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原 華城 Suwon Hwaseong Fortress 世界文化遺産 1997年 指定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선왕인 영조의 둘째왕자로 뒤주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수원의 팔달산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1794년 1월에 착공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수원화성은 축조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1975~1979년까지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정조대왕 상
八達門과 옹성(甕城) (보물 제420호) 팔달문은 수원성의 남문으로 규모와 형태면에서 중국의 장안문과 거의 같다
八達門과 옹성(甕城) (보물 제420호)
長安門 이 문은 화성 4대문의 북쪽 문으로서 정조 18년(1794년) 건축되었으며
중국의 역사에서 장안은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문자로 이를 정조가 북문의 이름으로 정해 태평성대를 구가한 중국 漢,唐의 서울이었던 장안의 영화를 화성에서 재현하려 이름을 장안문이라 하였다.
華西門 (보물 제 403호) 화서문은 화성의 서쪽에 있는 문으로 조선 정조 20년(1796년)에 완공되었고 동쪽에 있는 창룡문과 같은 규모이며 문을 보호하는 옹성도 같은 형식이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원형을 유지하 여[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華西門
華西門
蒼龍門 동문인 창룡문은 규모도 작고 형태도 간략한 편이다.
조선 정조 19년(1795년)에 건립되었다.
蒼龍門
西將臺 장수가 좌정하여 군사를 지휘하는 장소이다. 1795년(정조 19년) 원행시에 정조는 현륭원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훈련과 야간 훈련을 시행하였다
西將臺
東將臺
華陽樓 (西南閣樓 )
西弩臺
西南暗門
西北空心墩 서북공심돈은 우리 나라에 유일하게 조성된 예로서 수원성을 인상깊게하고 수원성축조를 주도한 18세기 지식인들의 정신세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건물이다. 서북공심돈은그 독특한 구조로 인하여 수원시의 심볼 마크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西北空心墩
東二砲樓
東南角樓
烽墩 (봉화대) 봉돈은 파수를 설치하여 정찰과 정보,정탐의 임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육지로는 용인의 석성산 육봉과 연락하고 바다로는 흥천대의 해봉과 연락하였다.
화홍문 (華虹門) 화홍문은 수문쪽으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는 목적으로 만든 주각으로 아름다운 일곱개의 무지개 홍예 돌다리 위에 문루를 세웠으며 홍예다리 위에는 빗물이 배수되도록 7개의 누조를 만들었다
訪花隨柳亭 방화수류정이란 '꽃을 찾고 버들을 쫓는 정자' 라는 뜻으로
각루의 기능을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절벽아래의 용연과 함께 경치 또한 좋은 곳으로 휴식처일 뿐만 아니라
유사시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감시하기 적합한 곳이다.
訪花隨柳亭
訪花隨柳亭
華城行宮
華城 夜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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