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스크랩(報紙剪貼)

[기고] 에밀 폴 체릭 추기경과 하동 찻사발

含閒 2026. 8. 4. 10:13

[기고] 에밀 폴 체릭 추기경과 하동 찻사발

  • 기자명경남=손승모 기자
  • 입력 2026.08.03 11:21
 

현암 최정간 (매월다암원장, 차 문화연구가)

현암 최정간 선생.(뉴스프리존DB)

지난 5월12일 외신보도에 의하면 주한 로마교황대사를 역임한 에밀 폴 체릭 (Emil Paul Tscherrig) 추기경께서 향년 79세를 일기로 바티칸에서 선종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다시한번 뉴스프리존 지면을 통해 에밀추기경님의 선종에 깊은 애도를 표하는바이다. 장례미사는 5월15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평소 고인과 인연있던 교황청 성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레오14세 교황님의 주례로 거행되었다고 외신과 장례참석했던 성직자들이 전하였다.

 

교황께서는 에릭추기경을 주님께 아낌없이 봉사하며 생애 대부분을 교황대사관에서 봉직했다고 하였다. 또한 교황대사로서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장애물과 과제에 맞서 싸운 모습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것이라고 애도하였다.

故 에밀 폴 체릭추기경.(사진=교황청 홈페이지 캡쳐)

향기로운 인연= 필자가 에릭추기경을 처음 만난 시기는 1982년 여름 청와대 바로 서쪽담장과 붙어있는 서울궁정동 로마교황청 대사관저에서였다. 당시만해도 경호상이유로 민간인들의 교황청대사관방문이 어려울 때였다. 대사관은 청와대뒷산 백악이 수려하게 보이고 조용하여 마치 청와대 별관같은 느낌이였다. 아름다운 경관과 경호상의 안전성으로 1984년~1989년 방한한 성 요한바오르2세교황과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숙소로 사용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당시 제4대 교황대사였던 루치아노 안젤노니(Luciano Angeloni) 대주교는 필자와 가형인 최정대(코리아타임스 영문칼럼리스트 ‘문화의 가교’저자)를 만찬에 초대하였다. 루치아노대사는 평소 한국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최정대가 코리아타임스에 영문으로 기고하는 문화칼럼인 'soot of taime'의 애독자이기도 했다.

루치아노대사는 한국현대사의 격동기에 서울에 근무하면서 궁정동의 12.6 총성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적 사실을 교황청에 보고하면서 한국에서 더이상의 유혈사태를 방지하고 평화와 민주화를 간구한 인자한 교황대사였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의 긴박한 상황을 수시로 김수환추기경과 공유하였다고 했다. 루치아노대사는 만찬자리에서 새로이 교황청대사관 외교관으로 부임한 에밀몬시뇰(당시)을 소개하였다.

1947년 스위스출신으로 로마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78년부터 로마교황청 외교관으로 활동하기시작하였고 했다. 첫인상이 조용한 미소에 지성미가 녹아있는 미남형이였다. 에밀몬시뇰은 고대 그리스미술사에 해박한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은 밤이 깊어가도록 동서양의 예술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마침 대사관저 벽면에 소정 변관식선생의 대형 산수화가 걸려있어 소정선생의 예술세계에 대해 설명해드리니 두분 모두 좋아하셨다.

1983년 봄날 산수유가 노랗게 필무렵 나는 하동군 진교면 사기마을 도요에서 이도(井戶)다완을 재현하여 제일 먼저 교황청대사관을 방문해 두분께 전달하였다. 에릭몬시뇰은 포르투칼출신의 예수회선교사인 루이스 프로이스(Luis Frois1532~1597)가 일본에서 포교활동을 하면서 집필한 「일본사(The History of Japan)」를 읽어서 일본 다도역사와 다완에 대한 이해도가 깊었다. 나는 16세기 하동과 진해웅천지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이도다완들이 크리스찬 다이묘(大名)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주니 매우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1984년 조선호텔 전시회 당시 제5대 주한교황대사 프란시스코 몬테레시 대주교(오른쪽), 최정대 코리아타임스 컬럼리스트(중간), 현암 최정간(왼쪽).(사진=현암 최정간 선생)

조선호텔 이조룸에서 하동찻사발(다완)전시회= 1984년 하동의 봄은 섬진강을 따라 전화도없이 도착하였다. 쌍계사와 화계 골짜기 차밭에도 작설차(雀舌茶)향이 그윽했다. 1980년대초만해도 한국도자사학계에서는 일본 다도역사를 잘 몰랐기에 자연히 이도다완에 대한 존재를 알수가 없었다.

이때마침 나의 은사이자 미국인 동양미술사학자인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 1910~1996)박사가 하동 도요지를 방문하였다. 옛 다완도편과 도토와 작품 제작과정을 정밀하게 살펴본 후 영자신문 코리아헤럴드와 코리아타임스에 「일본국보다완 하동에서 재현한다」라고 기행문을 기고하였다.

