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나서(讀書後)

책만 보는 바보

含閒 2009. 10. 13. 16:01

내용과 구성이 정말 깔끔하다.

250여년 전의 우정과 국민/국가 사랑이 멋지고.

그리고 유득공의 '이십일도회고시'로 10폭 병풍을 만들어 보고싶다.

 

안소영 지음

출판사
보림출판사
2005-11-04 출간 | ISBN 10-8943305842 , ISBN 13-9788943305840 | 판형 A5 | 페이지수 288
 

책소개

저자 안소영은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1761년에 집필한『간서치전 - 책만 보는 바보』라는 자서전에 매료되어, 이덕무와 그와 친하게 지낸 인물들, 더 나아가 그 시대를 담아냈다. 간간히 드러나는 수묵화풍의 그림 또한 놓칠 수 없는 볼거리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이덕무는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라 칭하지만, 이덕무와 그의 벗인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등은 결코 책 속에서만 머무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조선 후기의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몸서 체험하면서 현실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새롭게 바꾸어 가려는 개헉적인 사상가로 변모한다.

저자는 사실과 상상을 바탕으로 그들의 행로를 찬찬히 추적한다. 이를 통해 어린이가 당시의 실학자들의 생각과 시대상을 짚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엇보다 역사 속의 인물을 생생하게 복원한 것이 인상적이다.

 

목차

머리말
이야기 시작/ 1792년 12월 20일

첫 번째 이야기/ 나는 책만 읽는 바보
햇살과 책과 나/ 나는 책만 보는 바보/ 가난한 달, 나만의 독서법/ 한서를 이불삼고 논어를 병풍 삼아/ 맹자에게 밥을 얻고 좌씨에서 술을...

두 번째 이야기/ 백탑 아래서 벗들과
내가 있을 자리/ 내 마음속의 백탑/ 백탑아래 맺은 인연/ 벗들이 지어준 나의 공부방/ 어찌 눈으로만 책을/ 꽃처럼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세 번째 이야기/ 내 마음의 벗들
얼버무려 말하지 말라- 나의 벗 박제가
오랑캐 무리의 괴수?/ 봄날, 시냇물처럼 다가온 벗/ 녹색 눈동자에 담신 외로움/ 운명, 나라고 마음대로 하지 못할까/ 얼버무려 말하지 말라/ 운종가, 구름처러 흘러 다니며

해부루를 노래하다- 나의 벗 유득공
사근사근 상추쌈 소리/ 그 어머니에 그 아들/ 애지 중지 글상자, 진귀한 보물상자/ 아침해가 빛나는 나라/ 아침해가 빛나는 나라/ 옛 도읍지를 찾아서/ 해부루를 기억하며/ 발장단 치며 노래를 부르며

칼칼한 바람속을 누비다- 나의 벗 백동수
북쪽 하늘 흙먼지 냄새/ 나의 벗, 나의 처남 백동수/ 스승을 찾아서/ 나무꾼과 어부의 집/ 무예의 길과 평화의 길은 하나/ 기린협으로/ 벗을 보내며

우리를 벗이라 할 수 있을까- 나의 벗 이서구
책을 만나러 온 어린 벗/ 문턱이 닳고 책장도 닳고/ 한 점 그늘 없는 벗/ 우리를 벗이라 할 수 있을까/ 그대 위해 빈 배 남겨 두리

네 번째 이야기- 스승, 더 큰 세계와의 만남
나에게도 스승이 계신다면/ 지금, 그리고 이곳의 학문/ 달 밝은 밤, 수표교위의 작은 음악회

이 세상의 중심은 나- 담헌 홍대용 선생
나와 벗들을 사로잡은 책/ 스승의 따뜻한 미소/ 공처럼 둥근 지구/ 이 세상의 중심은 나/ 한여름 날 천둥소리, 거문고 소리

선입견을 버려라- 연암 박지원 선생
조선의 다듬이 소리/ 연암선생과 박제가/ 이른 봄제비처럼, 듬직한 바위처럼/ 선입견을 버려라/ 기와조각과 똥거름이 가장 볼 만 하더라

