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에 이성 친구를 사귄다면 젊고 탄력 있는 연인이 좋으시겠어요, 아님 동년배를 사귀시겠어요?” 정신과 의사는 좋은 직업이다. 고위 공무원이나 대기업 임원 상대의 “기왕이면 젊은 연인”이다. ‘젊음’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과연
몸 건강하게 오래 살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 우울장애 등 진단 가능한 정신병리를 가진 사람들만 심리적 고통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정상 심리 안에도 고통과 괴로움은 존재한다. 사람이 겪는 심리적 고통의 핵심 키워드를 세 개만 뽑는다면, 일· 사랑· 죽음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이 중 일과 사랑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반면에 죽음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무심하지 않나 싶다. 너무 어렵고 두려운 주제이기에 애써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곧 100세를 바라보는 남성 어르신 한 분이 클리닉을 찾아오셨다. 누가 봐도 일·사랑 모두에서 성공적인 삶의 모델로 손색이 없는 분이다. 현재도 건강하게 자기 발로 걸어다니며 일까지 하고 계신다. 말씀을 나눠보니 두뇌활동의 총명함도 여전하셨다. 그런데 이 어르신은 동갑내기 아내가 세상을 뜨면서 각종 걱정에 사로잡혔다. “치매에 걸리는 게 제일 두렵소. 주변 사람도 못 알아보고, 이상한 행동을 하던 친척이 자꾸 생각난단 말이오. 혹시 나, 치매 걸릴 위험이 큰 건 아니오?” 진료를 받고 평정심을 되찾으신 뒤 이 어르신과 나눈 대화가 잊혀지지 않는다. “윤 선생, 딱 한 가지만 빼고 우울증 증세가 다 좋아졌어요.” “이전보다 기력이 좀 떨어진다오. 앞으로 10년은 더 왕성하게 살아야 할 텐데….” 100세를 앞두고도 기력 걱정을 하며 죽음을‘10년 뒤의 일’로 돌리는 그분의 모습을 보니, 일 사랑에서의 성공이 죽음에 대한 문상을 가면 ‘호상(好喪)’이란 말을 종종 듣는다 호상이라…. 가족들은 몰라도 본인에게 ‘호상’이 있을까? 나이가 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지나온 삶에 만족하면서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은 그게 쉽지 않다. 삶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지고, 타협을 모르는 고집도 더 늘게 된다. 심리적인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건강·재산·가족에 대한 걱정을 한 보따리 들고, 클리닉을 찾아온 분들께 요즘 내가 묻는 질문이다. 대체로 50대는 70~75세를, 60대는 85~90세를 얘기한다. 90대는 110세를 말하고 말이다. 실제 원하는 수명이라기보다, 단순히 죽음을 10~20년 뒤로 내 다음 질문은 “만약 한 달밖에 못 사는 시한부 인생이라면 지금 뭘 하겠느냐”다.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걱정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 ‘삶의 소멸’인 죽음에 대한 걱정은 많으면서, 보낼 것인지에 대해선 콘텐트가 없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등 뒤에 남겨둔 채로 계속 도망치려고만 하면, 등 뒤의 죽음을 내 눈앞으로 가져와 적극적으로 대면할 때, 처음에 꺼냈던 ‘젊은 연인’ 얘기로 돌아가 보자. 노년기의 젊은 연인은 죽음에 대한 공포의 그림자를 키운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잡힌 동년배의 배우자·연인이 젊음을 되찾아준다는 수많은 ‘항노화’ 마케팅도 되레 노인들을 더 피곤하고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잘 늙어가는 것, 한걸음 나아가 잘 죽는 것이 행복의 정답이다. 사람은 죽음을 생각할 때 가장 순수해지고, 삶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진다. “전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오래 살 생각도 하지 않아요. 오늘 저에게 가장 소중한 일들을 하며 그냥 살아가고 있어요.” 한 뇌종양 환자의 고백에서 ‘웰다잉’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당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딱 일주일뿐이라면 오늘 무슨 일을 하고, 삶의 내용은 충실해지고, 죽음에 대한 공포는 줄어들 테니. (윤대현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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