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나서(讀書後)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含閒 2011. 4. 25. 10:36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이해인 쓰고 황규백 그리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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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꽃이 진 자리에도 여전히 푸른 잎의 희망이 살아 있다! 

암 투병과 상실의 아픔으로 빚어낸 이해인 수녀의 희망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암 투병과 사랑하는 지인들의 잇단 죽음을 목도하는 아픔의 시간을 견뎌내며,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삶을 긍정하는 저자의 깨달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이 보이는 것처럼,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에 비로소 일상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이 보이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일상을 담은 칼럼들과 오랜 시간 벼려온 우정에 대한 단상들, 수도원의 나날, 누군가를 위한 기도와 묵상,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추모의 글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세계적인 판화가 황규백 화가의 그림이 함께 실려 있어 이해인 수녀의 글에 깊이와 정감을 더해준다. 

☞ 북소믈리에 한마디! 
저자는 이번 산문집에서 특히 자신이 직접 겪은 몸과 마음의 아픔을 담담하게 풀어놓으며,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희망은 살아 있다고 역설한다. 수도자로서, 시인으로서, 개인으로서의 삶과 사유를 통해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구체적인 치유의 메시지를 전한다. 첫 장에는 서문 대신 한 장의 꽃편지가 실려 있는데, 이 책을 위해 글을 써주겠다는 약속을 뒤로한 채 작고한 고(故) 박완서 작가의 편지다.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박완서 작가의 편지로 서문을 대신했다. 또한 법정 스님과 오랫동안 주고받은 편지, 김용택 시인에게 보내는 글 등도 엿볼 수 있다.

저자소개

저자 이해인

저서(총 58권)
이해인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이자 시인.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1964년 수녀원(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 1976년 종신서원을 한 후 오늘까지 부산에 살고 있다. 필리핀 성 루이스대학 영문학과,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제9회 <새싹문학상>, 제2회 <여성동아대상>, 제6회 <부산여성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수도생활을 하면서 바닷가 수녀원의 ‘해인글방’에서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가 담긴 글과 시를 쓰고 있는 이해인 수녀는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이후 다수의 산문집과 시집을 펴냈다. 시집으로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시간의 얼굴',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작은 위로'가 있으며, 시선집으로 '사계절의 기도', '다시 바다에서', '여행길에서', 산문집으로'두레박', '사랑할 땐 별이 되고', '고운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이 있다. 옮긴 책으로 '마더 데레사의 아름다운 선물', '우리는 아무도 혼자가 아닙니다' 등이 있다. 그녀의 시는 종교를 뛰어넘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왔으며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일상과 자연을 소재로 한 친근한 주제, 모태 신앙이 낳아준 순결한 동심과 소박한 언어, 생활 속에도 자주 인용되는 그의 시들은 오늘도 변함없는 위로와 사랑을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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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여는 글_보물찾기 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며 

제1장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_일상의 나날들 
감탄사가 그립다 
따뜻한 절밥 자비의 밥상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봄편지 1_나의 마음에도 어서 들어오세요, 봄 
봄편지 2_삶은 사랑하기 위해 주어진 자유 시간 
스님의 편지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_김용택 시인에게 
서로를 배려하는 길이 되어서 
불안과 의심 없는 세상을 꿈꾸며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어머니를 기억하는 행복 
11월의 편지_제 몫을 다하는 가을빛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12월의 편지_지상의 행복한 순례자 

제2장 어디엘 가도 네가 있네_우정일기 

제3장 사계절의 정원_수도원일기 

제4장 누군가를 위한 기도_기도일기 
3월, 성요셉을 기리며 
부활 단상 
5월 성모의 밤에 
사제를 위한 연가 
어느 교사의 기도 
군인들을 위한 기도 
어느 날 병원에서_의사 선생님께 
고마운 간호천사들께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_가정의 달에 바치는 기도 
휴가를 어떻게 보내냐구요?_휴가 때의 기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_성탄구유예절에서 
용서하십시오-조그만 참회록 
감사하면 할수록-송년 감사 

제5장 시간의 마디에서_성서묵상일기 

제6장 그리움은 꽃이 되어_추모일기 
5월의 러브레터가 되어 떠나신 피천득 선생님께 
우리도 사랑의 바보가 되자!_김수환 추기경 선종 2주기에 
하늘나라에서도 꼭 한 반 하자고?_김점선 화가 1주기에 부치는 편지 
우리에게 봄이 된 영희에게_장영희 1주기를 맞아 
사랑으로 녹아 버린 눈사람처럼-김형모 선생님께 
물처럼 바람처럼 법정 스님께 
사랑의 눈물 속에 불러 보는 이름_이태석 신부 선종 100일 후에 
많은 추억은 많이 울게 하네요!_박완서 선생님을 그리며 

닫는 글_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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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리뷰상세이미지

