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 淳 박사(90세)의 최근 글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
고향이 강릉이시고
봉천동에서 25년을 살고 계신다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학자인 조순 박사
(前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께서 쓰신 글입니다
*장자(莊子)가 말하는 습관적(習慣的)으로
저지르는 8가지 과오(過誤)
1. 자기 할 일이 아닌데 덤비는 것은 '주착(做錯)'이라 한다.
2. 상대방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의견을 말하는 것은
'망령(妄靈)' 이라 한다.
3.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말하는 것을
'아첨(阿諂)'이라 한다.
4. 시비를 가리지 않고 마구 말을 하는 것을
'푼수(分數)'라고 한다.
5. 남의 단점을 말하기 좋아하는 것을
'참소(讒訴)'라 한다.
6. 남의 관계를 갈라놓는 것을 '
이간(離間)질'이라 한다.
7. 나쁜 짓을 칭찬하여 사람을 타락시킴을
'간특(奸慝)'하다 한다.
8.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비위를 맞춰
상대방의 속셈을 뽑아보는 것을
'음흉( 陰凶)'하다 한다.
나는 사람의 일생은
기본적으로 즐거운 것으로 보고 있다.
‘고중유락(苦中有樂)’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은 괴로운 가운데 즐거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 인구가 이렇게 많을 수 있겠는가?
“그럼 늙고 죽는 것도 즐겁단 말이오?”
아마 이런 반론이 있을 것이다.
글세,
늙고 죽는 것이
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 의미를 잘 안다면
얼마든지 달관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장자(莊子)는 아내가 죽었을 때,
항아리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죽고 사는 것을 항상 보니,
이제 눈물이 없네’ 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인생을 즐겁게 보내자면,
일정한 계획과 수련이 필요하다.
중국 송(宋)나라에 주신중이라는
훌륭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인생에는 다섯 개의 계획(五計)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생계(生計),
둘째는 신계(身計),
셋째는 가계(家計),
넷째는 노계(老計),
다섯째 사계(死計) 가 그것이다.
生計는
내 일생을 어떤 모양으로 만드느냐에 관한 것이고,
身計는
이 몸을 어떻게 처신하느냐의 계획이며,
家計는
나의 집안, 가족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문제이다.
老計는
어떤 老年을 보낼 것이냐에 관한 계획이고
死計는
어떤 모양으로 죽을 것이냐의 설계를 말한다.
“당신에게도 노계(老計)가 있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있지요” 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것이 무엇이오?”라는 물음에는
'소이부답 [笑而不答] '
말을 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사는 집 이야기를 한다면
그 속에 나의 대답 일부분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달동네로 유명한 봉천동에 살고 있다.
25년 전 나는 관악산을 내다보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대지를 사서 집을 지었다.
당시에는 주변도 비교적 좋았고 공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집 주위는 그때와는 전혀 딴판이 됐다.
단독주택은 거의 다 없어지고,
주변에 5층짜리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다.
주차도 어렵고, 지하철에서 이 집까지 오자면
가파른 언덕길을 허덕이며 올라와야 한다.
처음 오는 사람 중에는
‘이 집이 정말 조순의 집이냐?
동명이인이 아니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25년을 한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 마을에 나밖에 없다.
아이들은 날보고 이사를 가자고 한다.
좀 더 넓은 곳, 편한 곳으로 가자고 한다.
자기들이 모시겠다는 뜻인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 같다.
“여기가 어떻다고 이사를 간단 말이냐?
불편한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많다.
다소의 불편은 참고 지내야지,
사람은 너무 편해도 못 써.
어딜 가도 먹는 나이는 막을 수 없고,
인생의 황혼은 짙어지는 법.
지난 25년의 파란 많은 세월을
이 집에서 사고 없이 지냈고,
지금도 건강이 유지되고 있으니 그만하면 됐지!
내겐 이 집이 좋은 집이야.”
이 집에는 좁은 대지에 나무가 많다.
모두 내가 심은 나무들이다.
해마다 거름을 주니
나무들은 매우 잘 자라,
이제 이 집은 숲 속에 묻혀 버렸다.
감나무엔 월등히 좋은 단감이 잘 열리고,
강릉에서 가지고 온 토종 자두나무는
꽃도 열매도 고향 냄새를 풍긴다.
강릉에서 파온 대나무도 아주 무성하고,
화단은 좁지만 사계절 꽃이 핀다.
이 집과 나무, 그리고 화단은
아침저녁 내게 눈짓한다.
“당신이 이사를 간다구요?
가지 마시오!”
지난 25년의 파란이 압축된 이 애물단지!
내게 이런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
버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