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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勝求戰(忠武公 李舜臣)
(선승구전·미리 이겨 놓고 난 후에 싸운다)…
임금이 命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은 하지 않았다
지용희<사진>
세종대 석좌교수가 삼성 사장단을 대상으로 가진
'경제 전쟁과 이순신 리더십' 강연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왜 지금 또다시 이순신인가? 그는 리더십의 영원한 표상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23전 23승을 이끌어 낸 위대한 승장(勝將)이자 인력·배·무기·식량이 부족하고 모함과 핍박으로 백의종군이란 수모를 당하는 가운데에서도 거북선을 발명하고, 학익진이란 새로운 진법을 개발해 국가를 존망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이다.
일본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郎)는 "나를 넬슨에 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순신에는 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상남도 진해에 있던 옛 일본 해군 사령부가 중요하게 여겼던 연중행사 중 하나는 통영 충렬사에서 이순신 진혼제를 올리는 것이었다. 해군성 예산 항목으로 경비를 충당하고, 사령부 장병은 당일 통영까지 가서 진혼제를 봉행해야 했다. 적에게도 탄복을 자아내는 '군신(軍神)'이었던 셈이다.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선승구전(先勝求戰). '미리 이겨 놓고
난 후에 싸운다'는 뜻이다.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10여 척으로 대규모 일본 함대와 맞서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지형·조류 등 지리적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명량해협의 좁은 물목(물이 흘러들고 나가는 어귀)을 전투 장소로 선택했다.
일본 전선 중 가장 크고 전투력이 강한 안택선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고, 규모가 작은 관선 133척만 들어왔다. 또 조류가 빠른 명량해협 특성을 활용, 조류를 타고 왔던 일본 수군이 순식간에 거꾸로 바뀐 급속 조류에 당황하자 대반격을
감행,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정신 전력 측면에서도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이순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맨 앞에서 싸우는 용기와 희생정신을 보여줌으로써 부하들 분투를 이끌어냈다. 왜군 선봉대장 목을 베어 적의 기세를 꺾고, 우리 수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켰다.
군사 전략이든, 경영 전략이든 기본은 같다. 시대가 변한다고 기본까지 달라지지 않는다. 경제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전장(戰場)인 시장과 산업을 구성하는 경쟁자, 구매자, 공급자를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이순신의 정신·리더십·전략으로 무장하면
어떠한 경제 전쟁에서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영화 ‘명량’의 한 장면. 이순신은 위험을 정확히 판단하고,
위기관리를 철저하게 해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위기관리에 철저하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발발 1년여 전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자마자 관할 지역 지형과 조류를 조사했다. 또 전투 시 긴요하게 이용할 수 있는 요충지를 파악하는 데 힘을 기울였으며, 필요한 곳에는 수중에 장애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부하들은 달이 매우 밝았기 때문에 적의 야습이 없을 것이라고 방심하고 있었지만, 이순신은 피곤해 누워서도 갑옷을 벗지 않았다. 달빛이
밝다 해도 한산도에 있는 큰 산 그림자 때문에 바다가 어두워진 곳이 있으며, 이곳으로 적이 기습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위기의식을 부하들에게 불어넣기 위해서는 리더가 먼저 온몸으로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여 턴어라운드(turnaround)에 성공한 기업들을 보아도 이러한 점을 잘 알 수 있다.
이순신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무모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 임금이 잘못된 정보와 판단에 따라 적의 소굴로 쳐들어가라고 명했지만, 이렇게 하면 우리 수군이 크게 패배하게 된다고 판단하고 임금의
지시였음에도 이를 따르지 않았다.
이처럼 리스크 관리의 귀재였지만 위험을 회피하지만은 않았다. 이순신이 12척으로 수백 척에 달하는 적선 침입을 저지하려고 하자, 승산이 없다고 본 임금은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대해 이순신은 "만일 지금 수군을 없앤다면 적이 바라는 대로 하는 것이며, 적은 호남과 호서의 연해안을 돌아 한강으로 올 것입니다. 신은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보고하고 전투에 나섰다.
