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가면서(在生活裏)

노부부의 만두집사랑

含閒 2009. 10. 20. 16:13

 

 

 노부부의 만두집사랑

  


우리 부부는 조그마한 만두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 중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우리 가게에 나타나는 겁니다.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 ! ! 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합니다.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다!! ! ! 눈이 마주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대체 저 두 노인들은  어떤 사이일까?

나는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습니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요?

 

 

부부가 무엇 때문에 변두리  만두 가게에서 몰래 만나요?

허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진 않겠지. 부부 같진 않아.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왜 그런 거 있잖! ! 아요.

서로 열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혀  이루지 못한 사랑.

 

그런데 몇 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  서로에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서로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재회를 한단 말이지?


아주 소설을 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상상이 맞을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눈빛이 두 노인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지난 번 보다 아주 못하신데요? 아내 역시 두 노인한테 쏠리는  관심이 어쩔 수 없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닦으며  어깨를 들썩거렸습니다.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놔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나갔습니다.

나는 두 노인이 거리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 닭이 병아리를 감싸듯  감싸 안고 가는 할아버지.  두 노인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아내 말대로 첫사랑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어머? 비가 오네.  여보, 빨리 솥뚜껑 닫아요.  그러나 나는 솥뚜껑 닫을 생각보다는  두 노인의 걱정이  앞섰습니다.  우산도 없을 텐데…

다음 주 수요일에 오면 내가 먼저 말을 붙여 물어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가게에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처음엔 몹시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노인에 대한 생각이 엷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 ! ! 게 사람인가 봅니다.  자기와 관계 없는 일은  금방 잊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날, 정확히 3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난 겁니다.

좀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영락없이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조금 웃어보였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하는 겁니다.

나와 아내는 들고 있던 만두 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랬습니다.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너무 안타까워서. 두 분은 부부인데! !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 아들 집에,  할머니는 목동의 작은 아들 집에  사셨답니다.

 

 "두 분이 싸우셨나요?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우리가 싸운 게 아니라 며느리들끼리  싸웠답니다.  큰 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나만 부모를 모실 수가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쪽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 분씩 모시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일주일에 한번씩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만난 거랍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먼저 돌아 가셨답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우리는 또 다시 천국에선 같이 살 수 있겠지.!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습니다.!

할아버지 뺨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무너지지 마라.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유대인을 학살할 때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독일군에게 있는 인간의 양심이었다.

그 양심을 없애려고 독일 군부는 유대인들을 짐승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3만 명이 넘는 수용소에 화장실을 한 개만 만들었다.


할 수 없이 유대인들은 아무 데나 배설했고,

배설물과 어우러진 인간의 모습을 보며

독일군의 양심은 점점 사라져갔다.


결국 인간다움이 없어진 유대인이 짐승으로 보이면서 살인은 쉬워졌다.


수용소 생존자들은 대개 인간다움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매일 4시 반이 되면 수용소에서 한 사람마다

따뜻한 물 한 컵씩을 제공했다.


어떤 사람은 그 물을 받아 조금 먹고 나머지 물을 아껴 세수했다.

그리고 최후의 남은 물을 조금 사용해 옷 조각으로 이빨을 닦고

수용소에서 발견한 유리조각으로 깨끗하게 면도를 했다.

내일 죽어도 인간다움은 잃지 않겠다는

인간 존재의 몸부림이었다.


독일군에게 가장 무서운 항거는 그런 인간다움의 몸부림이었다.

‘짐승 죽이기’는 쉽지만 ‘인간 죽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독일군은 유대인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동물이 되기를 원했지만 끝없이 인간다움을 위해 몸부림친 사람들은

죽더라도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죽기를 원했다.

인간다움의 선언이 있는 곳에 생명의 길이 있다.

매일 일정 시간이 되면 독일군은 처형자들을 골라냈다.

그때 잘 면도된 얼굴이 보였다.

여전히 더럽지만 분명 인간의 얼굴이었다.


그들은 처형자로 선택되지 않았다.

무자비한 나치도 짐승은 쉽게 죽일 수 있었지만

인간은 쉽게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포기하면 남이 나를 붙들어주지 않는다.

단점이 많아도 자기의 가능성을 믿고 꿈을 잃지 말라.

단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 그 단점이 장점으로 변한다.


스스로 포기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도 그를 귀한 인격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러고 나면 그의 가치는 나락으로 끝없는 추락을 하게 된다. - 修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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