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타격천재' 장효조가 남긴 불멸의 기록들

含閒 2011. 9. 8. 10:54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극락왕생하소서


'타격천재' 장효조가 남긴 불멸의 기록들



[OSEN=이상학 기자] '전설의 타격천재'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이 향년 55세로 눈을 감았다. 

장 감독은 위암과 간암으로 한 달간 투병 생활을 하다 지난 7일 영면했다. 지난 7월23일 30주년 레전드 올스타전에만 하더라도 정정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인사했던 장 감독이기에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었고 모두가 애달파했다. 현역 시절 장 감독은 '방망이를거꾸로 들어도 3할 타자'라는 소리를 들은 최초의 선수였다. 그는 정확히 10년간 프로야구 선수로 뛰었고 이 기간 동안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들을 남겼다. 

▲ 통산 타율 0.331
장효조는 10시즌 동안 무려 8차례나 3할 타율을 기록했다. 1983년 삼성에서 데뷔와 함께 타격왕을 차지하며 7년 연속 3할 타율을 쳤다. 그가 기록한 통산 타율은 3할3푼1리. 300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3할3푼대를 쳤다. 그에 이어 양준혁이 3할1푼6리로 2위에 올라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짐작 가능하다. '타격기계' 김현수(두산)가 데뷔 후 6년간 2509타석에서 통산 타율 3할2푼6리를 기록 중이지만 롱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종범(KIA)도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5년간 통산 타율 3할3푼2리를 쳤지만 지금은 2할9푼7리까지 떨어졌다. 

▲ 타격왕 3연패
장효조는 1983년 첫 해부터 3할6푼9리라는 고타율로 수위타자에 올랐다. 당시 그의 나이 만 27세.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신인왕에 오르지 못했지만, 데뷔 첫 해부터 타격왕에 오른 건 그와 1993년 삼성 양준혁밖에 없다. 이후 장효조는 1985년(0.373)·1986년(0.329)·1987년(0.387)까지 3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했다. 빙그레 이정훈이 1991~1992년 2연패했을 뿐 누구도 3년 연속 타격왕을 하지 못했다. 통산 타격왕 4회. 양준혁(1993·1996·1998·2001년)만이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한 기록이다. 당분간 누구도 깨기 어려운 대기록이다. 

▲ 3할6푼대 3회
역대 프로야구 한 시즌 최 고타율은 1982년 원년 MBC 백인천이 기록한 4할1푼2리. 그 다음이 1994년 해태 이종범으로 3할9푼3리다. 3~4위는 모두 장효조가 갖고 있다. 1987년 3할8푼7리를 기록했고, 1985년에는 3할7푼3리를 때려냈다. 역대 한 시즌 최고타율 10위 안에는 장효조의 이름만 3차례나 들어가 있다. 1983년 기록한 3할6푼9리는 역대 8위에 해당하는 기록. 역대 10위에 2회 이상 이름을 올린 건 장효조가 유일하다. 그외 선수들은 1차회씩만 이름을 올렸다. 3할6푼대 고타율만 3차례나 기록할 정도로 정확성에서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 출루율 1위 6회
장효조의 진가는 배트로 공을 정확히 맞히는 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야구계에는 '장효조가 치지 않으면 볼'이라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나돌았다. 그만큼 선구안이 좋았다. 10년간 통산 볼넷 506개, 사구 27개. 1983년(0.475)부터 1984년(0.424)·1985년(0.467)·1986년(0.436)·1987년(0.461)까지 5년 연속 출루율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롯데로 이적한 1991년에도 4할5푼2리로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출루율 1위만 무려 6차례. 1989~1990년 해태 한대화를 제외하면 누구도 2년 연속 출루율 1위를 하지 못했다. 장효조를 제외한 최다 출루율 1위는 양준혁의 3회다. 

▲ 불멸의 야구인
지난해부터 삼성 2군 사령탑으로 활약한 장효조 감독은 그러나 7월 중순부터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7월28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어이없이 역전패한 삼성 2군 선수들은 "감독님이 보셨으면 큰 일 났을 것"이라며 반성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장 감독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그즈음 장 감독을 만난 삼성 류중일 감독은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더라. 가슴이 푹 들어가셨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7월16일 퓨처스 올스타전에서만 해도 정정한 모습이었던 장 감독은 "2군 선수들도 잠실구장에서 한 번 뛰어봐야 한다. 잠실구장 잔디 한 번 밟지 못하고 유니폼벗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퓨처스 올스타전이라 할지라도 잠실구장에서 한 번 치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군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하러 해외에 나가면 뭐하나. 잠실구장 같은 곳에서 한 번 뛰어야 선수도 큰다. 퓨처스도 멋진 곳에서 한 번 올스타전을 치러야 하지 않겠나"라고 역설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선수들을 생각한 불멸의 야구인이었다. 

waw@osen.co.kr

 

고 장효조 감독의 마지막을 함께 한 삼성

스포츠조선 | 이명노 | 입력 2011.09.09 11:20 | 수정 2011.09.09 14:44 |

 




'안타제조기' 등 여러가지 닉네임으로 불렸던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이 7일 오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9일 오전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치뤄진 발인식에서 고 장효조 감독의 장남 장의태씨가 영정을 운구하고 있다.
부산=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1.9.9.

