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의 도덕] 경주 최부자집 가훈
1926년 10월 경주에서는 신라시대 고분 하나가 발굴되고 있었다.
발굴 단원 중에 파란 눈의 신혼부부가 끼어 있었다.
스웨덴 구스타프 황태자 부처였다.
고고학에 관심 많은 황태자가 동양에 신혼여행 왔다가
경주에서 발굴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서 배를 타고 온 길이었다.
훗날 스웨덴 국왕이 된 황태자는 그 때 머물렀던 고분 근처 한 양반 집안의 사랑채를 잊을 수 없었다.
아담하고 운치있는 건물,
향긋한 내음의 법주(法酒),
금빛 나는 놋그릇에 담겨나온 정갈한 음식….
누군가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그는 물었다.
"경주 최씨네 사랑채에는 지금도 사람이 많은가요?"
경주 최씨네는 12대 300년 동안을 만석꾼으로 내려온 집안이었다.
단지 부자였을 뿐 아니라
'사방 백 리(약 40키로미터)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등의 가훈을 통해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실천에 옮겨 존경 받았다.
'찾아오는 과객(손님)은 귀천(신분의 귀하고 천함)을 구분하지 말고 후하게 대접 하라’도
이 집안이 지키는 여섯 개의 가훈(六訓) 중 하나였다.
손님이 많을 때는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해서 10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최부잣집의 1년 소작 수입은 쌀 3000석 정도였는데, 이 가운데 1000석을 손님 접대에 썼다.
손님이 떠날 때면 과메기 한 손(두 마리)과 하루 분의 양식을 쥐어보냈다.
최부잣집은 재산을 모으되, 만 석 이상은 모으지 말라는 철칙도 갖고 있었다.
혹시 논을 더 샀더라도 재산이 1만 석을 넘지 않으려면 소작료를 낮춰 적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소작인들은 최부잣집의 논이 늘어나면 그만큼 소작료가 떨어지기 때문에
최부자네가 땅 사는 걸 배 아파하기는커녕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최부잣집 사랑채는 1970년 불에 타 지금은 주춧돌만 남은 상태다.
이걸 경주시가 복원해 한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책무)를 상징하는 관광명소로 꾸미겠다고 밝혔다.
최부잣집의 재산은 일제 때 독립운동 자금으로 많이 쓰이고
나머지는 광복 후 교육 사업에 들어가 지금은 집도 후손들 소유가 아니다.
만석 재산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정신은 이 시대에 이어갈 소중한 가치로 남아있다.
'부자 3대를 못 간다.' 는 말이 있다.
그러나 경주 최부잣집의 만석꾼 전통은 이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1600년대 초반에서 1900년 중반까지
무려 300년동안 12대를 내려오며 만석꾼의 전통을 가졌고
마지막에는 1950년,
전 재산을 스스로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학’에 기증함으로써,
스스로를 역사의 무대 위로 던지고 사라졌다.
그동안 300년을 넘게 만석꾼 부자로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최부잣집 가문이 지켜 온
가훈은 오늘날 우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1. 진사(제일 낮은 벼슬.단순 명예직.)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높은 벼슬에 올랐다가 휘말려 집안의 화를 당할 수 있다.
2. 재산은 1년에 1만석(약 5천 가마니)이상을 모으지 말라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
1만석 이상의 재산은 이웃에 돌려 사회에
환원했다.
3.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누가 와도 넉넉히 대접하여,
푸근한 마음을 갖게 한 후 보냈다.
4. 흉년에는 남의 논, 밭을 사지 말라.
흉년 때 먹을 것이 없어서 남들이 싼 값에 내 놓은 논밭을 사서 그들을 원통케 해서는 안 된다.
5. 가문의 며느리들이 시집오면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혀라.(3년동안 비단옷을 입히지 마라.)
내가 어려움을 알아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다.
6.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특히 흉년에는 양식을 풀어라.
- [경주 최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 중에서 -
최부자 가문의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1884-1970)의 결단은
또 하나의 인생 사표(師表)입니다.
못다 푼 신학문의 열망으로
영남대학의 전신인 대구대와 청구대를 세웠고
백산상회를 세워 일제시대에 독립자금을 지원했던 그는
노스님에게서 받은 금언을 평생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물은 분뇨(똥거름)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 견딜 수 없고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1926년 10월 경주에서는 신라시대 고분 하나가 발굴되고 있었다.
