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몽선습(童蒙先習)
조선시대 동몽교재(童蒙敎材)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저술되었고,
초학 아동들이 《천자문》 다음 단계에서 반드시 학습하였던
대표적인 아동교육교재였다. 현종대 이후에는 왕실에서 왕세자의
교육용으로도 활용되었다
동몽선습의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異說)이 존재한다.
현존하는 신축본(辛丑本)의 기록, 《중종실록(中宗實錄)》
중종 39년 기록, 노수신(盧守愼)·송시열(宋時烈) 등이
남긴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박세무(朴世茂)가
이 책의 주된 저자임은 명확하다. 그러나 권문해(權文海)의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김휴(金烋)의 《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에는 김안국(金安國)을 동몽선습의
저자로 기록하고 있어 좀 더 깊은 검토를 요한다.
특히 1543년(중종 38년) 발간된 평안도 감영본의 윤인서(尹仁恕)
발문에는 당시 평양감사(平壤監司)로 있던 민제인(閔齊仁)이 공
술(共述)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저술과정에 그가 상당한 부분
관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은 크게 유학의 핵심 윤리인 오륜(五倫)에 관한 부분과
중국·한국의 역사에 대한 서술 양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등
오륜의 중요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총론에서는 오륜은 하늘이 인간에 부여한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품성이라는 사실과 함께, 오륜의 근원은 효행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 역사에 관한 서술에서는 우선 중국의 고대로부터
명나라까지의 역사를 도덕적인 사관(史觀)에 근거해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한국의 역사를 단군으로부터 시작하여 삼한과,
삼국,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간명하나 매우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한국이 비록 국토는 좁지만, 예악(禮樂)과 문물이
중국에 비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여 아동들로 하여금 자국 역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책은 성리학이 조선사회에 토착화 되던
당시 사회에서 사림들이 지녔던 아동 교육관의 한 단면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우리역사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동방에
처음에는 군장(君長)이 없었는데,
신령스런 사람이 있어
태백산 단목(檀木) 밑으로 내려오니,
나라 사람들이
이를 임금으로 삼았다.
중국의 요(堯) 임금과 병립하여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고 했으니,
이분이 단군(檀君)이 된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하였는데,
기자는 백성들에게 예의를 가르치고,
팔조(八條)의법을 만들어서 가르쳐
어진 이의 교화(敎化)가 있었다.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노관의 난(亂)을당하여
우리나라로 망명해 들어왔서
기준(箕準)을 꾀어내쫓고
왕검성(王儉城)에 웅거했다.
그 손자우거(右渠) 때 와서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이 를 처서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
낙랑(浪)·임둔(臨屯)·현토(玄) ·진번(眞蕃)의 사군(四郡)을 두엇다.
소제(昭帝)는
평나(平那)와 현도를 합쳐서
평주(平州)로 하고,
임둔과 낙랑을 합쳐서
동부(東部)의 두 도독부(都督府)를 두었다.
기준이
위만을 피하여
바닷길로 남쪽으로 내려가
금마군(金馬郡)에 살았으니,
이것이 마한(馬韓)이다.
진(秦)나라에서 난을 피하여 도망한 사람들
한(韓)으로 들어왔으므로,
한에서
동쪽 경계의 땅을 갈라 주어서 살게 했으니
이것이 진한(辰韓)이다.
변한(弁韓)은 한(韓)의 땅에 나라를 세웠는데,
그 시조와 연대를 알지 못한다
이것이 삼한(三韓)이다
신라의 시조 혁거세는 진한의 땅에 도읍하여
박(朴)을 성으로 하고,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졸본에 이르러
스스로 고신(高辛)의 후예라고 일컽고
따라서 성을 고(高)로 하고,
백제의 시조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하고,
부여(扶餘)를 성씨로 했다.
세 나라가 각각 한 귀퉁이씩을 차지하고
서로 침범하다가, 그 뒤에
당(唐)나라의 고종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서
도독부(都督府)를 두고
유인원(劉仁願)과 설인귀(薛仁貴)를 시켜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진무(鎭撫)하도록 했다.
백제는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678년이고,
고구려는 705년이다.
신라 말기에 궁예(弓裔)가
북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태봉(泰封)이라 하고,
甄萱(견훤)은
반란을 일으켜 완산(完山)에 웅거하여서
스스로 백제라하고 했다.
新羅(신라)가 망하니,
박(朴)·석(昔)·김(金) 세 성이
번갈아 임금 노릇하면서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992년이었다
태봉의 여러 장수들이
고려의 시조를 왕으로 삼고
國號(국호)를
고려라고 하여
여러 흉악한 인물들을 이겨 없애고
삼한을 통합하여
도읍을 송악으로 옮겼다.
고려의 말년에 이르러
공민에게 후사가 없고
가짜 임금 신우가 어둡고 포악하며
스스로 방자하였으며 공양이
임금 노릇을 못하여
마침내 망하기에 이르니
왕조의 수명이 475년이었다.
천명이 진정한 군주에게 돌아가니
명나라 태조 고황제가
국호를 조선이라고 고쳐 내리자
한양에 도읍을 정하여
성스럽고 신령스러운 자손들이
끊임없이 계승하여
거듭 빛내고 여러 차례 스며들어서
지금에 이르니
실로 만세토록 끝없을 아름다움이로다
아아 우리 나라가
비록 궁벽하게 바다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영토가 작지만 예악법도와
의관문물을 모두 중화의 제도를 따라
인륜이 위에서 밝혀지고
교화가 아래에서 시행되어
풍속의 아름다움이 중화를 방불하였다.
중화인들이 우리를 소중화라고 일컬으니
이 어찌 기자가 끼쳐준 교화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 너희 젊은이들은
의당 보고 느껴서 흥기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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