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형 칼럼] 대통령 공무원 닦달 지나쳤다
▲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소동으로 장관의 목이 달아날 거란 말도 있었고 고위직 2명이 청와대의 특별감찰을 받는다 하니 공직사회가 얼마나 벌벌 떨었을지 안 봐도 알 만하다. 막후 자세한 사정은 알려진 게 없으나 정황상 대통령이 불같이 화를 냈으니까 민정수석실이 추상같이 나서 범인을 색출함으로써 공직사회 기강을 세우려 나섰으리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라는 시민단체는 "정작 재검토가 필요한 것은 문 대통령의 인식"이라는 성명을 냈고 한국당은 "파쇼적 행태"라고 비난했다. 항간에선 그럼 2기 경제팀에 홍남기, 김수현 이름이 언론에 보도됐는데 이 경우는 누가 발설했느냐를 왜 색출하지 않느냐고도 했다.
연금개정 내용은 사실 국민생활에 너무 중요하다. 국가 전체로는 50년, 100년 이상을 뒤흔드는 엄청나게 중요한 사안이므로 정부가 만든 안(案)을 국민과 함께 토론하여 다중의 지혜를 모으는 게 정답이다.
복지부가 만들어온 3개의 안(案)은 보험료를 현행 9%(가입자 4.5%+회사 4.5%)인 것을 12~15%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0~50%로 하는 내용으로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OECD 국가의 평균 보험료율은 18.3%에 달하고, 노무현 대통령 당시 유시민 장관이 15% 수준으로 올리려다 불발한 게 지금 만시지탄이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선거 당시 공약으로 소득대체율은 50%로 올리고 보험료 부담은 최대한 억제한다는 데 방점을 뒀다. 그런데 보험료율 인상은 인기가 없고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어뜨린다. 연금개혁 때문에 쫓겨난 정권도 많다. 미국 중간선거 후 가뜩이나 김정은 답방이랄지 풀리는 게 없고 경제난으로 대통령 지지율도 떨어지는 판국이라 더욱 과민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대선공약에 그리 집착할 필요는 없다. 당선된 다음 거짓말쟁이가 되라는 의미는 아니며 선거 전엔 피차 뻥튀기 공약을 하기는 후보 간 마찬가지이므로 막상 취임하면 국가 장래를 위해 융통성을 가지라는 의미다.
탈원전, 국민연금등의 공약을 꼭 지킬 경우 국가 명운에 해롭다면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과감히 파기해버리면 되레 용기 있는 지도자로 칭송받으리라 생각한다.
연금개혁안 유출자를 잡으려고 청와대 감찰반이 복지부 국·과장의 핸드폰을 가져간 조치가 가져올 파장의 경로를 나는 살펴보고 싶었다. 우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핸드폰을 압수한 건 심하지 않으냐"고 의견을 조회해 봤다. 그랬더니 "대통령비서실 직제 제7조에 따라 행정부 공무원에 대해 감찰업무를 할 수 있고 핸드폰을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임의제출받은 것"이라는 해명이 돌아왔다. 압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이 서슬퍼런 청와대 민정팀 앞에서 임의제출하지 않을 자유가 있을까. 제출을 거부하면 무사할 수 있겠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당사자의 동의는 미사여구에 불과하고 그냥 압수해간 것이라고 공무원들은 생각할 것이다.
이번 사건 후 공직자들은 정책을 만들 때 언론이 취재하려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가뜩이나 언론과 소통을 금기시하는 문재인정부의 공무원들은 사실상 함구령이 내려진 걸로 받아들일 것이다. 청와대에 보고할 사안에 대해 앞으로 언론이 알려고 들까봐 핸드폰을 아예 꺼놓거나 답변을 거부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취재해보면 장차관이나 국장이 전화 연결 안되는 경우가 숱하다. 필자가 35년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대통령부터 주요 사안에 대해 기자회견을 제대로 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자연히 그 영향이 아래로 내려가서 그러리란 생각이 든다. 사실 김정은과 도보다리에서 나눈 대화가 무엇인지, 미국·영국·일본도 원전을 새로 짓는데 그들도 안전을 충분히 생각했을 텐데 왜 한국만 탈원전을 그리 고집하는지 나는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싶다.
북한이 비핵화를 한 발짝도 안 나가는데 왜 우리만 휴전선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초소를 폐쇄하는지도 묻고 싶다. 판문점 회담으로 핫라인을 개설해 뭐든 상의한다 했는데 김정은 서울 답방에 대해 핫라인을 사용하는 중인지도 궁금하다.
원래 공직자들은 정책을 만들 때 전문가(교수, 재계)들과 토론하고 언론에 흘려 떠보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경로를 활용하면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고 미래와 세계를 아우르면서 세련된 안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이것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소통하지 않고 밀실에서 만든 정책이 좋은 정책이고 성공 확률이 높을까.
이번 정부 김수현 정책실장이 주도했다는 최저임금, 52시간 근무단축(탄력근무제), 탈원전 등을 보라. 모조리 실패했지 않은가. 왜? 머릿속에서 몽상 같은 꿈에 젖어 실현가능성을 무시한 채 그냥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탁상공론이다.
그러다 보니 전 세계 경제가 호황인데 한국만 불황이고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이 불행한 사태가 터지고 만 것이다. 미국 일본 독일은 호황이다. 우리도 그들과 비슷한 정책을 만들어 올바른 리더십으로 추진했더라면 지금쯤 성공가도를 달려가고 청년실업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그냥 복지문제만 좀 더 신경 써주고 주요 정책은 선진국과 비슷하게 추진했던 과거방식이 훨씬 뛰어나다. 과거로 돌아가는 게 맞다.
결론적으로 공무원을 쥐 잡듯 해서는 좋은 정책은 기대할 수 없다. 이건 정말 중요한 얘기다.
그냥 놀아도 월급이 나오는데 누가 무슨 사명감이 있어 밤늦게까지 고민하고 언론, 재계, 학계와 밤샘 토론하겠는가. 그러다가 비밀이 샜다고 다치기라도 하면 누가 보호해주나.
가뜩이나 정부종합청사가 서울에서 세종시로 간 후 공직자들이 경제계, 사회와 의견교환을 못해 갈라파고스증후군에 시달렸다. 아이디어와 정책의 질이 떨어졌다. 설상가상 현 정부 출범 후 서부발전소 사장 선임의 건으로 심부름을 한 산업부 현직 과장과 고참 사무관이 구속되고 국정교과서 문제로 대통령(박근혜)이 시킨 일을 한 공무원마저 사법처리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절대로 공무원은 몸 바쳐서 일하지 말라는 처세의 불문율이 되고 말았다. 공무원 사회는 이제 위에서 시키면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 보신주의에 급급하고 창의적으로 머리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굳어서 화석이 돼간다.
공직자들이 고립되고 경직되면 정책의 질은 나빠지며 그것은 정부의 실패로 이어진다. 국민의 불행으로 연결된다. 소득 3만달러로 올라가서 도로 2만달러로 주저앉는 패배의 길이다. 노무현정부 때 경제성적표가 나빠져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의 실패로 돼버리는 사례를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이제라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핸드폰을 돌려주고 적절한 해명과 더불어 그들을 해방시켜주는 게 대통령과 정부를 돕는 길이다. 국민의 미래를 돕는 길이다.
그리고 국민연금은 후세에 책임감을 갖고 마련한 전문가의 안을 따르는 게 옳다.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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