표(26.2%)를 얻는 데 그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통일부 장관 역임, 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를 530만여 표차로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당선인은 19일 밤 당선이 확정된 후 대국민담화를 통해 “매우 겸손한 자세,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며 “국민의 뜻에 따라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경제를 반드시 살리고 분열된 우리 사회의 화합과 국민통합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선에서 이긴 한나라당은 잔칫집이었다. 패자인 대통합민주신당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선거판에서 패자가 설 자리는 없었다. 대선판은 사실상 올 오어 나싱(전부 아니면 전무)의 냉혹한 승부의 세계였다.
이날을 기해 뜨는 미래 권력과 지는 현재 권력으로 권력지형은 재편됐다. 그리고 권력은 청와대에서 인수위로 급격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ICT 업계는 이 당선인이 추진할 ICT정책에 관심을 집중했다.
이명박 당선인은 대선후보 시절인 11월 20일 오전 8시부터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20층 경제인클럽에서 전자신문과 한국정보산업연합회 등이 공동 주최한 ‘제17대 대선후보 초청 IT정책포럼’에서 IT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이날 세계 최강 디지털 국가 건설을 위한 ‘IT 7대 전략과 3대 IT 민생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자신은 “디지털 최강국, 국가 최고의 CIO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IT 7대 전략은 △융합 IT를 일류국가 도약의 핵심엔진으로 활용 △SW 부문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 △IT 중소·벤처기업 중심 벤처생태계 조성 △미래형 도시모델 u시티 건설 △통·방 융합산업 주력 육성 △건강한 디지털 문화 공동체 △IT로 하나 되는 한반도 구축이다. 또 △IPTV140를 이용해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고 △규제완화를 통한 통신비 인하로 가계 부담을 덜며 △역기능 없는 IT세상을 만들겠다는 3대 IT 민생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그는 “가계 통신요금 비중이 7%에 이른다”고 지적하면서 “정보통신산업을 활성화하고 진입·M&A·주파수·번호부여 등에 관한 규제를 줄여 통신요금을 최대한 낮추겠다”고 말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21일 오전 8시 ‘제17대 대선후보 초청 IT정책포럼’에서 대선 공약을 발표했다.
정 후보는 초일류 IT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IT 분야 5대 공약과 15대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5대 공약은 △모든 국민이 편리한 IT서비스 △세계 최고 수준의 IT산업 경쟁력 확보 △세계를 선도하는 융합 서비스 △북한을 비롯한 세계와 IT로 소통 △IT 중소·벤처 부흥으로 일자리 창출이었다.
그는 “국민의정부 5년 동안 씨를 뿌려 놓은 것이 참여정부 5년 동안 국내에서 열매를 맺었다”며 “이제 다음 정부 5년은 세계로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그러려면 지금까지 대기업 중심이던 것에서 탈피해 SW 중소·벤처를 글로벌 경쟁력있게 키워야 한다”며 “IT는 분단된 남북을 잇는 혈관이 될 것”이라며 IT를 이용한 남북 경제통일을 다음 대통령이 할 주요 과업으로 꼽았다. 하지만 국민은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
이명박 당선인이 해야 할 우선 과제는 정권 인수와 자신의 국정 포부를 구현하는 일이었다. 그 업무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담당했다. 당선인 정치철학과 인수위 국정 밑그림 설계도가 정권 5년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늠자였다.
그해 성탄절인 25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역임, 현 대한적십자사 중앙위원)을 임명했다. 또 부위원장에는 김형오 전 선대위 일류국가비전위원장(국회의장 역임, 현 부산대 석좌교수)을 선임했다.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특임장관 역임, 현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은 위원장 인선 배경에 대해서 “이경숙 위원장은 직선으로 네 번이나 총장을 역임한 인물로 화합 속에서 변화를 이끌 적임자이자 탁월한 경영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라는 점이 임명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김형오 부위원장은 4선 의원으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일류국가비전위원장으로서 대선 공약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하며 여러 가지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고 밝혔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당시 “이 당선인이 이날 오후 4시께 직접 전화를 해 ‘새 정부가 실용주의적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해서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기획조정분과 △정무분과 △외교통일안보분과 △행정분과 △경제1분과 △경제2분과 △사회교육문화분과 7개 분과위원회와 위원장 직속의 국가경쟁력강화특위로 구성했다.
기획조정분과위는 국정목표 수립, 운영기획 및 총괄 조정, 국정과제 설정, 국정 로드맵 설정 등의 업무를, 정무분과위는 청와대·총리실·감사원·국가정보원·중앙인사위원회를 관장했다.
