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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의 상징 에메랄드 사원)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전에 가 보아야 할 50곳 입니다. 순위 42위 태국의 방콕. | ||
(차오프라야 강가에 있는 새벽 사원) 방콕. 타이어로는 끄룽텝(Krung Thep:천사의 도시)이라고 한다. 원래 방콕은 대안(對岸)에 있는 톤부리시(市)의 한 지구에 지나지 않았으나, 예로부터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국제적으로 방콕이 끄룽텝을 대신하게 되었다. 사이암만(灣)으로 흘러드는 차오프라야강(江)의 하구에서 약 30km 상류의 왼쪽 연안에 있으며 오른쪽 연안의 톤부리시를 편입하여 수도권을 이루었다. 기후는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에 속하여 1년 중 가장 더운 4월의 평균기온이 30℃, 최저기온인 1월은 25.6℃로 연교차가 불과 4.4℃이며, 1년 내내 고온이 계속된다. 한편, 일교차는 하루에 최대 10.2℃나 된다. 연강수량의 대부분은 5∼10월의 우기에 집중되며, 이 기간에는 남쪽 해상에서 불어오는 남서 몬순의 영향을 받는다. 11∼2월의 북동 몬순의 계절에는 강수량이 극히 적고, 대기는 서늘하고 건조하여 1년 중에서 가장 쾌적하다. 3∼4월에는 지배적인 계절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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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의 시가지) 이는 방콕이 차오프라야강의 굴곡부에 위치하여 방위하기 편리한 데다가 하구에 가까워서 외국무역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 ||
(방콕 대교) 오늘날 방콕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 있어서 타이의 중심이다. 가령 행정에 있어서는 방콕에 있는 내무부가 지방행정을 통할하고 있으며, 지방공무원도 중앙에서 임명된다. 전국적인 상거래도 방콕에서 행해지며, 공장건설도 방콕과 그 주변지역에 집중해 있다. 교육에 있어서도 1950년 말까지는 대학이 방콕에만 존재하였다. 또 승단(僧團)의 조직도 지방행정을 본따서 방콕을 정점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이와 같은 방콕의 중앙집권화를 반영하여 통신·운수도 이곳을 기점(起點)으로 전국에 방사상을 그리며 뻗어 있다. 방콕은 타이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중심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ESCAP(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 ECAFE(유엔 아시아 ·극동 경제위원회)를 비롯한 유엔 산하의 여러 기구와 SEATO(동남아시아 조약기구) 등의 국제기구가 이곳에 있다. 이러한 방콕은 근대에 와서 경제발전과 더불어 크게 변모하였으며, 근대적인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금제품과 잡화류, 섬유제품 등의 상점이 즐비한 야와라트가(街)와 삼펭가는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해 왔으나, 근대적인 도시계획에 의한 공업 및 도시화가 발전함에 따라 남부의 차오프라야강 연안에는 제재·정미·기계 공장이 들어선 공업지대로, 동부의 방카피 방면에는 공공기관과 주택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 오랫동안 시내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던 사통팔달의 클룽(운하)도 최근에는 자동차의 보급에 따라 매립되어 점차 그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급격한 팽창에 따라 주택,교통,대기오염 등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문제가 많이 야기되고 있다. 그 밖에 대리석으로 만든 대리석사원, 누운 석가상이 있는 왓 포, 방콕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왓 아룬 등이 있다. | ||
(왓포 사원) 폴론나루와로부터 66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시기리야는 가파른 경사길을 따라 370미터의 화강암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사자 바위(Lion's Rock)"가 사방으로 둘러싸인 밀림지대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기원전 2세기중엽, 스리랑카 남쪽지역인 시기리아는 인도남쪽의 침략자로부터의 지배하에 있었다. 기독교가 수립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서기 4세기말까지 스리랑카를 "람바카나(Lambakarna)"왕조가 이끌었다. 람바카나왕조는 관개시설에 대해 관심을 갖고 투자하기 시작했다. 람바카나왕조의 마하센(Mahasen 3세기때 왕)왕은 거대한 저수지의 축조를 시작하였고, 이후, 그의 아들 카사파 1세(Kassapa 1; 477-495)에 의해 죽음을 맞히했던 다투세나(Dhatusena)왕 또한 저수지 축조에 심혈을 기울렸다. 부왕(父王)을 살해한 패륜의 왕 카사파 1세(Kassapa 1; 477-495)는 사자바위위에 기원전 475년에 요새겸 성채를 건축하게 된다. 정상에는 카파샤왕의 연회장, 목욕장, 왕궁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Anuradhapura 아누라다푸라 | ||
(방콕의 강변의 수상가옥) 인구 99,000명으로 스리랑카 최초의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는 B.C. 500년경 수립된 고대도시로써, "아누루따(Anurudda)"라고 일반적으로 불려진다. 스리랑카 불교유적지의 핵심으로 일컫어 지고 있는 이 도시는 기원전 5세기부터 약 1,500년간 스리랑카의 수도였던 고대도시로서, 2000년 이상된 불교 유적이 무수히 많다. | ||
(방콕의 명물 스피드보트) 방콕의 왕조 역사. 정식으로는 끄룽텝왕조, 창립자의 이름에 연유하여 차크리왕조, 타이의 국사상의 표현으로서 라타나코신왕조라고도 한다. 아유타야왕조의 뒤를 이어, 피야타크신이 톤부리를 수도로 톤부리왕조(1767∼1782)를 개창하였으나 폭정으로 처형되고, 1782년 무장(武將) 차오프라야 차크리가 즉위하여 라마 1세 푸타요트파출랄록(재위 1782∼1809)이라 칭하고 방콕을 수도로 왕조를 창시하였다. | ||
(아유타야 왕국의 유적) 지금까지 9대 200년에 이르나, 왕조의 중심은 근대화의 선구자가 된 라마5세 출랄롱코른(재위 1868∼1901)이었다. 계몽적 전제왕정(專制王政)으로서 노예제를 폐지하고, 유럽의 행정제도를 도입하여 사법 ·행정을 개혁하였으며, 우편 ·전신 ·철도를 설치하고 많은 유학생을 해외에 파견하였다. 한편 유럽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하여 영토할양의 희생을 무릅쓰면서도 독립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타이인의 숭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뒤 1932년 혁명이 일어나 입헌국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 ·독일 ·이탈리아의 추축국(樞軸國)측에 참전하였고, 전후에는 미국과 정치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 ||
(방콕 근교 빠따야 비치 사이에 있는 농눅빌리지. 코끼리쇼와 악어쇼로 유명한 테마파크) | ||
(방콕 근교 플로팅 마켓 전경 방콕 중심지 차오프라야강의 새벽시장과는 달리 낮에만 열리는 상설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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