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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구경 Ⅲ(경복궁의 여러 門들)

含閒 2013. 11. 18. 15:13

경복궁 구경 Ⅲ(경복궁의 여러 門들)

 

 

경복궁의 정문(광화문)

1395년(태조 4년) 9월에 창건되어 정도전(鄭道傳)에 의해 사정문(四正門)으로 명명되었고 오문(午門)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그러다가 1425년(세종 7년)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이라고 바꾸었습니다. 광화문은 석축기단(石築基壇)에 3개의 홍예문(虹霓門)를 만들고 그 위에 정면 3칸의 중층우진각 지붕으로 된 목조문루를 세웠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270여년 간 중건되지 못하다가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으로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으나 한일병합 후 1927년 조선총독부가 해체하였습니다.1968년에 전통적인 광화문의 모습을 상실한 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시켰습니다. 그나마 도로확장을 위해 위치도 뒤쪽으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2006년 12월부터 광화문 복원 및 이전 공사가 시작되어 전통적인 옛 모습을 찾기 시작했으며 2010년 8월에 완공되었습니다.

1) 경복궁 이름의 뜻과 유례

- 경복궁은 이성계가 왕이 되어 곧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1395년)에 완성하였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궁(正宮)으로서, 사적 제117호로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고도 불리었습니다.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습니다.

- 궁의 명칭은『시경』주아(周雅)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뜻으로 '군자만년개이경복'(君子萬年介爾景福)에서 두 자를 따서 '경복궁(景福宮)'이라고 지었습니다.

 

 

 

흥례문은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있는 경복궁의 중문이다. 원래 이름은 홍례문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867년 고종 때 재건하면서 흥례문으로 고쳤다.

“흥례문의 수난과 복원”

1915년 일제는 시정 5주년을 기념하며 조선물산공진회를 열었다. 조선물산공진회는 ‘진보된 상업 문물을 보여주고 조선인에게 신정의 혜택을 자각시킨다’는 명분 아래 개최된 박람회인데, 이를 계기로 흥례문 주변 행각을 비롯한 경복궁 내 많은 행각들이 파괴되었다. 게다가 다음 해인 1916년부터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흥례문 자리에 짓기 시작하면서 흥례문과 그 주변 영역 모두 철저히 파괴되고 철거되었다. 민족정신을 말살하며 식민통치를 강화하려는 일제의 만행이었다. 이후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뒤 복원을 진행시켜 2001년에서야 다시 제모습을 찾았다.

 

 

경복궁 안의 정전(正殿)으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왕의 위엄을 나타낸다. 조례, 가례, 즉위식, 사신 접견 등 국가의 중요행사가 치러졌다.

“근정전의 위엄”

근정전은 외부에서는 2층 건물로 보이지만 내부는 통층으로 된 구조다. 내부 보개 천장에는 황색 칠조룡이 조각되어 있다. 오행설에 따르면 황룡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사방신의 점정으로 세상의 중심을 나타내며 중국의 황제, 천자를 상징한다. 또한 일곱 개의 발가락은 그 수에서 위엄이 가장 높은 것으로 왕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처음부터 황색 칠조룡이 있었는지, 고종 때 재건을 하면서 만들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자주적이며 강건한 왕권을 드러내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상세설명

근정전은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중심 건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태조 3년(1394)에 지었으며, 정종을 비롯한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하기도 하였다. ‘근정’이란 이름은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고종 4년(1867) 다시 지었는데, 처음 있던 건물에 비해 많이 변형하였다. 앞면 5칸·옆면 5칸 크기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여진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며 그 형태가 화려한 모습을 띠고 있다. 건물의 기단인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기둥에 훌륭한 솜씨로 12지신상을 비롯한 동물들을 조각해 놓았다. 건물 안쪽은 아래·위가 트인 통층으로 뒷편 가운데에 임금의 자리인 어좌가 있다. 어좌 뒤에는 ‘일월오악도’병풍을 놓았고, 위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몄다. 근정전에서 근정문에 이르는 길 좌우에는 정승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차례로 놓여 있으며, 햇빛을 가릴 때 사용하였던 고리가 앞마당에 남아 있다. 근정문 좌우로는 복도 건물인 행각(行閣)이 연결되어 근정전을 둘러싸고 있다. 근정전은 조선 중기 이후 세련미를 잃어가던 수법을 가다듬어 완성시킨 왕궁의 위엄을 갖춘 웅장한 궁궐건축이다.

