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旅行)

[스크랩] 별의 시인, 윤동주문학관에 올라

含閒 2013. 9. 23. 10:07

 

 

 

 

 

              별의 시인, 윤동주문학관에 올라

 

 

 

나는 별을 참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별을 좋아했던 시인 윤동주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여름 방학 때면 시골 할아버지 집 앞 마당에 멍석을 깔고 옥수수를 먹으며 사촌들과 별을 헤던 추억이 새록새록 그립고, 나의 소설 '사랑의 전설'은 별에서 시작하여 별로 끝난다.

 

교과서에 실린 알퐁스 도데의 '별'이란 산문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의 주인 집 아가씨 스테파네스에 대한 순수한 사랑에 감동했고, 바이칼 호 여행 시 깨를 뿌려 놓은듯한 수 많은 별들을 헤며 걷다가 개울에 실족하여 한참이나 떠 내려가던 중 천우신조로 나무가지를 붙잡아 구사일생했던 해프닝도 있었다. 가을로 들어섰으나 더위가 좀처럼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얼마 전, 종로구 부암동 언덕에 위치한 윤동주문학관을 찾았다.

 

 

윤동주문학관이 왜 여기에 설치되었을까. 윤동주(尹東柱) 시인은 연희전문학교를 다녔는데, 그는 누상동에 있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문우 정병욱과 함께 하숙을 했고, 아침마다 청운동 언덕을 올라 운동도 하고 시상도 가다듬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일대에 마땅한 곳을 물색하던 중 마침 용도폐기된 물탱크가 있는 이곳에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윤 시인이 시를 구상하던 청운동 언덕하고는 좀 떨어져 있다.

 

문학관 입구에 들어서면 정지용 시인의 서문이 먼저 들어온다.

 

『 동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 시인...

정지용 서문中-』

 

한 마리 파아란 잉어를 떠올린다. 글에서 태어난 그 파란 잉어는 조금 연한 하늘 빛을 닮고 있다. 한 발 물러서면 조금은 초록 빛이 나는 듯하다.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을 떠올리며 제1전시관으로 들어섰다. 입구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제1전시관에는 윤동주 시인의 사진과 친필원고, 친필사인 그리고 고향집에서 가져온 목재우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제1전시관을 둘러보고 제 3전시관으로 이동하는 길이 바로 제 2전시관이다. 제2전시관의 물탱크는 천장부를 열어서 하늘이 보인다. 우물을 상징하며 벽면에는 물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열린우물이란 명칭의 전시장이다. 그 짧은 길을 왜 또 하나의 공간으로 의미를 부여했을까.

 

햇볕이 그대로 내리쬐는 길. 높은 담과 낡은 벽, 그리고 훤히 보이는 하늘, 흡사 감옥으로 향하는 길 같다. 어쩌면 사형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일지도 모른다. 길지도 않은 길이 이토록 멀게만 느껴진다.

 

평화로운 고국의 땅에서 시를 쓰고 싶었던 청년이 한국어로 글을 썼다는 이유로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끌려가 생체실험까지 당했다. 그리고 끝내 고국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더 안타까운 건 그가 죽고 6개월 후에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의 시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보다 더 슬픈 건 내 나라를 잃은 이가 비참하게 죽어간 슬픔이 윤동주 시인과 그의 시 안에 스며들어 있다.

 

제 2전시관의 끝엔 두껍고 검은 철문이 있고 그 안이 제3전시관이다. 문을 옆으로 밀자 감옥 같은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삶을 12분 분량으로 만든 영상을 틀어준다.

 

영상을 보기 위해 20석 남짓한 조그만 공간의 작은 의자에 앉았다. 영상보다 먼저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다. 눅눅한 공기가 다시 한 번 감옥을 떠올리게 한다. 건축가의 의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가 겪었을 감옥에서의 고통이 느껴진다.

 

별처럼 쏜 영상이 벽에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별들이 지상으로 떨어지는 순간처럼 죽음은 한순간이다. 소원을 다 말하기 전에 끝이 나는 별똥별의 흔적, 그것처럼 윤동주 시인의 삶은 채 다 보여주기 전에 사그라졌다.