또 외교통일안보분과위는 통일부·국방부·외교통상부를, 행정분과위는 행자부·법무부·법제처·국정홍보처·검찰·경찰을 담당했다. 경제1분과위는 재경부·기획예산처·금감위·공정위·국세청·관세청·조달청을, 경제2분과위는 산자부·건교부·과기부·농림부·정통부·해수부를, 사회교육문화분과위는 교육부·복지부·노동부·문광부·환경부·여성부·국가보훈처 등을 관장했다.
위원장 직속의 국가경쟁력강화특위는 △정부혁신 및 규제개혁 △투자유치 △기후변화 및 에너지 대책 △한반도대운하 △새만금 △과학비즈니스벨트의 6개 TF로 구성됐다.
인수위는 곧바로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과 7개 분과 간사 및 인수위원, 자문위원단 등에 대한 후속인사를 단행했다.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공동위원장엔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현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과 데이비드 앨든 두바이 국제금융감독센터 회장이, 그리고 특위 공동부위원장엔 인수위 부위원장인 김형오 의원과 윤진식 전 산자부 장관(18·19대 국회의원)이 임명됐다.
특위 산하 6개 TF 팀장은 △정부혁신 및 규제개혁 박재완 의원(현 성균관대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한반도대운하 장석효 전 서울 행정부시장(한국도로공사 사장 역임) △새만금 강현욱 전 전북도지사(현 조선대 이사장) △과학비즈니스벨트 민동필 서울대 교수(현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며, 투자유치TF와 기후변화 및 에너지대책TF 팀장으론 각각 윤진식 전 장관과 허증수 경북대 교수(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역임)가 선임됐다.
기획조정분과는 맹형규 의원(행정안전부 장관 역임), 정무분과는 진수희 의원(보건복지부 장관 역임), 외교·통일·안보분과는 박진 의원(현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경제1분과는 강만수 전 재경원 차관(기획재정부 장관 역임), 경제2분과는 최경환 의원(현 경제부총리), 사회·교육·문화분과는 이주호 의원(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역임)이 각각 간사로 선임됐다.
정통부를 담당한 경제2분과 최경환 간사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위스콘신대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행정고시 22회로 대통령경제수석실 비서관,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을 거쳐 17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그는 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
성탄절 이튿날인 26일.
이명박 시대를 열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이날 오후 4시 30분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에서 현판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현판식에는 이명박 당선인과 이경숙 위원장, 김형오 부위원장, 인수위원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그해 27일 오전 9시.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 주재로 간사단 회의가 한 시간여 동안 열렸다. 국정 주요 어젠다 결정과 인수위 활동 일정 등에 관한 회의였다.
이후 인수위는 속도를 내며 급박하게 돌아갔다. 모든 행정부처는 인수위 움직임에 안테나를 총동원했다. 당장은 출세코스로 통하는 각 부처에서 파견할 인수위원회 전문위원 인선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해 3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정부부처에서 파견될 공무원 중 전문위원으로 일할 국장급 이상 공무원 34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인수위 측은 각 부처에서 3배수 추천을 받아 전문성과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고, 개혁성 등을 평가해 선정했다고 밝혔다.
정통부에서는 형태근 정보통신부 통신위원회 상임위원(방송통신위원회70 상임위원 역임, 현 동양대 석좌교수)이 임명됐다. 형 위원은 정통부 감사관, 국제협력관, 정보통신협력국장, 정보통신지원국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경제2분과 간사인 최경환 의원과 고교 동기동창이자 행정고시 22기 동기였다. 그래서 인수위 파견에 최 간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형태근 당시 전문위원의 말.
“최경환 간사와는 고교시절 같은 반 절친이긴 합니다만 전문위원 파견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당시 총무과에서 파견을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았고 이어 확정됐다고 해서 이튿날 8시 인수위 사무실로 출근했습니다. 당시 최 간사는 지금과 달리 그렇게 위상이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 자문위원으로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이 임명됐다.
그해 12월 3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정부 파견공무원으로 구성된 실무위원 38명의 명단을 확정했다.
정통부에서는 이상진 정통부 기획총괄과장(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력국장)이 임명됐다.
IT칼럼니스트
[이현덕의 정보통신부]<203>굿바이 정통부(중)
정권이 바뀌자 ‘5년의 법칙’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정부조직개편안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5년의 법칙을 건너뛰지 않았다.
