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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비극을 보는주변국들의 자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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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헌장 51조는 명백히 자위(自衛)권을 인정하고 있다.
무장단체 하마스가 로켓공격을 계속하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으로 쳐들어가 하마스 근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미국은 테러로 무너진 건물마다 정확히 한 개씩 정권을 무너뜨렸다. 과다(過多)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도발에 응징하지 않고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한국이 제대로 된 나라라면 원칙적으로는 북한의 잠수함 기지를 부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이 미국이나 이스라엘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방적으로 강하고 이스라엘은 전면전에 익숙하다. 반면 압도적으로 강하지 못한 한국은 고민거리가 많다.
제한적 보복이 국지전이나 전면전으로 커지지는 않을지, 전면전은 감당할 수 있을지, 한국이 각오한다고 미국이 동의할지, 북한 핵무기에 대한 국민의 각오는 어떤지, 60년 전처럼 중국이 참전할지, 통일은 어떻게 될지… 한국은 숙고(熟考)해야 할 게 많다. 참으로 어렵고 실존적이며 두려운 문제다. 두렵다고 피할 수 없어 더 고민스럽다.
많은 역사가 보여주듯 인간이나 국가는 미래를 도면(圖面)처럼 그려놓고 현재에 대처할 수는 없다. 원칙과 정도(正道)로 현재를 대처하면 대개 그리 나쁘지 않은 방향으로 미래가 만들어지곤 한다.
‘적’의 공격으로 군함이 침몰하고 장병 40여 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그런데 이런 도발이 한두 번이 아니며 또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의식이 있는 국가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군은 정치적인 고려에 끌려다녀선 안 된다. 그들의 임무는 잠수함 기지를 어떻게 폭격하며 북한이 확전(擴戰)으로 도발하면 한·미 연합군이 어떻게 제압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선택은 대통령의 몫이다.
한·미 간 작전권 합의에 따라 한국군의 대북 무력사용은 미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대통령은 군의 건의를 수용해 미국을 설득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선에서 무력응징 대신 유엔안보리 회부를 택할 것인지, 고뇌해야 한다.
어떤 선택이든 대통령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최종 선택이 무엇이든 대통령과 국민에게는 ‘한국은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 나라’라는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무력도발이나 테러에 대해 국가가 전쟁을 결심한 후 행동에 옮긴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유엔군을 북한군이 공격했다. 북한군은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찍어 죽였다.
다음날 새벽 김일성은 북한군에 전투태세 돌입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다시 도발하면 개성을 탈환하고 연백평야까지 진군하자고 미군과 합의했다. 그러고는 21일 미루나무 완전 절단 작전을 감행했다. 북한은 도발하지 못했다.
김일성은 휴전 이후 처음으로 사태에 유감을 표명하는 굴욕적인 메시지를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내왔다.
혹자는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어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핵 사용은 북한정권의 종말을 뜻하므로 북한이 쉽게 핵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남한이 언제까지나 ‘핵 인질’로 살아갈 수는 없다.
눈알 찌르기가 특기인 깡패가 있다고 치자. 그가 아름다운 애인을 빼앗으려는데 눈알 잃을 게 두려워 한강백사장 결투를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피해를 각오하고라도 결심해야 할 전쟁이 있다.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 34년 전 판문점에서 벌어진 일이 웅변하고 있질 않는가. 설사 응징을 포기해도 대통령은 국민적 고뇌와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전쟁을 결심하지 못하는 나라여서가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라는 고통스러운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영혼이 있는 국가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미국과 일본의 차이
너무나 따뜻한 미국
천안함의 비극을 맞아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에 전화를 걸어 애도를 표하고 한국이 원한다면 전문가들과 기술자들을 지원해 주겠다는 제의를 했고, 대통령이 정식으로 지원을 요청하자 즉시 응했다. 이어서 주한미군은 4월 9일이 오늘을 천안함 참사에 희생된 용사들을 위한 애도의 날(Day of Remembrance)로 정했다. 미2사단은 마이클 터커 사단장 명의의 서한문을 각급 예하부대와 경기도제2청 등 행정기관에 전달했다.
이 서한에는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비극과 끔찍한 손실로 고통을 당하는 대한민국 전우들을 위해 9일을 ‘추모의 날’로 정했다.
사고 희생자와 구조 중 숨진 장병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 우리는 많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온 한국인의 저력을 봤다. 미2사단은 (한국인의) 동반자로서, 이웃으로서, 친구로서 함께하고 있다”는 우정의 뜻이 듬뿍 담겨있다 한다.
미2사단 관계자는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 때문에 미군 차원에서 특별한 날을 정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한다.
우리 역시 오늘 하루만이라도 주한미군과 마음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분위기를 선도하자 영국, 프랑스, 호주, 스웨덴 등이 조사단에 동참하고 있다. 비극을 당한 나라에 대한 우방들의 따뜻한 배려에 우리 모두는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일본인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본
멀리에 있는 미국과 우방들이 이토록 따뜻한 마음으로 애도해주고 도와주고 있는 반면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일본은 애도는커녕 이때가 기회라는 식으로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에 앙칼진 비수를 꽂았다.
국민 모두가 한창 비통해 있었었던 4월 7일, ‘일본의 노무현’ 정도로 알려진 하토야마 총리가 공개석상에서 한참 슬퍼하고 있는 우리 국민의 등에 대고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며 작심 발언을 한 것이다.
이는 문명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며 젠틀맨으로서의 매너에 속할 수 없다. 한 마디로 일본총리는 쌍놈인 것이다. 일본 국민은 일본의 최고자가 이런 행동을 한 데 대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일본총리에게는 예의도 도덕도 기초매너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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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Luciano Pavarotti
V.D. Crescenzo / Rondine al nido [제비는 돌아오건만]
Luciano Pavarotti,
Vincenzo de Crescenzo (1875 - 1964) / Rondine al n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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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로망스는 나폴리 작곡가, 데 크레센쪼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입니다.
1930년, 데 크레센쪼는
미국으로 이민하여 그곳에서 이탈리아 풍의 음악을 주로 작곡하였고
'둥지 속의 제비 (혹은 제비의 보금자리)' 는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연주회 프로그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 되었습니다.
특히 1990년 로마월드컵 Three Tenors Concert에서 파바로티가
부를때 플룻 연주가 제비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멋진 연주로 여겨집니다.
Luciano Pavarotti
Una rondine amica 아몬드 나무가 만개할 때
Allo sbocciar del mandorlo ? tornata 친근한 제비가 돌아온다
Ritorna tutti gli anni 제비는 매년 돌아온다
Sempre alla stessa data 언제나 같은 날.
Monti e mare essa varca 산 넘고, 바다 건너 .
per tornar 오직 사랑은 날아가고
Solo amore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Quando fugge e va lontano 공허함 속에 희망을 주지만
Speri invano 당신은 달아나서
Ma non torna pi? 그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Ne la penombra dolce della sera 부드러운 저녁의 마지막에
Passa la primavera. 봄날은 간다.
Cinguettano le rondini nel volo 제비는 얘기하고
Ebbre di luce e d'aria 빛과 공기에 취한다.
Ed io son triste e solo 그러나 나는 외롭고 슬프다
Monti e mare tu non varchi 당신은 산을 넘지도 바다를 건너지도 않고
per tornar 나에게로 오지 않는다
Mia piccina 사랑하는 그대,
Sei fuggita 그러나 당신은 달아나서,
E non torni pi?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Sei fuggita 당신은 달아나서
E non torni pi?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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