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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소득주도성장, 세 학자의 검증

含閒 2018. 9. 3. 20:56

[김세형 칼럼]소득주도성장, 세 학자의 검증

  • 김세형
  • 입력 : 2018.08.28 06:01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김세형 칼럼] 요즘 청와대가 가장 무서워하는 곳이 있다면 통계청일 것 같다. 지난주 문재인정부에 3과목에서 연거푸 F학점을 안긴 저승사자가 바로 통계청이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그런 통계청장이 괘씸했는지 휴일 날 전격 교체해 버렸다. 앞으로는 이런 발표가 제대로 나올지 걱정이다.

통계청은 지난주 고용증가가 연간 30만명은 돼야 하는데 5000명밖에 안 늘어 참사(慘事)가 났음을 알리더니 곧바로 출산율이 0.97명으로 세계 최저로 추락했다는 비보를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참사가 발생한 날 "일자리 마련에 직을 걸어라"고 고음을 뿜었다. 그 충격이 가실 만하니 1분위(하위 20계층)와 5분위(상위 20%) 간 소득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는 피니시블로를 날렸다.

지난 1분기에도 소득주도성장이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이라더니 최하위계층의 소득만 크게 줄었느냐는 지적이 나왔을 때 문 대통령은 "그 부분은 아픈 지점"이라고 자책했다. 이번에 2분기에 소득양극화가 더더욱 벌어지고 그것이 최저임금 폭주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에 김의겸 대변인은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바로 그날(8월 24일) 신문들은 강남 아파트는 84㎡가 30억원을 뚫어 평당 1억원 시대가 됐다는 기사로 도배질 했다. 부동산 투기단속도 참패다. 이런 경제정책의 무능에 실망한 여론은 갤럽의 문 대통령 지지율을 56%로 끌어내렸다. 태풍 '솔릭'은 비켜갔지만 문재인정부로서는 참혹한 주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영상메시지에서 "우리의 경제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고집했다. 이론의 교주 격인 장하성 정책실장은 일요일(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의 고용, 가계소득 악화지표는 소득주도성장의 포기가 아닌 속도감 있는 추진에 대한 요구"라며 적반하장 격으로 치고 나갔다. 야당과 학계는 극력 반발했다. 이제 이론의 당위성을 세계경제학회에 판정해달라고 의뢰하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겠다. (IMF 라가르드 총재도 부정적인 의견을 말한 바 있긴 하다.)

이 말썽 많은 학설을 놓고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 의문을 갖는다.

첫째,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16개월이 다 되도록 실패를 거듭한 소득주도성장이 과연 조금 기다린다고 약효를 낼 장치가 그 속에 있는 것인지, 아니 근본적으로 도대체 소득주도성장론이 무엇인지 그 정체에 의문이 든다.

둘째, 문 대통령이 정권 출범 당시 소득주도성장을 간판 정책으로 내걸고 출범하면 16개월 후에 F학점이 우수수 쏟아지고 청년실업, 저소득층 생활이 개선은커녕 더 악화되고 그로 인해 대통령 지지율이 50%대로 주저앉을 것을 알았으면 과연 받아들였겠느냐는 의문이다. 아닐 것이다. 당시 청와대 정책실 참모들이 소득주도성장론을 밀고 나가면 A+학점 홍수가 날 거라 하지 않았을까. 만약 두 번째가 맞는다면 엉터리 설계로 인해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속인 게 된다. 그리고 현재도 소득주도로 일자리나 소득격차 완화의 가망이 없는데도 기왕 호랑이 등에 탄 참모들이 호가호위하는지 모른다.

장하성 실장은 " 최저임금을 소득주도성장과 등치시고 실패했으니 포기하라는데 최저임금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반격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16개월이 다 될 때까지 신줏단지처럼 떠받드는 소득주도성장 내용에 대해 한 번도 설명하지 않다가 이제야 설명하는 청와대나 구체 내용을 묻지 않은 국회, 학회, 언론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괴승 라스푸틴의 교리처럼 정체가 어슴푸레한 소득주도성장론이 정부 출범 후 경제에 끼친 영향을 분석해 향후 새 정권이 출범할 때 거울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나는 한국경제학회에 타진해 봤었다. 그랬더니 표학길, 김소영 서울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교수가 이 주제로 발표한 논문을 보내 와 읽어봤다.

이들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은 대체로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 성장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추론했다. 임금 상승, 노동 정책, 재분배 정책 등을 통해 노동소득을 증가시키고 소득 재분배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으로 후기 케인지안인 칼레츠키(Kalecki)이론을 원용했다. 김 교수는 이 이론을 고집하면 임금 증가로 생산가격이 올라 소비가 줄어들고 그 결과 기업은 이윤 감소로 투자를 못해 결국 고용이 줄어 하위층 소득이 더 악화될 것이라 했다. 최저임금을 폭증시킨 부작용을 제대로 짚은 것이다. 일자리를 마련하려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필요한데 그러자면 수요(소비) 증가로는 안 되고 기술, 자본, 생산성 향상 같은 공급 측면이 받쳐야 하는데 정반대이므로 '소득주도'에다 '성장'이란 단어를 합성하면 안 된다고 단호히 못 박았다. 그렇게 하면 궤변이 된다고 웅변한 셈이다.