2007년 12월 29일.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원 24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첫 워크숍을 열고 차기 정부의 국정철학과 추진과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 당선인은 이 자리에서 공직사회 초미의 관심사인 정부조직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이 당선인은 “산업화 시대의 조직으로는 21세기에 성공할 수 없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효율적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그 전제는 사람과 조직을 줄이기보다는 그 기능을 어떻게 조정해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조직개편은 인사 및 내각 구성과 관계가 있어 상당히 시급한 일인 만큼 우선순위를 두고 이번 17대 국회에서 집행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의 정부조직 개편 철학은 ‘작고 유능한 실용정부’였다.
이보다 이틀 전인 그해 27일 오전 9시.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국회의장 역임, 현 부산대 석좌교수) 주재로 간사단 회의가 한 시간여 열렸다. 국정 주요 어젠다 결정과 인수위 활동 일정 등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인수위에서 첫 정부조직 개편 방침과 시한이 제시됐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정부조직법은 최단시간 내에 완결해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 조직 개편의 실무 키맨은 국가경쟁력강화특위 박재완 정부혁신TF팀장(기획재정부 장관 역임, 현 성균관대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었다. 그는 이날 브리핑에서 “사안의 시급성에 비춰 정부조직을 재편하고 기능을 조정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면서 “1월 중순까지는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직사회의 시선은 온통 TF에 쏠렸다.
정부혁신TF는 박재완 팀장을 비롯해 전문위원 3명, 실무위원 6명, 자문위원 11명으로 구성했다. 이 중 전문위원인 정광호 서울대 교수(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실무위원인 이창균 박사(지방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임, 현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자문위원), 비상임 자문위원인 김관보 교수(현 가톨릭대 교수) 등이 초안 작업을 했다.
박재완 당시 팀장의 증언.
“인수위가 출범한 후 정부조직 개편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여러 곳에서 자료를 받았습니다. 이 자료를 기초로 해서 정부조직 개편안을 작성했습니다.”
당시 TF에서 실무위원으로 일했던 이창균 박사의 증언.
“당시 인수위 발령을 받고 갔더니 박재완 팀장이 정부조직 개편 초안을 준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위원들이 업무를 분담해 개편 초안 작업을 했습니다.”
정부조직 개편안은 이보다 앞선 2007년 초 이명박 후보가 곽승준 고려대 교수(청와대 국정기획수석,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 역임, 현 고려대 교수)에게 “내가 당선되면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자료를 수집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곽 교수는 서울대 행정대학원과 이 당선인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 온 한반도선진화재단 등에 의뢰, 10여개 연구보고서와 개편안을 마련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은 14부 3처 안을, 한반도선진화재단은 1원 10부 2처 안을 제시했다. 정광호 교수는 서울대 안 작성을 주도했고 김관보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정부조직 개편을 대표 집필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안은 부처 수가 크게 줄지 않았다. 하지만 선진화재단 안은 대부처주의에 초점을 맞췄고 부처를 대폭 줄였다. 과학기술부와 산업자원부, 정통부, 문화관광부의 산업진흥 기능과 IT 콘텐츠 개발 기능을 통합해 과학산업부를 신설하고 정통부의 정보통신 정책 및 규제 기능은 방송통신위원회70로 통합하고 우정사업은 민영화한다는 안이었다.
정부조직 개편과정은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실무위원들이 초안을 마련해 내부 논의를 거쳐 인수위 각 분과 간사들과 협의했다. 그러나 2008년 1월 3일 인수위 전 분과 간사가 참여하는 비공개회의에서 정부조직 개편은 분과별 의견을 수렴할 것이 아니라 TF에 전적으로 맡긴다는 방침을 정리했다.
이와 관련한 형태근 전문위원(방통위 상임위원 역임, 현 동양대 석좌교수)의 증언.
“인수위에 파견 나가 정통부 폐지안이 거론되기에 최경환 경제2분과 간사(현 경제부총리)에게 반대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최 간사도 정통부 폐지에 반대했습니다. 정부혁신TF에도 찾아가 정통부 폐지는 잘못이라는 뜻도 밝혔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정부조직 개편에 관해 인수위에서 절대 개입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박재완 팀장은 내부에서 마련한 안을 가지고 수시로 이명박 당선인에게 올라갔다. 그가 사무실로 오는 시간은 대략 새벽 2시. 실무위원들은 2시 30분께 퇴근했다가 아침 7시 30분에 바로 출근했다.