'타격의 달인', '안타 제조기', '영원한 3할 타자'. 고 장효조 감독의 마지막은 쓸쓸하지 않았다.

9일 오전 9시 부산 동아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장효조 삼성 2군감독의 발인이 엄수됐다. 가족과 친지, 구단 관계자 등 백여명의 사람들이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장 감독이다. 수십명의 구단 관계자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전 8시50분에 시작된 발인예배는 고인의 생전 영상과 함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한시간 가량 진행됐다. 8일 광주 KIA전을 마치고 달려온 삼성 류중일 감독은 끝까지 그의 곁에 있었다. 굳게 다문 입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예배가 끝난 뒤 운구는 고인과 함께 후배들 지도에 열을 올렸던 2군 코치 6명이 맡았다. 고인이 투병생활을 시작한 뒤 실질적으로 삼성 2군을 이끌었던 양일환 코치는 "우리가 모신 분이다. 마지막 가는 길 역시 우리가 배웅해드리는 게 당연한 예의라 생각한다"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발인 전에 만난 양 코치의 눈시울은 붉었다. 불과 한 달 반 전만 해도 함께 2군 선수들을 이끌던 고인이었다. 양 코치는 "2군 선수들이 감독님을 너무 뵙고 싶어했다. 하지만 투병 사실이 알려진 뒤엔 이미 면회가 힘든 상황이었다. 나를 비롯한 2군 코치들도 오랜 시간 만날 수 없었다"며 "그때도 감독님은 선수들 이야기만 했다. 마지막까지도 야구만 바라보다 그렇게 가셨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안타제조기'등 여러가지 닉네임으로 불렸던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이 7일 오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9일 오전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치뤄진 발인식에서 삼성 2군 코치들이 고인을 운구하고 있다.
부산=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1.9.9.

류 감독과 삼성 김 인 사장은 운구 차량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마지막으로 고인을 기렸다. 운구차량의 문이 닫히고, 장례식장을 떠날 때까지 류 감독과 김 사장은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김 사장은 "일찍 가시기엔 너무 아까운 분이다. 이렇게 가시다니…"라며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서 구단 차원의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단 측은 장 감독의 별세 후 발생한 장례비용을 모두 지원했다.

고인의 마지막을 지킨 류 감독은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본지가 제언한 '장효조 타격상'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히 제정돼야 한다고 본다. 프로야구 30년사에 가장 위대한 타자 아닌가"라고 말했다.





'안타제조기'등 여러가지 닉네임으로 불렸던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이 7일 오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9일 오전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치뤄진 발인식에서 삼성 류중일 감독이 끝내 눈물을 보이고 있다.
부산=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1.9.9.

앞서 새벽 2시에는 세 대의 버스가 도착했다. 삼성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 현장 직원들을 태운 버스였다. 광주 KIA전을 마치자마자 바로 달려온 것. 코칭 스태프와 선수단은 고인이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보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문을 마친 뒤 빈소 안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하는 한 선수가 있었다. 장 감독과 2군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오정복이었다. 눈가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오정복은 "올해 2군에서 정말 많은 걸 가르쳐주셨다. 기술적인 면도 있지만, 야구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운 것 같다. 감독님은 내게 야구를 하는데 있어 노력 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걸 가르쳐주셨다"며 말 끝을 흐렸다.

평소 장난기 많은 김상수도 이날 만큼은 숙연했다. 경북고 재학 중 장 감독의 눈에 띄어 2009년 삼성에 1차 지명된 그다. 고인이 삼성 스카우트로 활약하던 시절 경북고를 찾을 때마다 장난을 많이 쳤다고. 그는 "어려운 분이라 일부러 장난스럽게 애교도 부리고 했던 것 같다. 날 삼성에서 뛰게 만들어준 분인데 이렇게 가셔서 너무 슬프다"고 했다.

유력한 신인왕 후보인 배영섭 역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배영섭은 "사실상 날 만들어주신 건 장 감독님이다. 지난달에 대구구장에 한 번 찾아오신 적이 있다. 당시 아프셨을 때인데도 티 하나 안 내셨다. 감독님이 '영섭아, 손가락 괜찮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 생각도 못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곧이어 "올해 1군에서 기회를 잡은 뒤에도 별 말씀 안하셨다. 내색을 잘 안하는 스타일이시다. 감사하다고 제대로 인사도 못드렸다"면서 "만약 신인왕을 타게 된다면 감독님께 바치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뛰어든 프로. 가슴 아픈 트레이드를 겪기도 했지만, 장효조는 역시 삼성맨이었다. '영원한 3할 타자'는 이렇게 삼성맨들의 배웅을 받으며 고이 잠들었다.

부산=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안타제조기'등 여러가지 닉네임으로 불렸던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이 7일 오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9일 새벽 부산 동아대학교에 차려진 고 장효조 감독의 빈소에 삼성 오승환 등 선수들이 헌화하고 있다. 삼성 선수단은 조문을 위해 8일 광주에서 KIA와의 경기를 마친 후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201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