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旅行)

녀던 길 거닐면 옛 성현 가르침이…

含閒 2009. 12. 10. 15:47

드라이브코스

 

녀던 길 거닐면 옛 성현 가르침이…

 제주 올레길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 받으면서 친환경 트레킹코스가 전국 곳곳에 만들어지고 있다. 각 지자체마다 고장의 옛 길을 복원하고, 이야기가 있는 길을 엮어 걷기중심 길을 앞 다투어 개발하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을 비롯해 남도 갯길, 강원도 감자 바우길, 전북 고창의 신화가 있는 질마재길 등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걷기중심 탐방로가 조성중이다. 

가송리가 보이는 옛길 전망대


 경상북도는 총연장 2,500㎞에 이르는 영남옛길과 낙동강, 백두대간, 동해안 등 자연의 아름다움과 예스러움을 체험할 수 있는 생태탐방로 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그중 안동에 조성된 '퇴계 녀던길'은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퇴계 녀던길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즐겨 찾던 길이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아간 선생은 여러 관직을 거친 뒤 쉰아홉 살이 되던 해(1560)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와 도산서당을 짓고 학문에 열중하는 한편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때 선생은 이웃한 봉화 청량산을 즐겨 찾았는데, 도산서당에서 낙동강을 따라 청량산을 오갔던 이 길을 퇴계 선생이 걷던 옛길이라고 해 '퇴계 녀던길'이라고 한다. 



길 따라 펼쳐지는 강변풍경
 녀던길은 산 그림자를 고요히 담은 물줄기가 굽이굽이 흐르는 강변로를 따라 산 속으로 이어지는데 인적 끊긴 오솔길은 가랑잎 밟는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수북수북 쌓인 솔잎이 길을 감추기도 하고, 잎을 떨군 앙상한 나무숲이 펼쳐지기도 한다. 도산서원에서 청량산까지의 50리길(20㎞) 가운데 퇴계 녀던길로 조성된 코스는 현재 단천교에서 가송리까지의 3㎞다.

  

 본격적인 녀던길이 시작되는 언덕 전망대에 서면 멀리 청량산 봉우리와 낙동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퇴계 선생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감탄했던 곳이 이곳이 아니었을까. 길목 곳곳에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퇴계선생의 한시가 새겨져 있다. 미천장담, 경암, 한속담, 학소대, 농암종택, 월명담, 고산정으로 이어지는 녀던길을 거닐어 가노라면 문득 선생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녀던 길이 시작되는 곳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봐도 녀던 길 앞에 있네  

멀리 청량산이 보이는 전망대
녀던 길 앞에 있거던 아니 녀고 어쩔고'



 퇴계 선생의 <도산 12곡> 가운데 하나이다. 5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도 선생의 그 말씀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청량산을 오가는 이 길목을 거닐며 선생은 자신의 학문과 인생에 대한 깊은 사유를 숱하게 다듬고 다졌으리라. 퇴계 선생에게 청량산은 남다른 곳이었다. 태어난 지 7개월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미 아래서 자랐던 선생은 열두살 때 청량산 자락에서 숙부인 이우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글공부를 하던 곳이 오산당(현 청량정사)이다. 

억새 만발한 오솔길


 만년에 그 청량산을 찾으며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며 나타나는 강변풍경 앞에서 생각이 멈춰진다. 강변 너머에는 깎아지른 벼랑들이 절경을 빚는다. 굽이굽이 흐르던 낙동강 물줄기가  그 앞에서 잠시 흐름을 멈추고 연못을 이룬다. 어디선가 날아든 왜가리 한 마리가 문득 풍경을 꿈속처럼 아득하게 만든다.



퇴계선생이 감탄한 고산정의 절경
 *가는 요령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안동시내로 들어간다. 안동시내에서 도산서원 이정표를 따라 가면 봉화 방면 35번 국도로 연결된다. 도산서원 주차장이 오른쪽으로 보이는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이육사문학관과 퇴계종택 등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해 달리면 곧 퇴계종택이 나타나고, 계속해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육사 문학관을 지나 3㎞쯤 더 가면 퇴계오솔길과 왕모산성으로 갈라지는 작은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단천교 입구에서 '퇴계 녀던길' 지석이 보인다. 포장된 길을 따라 1㎞ 정도 더 가면 포장길이 끊기고 언덕 위에 주차장과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퇴계 오솔길이 시작된다. 농암종택까지 왕복 2시간 거리. 



퇴계선생이 사랑했던 풍경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