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평생을 시신과 함께하기로 한 여자

含閒 2011. 6. 9. 10:06

존경합니다.

평생을 시신과 함께하기로 한 여자

이대 수석으로 입학 했다가 법의관이 된 정하린씨
6년 전액 장학금 받고 모교서 교수직 제의도…
"피비린내와 시신 냄새는 자랑스러운 훈장이죠"

조선일보 | 채성진 기자 | 입력 2011.06.09 03:15 | 수정 2011.06.09 08:27 |

 

"이건 갈비뼈를 자를 때 사용하는 립 커터(rib cutter)고, 저건 두개골을 쪼개는 정입니다."

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지하 1층 부검실 한가운데 놓인 3번 부검 테이블. 하늘색 덧가운을 입은 정하린(31) 법의관이 부검 도구를 하나씩 설명했다. 정씨는 지난 7일 급성 심장사로 추정되는 40대 남성을 이곳에서 부검해 감정서에 부검의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테이블은 정리돼 있었지만 피비린내와 시취(屍臭·시신이 부패하는 냄새)까지 지워지지는 않았다.

↑ [조선일보]법의관은 삶이 아니라 죽음을 다루는 의사다. 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실에서 여성 법의관 정하린(왼쪽)씨와 경희은(오른쪽)씨가 시신에서 적출한 장기를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향수를 만드는 사람에게서 향기가 나고 의사에게서 소독약 냄새가 나듯 법의관에게 시취가 풍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자랑스러운 훈장이 아닐까요"

정씨는 '엄친딸'이었다. 과학고를 졸업하고 지난 2000년 이화여대 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고, 6년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모교에서 교수직 제의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보장된 미래를 뒤로하고 국과수를 택했다.

정씨는 세계 최고의 여류 추리소설가로 꼽히는 영국 의 애거사 크리스티의 책들과 함께 자랐다. 추리소설 속에서 과학적·객관적 증거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다고 한다.

지난해 2월 첫 부검 참관 교육 때 인생의 진로를 결정했다. 그는 삶을 다루는 의사가 아니라 죽음을 만지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을 굳혔다. 정씨는 "그날 내가 평생 걸어가야 할 길을 부검 테이블 옆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은색 부검 테이블에는 고압선 감전사로 보이지만 타살 의혹이 제기된 16세 소년의 시신이 올랐다. 잠든 듯 누워 있는 시신에서 심장과 폐·간·신장·위장 등의 장기를 차례로 꺼내고 무게를 달았다. 법의관과 연구사들의 부검이 진행되는 1시간 동안 소년을 죽음으로 이끈 원인이 한 꺼풀씩 벗겨졌다.

올 초 병리학 전문의 시험을 통과한 정씨는 지난 4월 25일 국과수 법의관에 최종 합격했다. 의무사무관(5급) 신분증을 목에 걸게 됐다.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히고 망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법의관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변사체, 지독한 시취뿐만 아니라 엄청난 심리적 중압감과 싸워야 한다. 남자도 힘겨워하는 일이라 23명의 법의관 가운데 여성은 현역 최고참인 박혜진(42)씨와 박소형(34), 김민정(32)씨, 정씨와 같은 날 법의관이 된 동기생 경희은(31)씨 등 5명에 불과하다.

정씨는 "돈 잘 버는 전공을 선택할까 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했다. 곱게 키운 딸이 법의관이 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자 부모님은 "험한 일도 정도가 있다. 평생 시체에 둘러싸여 살 거냐"며 정씨의 마음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정씨는 "부검은 죽은 자를 통해 산 자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사인을 밝히는 것을 넘어 남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해답을 주는 일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부검에 들어가면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법의관의 제1원칙이지만 눈물이 쏟아질 때도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숨진 8개월 된 아기의 시신을 부검할 때가 그랬다.

"부검실로 들어가는데 아기 아버지가 부탁하더군요.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를 졸업하고 국과수에 여성 법의관을 지원해 근무하고있는 정하린과 경희은씨가 부검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평생을 시신과 함께 하기로 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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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수석으로 입학 했다가 법의관이 된 정하린씨
"피비린내와 시신 냄새는 자랑스러운 훈장이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하린(31)씨는 
급성 심장사로 추정되는 40대 남성을 
이곳에서 부검해 감정서에 
부검의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테이블은 정리돼 있었지만 피비린내와 
시취(屍臭·시신이 부패하는 냄새)까지 
지워지지는 않았다.

"향수를 만드는 사람에게서 향기가 나고 
의사에게서 소독약 냄새가 나듯 
법의관에게 시취가 풍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자랑스러운 훈장이 아닐까요"

정씨는 소위 말하는 '엄친딸' 이었다. 
과학고를 졸업하고 지난 2000년 이화여대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해 6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모교에서 교수직 제의도 받았지만 
그는 보장된 미래를 뒤로하고 국과수를 택했다. 
그는 삶을 다루는 의사가 아니라 
죽음을 만지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을 굳혔다. 

정씨는 
"그날 내가 평생 걸어가야 할 길을 
부검 테이블 옆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은색 부검 테이블에는 
고압선 감전사로 보이지만 
타살 의혹이 제기된 16세 소년의 시신이 올랐다. 

잠든 듯 누워 있는 시신에서 
심장과 폐·간·신장·위장 등의 
장기를 차례로 꺼내고 무게를 달았다. 

법의관과 연구사들의 부검이 진행되는 
1시간 동안 소년을 죽음으로 이끈 
원인이 한 꺼풀씩 벗겨졌다.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히고 
망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법의관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변사체, 
지독한 시취뿐만 아니라 
엄청난 심리적 중압감과 싸워야 한다. 

남자도 힘겨워하는 일이라 
23명의 법의관 가운데 여성은 5명에 불과하다.

"돈 잘 버는 전공을 선택할까 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며 
"부검은 죽은 자를 통해 
산 자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검에 들어가면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법의관의 제1원칙이지만 
눈물이 쏟아질 때도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숨진 
8개월 된 아기의 시신을 부검할 때가 그랬다.
"부검실로 들어가는데 아기 아버지가 부탁하더군요.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 정경열 기자 (조선일보 2011.0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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