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가면서(在生活裏)

마음을 전하는 중고 컴퓨터 아저씨

含閒 2014. 11. 6. 09:02

마음을 전하는 중고 컴퓨터 아저씨


저는 중고 컴퓨터 장사를 합니다.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 즐거움도 있지만,
장사꾼의 솔직한 심정은 한 푼이라도
더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사실 더 큽니다.

얼마 전 저녁,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본인은 칠곡에 살고 있고,
6학년 딸아이에게 중고 컴퓨터를
사주고 싶다는 전화였습니다.

아이와 떨어져 살고 있고 아이는
서울에서 할머니와 산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열흘 후, 적당한 중고가 생겼습니다.
주소지에 도착하니 허름한 새시 문 앞에
할머니 한 분이 손짓하고 있습니다.

"많이 누추해요."
한 눈에 봐도 넉넉하지 않는 살림살이들.

"우와 컴퓨터다."
마침 손녀딸이 들어옵니다.
"너 공부 잘하라고 엄마가 사준 거여.
학원 다녀와서 실컷 해. 어여 갔다 와."
아이는 들뜬 목소리로 "네~" 하곤 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설치를 끝내고 집을 나섰는데 정류장에
그 손녀 딸아이가 서 있습니다.
태워준다고 하니 조금 전 봤던 아저씨라
주저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하계 역이요~"
눈빛이 또렷하니 참 똘똘해 보였습니다.

한 10분 갔을까?
아이가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다고 합니다.

가까운 건물에 차를 세워주자, 아이는
먼저 가라며 급하게 건물 안으로 사라져버립니다.

그리곤 차를 돌리려 무심코 보조석 시트를 보는데
'가슴이 쿵!'
검 빨갛게 물들은 시트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 첫 생리?
당황해 하던 아이의 얼굴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시트까지 젖을 정도면 바지가 젖었다는 건데...
아이엄마에겐 마음 아파하실 것 같아 전화도 못하고
다급한 마음에 든든한 지원군,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자, 역시나 든든합니다.
당장에 오겠다며 일사분란 하게 속옷부터 치마,
생리대며, 물티슈까지 사놓으라고 합니다.

아내 덕에 물품을 모두 챙겨
좀 전 그 건물로 돌아갔습니다.

없으면 어쩌나 조마조마 합니다.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찾으러
아내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세 칸 중 닫혀있는 한 칸 앞으로가 조심스레 말을 걸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리더랍니다.

그때까지 혼자 울며 끙끙대고 있었던 겁니다.
다른 평범한 가정이었으면 조촐한 파티라도 할 기쁜 일인데,
아이는 당황스러운 눈물만 흘렸을걸
생각하니 콧잔등이 짠해왔습니다.

집사람 손을 잡고 아이가 나오는데
그 짧은 순간에 아이가 겪었을 마음고생이
얼굴에 모두 묻어 나와 있더군요.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를 집 앞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물었습니다.

"컴퓨터..얼마 주고 팔았어?"
"22만원"

"계산 잘못 됐다고 10만원, 할머니 다시 드리고 와"
"뭐?"

단호한 아내의 눈빛,
사실 저도 내심 마음에 걸려 하고 있던 찰나에
역시나 제 마음을 읽었나 봅니다.

계산이 잘못됐다는 둥, 잘 알지도 못할 램 값 운운하며
돈을 돌려드렸습니다.

차에 타자 집사람이 제 머리를 헝클리며,
"역시..이 남자" 하며 저를 추켜세워줍니다.
장가 하난 정말 잘 들었습니다.

그날 밤 11시쯤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여기 칠곡인데요. 컴퓨터 구입한......."
이 첫마디 후, 계속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저도 그냥 전화기 귀에 대고만 있었습니다.

저는 중고 컴퓨터 장사를 합니다.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 즐거움도 있지만,
장사꾼의 솔직한 심정은 한 푼이라도
더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사실 더 큽니다.

그러나, 더 큰 것은 나의 조그만 배려로
내 심장이 알 수 없는 기쁨으로 꽉 차고,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사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