다섯 번째 이야기- 마침내 세상속으로
마흔을 눈앞에 두고

드넓은 대륙에 발을 내 딛다
1778년 3월 17일, 홍제원에서/ 넓은 세계를 향해 첫발을 내딛다/ 유리창, 세상 모든 책이 여기에/ 연경거리에서/ 늦도록 불켜진 방/ 반가운 벗의 얼굴/ 옛 고구려와 발해 땅을 찾아서/ 가슴에는 대륙을

백탑을 떠나 대궐로
네 글 읽는 소리가 듣기 좋구나/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해는 저무는데 갈길이 멀구나/ 잊혀진 날, 발해의 역사를 되살리다/ 하루 말미를 주신다면/ 돌아온 벗/ 이론과 실제에 충실한 무예 책/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다/ 백성의 마음으로

여섯 번째 이야기- 아이들이 열어 갈 조선의 미래는
아버님의 칠순 잔칫날/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서로 나무녀 이어지는 시간/ 아이들이 열어 갈 조선의 하늘

이야기 끝- 1793년 1월 24일

뒷이야기
이 책에 나오는 인물과 책
참고한 책

미디어 서평
  • 출판사 서평

사실과 상상으로 빚어낸 조선시대의 책벌레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책만 보는 바보'라 불렸던 이덕무, 그의 눈과 마음이 되어 그려 보는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박지원, 홍대용 들과 협객 백동수,
그리고 개혁 군주 정조와 18세기 조선.

■ 역사 속 인물을 바로 우리 곁으로 불러내기
역사(歷史)라는 오래된 문자[歷지낼 력]를 들여다봅니다. 자연과 사람의 노동이 어우러져 자라는 곡식[벼 화禾+禾]이 심어져 있고,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의 발자국[止]도 보입니다. 틈나는 대로 둘러보며 가꾸는 사람의 애타는 마음도 담겨 있는 듯합니다. 울타리[?]도 둘려져 있습니다.
이렇듯 '역사'라는 추상적인 단어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달리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발자국 하나하나가 그 위에 겹쳐지면서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역사는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평범한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덕무와 벗들은 지금으로부터 2백여 년 전의 사람들입니다. 흔히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고 불리는, 우리에게는 그저 활자로만 다가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짧지 않은 생애 동안 그들도 분명, 우리처럼 온갖 감정,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희망과 좌절도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책, 특히 어린이 책에 씌어진 그들 혹은 역사 속의 인물들에게서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역사 속의 일이라 하여 시제는 과거형이요, 설명 위주의 서술은 건조하기만 합니다. 그들은 우리와는 거리를 둔 채, 그저 책 속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그들을 우리 곁으로, 숨쉬는 인간으로 불러낼 수 없을까? 이 책《책만 보는 바보--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의 기획, 집필은 이런 아쉬움과 바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일찍이 이덕무에 매료되어 그의 저술은 물론 그와 관련된 글을 샅샅이 찾아 읽어 온 이 책의 저자는 이덕무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라 자처하며 평생 책을 벗 삼아 살았던 이덕무,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그가 되어 그의 벗들과 그 시대를 불러내 봅니다.

■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이덕무: 조선 정조 때의 문인, 실학자. 자는 무관(懋官), 호는 청장관(靑莊館) ?형암(炯庵)·아정(雅亭). 서얼 출신으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박학다식하고 시문에 능하여 젊어서부터 많은 저술을 남겼다.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등과 사귀었으며, 중국에까지 알려진 사가시인(四家詩人) 중의 한 사람이다. (...)

