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우승(高尔夫球冠軍)

생애 첫 메이저에 빠지다…LPGA 고진영 시대

含閒 2019. 4. 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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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메이저에 빠지다…LPGA 고진영 시대

 
고진영(가운데)이 8일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캐디 데이비드 브루커(왼쪽), 매니저 최수진씨와 함께 18번 홀 옆 포피 폰드에 뛰어들고 있다. [연합뉴스]

고진영(가운데)이 8일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캐디 데이비드 브루커(왼쪽), 매니저 최수진씨와 함께 18번 홀 옆 포피 폰드에 뛰어들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고진영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올 시즌 6개 대회 만에 벌써 2승이다. 키 1m70㎝의 당당한 체격에 정확한 아이언샷 능력이 돋보인다. 퍼트 실력도 뛰어나다. 이런 추세라면 올 시즌 LPGA 투어는 ‘고진영 천하’가 될 수도 있다.

ANA 인스퍼레이션 우승
10언더로 2위 이미향 3타차 제쳐
박지은 도왔던 캐디 브루커와 호흡
올 시즌 6개 대회서 벌써 2승

 
8일 ANA 인스퍼레이션 최종 라운드가 벌어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 미라지의 미션 힐스 골프장. 18번 홀 그린에 선 고진영(24)은 4m 거리에서 침착하게 버디 퍼트를 했다. 그린 위를 구른 공이 컵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생애 첫 메이저 챔피언이 되는 순간이었다.
 
8일 열린 LPGA 메이저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뒤 이정은(오른쪽)의 축하를 받는 고진영(가운데). [USA투데이=연합뉴스]

8일 열린 LPGA 메이저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뒤 이정은(오른쪽)의 축하를 받는 고진영(가운데). [USA투데이=연합뉴스]

 
마지막 날 2타를 줄인 고진영은 합계 10언더파로 2위 이미향(26·7언더파)을 3타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가 이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박지은(2004년), 유선영(2012년), 박인비(2013년), 유소연(2017년)에 이어 그가 5번째다. 우승상금은 45만 달러(약 5억 원). 올 시즌 6개 대회에 출전해 벌써 2승을 거둔 그는 시즌 상금 100만 달러 고지를 가장 먼저 돌파(100만2273달러)했다.
 
8일 열린 LPGA 메이저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뒤 입수 세리머니를 펼친 고진영(가운데). [USA투데이=연합뉴스]

8일 열린 LPGA 메이저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뒤 입수 세리머니를 펼친 고진영(가운데). [USA투데이=연합뉴스]

 
고진영은 이날 우승을 차지한 뒤 캐디인 데이비드 브루커, 매니저 등과 함께 18번 홀 옆의 연못 ‘포피스 폰드(Poppie’s pond)’에 힘차게 뛰어드는 세리머니를 했다. 고진영은 “물이 무척 차가웠다. 그래도 물에 뛰어든 다음에야 내가 우승했다는 실감이 났다”며 활짝 웃었다.
 
ANA 인스퍼레이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환하게 웃는 고진영. [연합뉴스]

ANA 인스퍼레이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환하게 웃는 고진영. [연합뉴스]

 
고진영은 2004년 이 대회(당시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박지은(40·은퇴)이 우승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언젠가 나도 물에 뛰어들겠다’는 꿈을 꿨다. 그로부터 15년 만에 꿈을 이룬 것이다. 고진영은 “지난 겨울 훈련을 충분히 한 덕분에 체력이 좋아졌다. 코치, 트레이너 등과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고 밝혔다.  
 
고진영은 지난 1월부터 5주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서 훈련했다. 체력을 다지는 동시에 스윙과 퍼트 훈련을 하루에 5시간씩 했다. 지난 2017년부터 고진영의 스윙 코치로 일하고 있는 이시우 프로는 “예전에는 스윙할 때 상·하체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었다. 겨울 훈련을 하면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완했다”며 “상체를 좀 더 꼬면서도 밸런스를 잃지 않는 훈련을 거듭했다. 시즌 초반부터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동계 훈련을 철저히 하면서 스윙 교정, 쇼트게임 보완 등을 한 고진영. [AFP=연합뉴스]

올 시즌을 앞두고 동계 훈련을 철저히 하면서 스윙 교정, 쇼트게임 보완 등을 한 고진영. [AFP=연합뉴스]

 
고진영은 지난해 11월 말, 2018시즌을 마친 뒤에도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2주간 미국에서 쇼트게임 레슨을 받았다. 지난달 LPGA 투어가 3주간 쉴 때도 그는 실내 연습장에서 샷을 교정했다. 이시우 프로는 “고진영은 훈련을 할 때도 놀라운 집중력을 보인다. 골프를 할 때도 들뜨지 않는다. 프로 정신으로 똘똘 뭉친 선수”라고 평가했다.
 
고진영은 요즘도 매니저에게 자신의 샷을 촬영해 달라고 부탁한 뒤 스윙 코치와 함께 분석을 거듭한다. 그 결과 올 시즌 6개 대회, 24개 라운드를 치르면서 오버파를 기록한 건 단 3차례에 불과하다. 드라이브 샷 비거리(260.35야드)는 지난해(252.41야드)보다 약 8야드 늘었고, 올 시즌 현재 그린 적중률(79.8%), 평균 타수는 1위(68.75타)다.
 
고진영 2019시즌

고진영 2019시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과 더불어 올시즌 바뀐 규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적극성도 돋보인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도 4라운드 내내 깃대를 꽂고 퍼트를 했다. 멘털도 강한 편이다. 이번 대회 막판 다른 선수의 추격도 거셌지만, 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2019 LPGA 메이저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고진영의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한 캐디 데이비드 브루커(위). [AFP=연합뉴스]

2019 LPGA 메이저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고진영의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한 캐디 데이비드 브루커(위). [AFP=연합뉴스]

 
캐디 데이비드 브루커(45·잉글랜드)의 역할도 컸다. 지난 2004년 박지은, 2008년 로레나 오초아(멕시코)가 이 대회에서 우승할 당시에도 골프백을 멨던 23년 차 베테랑 캐디 브루커는 지난 2월부터 고진영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은퇴한 선배 박지은이 고진영에게 브루커를 캐디로 천거했다. 브루커는 특히 이 골프장의 구석구석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 안다. 이 대회에서 세 번째 우승을 맞은 브루커는 “고진영은 매우 영리한 선수다. 상황에 따라 뭘 해야 할지, 감정 컨트롤을 어떻게 할지 잘 알고 있다”고 칭찬했다.
 
개인 첫 LPGA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고진영. [사진 LPGA]

개인 첫 LPGA 메이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고진영. [사진 LPGA]

          
고진영은 우승을 확정짓자마자 펑펑 울었다. 꼭 1년 전 세상을 뜬 할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고진영은 “할아버지가 그립다. 이번 우승은 할아버지께 바치는 우승”이라고 말했다. "난 겨우 2년차다. 10년 넘은 언니 골퍼들을 따라가려면 한참 더 연습해야 한다"던 고진영은 "언니들이 남긴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따라갔으면 좋겠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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