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산 100(韓國名山)

[스크랩] 赤裳, 다홍치마 입은 너 물색 곱구나 - 적상산

含閒 2010. 9. 6. 15:12

[한국의 명산 100](65) 전북 무주군 적상산

 

 

전북 무주군 안성면에 자리한 적상산은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에 제격인 산이다. 사방이 험한 바위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단풍이 붉게 물들면 마치 계단 위에 단풍나무를 치장한 듯 장관을 이룬다. 절벽 주변에 유난히도 빨간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철이면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것 같다고 해 적상(赤裳)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덕유산 국립공원에 속하며 한국 100경 중 하나로 꼽힌다. 850~1000m 높이의 봉우리들이 마주하고 있지만 무주군 지역이 고원지대여서 실제로는 높은 느낌이 아니다. 도보뿐만 아니라 차량으로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 일대는 흙으로 덮인 토산(土山)이라서 나무숲이 매우 울창하다. 동쪽과 서쪽·북쪽에서 금강 지류인 무주남대천의 첫 물줄기가 시작된다. 적상산에는 단풍나무뿐만 아니라 소나무도 많아 주위의 바위와 잘 어울린다. 인근에는 어디에나 감나무가 많아 가을 정취를 돋운다.

 

적상산은 단풍명산과 더불어 역사적으로는 군사상 천혜요새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첫 오름이 평탄한 반면 산허리가 절벽으로 둘러싸여 산세가 험준한데다 물이 풍부해 방어상 유리한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실제로 산에 오르면 사적 146호로 지정된 적상산성을 구경할 수 있다. 석축 둘레는 1만6920자(5127m), 높이는 7자(2.1m)에 달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폐허가 되고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축조를 건의했다고 전해지나 조선시대의 여지승람 기록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 이 기록에 따르면 조선 세종때 체찰사(體察使) 최윤덕이 이곳을 답사하고 반드시 산성을 쌓고 보존해야 할 곳이라고 건의했으며 인조때 산성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는 산성 안에 국내 5대 사고(史庫·나라의 역사기록과 문서를 보관하는 곳)의 하나인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가 세워졌다. 성내에는 또 안국사와 호국사도 있다. 이 사찰들은 나라의 안위를 빌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특히 호국사는 1614년부터 건립된 적상산사고를 지키기 위해 세워졌다. 1627년의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에는 사고에 있던 서책들을 산 정상부의 안렴대(鞍簾臺) 아래 험준한 절벽 밑 굴에 숨겨두기도 했다. 상원사와 중원사 등도 비슷한 시기에 지어져 무예승을 양성했다. 지금은 울창한 숲 사이로 흔적만 남아 있다. 
 
요충지였던 탓에 적상산은 신라와 백제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기도 했다. 적상산성이 축조되기 전인 고려시대 거란족이 침입했을 때 인근 수십군현의 백성들이 살해당했지만 이곳 사람들만은 안전했다고 전해진다. 볼거리도 많다. 최영 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 길이 막히자 긴칼로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장도바위를 비롯해 장군바위·처마바위·천일폭포·송대폭포 등이 등산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의 정상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로 내려다 보여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안렴대란 명칭은 거란 침입이 있었을 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 평지같은 산 정상에서 산정호수도 볼 수 있다. 적상산 분지(해발 800m)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양수 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댐인데 '적상호'라 불린다. 무주읍에서 산정호수까지는 포장도로가 뚫려 산행을 하지 않더라도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인근에 무주리조트와 무주구천동이 자리해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제격이다.

 

조선왕조실록 지키던 승병들의 숙소 안국사

 

적상산에 오르는 길은 세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안시내에서 출발해 학송대~안렴대~송신중계탑를 거쳐 적상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다. 두번째는 서창마을에서 장도바위를 거쳐 적상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로 모두 2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세번째 코스는 안국사에서 시작해 계단~송신중계탑~적상산 정상에 이르는 길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에 가깝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방법은 왔던 길을 되돌아 안국사로 하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상에서 그대로 직진하는 등반로는 암벽 때문에 위험해 폐쇄됐다.
 
산행중 반드시 들러봐야 할 곳이 안국사다. 특히 안국사로 올라가는 길은 송림이 우거져 있어서 솔향내를 마음껏 맡을 수 있다. 또 차량을 이용할 경우 굽이굽이 돌아서 산을 오르는 길은 멋진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힌다. 적상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찰(古刹)인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화상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광해군 6년(1614)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에 선운각이 설치돼 적상산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됐다. 이때 사고를 지키기 위해 호국사를 지었다.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돼 안국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적상산 양수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이 사찰은 호국사지의 위치로 옮겨져 복원됐다. 특히 안국사의 성보박물관은 독보적이다. 다른 박물관이 인근 불교유물만을 모아 놓은 것이라면 성보박물관은 세계 각국의 불상 등을 수집해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문화재는 보물 제1267호 영산회상괘불과 유형문화재 제42호 극락전, 제85호 호국사비 등이 있다. 

 

출처 : 경향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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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산림청 대표 블로그 "푸르미의 산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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