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각해 봅시다·考慮考廬)

터키군.6.25참전과 60년만에 만남

含閒 2010. 11. 3. 09:22
◎터키군.6.25참전과 60년만에 만남  

한국전쟁 당시 파병된 터키군들은 만오천명입니다.
미국과 영연방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규모였습니다.
이중에 천명에 가까운 터키군이 생면부지의 땅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아일라.... 나의 딸 아일라
60년동안 한 순간도 잊어본적이 없는 이름입니다.






스물다섯되던 해에 그는 전쟁이 일어난 한국으로 가게되었고
그곳에서 많은 동료를 잃었습니다.그리고 그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어린 아이를 우연치 않게 만나게 됩니다.


그가 붙여준 이름 '아일라'.........
그는 어디를 가던 그 아이와 늘 함께였습니다. 터키로 그렇게
데리고 갈려고 노력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정하게도 흐른 세월이 60년......
그에게 딸이상으로 소중했던 아일라를 
애타게 찾는건 평생 살아오면서 마음의 짐이였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제작진은 주한 터키대사관으로 찾아갑니다.
당시 통역관으로 근무했던 백상기 고문.

'안카라학원'은 터키군이 세운 어린이 보육시설입니다.
휴전이후에도 그들은 1960년까지 아이들을 돌보며 가르쳤습니다.
슐레이만 부대가 철수하면서 어쩔수없이 아일라를 이곳에 맡기게됩니다





지금 안카라 학원이 있던 자리는 관공서가 들어서고 ,
새롭게 정비되어 예전의 흔적을 찾아볼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카라학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들의 기억만큼은 너무나도 또렷해 잊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합니다.

유난히 따뜻했던 그들 (터키군) ... 

그들은 왜 어찌하여 그렇게도 대한민국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돌본걸까요...

출정식이 있던 그날
여단장은 군장병을 앞에서 연설을 합니다.

" 장병 여러분 .. 한국은 우리와 피를 나눈 혈맹국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인 그들을 우리의 가족과 같이
보살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 

그리고 터키군들은 그 약속을 우리 어린아이들에게 지키기 위해 무단히도 노력하게 됩니다.







드디어 아일라를 찾은 제작진...
이제 예순이 넘은 아일라는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안카라 학원을 나오고 취업도 하고 결혼도 했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없었던 아일라에게는 지금 가족이란 아들과 그의 손자 2명이 있습니다.

그런 아일라에게 제작인이 문을 두드립니다.

그 소식을 접한 아일라는 눈물을 흘리며 제작진의 손을 잡고 감사하다며 .. 이렇게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수십번을  전하고 또 전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부르고 싶고 듣고 싶었던 말 바로...... ' 아일라 ' 



지난 4월 한국은 서른여명의 한국전 터키참전용사들을 초대합니다.
슐레이만부부도 함께말이죠..

이곳에는 사백예순두구 터키군 전사자들 사신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는 아일라...
같은 시간 슐레이만의 호텔방도 분주합니다..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럽던 아일라의 두 손에 줘줄 이런저런 선물들이 호텔방안을 가득 채웁니다....



아일라는 만나러 가는 차안에서...
아일라 얘기만 하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슐레이만....




드디어 .. 그렇게 만나게 되는 두사람...
그들은 뜨거운 포옹을 나눕니다.
60년의 비켜간 세월을 붙잡기라도 하듯..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가슴에 뜨거운 눈물을 쏟아냅니다.....

( 저 이때 정말... 너무 많이 울었어요 ㅠ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져요 ㅠㅠ)

자기 자식도 내다버리는 이 무서운 세상에 
그 어린아이를 찾아 60년이나 흘러 버린 세월동안 항상 가슴속에 서로를 품고 살았던 두 사람.......

그 어떤 명품영화보다도 빛나는 순간이였습니다...



그들은 60년의 세월을 이사진 한장으로 
보상 받고자합니다.
나의 딸 아일라........ 그리고 나의 손자... 그리고 내 손자의 아들딸...
슐레이만은 또 다시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터키로 돌아가는 슐레이만 부부...
돌아보고 , 또 돌아봅니다...

공항에는 이미 슐레이만부부와 아일란의 눈물로 
슬픔만이 가득합니다...

슐레이만 부부가 떠난후에도 한참 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아일라....




그후........
터키에 슐레이만 집을 찾아간 제작진...

아일라의 편지를 읽어줍니다....




   


 

  
 

 

빌 게이츠家의 자녀 교육


 

 


빌 게이츠의 집과 리무진.

 

 

빌 게이츠家의 자녀 교육 10 계명


 

1. 큰돈을 물려주면 결코 창의적인 아이가 되지 못 한다.

진짜 부자 아빠는 자녀에게 큰 돈을 주지 않는다.부모가 부자인 아이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되고,부모에게서 재산을 물려받아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생각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후손들의 무능함과 허영심, 낭비가 독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꼭 알아야 할 것이다.

재산은 "너에게 남겨줄 유산이 아닌 사회의 환원 할 것이다." 라고 가르쳐야 한다.

 


 


 

2. 부모가 나서서 아이의 인맥 네트워크를 넓혀준다.

빌게이츠를 세계 최고 갑부로 만든 명문학교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는 레이크사이드 중, 고등학교와 하버드 대학을 나왔다.