코벨박사는 중세 일본다도사 연구에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오랫동안 일본 교토의 다도사찰인 다이도쿠지(大德寺)에 체류하면서 일본선차(日本禪茶)와 이도다완을 연구하였다. 서울에 체류하고있던 외교사절들과 경제인, 학자들은 코벨박사의 하동 이도다완 재현기사를 읽고 많은 관심을 가졌다. 청자, 백자, 분청사기와는 전혀 다른 이도다완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많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코벨박사의 격려와 권유로 재현된 이도다완과 하동분청사기 50여점을 가지고 1984년5월21일~23일까지 ‘서울조선호텔이조룸’과 5월29일~6월3일 ‘대구아미문화공간’에서 하동 이도다완 재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대구전시회는 1980년 5.18대구 5관구 감옥동지이자, 나와는 평생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박명규(현 청송햇살사과농원)형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사연인 즉 이강철선배(전 청와대시민사회수석)가 민청학련사건으로 7년 8개월 복역후 출소한 직후라 사회활동에 조금이라도 도움되고자 현암이 도자기 전시회를 열어 수익금을 지원하자는 내용이였다.

나는 흔쾌히 찬성하였다. 박명규동지는 청송 현서농협에서 100만원을 대출받아서 도자기전시를 준비하라고 1983년 엄동설한에 하동으로 나를 찾아왔다. 40여년 세월이 흘러도 정말 엄혹했던 시절 훈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후 우리들은 대구지방경찰 대공분실로부터 약간의 고초도 겪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흘러간 혈기방장한 날의 추억이 된 것이다. 긴 겨울의 냉기를 견뎌내고 마침내 하동 이도다완 재현전시회는 1984년 5월24일 저녁6시에 조선호텔 이조룸에서 개막되었다.

이날 전시회의 최고 귀빈은 새로 부임한 5대 주한교황대사인 프란치스코 몬테리시(Francesco Monterisi)대주교와 에밀체릭몬시뇰이었다. 이밖에도 서울에 체류하는 주한외교사절들과 경제인 학자,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스웨덴 대표등 100여명이 참석하여 이도다완의 새로운 미를 감상하였다. 코벨박사는 전시회 참석한 국내외 인사들에게 「중세 일본다도사와 하동이도다완」이란 주제로 간단한 특강을 하였다.

몬테레시 대주교와 에밀몬시뇰은 이도다완을 감상하면서 나에게 제작과정에 대해 상세히 질문하기도 하였고, 교황청 외교관으로 박봉임에도 불구하고 두분이 나의 작업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조그만 찻잔 두점을 구입해준 것은 조선호텔 전시회에서 잊을수 없는 필자의 기억이다.

한국민주화와 인권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다= 하편 개막식에는 이강철선배의 초청으로 유인태, 유홍준, 이근성, 김효순, 나병식, 김병곤, 장영달 등 민청학련관련 인사들이 대거참석하여 전시회를 축하해주었다. 나와 가형 최정대는 이강철, 김효순등 민청학련 인사들을 교황대사와 에밀몬시뇰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두분은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인권상황에 대해 민청학련인사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개막식중간에 소설 '알렉산드리아'와 '관부연락선', '지리산'의 작가로 유명한 하동출신의 나림 이병주선생도 참석하여 필자를 격려해 주었다. 그는 유창한 불어로 몬테리시 교황대사와 에밀몬시뇰과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고향 하동군 북천면 이맹산 고령토로 다완과 도자기 작품들이 만들어졌다고 깊이 있게 설명하는 그의 불어실력에 모든 참석인사들이 놀라워했다.

조선호텔전시회는 그동안 우리 다도사에 청자, 백자, 분청사기 다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새로운 형태와 빛깔, 그리고 일본 중세 다도사에까지 영향을 끼쳐 일약 신데렐라가 된 이도다완의 역사와 존재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대구전시회도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어려운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거금을 쾌척하여 하동분청사기작품을 구입해 준 이수우회장(석당최남주외손자)의 따뜻한 마음은 오랜세월이 지난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다.

이강철선배는 민주화운동의 원로로서 여전히 후배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하고 있고, 대구전시를 주선한 박명규형은 오늘도 청송햇살사과농장에서 생명사과수확을 위해 사과나무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 에밀체릭 주교는 대주교서품을 받고 세계각국에서 교황대사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2006년7월24일 노무현 대통령과 악수하는 교황대사 에밀 폴 체릭 대주교(왼쪽)과 발터 카스퍼 추기경(중앙).(사진=노무현 사료관 사진 캡쳐)

노무현정부시절인 2004년에는 제19대 주한교황대사로 서울에 부임하였다. 그는 첫부임했던 1983년~1984년에 비해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을 보고 놀라워했다.

나와 가형최정대는 2004년11월 궁정동 교황청대사관에서 에밀 폴 체릭 대사와 감격적인 해후를 하고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하였다. 그는 2008년 한국을 떠난후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3국 교황대사를 거쳐서 스위스국적으로 이탈리아주재 교황대사를 역임한 첫 번째 외교관이기도 했다.

2023년9월30일 프란시스코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품된 후 2025년5월 레오14세 교황선출의 콘클라베 참석하는 세기적 순간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2024년 은퇴후 교황청의 원로성직자로서 바티칸은행추기경위원회 위원으로 중책을 역임하던중 지난5월 선종하였다.

필자는 동학가문의 후예로서 비록 종교적으로는 다르지만 서학의 에밀 폴 체릭 추기경과의 하동찻사발을 통한 향기로운 인연을 일생의 영광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 글은 외부 기고입니다.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