 

 

윤동주(尹東柱, 1917. 12. 30~1945. 2. 16)의 아명은 ‘해처럼 빛나라’는 뜻으로환(海煥)이었다. 아버지 윤영석은 자식들 이름에 ‘해’ ‘달’ ‘별’을 차례로 붙여, 윤동주의 아우인 일주에게는 환(達煥), 그 밑에 갓난애 때 죽은 동생에게는 환이라는 아명을 지어주었다. 윤동주라는 이름 석자를 세상에 널리 알린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이렇게 그의 아명 속에서 이미 잉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지린 성에서 출생하여 상급학교 진학문제를 놓고, 부친은 의학과 진학을 고집했으나 조부의 개입으로 윤동주의 뜻대로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작을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연희전문에서 윤동주는 최현배 교수의 조선어 강의와 손진태 교수의 역사 강의를 들으며 민족문화의 소중함을 재확인했고, 이양하 교수의 문학 강의를 들으며 자신의 문학관을 정립해 나갔다.

 

 

연희전문에서의 4년간은 윤동주 나름의 시 세계가 영글어간 시기였다. 그런데 그것은 참담한 민족의 현실에 눈뜨는 과정이었고, 거기에 맞서 자신의 시 세계를 만들어가는 처절한 몸부림의 과정이었다.

 

윤동주가 연희전문에 입학한 1938년은 일제가 국가총동원법을 조선에도 적용해, 한민족 전체를 전시총동원체제의 수렁으로 몰아넣던 때였다. 때문에 그의 고뇌와 번민은 깊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희전문의 기숙사를 나와 하숙생활을 시작한 2학년 때부터 동시 쓰기를 아예 그만두었다.

 

일본 도시샤 대학 재학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가 출간되었다. 가수 윤형주는 그의 6촌 재종형제이다.

 

 

윤동주는 유순하고 눈물 많은 소년이었다. 동기동창으로 윤동주 집에서 석 달 먼저 태어난 동갑내기 고종사촌 송몽규(宋夢奎)와 김약연의 조카로 윤동주와 외사촌간이었던 김정우, 그리고 문재린 목사의 아들인 문익환 등이 있었는데, 모두 문학 방면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서울에서 발행되던 <아이생활>, <어린이> 등의 잡지를 구독하며 문학소년의 꿈을 키우던 윤동주와 동기들은 5학년 때인 1929년 손수 원고를 모아 편집해서 <새 명동>이라는 잡지를 등사판으로 발간하기도 하였다.

 

 

동생 윤일주의 회고에 따르면 중학교 시절 윤동주는 축구선수로 뛰기도 하고, 교내 잡지를 내느라 밤늦게까지 등사 글씨를 쓰기도 하고, 또 옷맵시를 내느라 혼자 재봉틀을 돌리기도 하면서 활기찬 학창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교내 웅변대회에 나가 1등 상을 받기도 하고, 문학적 취향에 걸맞지 않게 기하학에 흥미를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 무렵 윤동주는 정지용(鄭芝溶)의 시에 심취해 쉬운 말로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시세계를 열어 나갔다.

 

윤동주의 유시(遺詩)는 해방 후 연희전문 시절 절친한 벗이었던 강처중이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유고와 후배 정병욱이 가지고 있던 필사본 시집 등 31편의 시를 모아 1948년 1월 정지용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을 붙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음사에서 출간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1968년 11월에 유작 <서시>가 새겨진 <윤동주 시비>가 모교인 연세대 교정에 건립되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

.................

 

문학관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 서울성곽을 끼고 인왕산의 너럭바위 밑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산줄기와 장쾌한 삼각산의 남쪽능선들이 펼쳐진다. 삼각산의 세 봉우리인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로부터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보현봉(普賢峰)과 문수봉(文殊峰) 사이에서 갈라진다.

 

 

 

문수봉에서 한줄기는 서쪽으로 북한산성을 이루며 의상봉까지 뻗어가고 또 다른 한줄기는 남쪽으로 승가봉,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 수리봉을 지나

불광동 쪽으로 내려선다.

 

 

보현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는 국민대학교 뒤편의 형제봉을 지나 북악터널 위에 있는보토현(補土峴)으로 내려섰다가 북악스카이웨이가 있는 구준봉을 넘어서 마침내 한양 도성의 성곽과 만나 북악에 이르고 그 지세는 경복궁으로 이어진다.

                                                                                                          淸閑

 

<서시>를 새긴 윤동주 시비(詩碑) 사진. 일본 교토시 도시샤 대학 소재.

              <서시>를 새긴 윤동주 시비(詩碑) 사진. 일본 교토시 도시샤 대학 소재.

                          

                                           Vivaldi The Four Seasons

                           Concerto for Violin in F major Op. 8 no 3/RV 293

                                              L autunno (Autumn)

 

출처 : 演好마을
글쓴이 : 淸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