“이제 함께 아프고, 울고, 웃겠습니다.” 
암 투병과 상실의 아픔으로 빚어낸 이해인 희망 산문집
 

2011년 봄, 이해인 수녀가 암 투병 속에서 더욱 섬세하고 깊어진 마음의 무늬들을 진솔하게 담은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다가가본 사람은 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며, 작고 소박한 일상의 길 위에서 발견하는 감사가 또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산문집으로는 근 5년여 만에 펴내는 신간《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에는 암 투병과 동시에 사랑하는 지인들의 잇단 죽음을 목도하는 아픔의 시간들을 견뎌내며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삶을 긍정하는 이해인 수녀의 깨달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이 보이듯이,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에 비로소 보이는 일상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이 수도자로서의 삶과 살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아우르며 때론 섬세하게, 때론 명랑하게 그리고 때론 너무나 담담해서 뭉클하게 다가온다. 
이해인 수녀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일상의 그 어느 하나도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감사”를 얻었다며, 보물찾기 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고백한다. 

소박하고 낮은 세상을 향해 한결같이 맑은 감성의 언어로 단정한 사랑을 전해온 이해인 수녀는 이번 산문집에서 특히 자신이 직접 몸으로 겪은 아픔과 마음으로 겪은 상실의 고통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보통 사람들에게 꽃이 진 자리에도, 상실을 경험한 빈자리에도 여전히 푸른 잎의 희망이 살아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수도자로서, 시인으로서, 개인으로서의 삶과 사유를 글 갈피마다 편안하게 보여줌으로써 부족하고 상처 입은 보통 사람들을 위로하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번 산문집에는 세계적인 판화가 황규백 화가의 그림을 함께 실었다. 정겨운 돌담, 작은 새 등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사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사람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내재된 정감을 일깨우는 작품들이 이해인 수녀의 글을 한층 더 깊이 있게 읽도록 이끈다. 

아픔을 승화시킨 삶의 기쁨, 눈물이 키운 삶의 힘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는 전체 여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해인 수녀의 일상을 담은 칼럼들과 오랜 시간 벼려온 우정에 대한 단상들, 수도원의 나날, 누군가를 위한 기도와 묵상 그리고 꽃이 된 그리움을 담은 추모의 글들이 매일 보물을 품듯 일기라는 그릇에 담겨 있다. 

이번 산문집의 첫 장에는 익숙한 서문 대신 한 장의 꽃편지가 실려 있다. 이 책을 위해 글을 써주겠다는 약속을 뒤로하고 지난 1월 작고한 박완서 작가의 편지다. 이해인 수녀와 박완서 작가는 개인적인 고통의 시간들을 함께 통과하며 특별한 인연을 맺어 왔던 터라 그 아픔이 더했다. 이해인 수녀는 박완서 작가에 대한 추모의 정과 함께 나눈 시간에 대한 감사를 담아 늘 가슴에 품어 왔던 박완서 작가의 편지(2010년 4월 16일자)로 서문을 대신했다. 

사랑하는 이해인 수녀님 
그리던 고향에 다녀가는 것처럼 마음의 평화를 얻어 가지고 돌아갑니다. 
내년 이맘때도 이곳 식구들과 짜장면을 (그때는 따뜻한) 같이 먹을 수 있기를, 
눈에 밟히던 꽃과 나무들이 다 그 자리에 있어 
다시 눈 맞출 수 있기를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당신은 고향의 당산나무입니다. 
내 생전에 당산나무가 시드는 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꼭 당신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보다는 오래 살아 주십시오. 
주여, 제 욕심을 불쌍히 여기소서. 
2010. 4. 16. 박완서 

제1장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_일상의 나날들>에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과 사람, 계절의 변화와 기억 등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잡아낸 생각들을 이해인 수녀의 감성으로 버무려 감칠맛 나는 언어로 엮어 낸다. 

또한 법정 스님과 오랫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담은 <스님의 편지>에서는 다정한 미소를, <따뜻한 절밥 자비의 밥상>, 김용택 시인에게 보내는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 등에서는 명랑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가 하면, <어머니를 기억하는 행복>에서는 어머니를 그리는 딸의 그리움이 읽는 이의 가슴에 엷은 슬픔으로 스며들게 만든다. <불안과 의심 없는 세상을 꿈꾸며>에서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수도원의 일상을 엿볼 수 있어 새롭다. 

제2장 <어디엘 가도 네가 있네_우정일기>에는 이해인 수녀가 10여 년간 쓰고 지우며 쌓아 온 우정에 대한 단상 60여 편이 담겨 있다. 이해인 수녀 특유의 맑은 감성과 투병 중의 인간적인 마음을 투정하듯 위로받듯 오롯이 드러낸 단상들은 그 행간에서 뭉클함을 불러낸다. 

24 
너에게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에 가는 길, 오늘은 비가 내리네. 너를 향한 동그란 그리움과 기도……. 멈추지 않는 나의 웃음을 어찌 알고 동그란 빗방울들이 봉투에 먼저 들어가 있네. 
_동네 우체국에 가는 길은 늘 행복하다. 편지를 쓰는 일은 살아서 할 수 있는 아름답고 거룩한 소임이다. 때론 허름한 옷에 앞치마까지 두르고 간 적도 있는데 “수녀님이 정말로 글 쓰는 해인 수녀님 맞으시나요? 멀리 계시다고 여기던 분이 바로 앞에 계시니 참 신기하네요.” 우편물 점검하던 여직원이 웃으며 차 한 잔을 권했다. 