3. 단점을 보완해 주고 뜻이 통하는 친구를 사귄다.

평생의 재산이 될 인간관계는 학교에서 부터 시작 한다.
빌게이츠는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와 하버드 대학에서
폴 앨런과 스티브 발머라는 두 친구를 만나 세계 최고의소프트웨어회사를 키웠다. 두 친구에게는 어떤 고민도 털어 놓을
정도로 매우 가까운 친구이다.

4. 어릴 때에는 공상과학소설을 많이 읽는다.

그는 아직도 공상우주과학 영화인 "스타 트렉" 에 열광하는 팬이다.
일곱살 때부터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박람회는 그에게 과학의 세
계를 동경하기 시작 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어려서부터 백과사전을 외우는 것과 위인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읽었다.

5. 어머니의 선물이 때로는 아이의 인생을 바꾼다.

빌게이츠는 어머니가 사 주신 컴퓨터로 지금의 갑부가 되었다.
빌게이츠는 "미래로 가는 길" 에서 아이와 컴퓨터는 죽이 잘 맞는다.
아이는 새로운 물건에 주눅 들지 않고 호기심에 차서
컴퓨터를 건드리면 컴퓨터는 즉각 반응을 한 다.

자녀들이 컴퓨터에 푹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걱정스러워하는 부모가 많겠지만, 컴퓨터는 아이들이 매료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 한 것이다.

그러기에 올바른 사용법을 알려 주면 몰입하는 피해를 막아 줄 것이다.

 

6. 신문을 보며 세상보는 안목과 관심 분야를 넓힌다.

지금도 일주일 동안의 신문들을 처음부터 끝까지빼 놓지 않고 읽는 습관이 있다.
신문이 자신의 관심 분야를 넓혀주고 미래의 일을 알려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리 컴퓨터가 모든 일을 다 한다고 해도 책만큼은 완전히 대체 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책이 사람으로 하여금 애착을 느끼게 만드는
장점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도 자신의 두 아이들에게 컴퓨터보다도 책을 사주었다.

이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마음에 꼭 새겨두어야 할 대목이다.

컴퓨터황제가 컴퓨터보다도 책을 먼저 가까이하도록
한다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7. 부잣집 아이라고 결코 곱게 키우지 말아라.

초등학교 6학년때 학교 성적도 형편없었고.
가족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아 아동심리학자에게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의 카운슬러는 전통적인 행동방식을 따르라고 강요하거나.
좀더 고분고분해지라고 타이르는 건 쓸데없는 일이라고 충고했다.

많은 영재들이 부족 한 사회성이 빌게이츠에게도 부족했던 것 같다.
빌게이츠의 부모는 외골수로 빠지기 쉬운 아들을 위해 보이스카웃 캠프에도
보내 테니스와 수상스키도 가르쳤다.
요일에 따라 다른 색깔의 옷을 입히는 것은 물론
식사도 규칙적으로 하도록 가르쳤고, 모든 일을 계획적으로
실행하여 시간 낭비를 최소화하는 습관을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어디든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큰 거울인 것 같다.

 

8.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 한다.

빌게이츠가 하버드대를 휴학하고 IT산업에 뛰어 들겠다고
했을 때 우리 보통 부모들은 과연 찬성 했을까?
정확 한 예측과 한 발 앞선 실행이 오늘의 빌게이츠를 만들었다.

9. 어린시절 다양 한 경험은 자라서 든든 한 사업 밑천이다.

숙제나 악기 연주 등 그날 해야 할 일은 반드시 그날 해 치웠다.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 한 빌게이츠는 네다섯 장이면 되는
리포트를 서른 페이지가 넘는 논문으로 제출하기도 했다.
두세 시간 정도 책을 읽는 습관을 아직까지도 실천하고 있다.

 

10. 부모가 자선에 앞장서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본을 받는다.

훌륭 한 부모님을 역할 모델로 삼으면서 살아간다.
시애틀의 이름난 은행가와 변호사 집안이지만.
부자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모범을
보여주므로써 부자의 의무를 다 한 가문으로 평가 받는다.

거의 갑부였지만 돈에 대 한 철학만큼은 매우 명확했다.
빌게이츠 아버지는 상속세 폐지 반대 운동을 주도 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현재 미국의 빈부 격차는 사상 최고 수준인데 부자들이
계속 욕심을 부리면 미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망한다며,
이를 반대했다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 옮겨온 글 *

◎엔리코 토셀리의세레나데 (Serenade)

알프레도 크라우스

 
  
 

Enrico Toselli (1883 - 1926)
Serenade for voice & piano or orchestra (Rimpianto) No 1, Op 6  
Alfredo Kraus, tenor
 
     
 
Come un sogno d'or
scolpito  nel core.
Il ricordo ancor' di quell'amor
che non esiste pi?.
    
Fu la sua vision
qual dolce sorriso
che pi lieta fa,
col suo brillar, la nostra giovent.
    
Ma fu molto breve in me
la dolcezza di quel ben svani
quel bel sogno d'or
lasciando in me il dolor.
    
Cupo  l'avvenir sempre pi tristi
i di la giovent? passata
sar rimpianto
mi resta sol,
s rimpianto amaro e duol' nel cor!
    
Oh raggio di sole,
Sul mio cammino ahim non brii li pi.
Mai pi, mai pi.
         
*음원 출처(국외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