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대통령특보 인터뷰]"김정은 방중, 북·미 간 이견 징후지만 상식적"
유신모 외교전문기자·정희완 기자 입력 2018.05.09. 06:00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8일 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격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만난 것에 대해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 중국에도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사무실에서 열린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중국의 적절한 역할과 협조가 필요하다”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남·북·미·중이 공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북·미가 사전 조율에서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상식적인 일”이라며 대화 국면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견이 발생했다면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배열하는 ‘시퀀싱’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북 핵폐기 트럼프 임기 내 불투명, 시한 설정 논쟁 될 것”
북·미 회담 성공 잣대는 ICBM·중거리미사일 폐기 약속 여부 트럼프 행정부, 김정은 변화가 전략인지 전술인지 확신 못 해 키신저, 북·미 대화 성패 따른 한국 플랜B· 중국의 역할 충고
문 특보는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더 나아가 중거리탄도미사일까지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폐기한다는 약속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는 당연히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을 유력하게 검토하던 미국이 장소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과 관련해 문 특보는 “판문점에서 하면 남북정상회담 후속이라는 인식 때문에 빛이 바랜다는 (미국 내부) 주장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특보는 미국이 판문점을 고려한 것은 한국 정부의 설득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이 곧바로 열릴 것은 기정사실”이라며 “성사되면 2차 대전 이후 외교사에서 가장 극적인 정상외교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그것을 기대하고 공을 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남북정상회담 직후 미국에 다녀오셨는데 미국의 전반적 평가나 분위기는 어떤가.
“역사의 반전을 가져올 것에 대해 놀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여준 모습에 대해서도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가 많이 나오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역사적 사건이라고 얘기하면서 이런 결과를 만든 문 대통령에게 특별히 감사 말씀을 전해달라고 했다.”
-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 있는 사람들도 그런 생각인가.
“국무부와 백악관 인사들도 여럿 만났는데 남북정상회담 자체에 대해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 북한에 대한 시각은 어떤가.
“지금 계속 논란 중이라고 봐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 사람들도 김 위원장이 변했다고 하는 것은 인정하는데 전략적으로 변한 건지, 전술적으로 변한 건지 확신하지 못한다. 정말로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다. 북·미 정상회담도 70~80% 미 전문가들은 회의적으로 본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북한에 대한 불신이고 다른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이다.”
- 미국 내 오피니언 리더의 생각이 그렇다면 앞으로 일이 진행되는 데 장애가 되지는 않을까.
“장애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이 일은 행정부가 하는 것이다. 백악관 관계자를 만나봤더니 예상외로 준비를 많이 하고 있었다. 백악관·국무부·에너지부 등이 같이 모여 북한의 핵시설 신고에 대한 사찰, 검증, 폐기 등에 대한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짜고 있다. 트럼프가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정은을 만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안 해도 될 것 같다.”
-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어떤 요소들이 충족돼야 한다고 보는가.
“미국과 국제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게 미사일 핵탄두다. 검증가능하게 폐기하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 ICBM과 더 나아가 중거리미사일도 폐기한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 단거리미사일은 워낙 많아서 남북 간 군축 과정에서 다뤄지게 될 것이다. 원칙적으로 CVID는 당연히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북한도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이상 핵시설, 핵물질, 핵탄두, 탄도미사일에 대해 확실히 약속해야 할 것이다.”
- 비핵화의 구체적인 시한이 명시되지 않으면 실패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까.
“트럼프는 가급적 포괄적·일괄타결을 원하니까 시한을 정하려 할 것이다. 트럼프 임기 내에, 재선 전인 2020년까지 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만난 백악관 관계자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핵프로그램을 완전하게 검증가능하게 폐기하는 데 10년이 걸렸다’는 말을 했다. 쉽지 않다는 말이다. 2년 내에 거의 완벽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의 검증 원리주의자들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 북·미 정상회담에 비핵화 시한이 어떻게 명시되는지 여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는 의미인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미국의 포괄적·일괄타결과 북한의 점진적 행동 원칙의 교환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과 중재를 해야 한다. 시한을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2~3년으로 보느냐, 남아공처럼 10년으로 보느냐의 문제다. 또 북한이 처음부터 핵무기를 다 내놓지 않을 테니 일부를 내놓았을 때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수 있는지 이런 것이 논쟁이 될 것이다.”
-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 시기와 장소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판문점 이야기가 나왔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은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미국이 판문점을 고려하게 된 것은 한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원점으로 되돌아간 이유는 추론을 해볼 수밖에 없다. 판문점에서 하면 남북정상회담 후속이라는 인식 때문에 빛이 바랜다는 주장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경호나 안전 문제도 고려했을 수 있다.”
- 판문점에서 북·미가 만난다면 남·북·미 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
“판문점에서 북·미가 만나면 남·북·미는 기정사실로 따라올 것이다. 정부의 구상은 판문점에서 북·미가 만나게 되면 바로 백투백으로 남·북·미가 만나서 종전선언에 대한 구체적 협의를 한다는 것이었다. (종전선언이)성사되면 아마 2차 대전 이후 외교사에서 가장 극적인 정상외교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그걸 기대하고 공을 들인 것이다.”
-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다롄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북·미가 정상회담 사전 조율 과정에서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 한국 외에 중국에도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본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적절히 배열하는 ‘시퀀싱’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 북·미 정상회담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까.
“북·미가 조율 과정에서 이견을 보이는 것은 상식적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번 일이 중국이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중국의 적절한 역할과 협조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미·중이 공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평화체제 이후 주한미군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는데, 이 문제는 향후 어떻게 정리돼야 한다고 보는가.
“나는 ‘철수’란 말을 쓰지도 않았는데 철수론자가 됐다. 과거에 조선일보와 인터뷰할 때도 분명히 말했지만 나는 주한미군은 평화조약이 체결돼도 중·단기적으로는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국내 정치적 혼선을 막기 위해서다. 주한미군 문제가 전면에 나오면 국내 정치적으로 혼선이 빚어지고 평화조약 자체를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을 위해 과도기적으로 주한미군이 필요하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임무, 성격, 기능, 규모에 대해서는 상당히 논란이 있을 것이고 그에 대한 조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 최근 한반도 상황에 대해 더 하고 싶은 말은 없나.
“헨리 키신저 전 장관이 한 말을 전해주고 싶다. 그분 얘기는 북·미 정상회담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한국이 ‘플랜B’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너무 미국에 의존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내가 ‘남북정상회담이 잘됐는데 북·미관계가 깨지면 남북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더니 키신저 전 장관이 ‘북·미관계가 어렵더라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풀 수 있는 그런 아이디어도 가지라’고 조언했다. 특히 중국은 한반도에 너무나 가깝고도 강력한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을 배제한 상태에서 미국과 합의하면 부정적 영향을 많이 가져올 테니 처음부터 관여시켜서 같이 풀어가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정희완 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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