박재완 팀장의 증언.
“통의동 당선인 집무실에서 한 번 회의를 하면 짧게는 네다섯 시간, 길게는 일곱 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이정균 박사의 말.
“박 팀장은 열정을 갖고 합리적으로 개편안 작업을 했습니다. 이명박 당선인은 박 팀장이 작성한 안을 보고받고 몇 차례 수정을 지시했습니다.”
김관보 교수의 증언.
“저는 비상임이어서 실무작업만 했습니다. 보고서 제출 후 최종 조직개편안은 인수위에서 작성했습니다.”
정부조직 개편을 검토하는 자리에는 이 당선인 최측근 몇 명만 참석했다.
이와 관련한 박재완 팀장의 말.
“그 자리에 몇 사람이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명단을 밝히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통부 해체설이 흘러나왔다.
1월 8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등 27개 정보통신 유관단체가 공동성명을 내고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해선 앞선 IT정책 역량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흩어진 IT정책 기능을 전문부처가 전담하도록 확대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영환 정통부 장관(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과 김동수 차관 등도 인수위 등을 상대로 정통부 해체를 막기 위해 뛰었다.
유영환 장관의 증언.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정통부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박재완 팀장과 몇 차례 전화통화를 해 조직개편의 부당함을 지적했습니다.”
김동수 차관의 말.
“직접 박재완 팀장을 찾아가 만나고 자료도 전달했습니다. 정통부 존치 이유와 새 정부 역할 등에 대한 자료였습니다.”
하지만 현직 장차관이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로 뛰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1월 10일.
정통부는 IT 분야 정부조직 개편 방향에 대한 입장문을 공식 발표했다.
정통부는 이날 전 직원 명의의 발표문에서 “정보통신부 개편 이래 IT산업을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으로 키우고 세계가 인정하는 IT강국 건설의 꿈을 실현한 바 있다”며 “이는 무엇보다도 정부 각 부처에 흩어졌던 관련기능을 하나로 모아 일관된 정책을 추진한 것이 가장 큰 힘이 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통부는 이어 “조직 일원화를 통해 앞으로 신산업 발굴 등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부처를 오히려 조각조각 분해하는 방안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정통부 폐지를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우선 이명박 당선인 최측근 중 IT 전문가가 없었고 더군다나 당선인을 설득할 인물도 없었다.
그해 1월 14일 박재완 팀장은 정통부 폐지안이 들어있는 최종 정부조직 개편안을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고해 결재를 받았다.
박재완 팀장의 말.
“해당 부처 의견도 물어서 반영했습니다. IT는 산업의 인프라라고 판단했습니다.”
1월 16일 오후 2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현행 18부 4처 18청인 중앙행정조직을 13부 2처 17청으로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차기 정부 조직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이날 삼청동 인수위 기자실에서 이 같은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 최종안을 발표했다.
인수위가 확정한 안에 따르면 현행 18부는 통일부, 해양수산부, 정보통신부, 여성부, 과학기술부 5부가 통폐합돼 13부로 축소 조정됐다.
인수위는 산자부의 산업과 에너지 정책, 정통부의 IT산업 정책, 과기부의 산업기술 R&D 정책을 통합해 지식경제부로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정통부의 정보통신진흥기금은 지경부로 이관하며 대통령 소속으로 방송통신위원회를 신설하며 방송위의 방송정책 및 규제, 그리고 정통부의 통신서비스 정책과 규제를 통합한다고 설명했다. 정통부의 전자정부 정보보호 기능을 행정안전부로 이관하고 정통부의 디지털콘텐츠 정책은 문화부로 이관하기로 했다.
이명박 당선인은 IT공약에서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디지털 국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 당선인은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IT강국의 주무부처인 정통부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일은 예측불가였다.
IT칼럼니스트
[이현덕의 정보통신부]<204>굿바이 정통부(하)
그날은 이별의 날이었다. 2008년 1월 16일 오후 5시.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는 ‘2008년 정보통신인 신년인사회’가 열렸다. 행사 직전 정통부 폐지안을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현 대한적십자사 중앙위원)이 발표했다. 권력 무상(無常), 조직 무상이었다.
유영환 정통부 장관(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의 표정은 침통했다.
“십이간지 순서를 정할 때 원래 소가 1등이었지만 소뿔에 매달려왔던 쥐가 1등을 했습니다. 새 정부의 조직개편을 보면서 우리가 소처럼 우직해서만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정통부가 그동안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뒀지만 결국 정통부 해체라는 최악의 결과로 나타나자 십이간지 설화를 들어 인수위를 비판한 것이다.
