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하일(삼도헌의 한시산책)
이 정자는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안에 있는 한학촌의 익청정입니다
산정하일(山亭夏日 ; 산속 정자의 여름날)
고병(高騈)
綠樹濃陰夏日長(녹수농음하일장) : 푸른 나무 짙은 그늘 긴긴 여름날 樓臺倒影入池塘(누대도영입지당) : 누대 그림자 연못에 거꾸로 비치네 水晶簾動微風起(수정렴동미풍기) : 수정 발 움직이자 살랑바람 일렁이고 滿架薔薇一院香(만가장미일원향) : 시렁가득 장미 피어 뜰 안이 온통 향기롭네
* 산정 (山亭) : 산 속에 지어 놓은 정자. 별장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요즘 초복이 지나도 더위는 숙지지 않는다. 여름날 하루해는 덥고 지루하지만 무성한 나무가 드리우는 짙푸른 그늘은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더구나 숲속에 연못이 있고 그 연못가에 지어진 정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자에 앉아 수정발을 드리우고 있는데 살랑거리는 바람타고 장미향기 밀려온다면 금상첨화이리라.
장미는 원래 유럽에서부터 코카서스에 걸쳐 자생하던 것과 중국이 원산지인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지금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된 것은 이것들을 교배하여 개량한 것들이라고 한다. 장미(薔薇)는 벽이나 담장을 의지하고 피는 재래종의 찔레 같은 덩굴식물이다. 장미를 노래한 시는 많지만 중국 당나라 시인 고병(高騈)의 ‘산정하일(山亭夏日)’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장미를 빼고는 서양 문학을 말하는 것은 매화를 빼고서 동양 문학을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장미의 색깔별 꽃말은 흰색은 순결, 노랑은 위엄, 빨강은 정열 그리고 분홍은 사랑이다. 아마 고병의 별장엔 색색의 장미가 드리워져 여름분위기를 돋구고 있었을 것 같다.
이 시에 나오는 여름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고요하고 한적하다. 산속의 푸른 나무와 그 나무가 만드는 짙푸른 그늘, 작렬하는 일광, 누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연못, 산들바람에 흘들거리는 수정발, 뜰 가득 향기를 풍기는 장미꽃들이 있는 아름다운 피서처이다. “하루라도 맑고 한가하면 그 날의 신선[一日淸閑 一日仙)”이란 말이 있다. 바로 고병의 정자와 같은 곳에서 유유자적하게 보내노라면 그런 맛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 복작거리는 해수욕장이나 인산인해를 이루는 명승지를 찾기보다 이런 곳에서 잡사를 내려놓는다면 그 청량감은 더할나위 없으리라. 시원한 여름 보내시길...
삼도헌 동창아래에서 정태수.
|
'한시 산책(漢詩散步)' 카테고리의 다른 글
采蓮曲 (0) | 2009.08.09 |
---|---|
반달(詠半月) (0) | 2009.08.01 |
왕유의 과향적사 (0) | 2009.07.01 |
홍유손의 제강석(삼도헌의 한시산책 ) (0) | 2009.06.15 |
登幽州臺歌 陳子昻 (0) | 2009.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