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스크랩] 野談 - 自願裨將의 義理와 達見

含閒 2012. 7. 28. 13:06

 

 

自願裨將의 義理와 達見

 

 

먼 예전에 어떤 사람이 언제나 집안에 들어박혀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는 것

업이 술밥만 채우니 가계가 날로 곤궁하여졌다. 그 부인은 참다못해

그 남편더러 말하였다. 『아, 여보 옛날 말에 이르기를 남자는 동물이라.

동하면 득도 보고 해도 본다는데, 당신은 밤낮 안방에만 들어박혀 있으니

참 딱도 하우. 첩이 듣기에 가까운 곳에 김 판서 집이 있는데 그 집은

세도 집이라 하니 한번 찾아가서 뵙고 그 문하로라도 들어가는 것이 어떠하우.』

부인은 그렇게 하라고 밤낮으로 졸랐다. 남자는 하는 수 없이 부인이

내어주는 옷으로 깔끔히 차려 입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오기는 하였으나.

아무도 주선해주는 사람도 없이 김 판서 집엘 가기는 쑥스러웠고,

설사 가본들 요즈음 세상이 어떤 세상이라고 문하에 들어갔다고 하여

쉬이 벼슬자리를 하나 내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집의 옅은 소견에 지나지 않거니와 쓸데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하여 집엘 돌아가면 또 계집이 들볶을 것이 아닌가. 다른 곳에라도

놀다가 해진 후에 돌아가서 김 판서 집에서 놀다가 왔다고 하면 제가 어찌 알겠는가.

남자는 발걸음이 내키는 대로 걸어가니 약국이 하나 있는데, 몇 사람이 모여

한가히 장기를 두며 놀고 있었다. 남자는 거기에 들어가서 주인을 찾아 인사를 하고,

『내가 놀 곳이 없어 심심하여 못 견디던 차에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이곳에 가면 주인장이 손 대접을 잘한다기에 찾아왔으니 다음부터

소일코자 하온 즉, 특히 허락해 주십옵소서.』

 

주인도 별로 하는 일이 없고 같이 소일할 사람이 없던 차에 그 사람을 보니 차림도

깨끗하고 상냥해 보이므로 쾌히 승낙하였다. 그곳에서 종일토록 한담을 바꾸면서

놀다가 해가 진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밤에 그 처가 그 날의 상황을

물으므로 남자는 거짓말로 얘기했다.

『그대 말과 같이 김 판서 대감을 찾아가 뵌즉, 한번 보시고 매우 반가이

하면서 전자무리보다 훨씬 좋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사랑하기 비길 데

없더니 대감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평안감사로 나갈 때는 비장으로 데려가

주마 하시니 그 후대가 이렇소.』

 

하니 그 처는 희색이 만면하여 그 후로부터는 자기 치마는 제대로 입지 못할망정

남자의 의복과 갓 망근은 더욱 선명히 하여 주었다.

그러나, 남자는 한결같이 김 판서 집에는 가질 않고 약국 집에서 소일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수년 동안 계속하여 오는 터이라, 김 판서

대문이 어느 곳 어디에 어떻게 생겼는지조차도 몰랐다. 하루는 그 처가

집에 있으니 이웃에 사는 표모(漂母)가 우연히 놀러왔다.

『요사이 살기가 어떠한가?』하고 물으니 노파가 기뻐하면서,

『우리 집 아이가 김 판서 댁 대솔(帶率)로 있더니 이제 대감이 평안감사로

승차하시니 그 애도 소망이 있어 보입니다.』하였다.

그 말을 들은 처는 놀라면서,

『아니 김 판서라니 아무 골에 사는 함자가 아무 자이고 연세는 예순이나

되었을까 하는 그 어른 말인가?』

『네, 네, 그럼요. 낭자가 어찌 그렇게 잘 아시나이까?』

『내가 어찌 그 어른을 모른단 말인가. 나으리가 익히 아는 양반이신데.』

처는 이제야 행운이 왔나 보다 하고 기뻐하였다.

그 날 밤 남자가 집에 돌아오자 치하하여 이르기를,

『대감이 이제 평안감사가 되었으니 당신도 또한 비장이 아니오.』

남자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 어물어물 대답하였다.