36 
네가 농사지어 보내 준 포도 잘 받았어. 
큰 수술 이후 회복기의 금식을 깨고 과일 먹는 것이 허락됐을 적에 처음으로 내가 먹던 그 황홀한 포도 한 알의 맛! 그 맛은 나에게 지구 전체를 대표하는 살아 있음의 맛이었어. 
그 맛을 기억하며 오늘도 너에 대한 고마움으로 포도 한 알을 입에 넣는다. 

제3장 <사계절의 정원_수도원 일기>에는 이해인 수녀가 2010년 한 해 동안 수도원의 일상을 적어 내려간 일기가 담겨 있다. 치료의 고통을 견디는 힘든 시간들의 기록, 발령이나 죽음으로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슬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일의 소소한 행복감 등 잔잔하면서도 명랑한 톤으로 담긴 수도원의 일상을 통해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살아 있는 호흡을 느끼게 된다. 


며칠 고단했던 심신이 이제는 조금 풀리는 느낌. 미뤄뒀던 빨래도 하고, 성체조배도 하고, 방 정리도 하고……. 조금씩 일상도(日常道)의 기쁨을 찾아가는 중이랄까. 
20년 전에 심은 느티나무가 지금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된다. 밖에 나가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지만 집안에서만 왔다갔다하며 자연과 사물과 인간을 관찰하는 시간도 새롭고 재미있고 유익하다. 앉아서도 먼 길을 달려가는 민들레의 기도 속에……. 2010. 5. 25. 

누가 나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한다 해서 들뜬 마음을 갖지 않고 담담해지기……. 누가 나에게 근거 없는 험담이나 비난을 한다고 해서 속상해 하지 말고 담담해지기…….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하느님만이 영원하시다! 2010. 6. 24. 

약 보름간의 출장에서 돌아왔다. 경기도에는 하도 비가 많이 와서 움직이기 힘들었으나 부산에 오니 비는 내리지 않았다. 타고 오는 기차 안에서 오늘은 졸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했지. 모든 생각들을 잘 익히고 키우면 시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마당엔 분꽃들이 환히 웃고 있고, 내 자그만 방에 들어오니 새삼 반갑고 정겹고 기쁘네. 패랭이꽃과 강아지풀로 장식한 환영의 꽃들, 새로운 임지로 떠나는 수녀가 두고 간 고별의 쪽지, 공동세탁실에서 갖다 둔 88번이 새겨진 빨래들, 우편물들, 살짝 열어 둔 창문 모두가 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시간 시간을 더 반갑게, 기쁘게, 소중하게 아껴 써야지. 나는 허비할 시간이 없다. 더 많이 감사하면서, 더 많이 기도하면서 나의 시간들을 길들이는 지혜를 주십사고 기도한다. 2010. 9. 11. 

일종의 무력증에 빠지려는 자신을 의식적으로 일으켜 세우며 성탄 편지도 쓰고, 객실의 손님들에게 인사도 하고……. 골목길이나 우체국에서 동네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기도 하고……. 아무튼 자기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노력을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암환자들은 우울증이나 자폐적인 성향으로 기울기가 쉬운 듯해서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미리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10. 12. 1. 

제4장 <누군가를 위한 기도_기도일기>에는 군인들을 위한 기도, 사제를 위한 기도, 교사를 위한 기도 등 주제를 가진 기도일기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어느 날 병원에서-의사 선생님께>에는 암 치료를 위해 오간 병원의 의사에게 오히려 그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글 속에서 육체적인 병의 치료를 받으면서 마음의 치유를 전할 수 있는 그 넉넉함을 배우게 된다. 

제5장 <시간의 마디에서_성서묵상일기>에는 이해인 수녀가 1998년~1999년 두 해에 걸쳐 매일 적어 나간 묵상일기를 발췌해 실었다. 수도자로서의?이해인 수녀의 모습과 그의 간구를 여과 없이 느끼게 해준다. 

1999년 4월 18일 일 
주님. 
세상 떠나는 순간까지 늘 감동할 수 있는 뜨거운 마음을 지니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사람들과의 만남 안에서 당신을 발견하고 그 사이에 사랑의 식탁이 차려질 수 있게 하소서. 

1999년 6월 26일 토 
주님, 제게까지 몸과 마음의 아픔을 호소해 오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편지로, 전화로, 방문으로……. 
아프다, 아프다 외치는 이들……. 
“나를 잊은 건 아니지요? 수녀님마저 저를 잊으면 저는 설 수가 없어요.”라고 호소해 오는 이들에게 저는 “내가 가서 고쳐 주마.” 할 수도 없고…….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 주십시오! 