이덕무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문에 빠지지 않는 말이 '서자 출신 문인' '박학다식'입니다. 이덕무는 왕족의 후손이지만 그의 아버지가 서자였기에, 태어나면서부터 고단한 삶이 시작됩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그는 집안 형편상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게 되면서, 더욱 말이 없고 조용한, 오직 책 속에서 책과 대화하며 자랍니다.
그에게 책은 단지 보는 대상이 아니라 듣고 보고 느끼는, 살아 있는 존재이며 세계였습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어디에도 낄 데가 없었던 서자 신분의 그가 마음을 둘 곳은 책밖에 없었을지 모릅니다. 이덕무가 책과 벗하고, 책 속의 사람들과 벗하는 나날들은 오래도록 계속됩니다. 책이야말로 그의 으뜸가는 벗으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이덕무는 백탑(원각사지 십층석탑, 지금의 탑골공원 안에 있음)이 있는 대사동(지금의 인사동)으로 이사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그는 비로소 평생지기인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들을 사귀게 됩니다. 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이서구를 제외하면, 모두 서자 출신입니다. 힘든 세월을 견딜 수 있게 서로 의지가 되어 준 벗들이지요.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또한, 더 큰 세계로 눈을 뜨게 해준 스승격인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과도 깊은 친분을 맺게 됩니다. 홍대용과 박지원, 그리고 이서구는 명문가의 사대부였습니다. 당시 이들의 사귐은 신분과 처지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성품을 먼저 보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느 선비들처럼 유교경전만을 파고들어봐야 벼슬에 나아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기에, 이덕무와 그의 벗들의 관심은 주변의 자연이나 사물, 자신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에 많이 쏠립니다. 이러한 시선은 자연스레 문학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각자의 개성과 감수성이 뛰어난 시와 문장들을 많이 남기고, 《백탑청연집(白塔淸緣集)》과 같은 문집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이덕무와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가 함께 낸 시문집《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은 중국에까지 전해질 만큼 유명한 문집이었고, 시와 문장에 뛰어나다 하여 그들은 '사가(四家)'라고 불립니다.
또한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몸소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었기에, 완고한 유교사회의 모순이 여기저기서 꿈틀꿈틀 드러나기 시작하는 조선 후기 사회의 현실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문학청년에서 사회현실에 문제점을 느끼고 새롭게 바꾸어 가려는 개혁적인 사상가로 변모해 가게 됩니다.
이 책은 이러한 그들의 행로를 찬찬히 따라갑니다. 이덕무처럼 섬세한 저자의 눈길이 그들의 생각이 여물어가는 과정을 좇아봅니다.

■ 실학자들을 마음으로 이해하기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모두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 불립니다. 이 책에서는 굳이 '실학'이란 말을 쓰지는 않지만, 이덕무와 벗들의 생각을 통해 실학이 생겨난 배경, 실학자라 불린 사람들이 지닌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책벌레 이덕무와 실학은 어딘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실학을 그저 편리함이나 효율성만을 얻으려는 실용이란 말로 이해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라 하였지만, 이덕무 그리고 그의 벗들은 결코 책 속에서만 머무르던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이덕무와 벗들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라 불리지만, 이들이 몰두했던 실학(實學)이란 말에서 그저 편리함이나 효율성만을 떠올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종일 들판에서 일하고 돌아와 봐야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넉넉하지 못했던 조선 백성들의 사는 모습, 그것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젊은 그들의 새로운 학문은 비롯되었으니까요. 그들 역시 굶주림의 고통을 겪어 보았고, 날 때부터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은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껴왔기에, 그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개혁을 원했는지 모릅니다. 이들을 알고부터 나는 실학이란 말을 대할 때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 잘못된 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뜨거운 분노를 먼저 떠올리게 되었습니다."(<머리말>에서)