『그대 말과 같이 되었소.』

처는 더욱 기뻐하면서,

『그럼 치행은 각자가 부담하여야 하우?』

『그럼요, 그 여러 사람의 치행을 대감이 다 당할 수 있겠어요?

기일이 촉박한데 무엇으로 당하겠소. 큰일났군요.』

남자는 내심,

<설마 그 치행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좋은 피할 구실이 생기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은 즉 처는,

『당신은 아무 걱정 마오, 친정 집이 비장으로

수년 있었으니 거기 가서 의복을 얻어오리라.』

남자는 더 얘기하기가 싫었다. 며칠 후 처가 또 물었다.

『사또께서 어느 날 부임하시오?』

『아직 택일하지 않았소.』

그로부터 남자는 밥이 제대로 목에 넘어가질 않고 잠도 제대로 이루질 못하였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면할 수 있을까 밤낮 생각하였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수년 동안 드나들던 약국 집에도 나가지 않고 김 판서 집을 수탐하여 알고는

매일같이 김 판서 집 근처에서 방황하면서 김 판서의 동향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며칠 후 처는 또 물었다.

『부임할 택일이 되었우?』

『모레 떠난다우.』

남자는 퉁명하게 내어 뱉었다. 그러자, 처는 일어서더니 시렁 위에서 상자를

하나 내려놓고 그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 안에 있는 보로 쌓인 것을

내어 보를 풀었다. 거기에는 비장으로써 필요한 일체의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남자는 감사가 출발하는 날 일찍 일어나 비장 옷을 차려 입고 대감 댁으로

총총히 달려갔다. 가본즉 아직 날도 미처 새지 않았는데 문객이며 사령들

그 외의 배속 역졸들이 흥성대고 있었고 말도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중의 역졸 하나가 말을 몰고 앞으로 나와서 말하였다.

『이 말은 성질이 순하오니 나으리가 타옵소서.』

남자는 그 말을 받아 타고 앞서가기 시작하였다. 흥재원에 이르러 쉬고 있으니까

감사 일행이 도착하였으므로 다시 출발하여 앞서가면서 말하기를,

『나는 전도비장(前導裨將)이다.』하였다.

고양(高陽)에 이르니 해가 졌다. 그리고 감사일행도 밀어닥쳐

부득이 함께 자게 되었다. 숙소에 불을 밝히고 여덟 비장이 감사에게

입시하니 그때 남자도 섞여 있었으므로 감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

이상히 여기면서 다른 비장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여러 비장들도 서로 돌아보면서,

『모르옵니다.』

하였다. 감사는 묵묵히 얼굴을 붉히고 앉아 있는 그 남자를 보고 다시 물었다.

『그대는 어느 대감의 청촉으로 왔는가?』

남자는 머뭇머뭇하더니,

『소인은 청촉비장이 아니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인고?』

남자는 무릎을 꿇며 떠듬떠듬 말하였다.

『소인은 명색 자원비장이옵니다.』

감사는 아무 말 없이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더니 이윽고 다시 물었다.

『자원비장이라, 그럼 바라는 바는 무엇인고?』

『사또를 따라갈 뿐이오. 별다른 욕망은 없나이다.』

감사는,

<그가 스스로 따라 왔고, 나에게 아무 해도 없는 바이니 그대로 두어보자.>

생각하고 그 남자에게 일렀다.

『그대의 정성이 갸륵하니 내 좌우에 따라 오도록 하라.』

그 남자는 하늘에라도 오를 듯이 좋아하면서 물러 나왔다.

이로부터 모두가 그 남자를 부르기를 <자원비장>이라 하였다.

평양감영에 이르러 아침 저녁으로 비장들이 감사에게 문안할 때도 역시

한데 끼어 들어왔으나, 감사는 별로 물을 것이 없으므로 갑자기 싫어졌다.

하루는 자원비장을 불러 말하였다.

