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회장의 `퍼시몬`부터 화이트 드라이버까지
● 화이트 헤드 출시로 본 '드라이버 변천사'
감나무에서 메탈·티타늄으로
헤드 크기 150cc에서 460cc로
新기술·소재 한계 … 디자인 승부
입력: 2011-01-04 17:21 / 수정: 2011-01-05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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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과 함께 > 고 이병철 삼성 회장(오른쪽)이 1980년 봄 딸 인희(가운데), 명희(왼쪽)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안양골프장 3번홀에서 퍼시몬 드라이버로 티샷을 하고 있다./자서전 '호암자전'에서 발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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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버는 나무 소재인 '우드'에서 금속의 '메탈'로 바뀌면서 가장 큰 변화의 역사를 겪었다. 과거에는 드라이버를 감나무로 만들어 '퍼시몬'이라고 불렀다. 골프 마니아였던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좋은 감나무 재료를 직접 구해 드라이버를 주문 제작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 회장은 "감나무는 캐나다 북쪽산이 최고급인데 그중에서도 양쪽으로 가지가 갈라지는 부분의 재질이 가장 좋다"고 말하곤 했다.
당시 프로들은 헤드 크기가 솔방울만한 나무로 만든 드라이버를 사용해 270야드 안팎을 쳤다. 드라이버 소재로 메탈이 등장한 것은 1979년이다. 테일러메이드를 설립한 게리 아담스가 스틸로 만든 첫 메탈 우드를 선보였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헤드 크기는 그대로 둔 채 나무만 메탈로 바꾸다 보니 기능성에서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메탈 우드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것은 1991년 캘러웨이에서 나온 빅버사(Big Bertha) 드라이버부터였다. 나무 헤드보다 크기를 확대하면서 일대 붐을 일으켰다. 그 시절 일반적인 드라이버의 헤드 체적은 150㏄였으나 빅버사는 190㏄였다. 빅버사 드라이버 헤드는 1997년에 290㏄까지 커졌으며 이후 '그레이트빅버사''빅버사Ⅱ''빅버사 454' 등 다양한 이름으로 진화했다.
이어 메탈보다 가벼운 티타늄 등 복합소재가 등장하면서 또 한차례 기술혁신이 일어났다. 헤드 무게를 가볍게 하면서 헤드 크기는 더 키울 수 있었다. 이른바 '스위트스폿'(sweet spot · 클럽헤드의 유효타구면)의 면적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일반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변화에 견줄 만한 격변이었다.
변화의 시기에 시장을 리드하는 선도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테일러메이드는 2001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헤드 체적 300㏄를 갖춘 '300시리즈'를 선보이며 드라이버 시장의 '애플'로 등장했다. 이후 헤드의 외형은 꾸준히 커져 현재의 460㏄가 일반화될 정도로 대형화됐다.
새로운 드라이버는 프로들의 거리증대에 기여했다. 드라이버샷 거리증대로 인해 골프장들은 코스 길이를 늘리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으나 한계에 부딪쳤다. 급기야 세계 골프투어의 룰을 규정하는 미국골프협회와 영국왕립골프협회가 나서 드라이버 헤드의 반발력을 억제하고 헤드 체적도 460㏄로 제한하는 등 규제를 가했다.
이 규제는 드라이버 시장에 큰 변수로 작용했다. 신소재와 신기술 개발의 벽에 부딪친 클럽 메이커들은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기 시작했다. 2006년 나이키골프의 사각헤드 드라이버를 필두로 디자인 경쟁이 본격화됐다. 사각 헤드에 이어 삼각,오각,반원 헤드 등 다양한 실험이 이어졌다. 골퍼들이 직접 튜닝할 수 있는 테일러메이드의 'r7드라이버'나 헤드와 샤프트를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일명 '빼박이' 클럽도 디자인 변형의 일종이다.
최근에는 어떻게 변했을까. 모양도 바꾸고 탈부착도 해보고 스크루 드라이버로 조작도 가능해진 드라이버는 모양 변형과 함께 색상 변화로 승부를 걸고 있다. 노랗고 빨간색을 화려하게 칠한 드라이버가 등장하더니 급기야 올해는 하얀색 헤드가 나타났다.
테일러메이드는 헤드의 크라운(윗부분)을 하얀색,헤드페이스를 검은색으로 만든 신제품 드라이버 'R11'을 다음 달 시장에 내놓는다. 이 드라이버는 지난 3일부터 미국 골프채널을 통해 대대적인 광고에 들어갔다. 로프트를 조절하고 페이스앵글을 튜닝할 수 있도록 한 점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광고문구는 다른 어느 때보다 차별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 광고는 미국 PBS 어린이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의 'one of these things is not like the other(이들 중에 하나는 다른 것들과 달라요)'의 노래를 빌려 기존의 검은색 드라이버 가운데 흰색 드라이버를 보여주며 달라진 모습을 부각시킨다.
테일러메이드 소속 프로들은 이번 주 열리는 PGA투어 개막전 '현대토너먼트오브챔피언스'부터 하얀색 R11드라이버를 사용한다. 미국 내 판매 가격은 399달러로 책정됐다. 테일러메이드는 2011년형 버너 슈퍼패스트 드라이버의 헤드도 화이트로 바꿔 출시했다.
화이트 드라이버는 지난해 코브라골프에서 먼저 내놨다. '화이트 ZL드라이버'라는 이름의 이 드라이버는 잉글랜드 출신 프로골퍼인 이안 폴터가 지난해 HSBC챔피언스에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UBS홍콩오픈에서는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 드라이버는 헤드 전체를 화이트컬러로 채택했다.
드라이버의 변화가 디자인에 집중되면서 기능 개선이 과거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고객의 지갑만 유혹하는 클럽메이커들의 상술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똑바로 길게'를 추구하는 골퍼들에게 신제품 드라이버만큼 심리적 만족감을 안겨주는 것도 없다. 날이 갈수록 녹슬어가는 스윙과 파워가 따끈따끈한 새 드라이버를 만났을 때 어떤 레슨보다 빛나는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드라이버의 변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