백과사전처럼 해박한 이덕무의 지식은, 풍부한 고증을 거쳐 엄격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또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에 입각해 있는, 실학적인 학문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실학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학자들의 가슴속에 담긴 생각을 먼저 보기를 권합니다. 학문과 사회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눈여겨보기를 바랍니다.
'실학'은 사색이나 논변 자체를 위한 사대부의 학문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갖 모순과 문제를 해명하거나 해결하기 위한 학문으로의 커다란 방향 전환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의 젊은이들은, 이제까지 내려오는 학문과 제도의 권위에 따르지 않고 현실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개혁해 나가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젊은 그들에 의해 세상은 새로운 방향을 향해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이덕무와 벗들은 그러한 시대의 흐름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사회의 문제가 다양한 만큼, 이들이 관심을 기울인 분야도 조선의 역사, 농업, 상공업, 관료제 개혁 등 다양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무슨 무슨 학파로 분류되는 정형화된 실학자들로서 이덕무와 그의 벗들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들 개개인의 가슴속에 담긴 생각을 먼저 헤아리며, 세상과 인간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과 태도에 눈길을 보냅니다. 예컨대 중상학파, 북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박제가가 무엇을 붙들고 고민하였던가, 저 유명한《북학의》를 쓰기까지의 그의 가슴앓이를 이해해 봅니다. 잊혀진 발해의 역사를 복원해내고자 하는 유득공의 충정과 잰 발걸음을 좇아가 보기도 합니다.

■ 사실성과 상상력의 탄탄한 결합으로 이뤄낸 옛사람과의 독특한 만남
이 책의 저자는, 이덕무가 쓴 짧은 자서전 <간서치전(看書痴傳)>을 접하고 그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그의 저술은 물론 관련된 글을 두루 찾아보게 되었고, 그러한 관심은 이덕무와 친하게 지낸 인물들과 그 시대에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두루 섭렵한 역사적 자료들과 책 속의 사실들에 기반하여, 먼저 집필을 위한 연대표와 이들 서로간의 관계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이 남긴 글에서 드러나는 감정과 행동, 다른 벗들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여 각 인물의 성격을 짐작하여 그려 보았습니다.
사실을 얼개로 상상의 창을 내어 이덕무의 시대로 들어간 저자는 이덕무의 마음으로 그의 벗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이며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이덕무의 섬세한 눈길, 혹은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감성으로 빚어낸 인물들은 우리가 익히 알아온 모습과는 다릅니다. 예컨대 그가 가장 아끼는 벗 박제가는 언뜻 보기에는 대범해 보이지만, 엷은 녹색 빛이 도는 눈동자가 무척 슬퍼 보이는 인물입니다. 성미가 급하고 괄괄했다는 연암 박지원은, 웃을 때마다 무성한 수염이 위로 활짝 퍼지는 모습이 아이처럼 천진해 보입니다. 자신들과 처지가 다른 벗 이서구에 대해서는, 담담한 눈길로 그 차이를 관찰하기도 합니다.
이덕무와 그의 벗들 그리고 그 시대상이 마치 지금 우리 곁에서 숨쉬고 있는 듯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은 단지 저자의 상상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과의 균형을 탄탄하게 유지하고 있기에, 더욱 생동감 있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역사 속 인물, 옛사람들을 우리 앞에 복원해 내는 독특한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 이어지는 시간, 역사는 현재형
근자에 청계천이 옛 모습을 찾았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곳의 22개의 다리를 밟으며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듣게 될까요? 혹 2백여 년 전 달 밝은 밤, 바로 그곳에서 울리던 가야금 소리, 노랫소리가 들리지는 않을는지요. 이덕무와 그의 벗들과 스승이 모여 벌리던 수표교 위의 음악회,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는 않을는지요.