『그대는 본시 자원비장으로서 아무 일도 맡아보는 것이 없고, 소임도 없으니,

어찌 괴로움을 참아가면서 문안드리러 올 것이 있는가? 지금 대동감관(大同監官)이

비어 있고 매년 먹는 바가 거의 五○금(金)에 이르므로 특히 차정하니,

이후부터 그대를 부르기 전에는 들어오지 않아도 좋으리라.』

자원비장이 그 명을 받들고 나온 후로 동원(東園) 뒤에 있는 적은 방에 들어박혀

있으면서 언감생심 출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감사의 임기가 다 끝나가서

서너 달밖에 남지 않았을 즈음 이방(吏房)을 시켜 하기(下記-금전출납부)를

가져오게 하여 본즉, 가하(加下-예산초과)가 三만금인데 환하(還下-국고에서 도로

내어주는 것)없으므로 심중으로 몹시 고민하였으나,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하루는 한가히 앉아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갑자기 자원비장이 생각났다.

<그때 쫓아 버리고 3년 동안 한 번도 부른 일이 없고 또 아중(衙中)의 상하가

모두 업신여긴 터라 곤궁하였을 것은 당연하리라. 이러한 적악(積惡)의 소치로

그렇게 되었은 즉 짊어진 가하가 비록 3, 4만이라 할지라도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비로소 자원비장을 불렀다. 자원비장이 명을 받고 들어온즉, 감사는 위로하였다.

 

『한번 보낸 후 3년이나 되도록 공무에 사로잡혀 한번도 불러보지 못하였구나.

그대의 소득이 불과 50 금인데 그대의 고생은 말할 수 없을 것인즉,

나의 허물이 적지 않구나. 그대는 그 사정 잘 짐작하고 용서하라.』

비장은 두 손을 모아 잡고,

『황송하옵니다.』

이어,

『뵈온 즉 사또의 얼굴빛이 초췌하시니, 무슨 걱정이라도 있사옵니까?』

감사는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하였다.

『가히 三만냥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밤낮 이렇게 고민하는 중이로세.』

『그러하오면 어찌 비장들과 상의하지 아니하옵니까?』

『비장들이 각기 자기 일에 바쁘니 어느 여가에 감사의 가하 일을 돌보겠는가?』

『사또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비장의 소임은 사또를 도와

마땅히 꾀하여야 하므로 옛말에도 잊지 않사옵니까?

그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죽는다고, 그렇지 않을지면 허수아비 비장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옵니까? 소인에게 한 꾀가 있어 사또의 걱정을 나눌까 하나이다.』

감사는 대단히 기뻐하면서 곧 물었다.

『어떤 꾀인고?』

『사또께서 만일 칙고전(勅庫錢-국고금) 三만 냥을 주시오면 좋은 꾀가 있을까 하나이다.』

감사는 그 말을 따라 출급(出給)하였으나 마음속으로,

<자원비장이 본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니 중한 칙고를 헐어 주었다가

만약 뜻밖의 불칙한 일이 생기면 그 어찌 화상첨유(火上添油)가

되고 말지 않겠는가?> 생각하였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자원비장은 전주(全州) 어음을 하여 가지고 여러 비장과 이별한 후 담양(潭陽)을

가시 대를 샀다. 그리고는 배에 싣고 평양으로 오니 그 동안이 거의 한 달이나 걸렸다.

감사는 눈이 빠지도록 오늘이나 내일이나 기다리니 하루는 자원비장이 들어와

감사에 뵈었다. 감사는 반가와 못 견디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그리 늦었는가? 내 간장이 다 끊어져 버릴 뻔하였구나.』

『이제 사또께서는 아무 걱정 마옵소서. 그리고 내일은 특히 분부를 내리시어

연광정(연光亭)에 잔치를 베푸시고 각 읍 수령을 부르시어 이러 이러 하시면

꾀는 그 속에 있나이다.』

사또는 대단히 기뻐하고 다음날 곧 각 읍 수령을 연광정에 청하고 잔치를 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고 취흥이 도도하여졌을 때 감사는 갑자기 말하였다.

『평양은 본시 가아면 고을이요, 또한 올해는 풍년이 들었으니 민간에 영을

내려 집집마다 죽룡(竹龍)에 불을 켜고 태평성대를 축하하되, 그대들은 본읍에서

반령 한 후 그에 따라 각영(各營)에서는 본보기를 삼아라.』

 

여러 수령들은 그 명을 받들고 각기 돌아갔다. 영이 한번 내리자 성내 성밖

할 것 없이 백성들은 모두가 기뻐하며 칭송하였으나, 평안도는 대나무가

가는 데가 모두 적고 굽어서 등롱감이 되지 않았다. 대를 구하느라고

너도 나도 돌아다녔으나, 뜻같이 구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푸른 대를 실은

배를 본 사람들은 모두 <하늘이 내리신 대다>하고 서로 다투어 대를 사가지고

가는데 값의 대소를 묻지 않고 다만,

『천행으로 대를 구했다.』

라고들 하므로 어언간에 三만냥 본전에다가 거의 一○만냥이 되었다.