1999년 7월 26일 월 
땅에 점같이 작은 꽃씨를 심어 보니 알겠습니다. 조그만 것, 힘없이 약해 보이는 것의 그 대단한 위력을…….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님을……. 
매일 매 순간을 ‘작은 일에 대한 충실’로 살게 하소서! 

제6장 <그리움은 꽃이 되어_추모일기>에는 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다간 우리 시대의 어른들과 이해인 수녀가 맺은 우정과 그리움, 애틋함의 무늬가?새겨진 추모의 글들이 담겨 있다. 피천득, 김수환, 김점선, 장영희, 김형모(《십대들의 쪽지》발행인), 법정, 이태석, 박완서……. “미리 생각하는 이별은 오늘의 길을 더 열심히 가게 한다”고 애써 슬픔을 감추고 존경하는 분과 다정했던 벗을 떠나보내며 쓴 글들은 곁들인 사진과 더불어 읽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마지막에 담긴 시 <여정>에는 이해인 수녀가 투병의 고통 속에도 놓지 않은 삶에 대한 기쁨과 감사 그리고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담겨 있어 뭉클한 따뜻함을 안고 책장을 덮게 해준다. 

추천사 
“여고시절! 가슴 조이던 남학생들이 꽤 많으셨겠습니다. 수녀님!” 
첫 만남에서 내가 했던 말이다. 2006년 여름이었고……악상의 고갈로 음악에 미친 이가 음악을 할 수 없었던 시기였고, 엉켜 있는 매듭의 끄트머리조차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하지만 그날 나의 양미간 사이에 저절로 떠오르던 멜로디를 잊을 수가 없다. 그 멜로디는 수녀님의 시와 만나 <친구야 너는 아니>라는 노래로 세상과 만났다.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있을까. 삶과 시와 모습까지도 하나 된 모습! 완벽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리고 좀더 순수해질 수 있는 통로를 보았다. 이해인 수녀님에게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들조차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나는 배웠다.-김태원(록그룹 '부활'의 리더)

책속으로

요즘은 매일이란 바다의 보물섬에서 보물을 찾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어 어느 때보다도 행복합니다.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주변에 보물 아닌 것이 없는 듯합니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이미 놓쳐 버린 보물도 많지만 다시 찾은 보물도 많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아직도 찾아낼 보물이 많음을 새롭게 감사하면서 길을 가는 저에게 하늘은 더 높고 푸릅니다. 처음 보는 이와도 낯설지 않은 친구가 되며, 모르는 이웃과도 하나 되는 꿈을 자주 꿉니다. 
-<여는 글>에서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둥글게 길쭉하게/ 뾰족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무리지어나기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이해인, <잎사귀 명상>전문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더 잘 보이듯이 누군가 내 곁을 떠나고 나면 그 사람의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평소에 별로 친하지 않던 사람이라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크게 보인다. 
우리가 한세상을 살면서 수없이 경험하는 만남과 이별을 잘 관리하는 지혜만 있다면 삶이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웬만한 일은 사랑으로 참아 넘기고,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마침내는 이해와 용서로 받아 안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서 말이다. 서로의 다름을 비방하고 불평하기보다는 ‘이렇게 다를 수도 있음이 놀랍고 신기하네?!’ 하고 오히려 감사하고 감탄하면서 말이다. 
(……) 
나하고는 같지 않은 다른 사람의 개성이 정말 힘들고 견디기 어려울수록 나는 고요한 평상심을 지니고 그 다름을 아름다움으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한다. 꽃이 진 자리에 환히 웃고 있는 싱싱한 잎사귀들을 보듯이, 아픔을 견디고 익어 가는 고운 열매들을 보듯이…….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에서 

또 다시 가는 한 해,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하렵니다. 
‘참 고마워요. 힘들어도 아름다운 일 년이었어요!’ 
또 다시 오는 한 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하렵니다. 
‘참 고마워요. 또 하루하루 살아갈 새 힘을 당신이 주실 거지요?’ 
-<감사하면 할수록>에서 

내가 세상과/ 영원히 작별하는 꿈을 꾸고/ 울다가 잠이 깬 아침// 눈은 퉁퉁 붓고/ 몸은 무거운데/ 눈물이 씻어 준/ 마음과 영혼은/ 맑고 평화롭고/ 가볍기만 하네//창 밖에서 지저귀던/ 새들이 나에게/ 노래로 노래로// 말을 거는 아침// 미리 생각하는 이별은/ 오늘의 길을/ 더 열심히 가게 한다고/ 눈물은 약하지 않은 힘으로/ 나를 키운다고/ 힘이 있다고 
-이해인, <눈물의 힘> 전문 

언젠가 저더러 항암치료 받느냐고 물으셔서 그렇다고 하니 연민의 정 가득한 눈빛으로 “그래? 대단하다 수녀!” 하시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힘든 치료를 하는 이들에게 종종 “대단하세요, 정말!” 하며 추기경님의 그 표현을 흉내내어 보기도 합니다. 
-<우리도 사랑의 바보가 되자!_김수환 추기경 선종 2주기에>에서 

