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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문화회식의 일환으로 요리실습 체험을 하러 학원에 갔다가 솜털이 보송한 남자 고교생들을 봤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름에 손이 데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요리에 열중하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웠지만, '엄마가 알면 죽어요. 지금 독서실에 있는 줄 알거든요.'라는 말을 듣는순간 가슴에 훅, 흙 한줌이 뿌려지는 느낌이더군요.
요리하는게 그처럼 설레고 재미있다는데, 단지 부모라는 이의 취향과 비전에 합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솜털 같은 한 영혼을 옥죄는 행위는 명백한 폭력입니다.
부모의 뜻에 딱 맞춰 성장한 아이가 부모 되어 하는 일이, 다시 자기 자식에게 눈물겨운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런 일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라면 우리 삶이 너무 쓸쓸하지 않은지요.
그 나이엔 누구도 확실한 자기 설계도를 가지지 못합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부모가 그 나이였던 때를 돌아보면 자명합니다.
그날 그곳에서 땀 흘리며 실습을 하던 아이들 모두가 훗날 요리사가 되는 건 물론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미리 예단하고 윽박지를 이유는 하나도 없지요. 아니면...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빠른 때다' 류의 말들을 인생의 중요한 잠언처럼 주고 받으면서 실상은 누군가의 호기심과 몰두를 돌이킬 수 없는 일처럼 취급한다면 이율배반적입니다.
남들의 강요에 의한 것이든 스스로의 자기 논리에 의한 것이든 부모님 몰래 요리 공부하는 아이처럼 힘겹고 모호한 시간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어깨를 다정하게 다독이며 전합니다.
아니면... 다시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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