사또는 그런 줄은 모르고 칙고전을 준 후에 돈에 대한 아무 소식이 없으므로

근심 위에 의심이 더 하였다. 하루는 자원비장이 들어오더니 대를 사가지고

온 것과 三배의 이익을 얻은 것 등을 자세히 얘기하고 칙고전과 가하금을

갚은 증서와 七만냥 어음을 내어놓았다. 감사는 크게 기뻐하면서,

『그대의 신기(神機) 묘산(妙算)은 옛사람도 미칠 바가 못되는구나.』하면서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그러자, 자원비장은

『남은 돈 七만냥은 본댁으로 보낼까 하나이다.』한즉 감사는 펄쩍 뛰었다.

『이 무슨 말인고? 그대의 꾀로 내 빚을 갚았으니, 그 은혜도 갚기 어렵거늘

거기에다 남은 돈이라니 말도 아닐세. 다시 여러 말 하지말고 자네나 쓰게.』

자원비장은 재삼 굳이 사양하고 마침내는 똑같이 나누기로 하였다. 이어,

『소인은 먼저 돈을 가지고 가겠사오며, 남은 일은 서울 가서 말씀드리겠나이다.』

하니, 감사도 승낙하고 자원비장을 먼저 상경케 하였다. 감사가 서울에

돌아와 본즉, 七만냥 돈은 모두 자기 집에 와 있고, 몇 날 며칠을 두고

자원비장 오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부터 감사는

사람을 만나면 의례이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몇 해 후 감사는 적은 일로 계소(啓疏)를 만나 왕의 노여움을 샀다.

그의 관직이 삭탈 되고 문 밖으로 추방되었다.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어찌하지 못하고

문 밖의 안면 있는 하인 집에 가서 머물렀다. 그런 중에도 감사는 항상 자원비장을

잊지 않고 있더니 하루는 낯선 선비 한 사람이 들어와 인사를 하였다.

대감은 인사를 받으며 이상히 여겨 물었다.

『안면은 있소마는 댁은 뉘시오?』

『소인이 곧 자원비장이온데 오래도록 문안드리지 못하와 황송하기 그지없나이다.』

대감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사람아! 어찌 그리 무정한가? 자네를 보낸 후 그리는 마음을 스

스로 억제하지 못하고 밤낮 만나기를 원하였더니 천도가 무심칠 않아

드디어 만나게 되었구나.』하며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였다.

『많은 일에 얽매여 몸을 빼내지 못하와 이제와 겨우 틈을 얻게 되었사옵니다.』

『내가 쫓겨나 여기와 있으매, 아는 사람 하나 없더니 그대가 이제 왔구나.』

『대감은 여기에 계시지 마시고 소인과 함께 소인의 처소로 가심이 어떠하시오니까?』

『그대 말이 좋기는 하나 다만 목하에 치행할 돈이 없으니 어찌하는가?』

『그걸랑 염려 마시고 내일 소인이 인마를 주선하여 오겠사오니

청하옵건대 대감께서는 내행과 함께 가사이다.』

 

앞일은 알지 못하였으나 자원비장이 하자는 일이라 틀림이 있겠는가. 생각한

대감은 그가 하자는 대로 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비장은 말과 수레를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대감과 그 내행을 태워 가지고 길을 떠났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몰라

시종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역시 몰랐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인마가 준비되어 바꾸어 타고 갈 수가 있었다. 며칠을

그와 같이 가다가 한 곳에 이르니, 험한 산이 앞을 가로 막았다. 그곳에 이르러

비장은 타고 온 인마를 모두 보내고,

『이곳은 말도 없고 수레도 없사온 즉 대감께서는 내행과 함께 부득이 걸으셔야 합니다.』

대감 일행은 비장이 하자는 대로 비장을 따라 산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얼마 아니 가서 차츰 숨은 차고 다리가 아프며 발은 부르터서 자욱마다

죽을 힘을 다하여 천신만고 끝에 산을 너댓 개 넘었다. 이제는 더 가지 못하고

대감은 대감대로 내행은 내행대로 길가에 나가 떨어져 신음하면서

촌보를 옮기지 못하였다.