 

근정전에 들어가는 문이다. 근정전 서쪽문인 월화문은 무신이, 동쪽문인 일화문은 문신이 출입하였다. 근정문에서는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즉위식 등이 행해졌다.

“근정문 앞 불꽃놀이”

근정문 앞에서는 중국 사신들을 위한 불꽃놀이가 진행되기도 했다. 태종 18년(1418) 1월 1일, 태종은 중국 사신들에게 근정전에서 연회를 베풀고 군기감에게 명해 근정문 바깥뜰에 불꽃놀이 기구를 설치하게 하였다. 이후 연회가 끝나는 저녁 무렵 사신과 더불어 불꽃놀이를 구경하였다. 이때 화염이 하늘에 치솟고 폭음이 궁정을 뒤흔드니 사신이 매우 기이해 하며 감탄을 했다고 한다.

상세설명

근정문은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의 남문으로 좌우에 복도 건물인 행각이 둘러싸고 있다. 조선 태조 4년(1395) 경복궁을 세울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세우면서 같이 지은 것이다. 근정문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형태가 날카롭고 곡선을 크게 그리고 있어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행각은 근정전의 둘레를 직사각형으로 둘러 감싸고 있는데 원래는 한 칸 복도였으나 다시 지으면서 2칸 복도로 만들었다. 양식과 구조는 간결하게 짜여 있으며 남행각이 연결되는 곳에 일화문(日華門)과 월화문(月華門)이 있고 북행각 가운데에 사정문(思政門)이 있다. 동·서쪽으로는 각각 밖으로 돌출한 융문루(隆文樓)·융무루(隆武樓)가 있다. 벽에 만든 창의 형태는 사각형의 모서리를 사선으로 처리한 것이 특이하다.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왕궁 정전의 남문 중 하나 밖에 없는 2층 건물로, 위엄을 갖춘 궁궐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왕의 침전이다. 왕이 일상생활을 하였던 공간으로, 이곳에서 독서를 하거나 휴식을 취했고 신하들과 정무를 보기도 했다. 또한 월대를 두어 연회를 베풀기도 했는데, 국가 차원의 의례 공간인 근정전과 달리 강녕전은 왕비나 대비를 위해 여는 내진연, 외부 손님에게 여는 외진연, 종친들에게 여는 위로연, 신하들과 함께하는 간단한 연회 등 왕실의 사적인 연회를 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강녕전은 좌우의 연생전, 경성전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1917년 창덕궁 화재로 소실된 희정당을 복원하기 위해 이를 옮기던 중에 훼손되었다. 지금의 강녕전은 1995년에 복원된 것이다.

 

왕의 침전인 강녕전 동쪽에 위치한 소침전(小寢殿)이다. 정도전은 '하늘과 땅은 봄에 만물을 낳게 한다'는 뜻을 담아, 이곳 동쪽 침전에 '연생전'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유교의 예법에 따르면 왕은 중앙에 중심 건물인 연침을 두고 계절별로 소침을 두어 침전을 돌아가며 사용하는데, 천자는 6개를, 제후는 3개를 두었다고 한다. 이에 강녕전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소침을 두었으나, 실제로는 계절과 상관 없이 사용했다 한다. 소침은 침전이지만 사적인 공간보다는 신하와 함께 정무를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경복궁 안에 있는 왕비의 침전이다. 궐내 생활의 중심 역할을 반영하듯 궁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이 침전을 중궁전(中宮展), 왕비를 중전마마라고 불렀다.