이 정책의 실패를 위장하기 위하여 재정확장, 미래세대 부담 증가, 정부부채 확대 등을 취하면 장차 골병이 들 거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성태윤 교수는 고소득층에서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으로 소득을 옮겨 소비 증가→성장을 견인하려는 정책은 소규모 폐쇄경제에서 경기부양 차원에서 일시적 효력이 있을지 몰라도 한국과 같은 개방경제에선 적용하기에 난점이 크다고 분석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최저임금이 늘어난 A씨의 고등학생 딸이 노트북을 직구매를 통해 미국 홈디포에서 사버린다면? 그러면 소득주도와 성장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게 되는 것이다. 표학길 교수는 그래서 브라질 등 여러 나라가 실패했으며 학계에 성공이 보고된 전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아무리 기다려도 소득주도의 결실은 없고 청년 일자리도 안 생긴다. 문재인정부의 브레인들이 불평등 해소와 성장 정책을 구분하지 못하여 생긴 오판에서 엉터리 정책을 짠 것이다. 다 좋다. 소득주도성장은 김소영, 성태윤 두 교수가 말한 그렇게 나이브(naive)한 정책이 아니다. 뭔가 다른 게 있다. 나는 소득주도론을 직접 설계한 장본인을 수소문해 직접 물었다. 그의 설명은 장하성 실장이 26일 설명한 내용보다 훨씬 구체적이었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개념에는 일자리 창출(공무원 증원, 52시간 단축, 중소기업 취업지원), 가계의 처분소득 확대(최저임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핵심 생계비 경감(통신비 인하), 적극적인 재분배정책(부유세-법인세 소득세 인상, 종합부동산세 인상 etc) 등등이다" 여기서 말을 멈추지 않았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의료비 절감, 보육, 어린이집, 자영업자 대책 같은 것도 들어 있다.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EITC, 고용보험 강화, 조세정책으로 초고소득, 초대기업 증세까지 망라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보수격차 줄이기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두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을 임금주도성장의 이름 바꾸기로 봤는데 그렇다면 일본의 아베처럼 대기업이 월급을 올려 소비를 늘리고 시장이 살아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 설계자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라니 처음부터 임금주도성장은 아닌 변종을 만들어 낸 것이다. 여기에 소득주도성장론의 어두운 비밀이 있다.

따라서 소득주도성장론은 임금주도성장론에서 파생된 게 아니며 한국의 불평등정책 완화를 총망라한 보따리를 그렇게 명명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재인정부 간판정책의 실체로 진보세력의 이념을 아우른 것이다. 그래서 소득주도 정책을 포기하면 불평등 완화정책 전체를 포기하는 것으로 전달돼 지지층의 광범위한 반발을 불러일으킬까봐 겁내는 것 같다. 이것을 포기하면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돌아간다, 쉽게 말해 저소득층 분배정책을 없애는 게 되니 그렇게 안 하겠다는 결의로 들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득주도 정책의 설계도에는 성장의 DNA는 들어 있지 않다. 장 실장도 "투자가 늘지 않아 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는데 소득주도에는 투자에의 유인책은 없다. 한국의 GDP는 1700조원이 넘는데 최저임금, 공무원 증원, 중소기업 채용 지원 등등 합쳐도 연간 20조원이 안 될 것이다. 20조원으로 1700조원 덩치를 '성장'시키겠다는 생각은 성냥불을 ICBM을 점화시켜 태평양을 건너겠다는 것만큼 무망하다.

그러니까 연말까지 기다려 본들 지난주 통계청 발표에서 F3개를 맞은 종목들, 즉 일자리 증가, 출산율, 5분위 소득격차 분야에서 아무런 해답이 나오질 않는다. 고용, 소득격차의 해답을 얻으려면 지금과는 정반대의 정책을 써야 한다. 성태윤 교수의 지적대로 공급팩터를 자극해야 답이 있다.

특히 최저임금 폭주가 자영업 일자리를 줄인 증거가 없다고 강변하는데 그런 거짓말을 하지 말라. 이미 통계청 가계소득 통계에 1분위 가구의 일자리가 18%나 줄었다는 결론이 나와 있다.

딥마인드(DeepMind)가 이세돌을 바둑으로 이기는 세상에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계산하지 못할 게 없다. 소득주도성장의 변수들을 넣으면 기업의 투자 의욕, 생산성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 그로 인한 일자리 창출, 청년실업률, 경제성장률을 모두 계산할 수 있다.

여기서 문 대통령은 브레인들을 제대로 다뤄야 한다. 몇 달 기다리면 답이 진짜 나오는지, 오지 않을 고도(Godot)를 기다리라 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려면 경제참모들에게 향후 몇 개월 후 어떻게 변할 것인지 전망치를 숫자로 보고토록 해야 한다. 숫자로 말이다. 지난번 5월엔 6월이면 청년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한 것을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정책이 성공하지 못하고 전망이 어긋나면 과감히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리더는 누구나 실패에 직면할 수 있는데 그때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핵심이다.

우리 국민 가운데 어려운 계층에 대한 복지대책을 그만두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을 버리고 다른 정책으로 선회하면서도 저소득층 포용정책은 얼마든지 지속할 수 있다. 경제는 성장 없이는 모두가 거짓말이라는 래리 서머스의 경고를 상기할 일이다. 그 점에서 장 실장은 소득주도와 혁신성장을 패키지로 추진하면 된다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혁신성장은 챙기는 실세가 없다. 예산을 퍼부어 억지로 꾸민 일자리는 한국을 그리스짝으로 만든다. 청와대 주장대로 일자리와 경제가 회생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의 명대통령으로 평가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로 판명되면 국가 부채만 늘리고 경제 파탄을 부른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할 것이다. 이제 소득주도성장에 문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가 달렸다.

[김세형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