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노동당 박은지 부대표 사망, '치열했던 진보운동가의 삶'

含閒 2014. 3. 10. 15:25

젊은 영가시여 하늘 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노동당 박은지 부대표 사망, '치열했던 진보운동가의 삶'
기사입력: 2014/03/09 [15:31] 최종편집: ⓒ CBC미디어
유수환



[CBC뉴스=유수환 기자] 노동당 박은지 부대표가 지난 8일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노동당은 지난 8일 홈페이지를 통해 박은지 부대표의 본인상을 알리고 애도를 표했다. 박은지 부대표는 교사 출신으로 2008년 진보신당 언론국장으로 정계에 진출했고 이후 진보신당 부대변인과 대변인, 노동당 대변인을 거쳐 노동당 부대표로 활동했다.

박은지 부대표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의 지인들은 평소 박 부대표가 개인사로 심한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한다. 또한 경찰 역시 박 씨가 자택에서 목을 맨 채 숨져 있는 점을 미뤄 볼 때 자살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고인이 된 박은지 부대표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두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인간 박은지의 삶은 치열했었다. 박 부대표는 지난해 11월 온라인 매체 '썰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정당 운동에 투신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박 부대표는 대학 졸업 후 학원강사로 활동하며, 평탄한 삶을 유지했었다. 하지만 입시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스파르타식 사교육 강사로 활동하는데 괴리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설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원래 꿈은 (공교육) 교사였다. 참교육을 실천하고 조합(전교조)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결국 학교에 들어갔지만 임신했단 이유로 1년간의 계약을 채우지 못한 채 떠나야 했다"며 "결국 생계 때문에 다시 학원계에 투신해 바쁘게 일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교육계에 운동했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흔히 운동권의 소위 빅네임들이 지금 메가스터디에서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사교육 종사자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생활을 위해서 나도 했던 선택이었다"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40대에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많은 고민 끝에 당시 진보신당에서 공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고 토로했다.

박 부대표는 학원강사 생활을 하면서 바쁘긴 했어도 생활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큰 돈을 벌 수 있는 학원강사 일을 접고 군소정당에서 정치 활동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특히 아이를 둔 싱글맘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박 부대표는 진보신당에 활동하며 대변인 활동을 해왔다. 그는 현 정부(그리고 이전 정부)에 대한 매서운 비평을 해왔으며 쌍용차 노동자 문제 등 사회 약자에 대한 아젠다 설정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진보신당(현 노동당)이 지난 총선에서 원내진입이 실패한 이후 언론과는 멀어졌으며, 의석 없는 군소정당으로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박 부대표는 대변인 사임 당시 취재진에게 보낸 편지에서 "2012년 총선 패배 이후 원외정당이 된 상황에서 이제는 언론에서 노동당의 기사를 찾아보기가 힘들다"며 "비록 지금은 작은 원외정당이지만 노동당이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작은 관심이라도 기울여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한편, 노동당은 "故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는 그동안 노동자, 민중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진보정당 운동에 헌신해 왔다"며 "故 박은지 부대표의 장례는 고인의 뜻을 기억하고 함께 이어가고자 ‘故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사회장’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고인의 유지를 따르고자 하는 사회 각계의 참여로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은지 부대표의 영안실은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 8호실이며 발인은 오는 10일이다.


CBC뉴스 유수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