수단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톤즈의 해맑은 청소년들을 위해 현지인과 똑같이 적응하려 애쓰며 부서지고 부서진 그 사랑은 이제 더욱 빛나는 슬픔이 되어 모든 이를 하나로 모이게 하네요. 자신만을 위하여 안일하고 이기적으로 사는 삶은 더 이상 바람직한 삶이 아니라고 침묵으로 강하게 소리치고 계시네요. 불러도 대답 없으신 이태석 신부님, 아아 우리 신부님 ! 
-<사랑의 눈물 속에 불러 보는 이름_이태석 신부 선종 100일 후에>에서 

문학은 삶에 대한 감사함이라고 일러 주신 선생님, 꿈에서라도 다시 뵙고 싶은 그리운 선생님, 선생님을 보내 드리는 고별식에 참석하고 하관예절까지 다 지켜보고 왔는데도 이 세상에 안 계시다는 것이 실감되질 않네요. 제 방에 수북이 쌓아 둔 각종 일간지에 선생님의 웃는 얼굴이 실린 기사를 보면서도 “이분이 왜 여기 계실까?” 의아합니다. 추억이 많은 그만큼 눈물도 그치지가 않습니다. 
-<많은 추억은 많이 울게 하네요!_박완서 선생님을 그리며>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순례자// 강원도의 높은 산과/ 낮은 호숫가 사이에 태어났으니/ 나의 여정은 하루 하루/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았고/ 물 위를 걷는 것과 같았네// 지금은/ 내 몸이 많이 아파/ 삶이 더욱 무거워졌지만/ 내 마음은/ 산으로 가는 바람처럼/ 호수 위를 나르는 흰 새처럼/ 가볍기만 하네// 세상 여정 마치기 전/ 꼭 한 번 말하리라/ 길 위에서 만났던 모든 이에게/ 가만히 손 흔들며 말하리라// 많이 울어야 할 순간들도/ 사랑으로 받아 안아/ 행복했다고/ 고마웠다고/ 아름다웠다고 
-이해인, <여정> 전문


<파워인터뷰>“癌고통은 내게 축복… 아프면 아픈대로 나눌게 많네요”

투병중 산문집 펴낸 이해인 수녀

문화일보 장재선기자 입력 2011.04.15 11:41 | 수정 2011.04.15 14:21 

 

시를 쓰는 이해인(66) 수녀를 우리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하면 그 스스로 손사래를 칠 것이다. 시인과 수도자라는 이름도 버거운데 지도자라니…. 그러나 그가 자신의 신앙과 문학을 통해, 또 강연과 봉사를 통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끼쳐 온 영향은 누구 못지않게 크다. 

↑ 이해인 수녀는 “제 문학은 세상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생각한다”며 “투병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시 속에 기쁨과 행복이란 말을 더 많이 쓰게 되더라”고 했다.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내적 구도(求道)의 치열한 성찰을 통해 길어올린 그의 언어들은 강퍅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꽃씨로 전해져 사랑과 위로의 꽃으로 피어났다. 2008년 여름 예기치 않게 암이 발병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으나 '명랑 투병'이라는 조어까지 만들 정도로 밝은 모습을 보이며 치유와 희망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수녀는 최근 산문집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샘터 발행)를 출간, 투병 속에서도 오롯이 유지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애정을 애틋하게 전하고 있다. 

부산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이 수녀가 서울성모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 상경한 지난 7일, 서울역 인근에 있는 수도원 분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수도원을 찾기 위해 어느 가게에서 위치를 물었더니 중년의 여주인이 친절하게 알려준 후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거기 목련꽃이 참 예쁠 거예요." 

수도원 입구에서 만난 목련꽃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소담스레 피어나서 하이얀 빛을 정결하게 뿜어내는 것이 이 수녀의 모습을 절로 떠올리게 했다. 

이 수녀를 만나자마자 외모 이야기를 한 것은 순전히 목련 때문이었다고 먼저 변명을 해 둔다. "수녀 시인이 마치 대중 스타처럼 마니아 팬을 거느리고 있는 데는 단아한 외모 덕도 있지 않을까요?" 

이 수녀는 뜬금없는 질문에도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저는 모르겠고, 남들이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지요. 외모, 목소리, 시가 다 고와서 사랑을 받는 요인이 됐다고 해석하는 분들이 있지요.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에 나온 제 사진은 제가 봐도 고왔어요.(웃음) 직접 만나본 사람들이 환상이 깨졌다고 할까봐 그 다음 책에서부터는 그 사진을 빼라고 한 적도 있지요. 근데 문화일보에 제 사진이 크게 나가면, 보는 분들이 또 뭐라 할까봐 부담스럽네요." 

