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의 분매가 답하다(삼도헌의 한시산책 409)
통도사 홍매
盆梅答(분매가 답하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
聞說陶仙我輩涼
待公歸去發天香
願公相對相思處
玉雪淸眞共善藏
도산 내 벗이 서늘하게 있다 하니
공이 돌아오거든 천향을 피우리라
원컨대 공이시여 마주 앉아 생각할 제
옥설의 맑고 참됨 모두 고이 간직하리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매화피는 계절이면 조선시대 퇴계 이황 선생이 떠오른다. 유난히 매화를 아끼면서 직접 지은 매화시로 매화시첩까지 만들었던 선생의 매화사랑은 인구에 널리 회자된다.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전(1570.12.4.)에 자신의 불결한 모습을 매화분재에게 보이기를 싫어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하시고, 돌아가시기 직전(1570.12.8.아침)에 “매화분재에 물을 주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한다. 선생께서는 자신이 지은 매화시 91수를 모아 《梅花詩帖 : 매화시첩》이라는 독립된 시집(詩集)을 유묵으로 남겼다. 매화시는 모두 75제 107수(시첩 62제 91수)로 단일 소재로는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매화는 세속의 티끌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마음과 더러운 풍속에 굴하지 않는 절개와 봄날의 희망을 상징하는 꽃이다. 선비들이 매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제일 먼저 꽃망울을 틔워 봄을 알리는 전령사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이 시에서 절의(節義)만으로 매화를 대하지는 아니하였고, 고상한 인격체의 표상으로 대하였다. 옥같이 희고 맑은 매화꽃을 통해 깨끗하고 참된 세계를 찾고 즐기려는 도학자의 시심을 보여준다.
이황(1501 ~ 1570)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교육자, 시인.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퇴도(退陶), 도수(陶叟)이다. 이언적의 사상을 이어받아 영남학파의 중추적 학자가 되었으며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가 되었다. 23세에 성균관에 유학하여 27세부터 각종과거에 응시하시다가 34세에 대과에 급제하여 벼슬길로 나간다. 10년간 벼슬길이 순탄하여 성균관사성(종3품)이르러 야인생활의 뜻을 품고 52세까지 3차례나 소환 당하며 야인생활로 접어드는 과도기를 맞이한다. 48세 때 스스로 외직을 구하여 단양과 풍기군수 역임. 52세 때 홍문관교리에 제수되어 다시 조정에 나가서 성균관 대사성까지 올랐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퇴하여 이후부터 반복되는 임명과 사직으로 형식적으로는 70세(판중추부사)의 나이로 별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삼도헌의 한시산책 409, 2017, 3, 4일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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