유 장관은 “(정통부) 해체를 발표하는 날 이 자리에 서 있으니 착잡하고 송구스럽다”며 “IT는 다른 산업과 달리 동반성장을 해나가는 산업인데, 산업 간 연결고리가 끊어져 성장동력을 잃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통부 출범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윤동윤 전 체신부 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은 “인수위 외과의사들이 정통부를 세 가닥으로 수술해 버렸고 대부분의 정보통신인은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인수위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날 행사에는 전·현직 장차관, ICT 최고경영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ICT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정통부 폐지를 막을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회 입법처리 과정에서 정통부를 살리는 안이고 다른 하나는 인수위가 수정안을 내는 안이었다.
특히 윤동윤 장관을 비롯한 신윤식(현 정보환경연구원 회장), 이계철(방송통신위원장 역임), 박성득(한국해킹보안협회장) 등 전직 차관들이 국회와 인수위 등을 뛰어다니며 정통부 살리기에 앞장섰다. 정통부 폐지를 반대하는 탄원서도 제출했다.
윤동윤 전 장관의 증언.
“당시 국회와 인수위에 정통부 폐지는 절대 안 된다는 탄원서를 전달했습니다. 국회에서 유인태 행정자치위원장(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과 김효석 대통합민주신당 원내대표(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등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정통부 해체에 반대했습니다. 인수위에서 이경숙 위원장은 못 만나고 김형오 부위원장(국회의장 역임, 현 부산대 석좌교수)을 만났습니다. 일행과 함께 만난 뒤 나와 둘이 면담했습니다. 김 부위원장은 ‘자기 소관이 아니어서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원론적인 말만 했습니다.”
탄원서는 석호익 당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현 통일IT포럼 회장)이 작성했다. 석 원장은 노준형(현 김앤장 고문), 유영환 전 장관과 행정고시 21회 동기였다. 그는 당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대선에서 정부조직개편론이 거론될 것에 대비해 정보통신 미래상과 ICT를 통한 성장과 고용, 정보통신 융합 방안이 담긴 정보통신 발전 비전 수립을 노준형 장관에게 제안했다.
석 전 원장의 회고.
“노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하겠다고 하니까 혼자 장관실에서 하라고 하더군요. 저를 배려해서죠. 그 자리에서 ‘대선 준비를 해야 한다. 연구원에 30억원을 지원해 주면 비전을 만들어 제출하겠다’고 했습니다. 노 장관이 ‘선배님이 필요한 대로 지원하겠다’고 해 당시 유영환 차관과 해당 실·국장 등에 장관 지시사항을 전달했습니다.”
석 원장은 연구원 조직을 개편해 매주 회의를 주재하며 이 업무를 챙겼다. 하지만 중간에 이 일이 중단되고 말았다.
석 원장의 말.
“이한구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요청으로 만났더니 ‘한나라당 정보통신 공약을 만들어달라’고 해요. 그래서 ‘국책연구원장이 야당 정책을 만들어줄 수는 없다. 그 대신 공식 발표자료는 줄 수 있다’며 자료를 준 적이 있습니다. 최경환 당시 한나라당 의원(현 경제부총리)도 ICT 전문가 두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비전을 만들어 대선주자들에게 제시했더라면 정통부 폐지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인수위 자문위원으로 일했던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KISDI 원장 역임)의 증언.
“당시 인수위가 정부조직개편 모델로 참고한 것은 일본 하시모토 류타로 정부였습니다. 일본은 1부 20성·청을 1부 12성·청으로 과감히 줄였습니다. 이명박 당선인 주변에 정통부 입장을 대변할 인물이 없었습니다. 재무부나 경제기획원, 산자부 출신이 정통부 입장을 대변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해 1월 18일 이명박 당선인은 새 정부 장관 내정자를 발표했다. 지식경제부 장관에 이윤호 전 LG경제연구원장(주 러시아대사 역임)을 발탁했다.
형태근 당시 인수위 경제2분과 전문위원(방통위 상임위원 역임, 현 동양대 석좌교수)의 증언.
“이명박 당선인이 처음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남중수 KT 사장(현 대림대 총장)을 지목한 것으로 압니다. 남 사장이 왜 그 제안을 거부했는지는 모릅니다. 5년 단임제 정부에서 부처가 살아남으려면 실적을 내야 한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당시 정통부 폐지와 관련해 진대제 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과 인수위 참여 모 장관의 갈등설 등 각종 설이 난무했는데 사실과 다릅니다.”