이 수녀는 "최근에 인터뷰 요청을 사양해왔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만나게 됐다"며 "수도자가 왜 그렇게 언론에 자주 나오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늘 조심스럽지만,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일이라면 비록 내가 힘들어도 즐겁게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수녀의 음성은 특유의 쾌조를 띠었고 얼굴은 여전히 고운 태가 남아 있지만, 병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직장암 투병을 하고 있는 이 수녀의 치료 경과는 좋지만 아직 완치 단계는 아니어서 길게 이야기를 나눌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수녀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흘리면서도 시종 바른 자세를 유지한 채 이야기를 했다. 

―수도원 생활이 어떻습니까. 수녀가 되고 싶다는 젊은 여성들이 많이 상의해 올텐데, 뭐라고 말해주십니까. 

"수도 생활을 해보니까 아름답고 좋다. 해볼 만하다. 그러나 쉽지는 않으니 각오하고 잘 생각하고 오라, 이렇게 답해주지요.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에 나를 원망하지 마라고 덧붙여요. 수도생활은 꽃향기 맡으러 오는 게 아니니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기와의 내적 투쟁을 통해 신앙을 다져가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하지요.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어요. 뜻은 있으면서도 못하겠다 하지 말고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저에게 다시 태어나도 하겠느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모르겠어요. 그러나 지금은 행복한 수도자로 살고 있으니…." 

―이번 책도 발행된 직후부터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더군요. 록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씨가 책의 추천사를 쓴 게 눈길을 끌던데요.(김씨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들조차 아름다울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배웠다"고 적었다.) 

"2006년에 필리핀 한인교회에서 특강을 했을 때 왔더라고요. 차 한 잔 하고 싶다고 해서 만났고, 이후에 서로 e메일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졌어요. 내 기도를 필요로 하는 분이구나, 생각했어요. 어느 날 제 시에 곡을 붙이고 싶다더니 정말로 아름다운 곡을 만들었더군요. 부활 11집 앨범에 있는 '친구야 너는 아니?'라는 노래예요.(이 수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를 낭송했다.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사실은 참 아픈거래/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줄 때/사실은 참 아픈거래/친구야 봄비처럼 아파도 웃으면서/너에게 가고픈 내 맘 아니….') 최근에 TV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서 심사하는 것 보니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남다른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살인범으로 무기형을 받고 복역 중인 신창원씨와도 교분을 나눈다고 들었습니다. 

"2002년도에 창원씨가 누님처럼 여기는 집사님께서 면회를 간다기에 엽서에 위로와 격려의 말을 써 줬어요. 답장이 왔어요. 좋은 말을 써서 답을 하고 싶어서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너무 길어질 듯싶어서 그냥 답을 한다고 했더군요. 이후 편지가 70여통쯤 왔을까요. 날씨와 자연 풍경에 대한 감상부터 책을 읽은 소감까지 보내오는데, 깨알 같은 글씨로 맞춤법 하나 틀리지 않아요. 글씨도 잘 쓸 뿐더러 문장도 섬세하고 다시 읽고 싶을 정도로 문학성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에게 그런 게 있냐고 의아하게들 여기시겠지요." 

―신창원씨가 명민하다고는 들었으나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줄은 몰랐습니다.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하기도 했어요.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나쁜 일을 한 분이지만 유머감각도 있고 남을 배려하는 태도가 있어요. 저는 청송까지 직접 찾아간 적도 있고, 전자우편(교도관들이 인쇄해서 수감자에게 전해준다고 한다)을 이용하거나 화상면회를 하기도 했어요. 살아온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다고 해서 담 안(이 수녀는 '교도소'라는 말을 쓰는 게 미안하다고 했다)으로 공책을 보내주기도 했어요. 창원이가 워낙 자존심이 세니까 옳은 말도 부드럽게 하는 게 좋아요. 그러면 반성할 것은 반성하더라고요. 독방에서 오래 살다보니까, 디스크 병도 생기고 마음도 자꾸 어두워진다고 해요. 참 안됐어요." 

법정 스님과 종교를 떠나 우정을 나누셨는데 개신교 목사들과의 교분은 없습니까. 

"왜 없어요. 두루두루 많이 있죠. 목사님들이 견학처럼 단체로 우리 수도원을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경동, 안동, 정동, 예담 교회 등에 가서 강연도 많이 했어요. 교의적 토론을 하면 마음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시를 통하니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듯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설교할 때 제 시를 인용한다며 부담임 목사가 해야 할 일을 수녀님 글이 대신하는 데 감사 표시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도 하더군요." 

―최근 우리 사회에 종교간 갈등이 자주 불거져 뜻있는 이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내 종교에 충실하면서도 타 종교를 존중했기 때문이잖아요.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그것을 가차없이 비판하지만 내 것이 귀한 만큼 다른 것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해요. 종파가 다르더라도 공존하면서 선과 진리를 추구해가면 사회를 정화시키는 데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꾸 부딪치고 경쟁하고 싸우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정치인들이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고…. 정치 지도자들의 행동을 보면 지혜가 부족하지 않나, 그런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중용, 관용, 자비심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게 한국 사회의 큰 문제입니다. 