 

다시 얼마를 더 걸어가니 무수한 마차가 와 맞이하였다. 비장은 일행을

수레와 말에 태워 가지고 다시 갔다. 한 곳에 이르니, 골은 깊고 산은 높은데

큼직한 마을이 있고 고래등 같은 집들이 즐비하여 모두가 극히 풍성해 보였다.

대감은 놀라며 비장에게 물었다.

『종일 와도 사람 하나 못 보겠더니, 저 마을은 어디기에 저렇게 굉장한가?』

『이제 가서 보시옵소서』

어느 사이에 그곳에 이르러 본즉, 마을 한가운데 유독히 큼직한

고루거각이 있는데 모습은 서울의 재상의 집들에 손색이 없었다.

그 집 옆에도 또한 그런 집이 있었다. 그들 집에 들어가니 우마·노비가

넉넉하고 겉뿐만 아니라 내면도 윤택하였다. 대감은 이상히 여기면서,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비장에게 물었다. 비장은 곧 대감 일행을 그 집으로 모시고 그가 이 마을

개척하였다는 것과 거기 따른 여러 가지의 재미나는 얘기를 하고 이어

이 마을은 안심하고 피난할 만한 곳이니, 이 집은 대감님이 쓰라고 하였다.

대감은 꿈꾸다가 깨어나 사람 모양 놀라며 비장의 손을 잡고,

『이것은 다 그대가 준 것이니 형제인들 이보다 더 하겠는가?

우리가 오늘부터 의형제를 맺고 지냄이 어떤가?』

이로부터 비장과는 의형제가 되어 아무 일없이 편안히 지냈다. 어느 날 비장이 대감에게,

『오늘은 날씨가 청명하니, 높은 곳에 올라가 울화를 푸심이 어떠하시오니까?』

대감도 오래도록 아무 하는 일 없이 적적하던 터라 대단히 기뻐하고 함께 뒷산으로

쉬엄쉬엄 올라갔다. 한낮이 겨워서 산정에 올라가니, 사방이 확 트여 전망이 장관이었다.

대감은 정신 없이 전망에 사로잡혀 있는데, 비장이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키면서 먼저 말하였다.

『대감은 저 산을 아시나이까?』

『모르겠는걸』

『그러면 그 옆에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리었는데 그것은 보이시오니까』

『흡사 검은 안개가 끼어 해가 진 것 같구먼』

『세 산이 높게 솟은 것을 삼각산이옵고, 연기가 자욱한 곳이 서울이옵니다.

지금 왜놈들이 쳐들어 와서 팔도가 크게 어지러운 것 같은데 저것은 병진이옵니다.』

대감은 그 말을 듣고 놀랐다.

『그러면 어찌 여기는 무사하단 말인가?』

『여기는 지명이 삼척이온데 퇴계 선생이 계셨던 곳이옵니다. 당초에 왜놈들이

노략질할 양으로 평의(平義)란 밀정을 몰래 보냈는데 퇴계 선생이 그 놈을 잡아서

죽이려고 하셨더랍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시고 그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한 놈을 죽이더라도 조선의 八년 병화를 면할 수 없어 그런 것이 아님을 알아라.〉

그러므로 왜장이 발병에 앞서 부하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이 삼척을 범하면

반드시 예측하지 못할 우환을 당할 것이니, 특히 명심하라〉고 하셨다 하므로,

이곳은 피난할 만한 곳 이온데 아무도 모르옵니다.』

대감은 그의 달견에 더욱 놀랐다. 그리고 임진왜란 八년 동안을 무사히 지내고

평란 후에야 두 집은 서울로 올라와서 벼슬살이를 하였는데, 한 집은 백병사(白兵使)의

조상이니 곧 자원비장이고, 한 집은 연동(淵洞)이씨 집이라고 한다.

 

 
박동진-신임사또 부임행차

 

출처 : 演好마을
글쓴이 : 설봉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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