그해 1월 19일.
김효석 대통합민주신당 원내대표는 국회 대표연설에서 “정통부 폐지는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1월 28일 정부조직개편안을 놓고 현 권력과 미래 권력이 정면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30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참여정부의 정부조직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고, 민주적이고 신중한 토론과정을 거쳐 만든 것”이라며 “굳이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인수위의 조직개편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제2의 과학기술입국을 천명했던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여성가족부 확대 개편, 과학기술부의 부총리급 격상, 과학기술혁신본부 신설, 예산처의 경제부처 독립,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신설, 정보통신부의 성과 등의 의미를 거론하며 “이런 부처들을 통폐합하는 것은 참여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재의 요구를 거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이어 △차기정부 조직개편안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논거와 내용 △차기 정부 조직개편에 대한 현 정부 입장이 담긴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인수위는 이날 오후 5시 ‘오만과 독선의 발로’라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명박 당선인은 이날 낮 인수위 파견 공무원들과 인수위 식당에서 오찬을 했다.
형태근 전문위원은 이 당선인 맞은편 자리에 앉게 됐다. 그는 이 자리에서 “IT는 전 부처로 확대해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정보통신부 직원들을 중용해 달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정사업본부 개편도 쟁점이 됐다. 인수위 경제2분과는 처음 우정사업본부 민영화를 검토했으나 우정사업은 국가가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민영화는 철회했다. 현안은 소관부처 이관이었다.
이와 관련한 정경원 당시 우정사업본부장(현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의 증언.
“윤동윤 전 장관을 비롯한 전직 장차관 등이 정통부 폐지 반대와 함께 우정사업본부는 방통위 소관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인수위 등에 전달했습니다. 방통위가 대통령직속기관이 되는 바람에 우정사업본부를 방통위 소관으로 할 경우 민영화 과정에서 체신노조가 반발하면 대통령에게 누가 된다는 인수위 측의 논리에 여당이 밀렸습니다. 그래서 지식경제부 산하로 넘어갔습니다.”
벼랑 끝 대치 속에 여야는 대통령 취임식 닷새를 앞두고 그해 2월 20일 4차 협상 끝에 정부조직개편안에 전격 합의했다. 여야는 방송통신위원회70를 대통령직속기구로 하되 위원 5명 중 2명을 야당이 추천하는 것에 합의했다. 정통부 존치를 위해 뛰어다녔던 전직 장차관들의 노력은 ‘황야의 목소리’가 되고 말았다.
그해 2월 22일 오후 2시 국회는 임시 본회의를 열어 재석 210명 중 찬성 164명, 반대 33명, 기권 13명으로 정부조직개편안을 통과시켰다.
그해 2월 29일부터 새 정부조직개편안이 발효됐다.
이에 따라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던 독창적 정부조직인 정통부는 출범 14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TDX 개발과 CDMA 세계 첫 상용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등으로 한국의 국가 브랜드였던 ‘ICT 강국’ 주무부처인 정통부의 퇴장은 허무하고 쓸쓸했다. 정통부를 벤치마킹한 국가만 29개국에 달했다고 한다. 그런 정통부를 이명박정부는 단번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날 오전 11시 유영환 장관은 이임식에서 “조직의 수장으로서 조직과 직원 여러분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얼굴을 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부처를 지키지 못한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박근혜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가 발족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통부 폐지는 이명박정부의 대표적 실책이란 평가를 받았다. 2012년 8월 12일 이상민 민주통합당 의원(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27개 출연기관과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명박정부의 실책으로 정통부와 과기부 폐지를 들었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은 2013년 1월 8일 연구기관·학계 등 회원 1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81%가 정통부와 과기부 폐지를 실책이라고 응답했다.
김성재 전 김대중도서관장(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문광부 장관 역임)은 기자에게 “이명박정부의 정통부 해체는 크게 잘못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최시중 방통위원장도 2010년 3월 18일 기자들과 만나 “정통부 해체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2010년 4월 13일. 입법부 수장인 김형오 국회의장도 “정보통신과 콘텐츠, 원천기술 등을 총괄한 통합부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통부가 간판을 내리던 날 전직 정통부 출신 관료 S씨는 “평생 처음 엉엉 소리 내 울었다”고 회고했다. 정통부는 이날 추억 속의 앨범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