"저도 모태신앙이니까 종교에 대해 편협한 게 있었어요. 서강대서 종교학을 공부하면서 이론적 강의를 많이 들은 것이 타 종교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됐어요. 공부가 필요하더라고요. 막연하게 자기 생각만으로 판단해서 남에게 전하며 너네는 이단이라는 등으로 비난하면 안 된다는 거죠. 공부는 안 하면서 막말하고 그러는 것은 정말 나쁜 거 같아요. 종교간 갈등뿐만 아니라 지역 문제도 있잖아요. 선거 때 보면 좁은 나라에서 영호남의 묘한 갈등이 신문 지상을 가득 메우고…. 그런 면에서 우리가 아직 미성숙하구나 생각하지요." 

―이번 책의 맨 앞에 고 박완서 작가의 육필 편지가 실려 있습니다. 박 작가와 나이 차가 14세나 나는데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박 작가는 2010년 4월16일자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사랑하는 이해인 수녀님. 그리던 고향에 다녀가는 것처럼 마음의 평화를 얻어 가지고 돌아갑니다. …당신은 고향의 당산나무입니다. 내 생전에 당산나무가 시드는 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꼭 당신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보다는 오래 살아 주십시오. 주여 제 욕심을 불쌍히 여기소서.') 

"박 선생님 생애에서 가장 슬픈 (남편과 아들을 잇달아 잃은) 순간에 만났고, 제가 수도자니까 의지하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 돌아가시 전에 오로지 저를 만나기 위해 부산에 두 번이나 오셨어요. 그 즈음에 선생님과 가까우셨던 장영희(전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김점선(화가)씨가 타계했잖아요.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젊은 것들이 나보다 먼저 가고 난리야.' 아마 저도 먼저 가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이 되셔서 그런 글을 쓰신 것 같아요. 박 선생님은 말씀을 부드럽게 가만가만 하시기 때문에 때로 급진적인 이야기를 해도 수더분하게 보이시는 장점이 있었지요. 그래서 돌아가신 후에 남녀노소가 모두 추모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가족에 대한 애정 표현을 절제하는 수도자인데도 글을 보면 언제나 어머니에 대한 사모의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하시더군요. 

"제가 여섯살 때 아버지가 납북돼 생사도 모른 상태에서 어머니는 아버지 역할까지 하셨어요.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배움에 비해서 기품 있는 영혼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려요. 2008년에 돌아가셨을 때 슬픔을 절제하기 어려웠어요. 동생네 집에 가면 어머니가 계셨던 방에서 자거든요. 다른 성직자들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마찬가지인 듯해요. 결혼하지 않고 사니까 아이 때 가졌던 그 그리움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시 쓰기를 좋아했나요. 중학생 때부터 글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초등 2, 3학년 때부터 동시를 썼는데, 선생님들이 제가 썼다고 하면 안 믿었어요. 야단을 치며 언니 오빠가 써준 것을 고백하라고 상처를 줬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쓴 것을 다 버렸잖아요. 중학교 때부터 선생님들이 인정을 해 주니까 문예반에서 본격적으로 글을 썼습니다. 1976년에 첫 시집을 출간하면서 계속 시집을 낼 계획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1989년까지 연속으로 네 권의 시집을 내게 됐어요." 

―시집을 낼 때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나, 일부 평론가는 문학성을 낮게 평가했었습니다. 

"고운 시, 예쁜 시만 쓰고 맹물 같은 시라고 했지요. 그분들이 느끼는 거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읽어보지도 않고 선입견만 갖고 해인 수녀의 시는 감성 취향이니, 소녀 취향이니 하는 것은 조금…. 수도자가 쓴 거라서 문학적 연구대상이 되지 않았는데, 그런 것을 안타깝게 여긴 두 분이 석사 논문을 썼지요. 최근에도 교원대서 석사 논문 쓰겠다고 허락을 구하더군요. 돌아가신 정채봉 선생님은 "수도자라서 문학성이 폄훼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하셨어요. 문학사에 이름이 안 남으면 어떻습니까. 수도자로 살면서 시를 썼는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정도면 족하지요. 그도 아니어서 잊어지면 또 어떻습니까. 하지만 지나치게 폄훼하면 씁쓸하다고 할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요. 1980년대 종로서적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0위 안에 제 시집이 3~4권 오른 적이 있었는데 비아냥거리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때 기도했어요. "제발 팔리지 않게 해 주세요."(웃음) 

―세상을 밝고 따뜻한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살자는 메시지는 좋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개선하는 운동에는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요. 