공정한 불평등을 실천한다
이순신은 전시에 부하들
희생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평시에는 부하들과 같이 고생하고 함께 즐기면서 한 몸이 되고자 노력했다. 가난한 부하에게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 준 적도 있다. 하지만 부하들 죄는 용납하지 않았다. 난중일기에는 "군기를 검열했다. 활, 갑옷, 투구, 전통, 환도 등 파손된 물건이 많이 있었다. 모양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 아전, 궁장과 감고 등을 처벌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남의 개를 잡아 먹은 부하에게 80대 곤장을 때리는 엄중한 벌을 줬다는 기록도 있다.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군율을 칼날같이 세워야 하기 때문에
부하들의 죄를 엄격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
잘하거나 잘못하거나 똑같이 대우한다고 해서 공정한 게 아니다.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게 공정한 것이다. 상과 벌을 확실히 주는 공정한 불평등(equal inequality)을 실천해야 한다. 삼성 이병철 회장은 "회사 내 잘못을 지적하고 그 문제점을 과감히 제거하고 용서하지 않는 경영자를 흔히 냉혹한 사람이라고 평하지만, 진짜 냉혹한 사람은 잘못을 덮어두고 미온적인 경영으로 회사와 본인 장래를 망치고 결국 사회를 혼란케 하는 경영자"라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겸양의 미덕과 5단계 리더십
"사직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작은 공로를 세웠는데,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너무 커서 분에 넘친다. 장수의 직책으로 더 쓸만한 공로도 바치지 못했으며 군인으로서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난중일기'에 나온 구절이다. 이순신에게는 명량대첩도 천행(天幸)의 결과였고, 부하들 공이었다. 겸양은 곧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한다(輕敵必敗之理)"는 마음가짐으로 이어진다. 오만과 자만이야말로 모든 전쟁과 경쟁에서 패배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이순신은
승리의 공을 모두 부하에게 돌렸다. 승전 보고서를 올릴 때에도 부하들 공을 앞세웠으며, 심지어는 종들의 이름까지도 적었다. 그러자 부하들은 마음속 깊이 이순신을 존경하고 목숨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싸울 수 있었다.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리더는 '뛰어난 업무 능력→팀워크 능력→관리자로서 역량→비전 제시와 동기 부여→헌신과 겸양의 미덕' 순서로 자질이 발전해 간다고 분석했다. 마쓰시타전기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성공을 운의 덕으로 돌리고 실패는 자신의 탓으로 돌리라"고 충고한 바 있다.
핵심역량을
쌓는다
이순신은 바쁜 가운데서도 활쏘기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아 명궁으로 이름을 날렸고, 꾸준한 학습과 연구로 병법·전략·전술뿐 아니라 정보·인사에도 통달, 장군으로서 필요한 '핵심역량'을 튼튼히 했다. 이순신은 한산해전에서 학익진(鶴翼陣·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진법)을 써서 일본 수군을 대파했다. 이순신은 육전에서 쓰이던 학익진을 연구해서 응용했다. 해전에서 학익진이라는 새로운 진법을 몰랐던 적장은 대패할 수밖에 없었다.
치열한 경제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는
핵심역량이 있어야 한다. 지식·정보화 시대 핵심역량은 자금·시설 등과 같은 물적 자원보다 경쟁자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기술, 경영 능력, 조직 능력, 마케팅 능력, 디자인 능력과 같은 지적 재산에서 창출된다.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돌아왔을 때 수군은 괴멸 상태에 가까웠다. 임금은 이순신을 군사·전선·무기·군량도 없는 해군 사령관에 임명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선조에게 글을 올렸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으므로
죽을 힘을 다하여 싸우면 적 수군의 진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전선의 수가 적고 미미한 신하에 불과하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우리를 얕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는 비장한 자세를 강조했고, "한 사나이가 길목을 지키면 천명을 두렵게 만든다(一夫當逕 足懼千夫)"면서 군사들 분발을 촉구했다.
기업가란 이렇듯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정신이 필요하다. 자원(자금·인재·시설·기술 등)이 부족하더라도
도전정신을 갖고 혁신을 추구하면 경제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GE 전 회장 잭 웰치는 "'유리 잔에 물이 반밖에 없다'는 자세를 가진 직원이 제일 눈에 거슬립니다. 그들은 '전에도 해봤지만, 안 됐습니다'라고 말하곤 하죠. 이런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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