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들머리에서 정상까지 평균 5시간 소요
그를 만난 이튿날 태산에 등산 온 철원산악회 일행들과 함께 동남쪽 D코스를 따라 산행에 나섰다. D코스로 정상에 올라 기존 계단길인 A코스로 하산했다. D코스는 행화촌 마을에서 출발해서 연화봉~아토봉~칼바위능선~태산 정상에 이른다. 태산엔 봉우리가 많은 만큼 이름 없는 봉우리에 그가 이름을 붙인 경우도 많다. 아토봉, 연화봉 등이 이에 해당한다. 태산엔 72개 봉우리가 있다고 한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무명봉이 있다. 이들이 이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 등산객 수준의 보행속도면 D코스로 정상까지 약 5시간 걸린다. 어느 코스이든 정상까지 가려면 여러 개 봉우리를 거쳐야 한다. 봉우리들이 원체 가팔라서 가는 도중 한 곳 이상은 암릉 버금가는 구간을 거치게 된다. 무지막지한 힘든 계단길을 오르는 것보다 훨씬 더 짜릿한 스릴을 맛볼 수 있기도 하다.
-
- ▲ 1태산 천가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2칼바위능선이 끝나면 여성 상징 바위가 바로 눈앞에 나온다. /3정상에 오악독존이라 새겨진 마애석./4여성 상징 바위를 불과 10m 채 안 되는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는 남성 상징 바위.
-
아침 일찍 숙소에 나서 산행 들머리인 행화촌 마을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8시10분. 구름인지 안개인지 조금 끼어 날씨가 흐렸다. 태산엔 맑은 날이 연중 며칠 안 된다고 했다. 밤나무 숲길이 줄곧 이어졌다. 태산 곳곳엔 밤나무가 널려 있었다. 밤나무 묘목 군락지도 눈에 띄었다. 개울을 지나 10여 분 올라가니 임도가 나왔다. 정상에 호텔까지 있으니 임도가 있을 법도 했다. 하지만 정상까지 차는 올라갈 수 없다. 필요한 물건은 사람들이 일일이 짊어져서 나른다. 임도를 따라 다시 10여 분 지나 산길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길이 있는 듯 없는 듯 꼬불꼬불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연화봉에서 첫 휴식을 취했다. 인수봉 정도는 안 되지만 암벽꾼들이 보면 탐낼만한 암벽 봉우리였다. 태산은 전형적인 악산(岳山)이라 한국의 암벽꾼들이 가면 개척하고 싶은 욕심이 그냥 생길 것 같았다.
황동호 사장은 이 등산로가 자신이 개척하기도 했지만 염소 방목꾼들이 다니던 길이라고도 했다. 등산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염소 똥이 그 사실을 말해줬다. 희미한 등산로를 황 사장을 따라 올라갔다. 아토봉이 나왔다. 황 사장이 이름 붙인 봉우리다. 태산에 트레킹 온 아토산악회 이름을 땄다고 했다. 봉우리 하나만 우뚝 솟은 암벽 덩어리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출발했다. 10여 분 지나니 아찔한 칼바위능선이 나왔다. 쳐다만 봐도 아슬아슬한 암릉이다. 이 길을 지나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렸고 오금이 펴지지 않았다.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수백 미터 낭떠러지가 좌우로 펼쳐져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능선길은 2㎞가 족히 됐다. 1시간여 조심조심 지나가니 드디어 능선 끝이다. 긴장한 만큼 기분도 짜릿했다.
칼바위능선을 내려오자마자 바로 여성 상징 바위가 떡하니 눈앞에 띈다. 남성들이 서로 기를 받는다고 앉았다. 태산의 기는 유명하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한국의 정치인들과 무속인들이 태산의 기를 받으러 태극봉에 자주 온다고 했다. 여성 상징 바위에 앉으니 10m쯤 앞에 남성 상징 바위가 우뚝 솟아 보인다. 묘한 연상이 스쳐 지나갔고 무슨 궁합인가 싶었다. 다들 한 포즈 취하고 다시 나섰다.