"저도 정치적 발언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아픔을 나름대로 대변했습니다. 이웃의 슬픔을 대신 아파해주는 사람이 시인이겠다 싶어서…. 박종철 고문 20주기에 가서 추모시를 발표한 것도 그 예지요. 저는 고운 시만 쓰니까 세상 물정 알까 싶겠지만 베스트셀러 시인으로서, 수도자로서 사회적 사업을 해왔습니다. 가출 소녀를 집에 돌려보내고, 미혼모 아이의 입양을 주선하고…. 이것들은 알려지지 않으니까 제가 마치 소녀 취향적 글만 쓴다며 테레사 수녀와 비교하는 이야기도 나돌고…. 그런 이야기가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고 균형 감각을 키워주니 감사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 수녀가 성폭행당한 아가씨, 자살하겠다는 젊은이들을 위한 쉼터 역할을 해온 것은 수도원 등 주변에서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샘터의 편집부장 안선희씨는 이 수녀가 운영하는 '해인 글방'에 가보고 놀랐다고 했다. 사람들과 주고받으며 '문서 사목'을 해온 몇 십만통의 편지가 보낸 사람의 직업 장르에 따라 색깔별로 분류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수녀는 "전국 각지에서 늘 편지가 오는데, 한 줄이라도 답을 해 주려고 애쓴다"며 "글방 창고에 가면 편지에 담긴 글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이 말을 건네는 듯하다"며 눈을 감았다. "거기 가면 죽은 사람의 편지도 있어요. 그것을 보고 있으면…." 

이 수녀의 목소리가 잦아든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물질주의 가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그런 풍조는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가다가 큰일 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가족과 민족이기주의, 외모지상주의가 횡행하는 세상이 됐어요. 기도는 많이 하지만 과연 힘이 있을까 회의에 빠지기도 하고…. 우리나라에는 힐링센터가 필요한 듯싶어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다 아픈 듯해요. 아픈 저에게 살기 싫다는 편지 보내오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수도원에 와서 일정 기간 마음 공부를 하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꿈 같은 생각도 하지요." 

―암 환자들은 자신의 투병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싶어하지 않던데…. 

"이런 병에 걸리면 자폐증세가 와요. 저는 (암이 발병했던) 2008년도에 교회가 아닌 일반 기관들의 강의를 많이 맡고 있어서 그만두는 이유를 알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 바람에 암 걸렸다고 뉴스에 나왔지요. 그때 민망했던 심정은 말로 못해요. 최인호(작가와 이 수녀는 1945년생 '해방둥이' 동갑 문인이다) 선생님 같은 분도 숨어서 투병하는데 저 수녀는 왜 저렇게 드러내나 싶을 수 있지만, 드러내면 책임감도 생깁니다. 제가 암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암 환자에 희망을 줄 수가 있잖아요. 아프면 아픈대로 나눌 것이 많습니다. 역설적 고백이지만, 암 고통이 축복이에요. 내면의 행복 지수가 높아지는 체험을 하고 있지요. 제가 아픈 후에 행복과 기쁨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게 되더라고요." 

이 수녀는 병상에서 쓴 시 '새로운 맛'을 가만가만 낭송했다. '물 한 모금 마시기/힘들어하는 나에게/어느날/예쁜 영양사가 웃으며 말했다.//물도/음식이라 생각하고/천천히 맛있게 씹어서 드세요//그 이후로 나는/바람도 햇빛도 공기도/천천히 맛있게 씹어 먹는 연습을 하네….' 

―책에 쓰인 '명랑 투병'이라는 조어가 신선하더군요. 

"명랑 투병? 하하. 제 주민등록증 이름이 명숙이에요. 밝을 명 맑을 숙. 처음에 암센터에 가서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먼저 하겠느냐, 방사선을 먼저 하겠느냐고 묻더군요. 속으로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즉시 표정을 밝게 하고 답했지요. 60여년 살았으니까 됐어요. 선생님 좋은 대로 하셔요.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을게요. 속으로 두려움이 있었으나 웃으면서 이야기했어요. 저를 수술한 의사분이 "수녀 시인이 너무 화통하더라, 명랑하더라" 이렇게 주변에 이야기했나봐요. 그렇게 소문이 나니까. 그러면 그에 맞게 명랑 투병하자, 목표를 정한 것이었어요. 마음먹으니까 되더라고요." 

―언어의 힘이 크네요 

"그럼요. 책에도 썼지만 제 화두는 요즘 '보물'이에요. 생사의 기로에 있어 보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아요. 모든 게 새롭고 놀라워요. 부산에서 만날 보던 바다도 병원에서 못 보다가 보면 새롭지요. 아플 때 밥을 못 먹다가 수도원 식탁에서 수녀들과 함께 밥을 먹게 되는 것도 놀라운 체험이지요. 누군가 저를 비난하면 제가 겸손해지니까 그것도 보물이에요. 그런 식으로 살면 보물이 아닌 것이 없는데, 보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찾고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인터뷰 = 장재선 차장(문화부) jeijei@munhwa.com 

▲1945년 강원 양구 출생 ▲부산 성남초교를 거쳐 서울 창경초교, 풍문여중, 성의여고 졸업 ▲1964년 만 19세의 나이에 올리베타노의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 세례명 '클라우디아' ▲필리핀 성 루이스대에서 영문학과 종교학을, 서강대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공부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발간, 이후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작은 위로' '희망은 깨어있네' 등 펴냄 ▲산문집 '두레박' '꽃삽' '사랑할 땐 별이 되고' '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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