발굴 단원 중에 파란 눈의 신혼부부가 끼어 있었다.
스웨덴 구스타프 황태자 부처였다.
고고학에 관심 많은 황태자가 동양에 신혼여행 왔다가
경주에서 발굴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서 배를 타고 온 길이었다.
훗날 스웨덴 국왕이 된 황태자는 그 때 머물렀던 고분 근처 한 양반 집안의 사랑채를 잊을 수 없었다.
아담하고 운치있는 건물,
향긋한 내음의 법주(法酒),
금빛 나는 놋그릇에 담겨나온 정갈한 음식….
누군가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그는 물었다.
"경주 최씨네 사랑채에는 지금도 사람이 많은가요?"
경주 최씨네는 12대 300년 동안을 만석꾼으로 내려온 집안이었다.
단지 부자였을 뿐 아니라
'사방 백 리(약 40키로미터)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등의 가훈을 통해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실천에 옮겨 존경 받았다.
'찾아오는 과객(손님)은 귀천(신분의 귀하고 천함)을 구분하지 말고 후하게 대접 하라’도
이 집안이 지키는 여섯 개의 가훈(六訓) 중 하나였다.
손님이 많을 때는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해서 10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최부잣집의 1년 소작 수입은 쌀 3000석 정도였는데, 이 가운데 1000석을 손님 접대에 썼다.
손님이 떠날 때면 과메기 한 손(두 마리)과 하루 분의 양식을 쥐어보냈다.
최부잣집은 재산을 모으되, 만 석 이상은 모으지 말라는 철칙도 갖고 있었다.
혹시 논을 더 샀더라도 재산이 1만 석을 넘지 않으려면 소작료를 낮춰 적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소작인들은 최부잣집의 논이 늘어나면 그만큼 소작료가 떨어지기 때문에
최부자네가 땅 사는 걸 배 아파하기는커녕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최부잣집 사랑채는 1970년 불에 타 지금은 주춧돌만 남은 상태다.
이걸 경주시가 복원해 한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상류층의 도덕적 책무)를 상징하는 관광명소로 꾸미겠다고 밝혔다.
최부잣집의 재산은 일제 때 독립운동 자금으로 많이 쓰이고
나머지는 광복 후 교육 사업에 들어가 지금은 집도 후손들 소유가 아니다.
만석 재산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정신은 이 시대에 이어갈 소중한 가치로 남아있다.
'부자 3대를 못 간다.' 는 말이 있다.
그러나 경주 최부잣집의 만석꾼 전통은 이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1600년대 초반에서 1900년 중반까지
무려 300년동안 12대를 내려오며 만석꾼의 전통을 가졌고
마지막에는 1950년,
전 재산을 스스로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학’에 기증함으로써,
스스로를 역사의 무대 위로 던지고 사라졌다.
그동안 300년을 넘게 만석꾼 부자로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최부잣집 가문이 지켜 온
가훈은 오늘날 우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1. 진사(제일 낮은 벼슬.단순 명예직.)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높은 벼슬에 올랐다가 휘말려 집안의 화를 당할 수 있다.
2. 재산은 1년에 1만석(약 5천 가마니)이상을 모으지 말라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
1만석 이상의 재산은 이웃에 돌려 사회에
환원했다.
3.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누가 와도 넉넉히 대접하여,
푸근한 마음을 갖게 한 후 보냈다.
4. 흉년에는 남의 논, 밭을 사지 말라.
흉년 때 먹을 것이 없어서 남들이 싼 값에 내 놓은 논밭을 사서 그들을 원통케 해서는 안 된다.
5. 가문의 며느리들이 시집오면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혀라.(3년동안 비단옷을 입히지 마라.)
내가 어려움을 알아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다.
6.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특히 흉년에는 양식을 풀어라.
- [경주 최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 중에서 -
최부자 가문의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1884-1970)의 결단은
또 하나의 인생 사표(師表)입니다.
못다 푼 신학문의 열망으로
영남대학의 전신인 대구대와 청구대를 세웠고
백산상회를 세워 일제시대에 독립자금을 지원했던 그는
노스님에게서 받은 금언을 평생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물은 분뇨(똥거름)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 견딜 수 없고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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