“하늘과 땅의 조화, 교태”

교태(交泰)라는 이름은 주역의 11번째 괘인 ‘지천태’에 나오는 ‘천지교태’에서 따온 말이다. 이 괘는 세 개의 음효(땅) 아래 세개의 양효(하늘)가 겹친 모양으로 땅과 하늘이 뒤바뀌어 있는 모양이다. 이에 하늘의 기운은 위로 향하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흐르기에 천지음양이 잘 교화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천지가 교통하여 조화하듯이, 왕과 왕비가 화목하여 자손이 번성하고 나라가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함홍각(含弘閣)은 교태전 서쪽으로 연결된 소침전이다

 

경복궁 교태전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세종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내전의 건물로 사용되었다. 이후 세조때 이곳에서 불사(佛事)와 관련된 일이 자주 벌어졌다.

“세조, 경복궁 한 가운데에 불당(佛堂)을 만들다”

조선의 7대 왕 세조는 불심이 깊어 궁궐 안에 불당을 만들었으니 그곳이 바로 함원전이다. 세조는 함원전에 불상을 만들어 안치하면서 법회까지 열었다. 조선의 통치이념은 엄연히 유교였지만, 세조가 워낙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러한 불사가 가능하였다. 세조는 도성내에 원각사라는 절도 지어 왕실에 일이 있으면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곤 하였다. 신하들은 원각사에 상서로운 기운이 있다 말하며 세조에게 축하를 올렸다. 이전에 세종이 불사를 일으킬 때 사직서를 제출하면서까지 반대했던 신하들이었으니, 세조가 얼마나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는지 짐작할 만 하다. 현재 종로에 있는 탑골공원이 세조가 지은 원각사가 있던 자리로, 지금은 원각사지 10층석탑과 원각사비만 남아있다.

 

 

 

 

 

 

신무문은 경복궁의 북문으로, 이 밖은 원래 경복궁의 후원 영역이었다. 조선 초기 후원은 상림원(上林苑)으로 불렸다. 주위에 담을 둘러 그 안에 새나 짐승 등을 길렀고 왕은 이곳에서 활쏘기나 격구 등의 운동을 하였다.

“경복궁 밖의 칠궁(七宮)”

영조는 즉위 후 자신의 생모인 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해 신무문 밖, 경복궁 후원에 사당을 모시고 육상궁(毓祥宮)이라 하였다. 이후 1908년 각지에 있던 임금 또는 추존왕의 어머니들(인조의 할머니 인빈 김씨, 경조의 어머니 희빈 장씨, 효장세자의 어머니 정빈 이씨, 정조의 할머니 영빈 이씨,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 신주를 봉안한 다섯 사당을 옮겨 육궁이라고 하였다. 1929년에는 고종황제의 후궁인 엄황귀비의 사당을 더해 ‘칠궁’이 되었다.

 

 

 

 

 

 

 

 

강녕전의 서쪽에 위치한 왕의 침전으로 연생전과 함께 강녕전을 보좌하는 소침전이다. 정도전은 '가을에 결실을 맺는다'는 뜻으로 서쪽 침전을 '경성전'이라 명명하였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백자 대접 4점으로 크기는 높이 11.1㎝, 아가리 지름 21.1㎝, 밑 지름 7.9㎝ 내외이다. 아가리는 밖으로 벌어졌으며, 대접으로서 당당한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문양은 없고 유약은 잘 녹아 밝은 백색을 띠고 있다. 각각의 굽 안쪽 바닥에는 유약을 긁어서 ‘천, 지, 현, 황’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이 글자들은 경복궁 근정전 주위에 왕실에서 쓰던 그릇을 보관하던 창고인, ‘천자고, 지자고, 현자고, 황자고’가 있어 그 용도를 구분했던 글자가 아닌가 추정된다

 

 

 

사정전의 서쪽에 있고 동편의 만춘전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천추전은 고종 4년에 사정전과 더불어 중건 되었다. 임란 이전의 천추전은 문화창조의 요람이기도 하였다.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과 여러 가지 새로운 문물을 창제할 때 이 전각을 즐겨 이용하였다. 또한 이 전각에서 1452년 문종이 승하하였다. 천추전은 평면이 24칸에 불과한 작은 건물이다. 공포는 무익공이고 기둥 높이는 9자이다. 사정전의 기둥 높이가 15자이고 공포도 내7·외5포의 다포계로 격조를 한껏 높인 것에 비하면 아주 조촐한 법식에 따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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