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가면서(在生活裏)

[스크랩] 최규하 대통령, 역사앞에 부끄러운 이유

含閒 2006. 10. 23. 17:24
역사앞에 부끄러운 최규하 대통령

최규하 대통령이 88세를 일기로 별세한 모양이다. 최규하 대통령은 70년대 말기 박대통령에 의해서 국무총리에 임명된 인물로 전형적인 직업 공무원 출신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권이나 군부에 아무런 인맥이 없었기에 그 격동의 순간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시류에 흘러갈 수 밖에 없었다.

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박대통령 서거 후에 대통령 권한 대행에 올랐을 때, 어느 정도 운신의 폭이 있었을때 좀 더 신속하게 민주화 일정을 발표하고 신군부의 발호를 막아냈더라면 한국은 이미 80년대 초 민주국가가 됐을텐데...최규하 대통령에게는 그러한 역량이 애초부터 없었다.

사실 최규하 대통령은 형식상의 대통령이었을 뿐이지 사실 권위도 권력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 권력의 공백 상태를 비집고 모든 정보를 꿰뚫고 있던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하나회 출신의 군 고급 장교들이 당시 계엄 사령관이던 정승화 장군을 강제 연행하는 12.12사태를 일으켜 군권을 장악했던 것이다.

12.12 사태는 전두환 장군을 정점으로 하는 신군부의 독자적 행동이라 사료된다. 아무리 계엄 사령관이 박대통령 시해 사건에 관련되어 의심스런 부분이 있다고 해도 강제 연행을 해야겠다고 한다면 당시 군의 최고 실권자인 계엄사령관의 체포를 선선히 허가해줄 대통령이 어디 있단 말인가?

비밀 누설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에게는 비밀로 하고 그 실행은 전두환 장군을 위시한 신군부의 독단에 의해서 무력으로 강제 연행을 결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는 강제연행에 성공하자 대통령을 어르고 위협해서 사후에 재가를 받은 것이 아닐까 한다.

그 후에 광주에서 벌어진 참혹했던 학살사건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리라 본다. 광주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라도 진압해야할 필요성이 절실했던 세력은 이미 군권을 찬탈해서 실질적 국가 권력을 장악했던 신군부 세력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기에 광주학살 사건의 실질적인 결정은 전두환 장군을 정점으로 하는 신군부였고 최규하 대통령은 광주에 대한 무력 진압을 신군부의 위압과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허락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 근세사에 가장 참혹했던 광주 민중 학살은 신군부의 실질적 결정과 최대통령의 형식적 재가의 합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참혹했던 광주의 한과 죽은 영령들의 원혼을 진무(賑撫)한다는 취지에서도 사실 최규하 대통령은 12.12사태와 5.18사태의 진실을 회고록이나 비망록을 통해서라도 소상히 밝혀 놓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살아생전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직책에 있을 때 최대통령은 쿠데타와 양민학살을 막지 못한 원죄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본인의 의지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면이 있다. 그렇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불의의 역사를 실제로 목도하고 방조한 인물로서 그 역사적 실체를 끝까지 함구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은 역사적 진실을 은폐했다는 점에서 온당한 일이 아니며...사실은 진정 자신에게 부과된 역사적 책무를 불이행했다는 점에서 심히 부끄러운 소행이 아닐수 없다.
출처 : 자유토론방
글쓴이 : 프른달 원글보기
메모 : 사람마다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