역사가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건 이런 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그때도 분명히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생하게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발견 말입니다.
이덕무와 벗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다음 세대와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그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다면 누구나 벗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와 지금의 시차를 넘어, 양반과 서자라는 신분의 차이를 넘어, 가진 것이 많고 적음의 차이를 넘어, 나이가 많고 적음의 차이를 넘어 우리도 그들도 벗이 될 수 있을까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그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가 진심을 이해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시간 속에 스며든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또한 우리의 마음을 나눈다면. 이 책은 저 먼 2백여 년 전의 외로운 선비 이덕무와 그의 벗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당시 그들의 생각과 모습을 현재형으로 보여 줍니다. 하천이 계속 흐르듯, 인간의 삶은 계속되고 그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다시 만나리라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벗, 책
책만 보는데 바보? 이 역설적인 제목의 주인공은 18세기 조선후기를 살았던 실학자 이덕무(1741~1793)다. 이덕무가 '나'가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는 책 읽기에 대한 예찬인 동시에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벗들과 스승에 대한 추억이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의 나래를 달아 마치 18세기 조선의 한 저잣거리에 나와 앉은 양, 주인공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책만 보는 바보 이야기라는 뜻의 '간서치전(看書痴傳)'을 썼을 만큼 책에 파묻혀 살았던 이덕무의 책 예찬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햇살처럼 일렁이는 글씨들은,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모습이 되고 낯선 곳의 풍경도 되었다'고 고백하는 그는, 서자로 태어나 겪어야 했던 설움을 오로지 책 읽기로 견뎌냈다.
그가 제시한 '가난한 날, 나만의 독서법' 앞에선 숙연해진다.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둘째, 날씨가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된다 ….' 지독한 흉년에 먹을 게 없어 맹자 한 질을 이백 전(錢)에 팔아 양식을 얻은 뒤 죄책감으로 밤을 지새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다. 과연 책 바보다
더불어 이덕무는 평생지기였던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와 쌓은 우정에 대해 담담히 들려준다. 잘못된 것을 보면 누구에게나 눈을 부라리며 따지고 들던 박제가는 됨됨이가 글러먹었다고 손가락질을 받았던 친구. 그러나 "'붉다'는 그 한 마디 글자 가지고 온갖 꽃을 얼버무려 말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던 그는 청나라의 신문화와 백성들 살림살이를 세밀하게 돌봤던 진정한 실학자였다.
마음속에 깊은 우물이 담긴 듯 늘 유쾌하고 낙천적이었던 유득공 이야기도 재미있다. '왜 우리는 조선 역사 대신 중국의 역사를 먼저 접하고 배웠는가' 의문을 품었던 그는 틈만 나면 혼자서 조선 땅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옛사람들의 흔적을 모았다. 그가 애지중지했다는 '글상자'는 아이들에게도 하나씩 마련해 줘야 할 것 같다. 책을 보다가 조금이라도 색다른 내용이 나오면 꼼꼼히 기록해 글상자 속에 넣어두었다는 것이다.
자애로우면서도 호랑이처럼 엄격했던 스승 홍대용과 박지원의 가르침도 아름답지만, 우리의 10대들은 초가을 어느 달 밝은 밤, 수표교 위에서 펼쳐진 작은 음악회에 감동할 것 같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퉁소 소리에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둘씩 모여들어 풍류를 읊던 학자들. '그들에게도 한때는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과 눈꺼풀의 섬세한 떨림이 있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조선 사람들에게 필요한 학문을 하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실학자'들의 삶과 인품을 이렇듯 아름답고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초등 4학년 이상.
김윤덕기자 sion@chosun.com