-
- ▲ 1우뚝 솟은 ‘아토봉’. /2태산 정상 옥황정에 있는 옥황상제 모습.촬영금지지만 몰래 찍었다. /3옥황정 내에 있는 태산극점./4태산 정상에 붐비는 사람들.최고 200만 명이 모인다고 한다
- 7천여 계단길 30여 분만에 하산
정상 도착 1시간여 앞두고 점심 자리를 펼쳤다. 낮 12시 정각이다. 식사와 잡담으로 1시간여 보낸 뒤 다시 일어섰다. 왼쪽 능선으로 하늘을 향한 촛대와 같다고 해서 이름 붙은 천촉봉과 소천촉봉, 이들 주변의 기암절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 옆 이름 없는 봉우리를 철원산악회 등산 기념으로 철원봉으로 명명했다.
마침내 정상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조그맣고 빨간 열매를 맺는 마가목 군락지를 지나 일출을 보는 광장인 만인석에 올라섰다. 명절 때만 되면 수만 명의 인파가 모여 자리 잡기 힘들다는 그 만인석 광장이다. 태산 정상의 동쪽 끝자락이라고 볼 수 있다.
드디어 정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신선교를 지나 오악독존과 앙두천외라고 새긴 마애석 등이 나타났다. 태산에는 글을 새긴 돌이 2,200여 개소나 있어 중국 마애석각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정상엔 명나라 때 세웠다는 옥황정이 있다. 옥황대제를 모신 사원이다. 정중앙엔 옥황상제, 왼쪽엔 관세음보살상, 오른쪽엔 재물을 부르는 신을 모시고 있었다. 옥황상제는 중국의 수많은 황제를 발아래로 굽어보며 오랜 세월을 지켜왔다.
옥황정 입구 바로 앞에 그 유명한 무자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무자비에 대한 설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진시황이 대륙을 통일하고 BC 220년 전후 태산 정상에 올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는 뜻에서 세웠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한 무제가 BC 100년 전후 자신의 업적을 후대인들이 평가하라고 아무 글도 남기지 않았다는 설이다. 두 가지 설 모두 그럴 듯하다. 역사학자들은 후자에 무게를 두고 있으나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무자비를 보고 있으면 과거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으로 상상의 나래가 다가가는 듯했다. 모두 2,000년 전의 사실들이다.
이젠 하산길이다. 옛날 황제들이 다니던 천가를 거쳐 남천문에서 갈림길이다. 천가는 옥황정, 일출을 보는 일관봉과 더불어 태산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다. 각종 기념 가게들이 내려가는 오른편으로 빼곡하게 들어서있다. 남천문에서는 케이블카 타려는 사람은 곧바로 조금 더 걸어가면 되고, 걸어서 가는 사람은 그 무지막지한 계단길로 내려가면 된다. 계단길은 힘들지만 각종 유적지를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남천문에서 계단길로 1.5㎞ 내려오면 유서 깊은 오대부송이 있다. 이 소나무의 유래는 진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진시황이 봉선을 지내기 위해 산을 오르다가 큰 비를 만나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했다고 한다. 시황은 소나무에게 24작위 중 9번째 작위인 오대부를 내려 고마움을 표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소나무는 2000년 전의 그 소나무가 아니고 청나라 때 심은 것이라고 한다.
7,000여개의 계단길을 30여 분만에 내려왔다. 무릎이 욱신거렸다. 중천문은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는 곳이고, 계단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여기서 하산행 버스를 탔다. 철원산악회팀들은 케이블카로 내려왔지만 시간은 10분은 채 차이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천외촌 광장까지 와서 그 날의 산행을 모두 끝냈다. 천외촌 광장은 서쪽 등산길의 시작이고, 산과 도시의 결합부이며, 등산객과 유람객의 집산지이기도 한 곳이다.
다음 호에서는 F코스에서 A코스로 하산하는 과정을 문학작품과 마애석각에 나타난 태산을 함께 살펴보면서 올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