2005년 11월 7일 월요일
/ 조선일보



책은 나를 움직이고 세상을 바꿔요
책을 사랑했던 이덕무와 벗들은 '백탑' 아래에서 모임을 갖고 책과 세상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백탑파'라고 불렸던 이들은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새롭게 바꾸려는 사상가가 된다. 사진 제공 보림
일곱 살 소년은 방 벽에 금을 그어 놓았다.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금 생각뿐이었다. 몇 번씩 방에 들락날락했다. 해님이 언제 금에 닿을까 해서다. 그때는 소년이 책을 읽기로 정한 시간이다. 해님이 금에 닿자 소년은 한달음에 방으로 들어갔다. 책을 읽게 돼서 아주 기뻤다.
이렇게 책을 사랑한 사람이 있다. 이덕무(李德懋·1741∼1793).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다. 서얼 출신으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박학다식하고 시문에 능해 젊어서부터 이름을 떨쳤다. 방대한 독서량이 그의 힘이었다. 스스로 간서치(看書痴)라고 불렀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이다. 젊은 날을 회고해 정리한 자서전 제목도 '간서치전(看書痴傳)'이다.
이 책은 '간서치전'이 바탕이 됐다.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직업인 저자가, 200여 년 전 책에 푹 빠져 살았던 이덕무의 이야기에 매료됐다.
독서가 얼마나 기쁜 일인지 어린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책이 얼마나 향기로운 것인지 어른들도 새삼 깨달을 만하다. 저자는 이덕무가 느꼈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을 헤아리고 섬세하게 표현했다.
온종일 햇살을 따라 상을 옮겨가면서 책을 읽었다는 이덕무. 막히는 구절이 나오면 끙끙대다가 갑자기 뜻을 깨치면 너무 좋아서 미친 사람처럼 웃었단다. 가난한 이덕무에게 책은 마음의 양식뿐 아니라 몸을 지켜 주는 힘이 됐다. 겨울밤 홑이불 한 장으로 추위를 견딜 수 없어 '한서(漢書)' 한 질을 꺼냈다. 책을 이불 위에 늘어놓고 몸을 뉘었다. '낡고 초라한 이불은 중국의 역사로 무늬를 넣은 멋진 이불이 되었다.'
거듭되는 흉년에 온 식구가 배를 곯자 이덕무는 '맹자(孟子)' 일곱 권을 돈 200전과 바꿔야 했다. 친구에게 "맹자께서 양식을 갖다 주시더군. 그동안 당신의 글을 수도 없이 읽어주어 고마웠던 모양이네"라 면서 쓸쓸하게 웃었다.
이덕무는 정말 책만 보다만 바보였을까? 그의 삶은 독서가 개인을 변화시키고 시대를 움직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는 자신처럼 책을 사랑한 벗들과 어울렸다.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유득공 등 훗날 실학자로 잘 알려진 이들이다. 백탑(원각사지십층석탑) 아래 자주 모여 '백탑파'로 알려진 이들은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새롭게 바꾸려는 개혁적인 사상가가 된다. 책은 이들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더듬어 짚어 보고, 책에만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 실학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저자는 이런 작업을 통해 조선 후기 실학이 편리함이나 효율성의 추구에서만 비롯되지 않았다는 것,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넉넉하지 못한 조선 백성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려 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2005년 11월 4일 금요일
/ 동아일보



책만 보는 바보
교과서 속의 역사는 사람 이름과 발생 연도, 간략한 의미 설명이 거의 전부다. 실제 역사는 더욱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겠지만, 옛날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성인이 된 후 스스로 책을 구해서 읽어보지 않는 이상 더 알기 힘들다.
'책만 보는 바보'는 실학자 이덕무의 삶에 관한 책이다. 교과서에는 그가 쓴 책 한 권을 외우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 같은 교육은 단답형 시험에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통합형 질의나 논술에는 맥을 못춘다. 이덕무가 쓴 책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이덕무가 품었던 고민과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덕무의 별명은 '간서치(看書痴)' 즉 '책만 보는 바보'였다. 어릴 때부터 신분제의 높은 벽을 절감하고 책 속에서 꿈을 꾸고 세상과 교류했다. 이덕무는 실학자로 이름을 남긴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등과 친하게 지내는데, 이들은 이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덕무와 같은 서출이었다. 조선 후기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는 이들은 새로운 학문 세계를 탐구하며 현실을 개혁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에는 실학사상가로 알려져 있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무슨 파의 누구, 어떤 책을 쓴 사람이 아니라 당시를 살아간 개개인으로서 세상을 고민했던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은이는 이들의 우정과 고민을 사실에 근거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해냈다. 12세 이상 청소년 권장도서다.

안두원 기자
flyhigh@segye.com

'책을 읽고나서(讀書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의 정복   (0) 2009.10.25
날마다 웃는 집   (0) 2009.10.25
그건 사랑이었네   (0) 2009.09.30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0) 2009.09.25
일의 기쁨과 슬픔  (0) 2009.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