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가면서(在生活裏)

귤껍질과 굴껍질

含閒 2009. 4. 8. 16:31




배경음악 : 나카무라 유리코 - Long Long Ago


귤껍질과 굴껍질

얼마 전,
인천에 사는 이모와 통화를 하신 엄마가
갑자기 귤껍질이 필요하다면서
당장 나가서 귤을 사오라고 하시더군요.

"이모가 심장이 안 좋은데, 귤껍질이 약이라는 구나."

엄마는 수십 개의 귤을 깨끗이 닦아,
하나 하나 정성스레 껍질을 까더니
십 분이 멀다하고 들여다보면서,
귤껍질을 베란다에 말리기 시작하셨어요.

엄마가 미리 껍데기를 벗겨 놓아
겉이 바삭거릴 정도로 마른 귤을
동생과 나는 투덜거리면서 먹어 치워야했죠.

밥보다 귤로 배를 채우기를 몇 주...
드디어 꽤 많은 양의 귤껍질이 모아졌습니다.
엄마는 방앗간에서 귤껍질을
곱게 빻아 가지고 오셨어요.

행여 나쁜 먼지라도 들어갈까,
몇 번이고 꼭꼭 싸시고는
그 무거운 걸 들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인천 이모네로 가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고생하며 모은 귤껍질을
이모가 받고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또 엄마는 얼마나 흐뭇한 마음에 집에 오셨을까,
기대를 하며 그날 저녁 퇴근해서 돌아왔는데
글쎄 엄마가 혼자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워 계신 게 아니겠어요?

방문 앞에 놓인 비닐봉지를 들춰보니,
엄마가 고이 담아갔던 귤껍질 가루가
그대로 들어있었습니다.

동생이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했어요.

"언니, 엄마가 굴 가루를 귤 가루로 잘못 들었대."

우리는 엄마가 들을까봐 한참을
소리 죽여 웃어야만 했습니다.
웃다가 엄마를 생각하니,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했어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집안의 장녀...
젊어서부터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성심을 다하셨던 엄마가
그만 나이 탓에 말귀가 어두워져서 실수를 하신 겁니다.

엄마는 당장 귤껍질을 갖다 버리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엄마의 정성이 담긴 귤껍질 가루를
그냥 버릴 수가 없었어요.

"엄마, 그게 피부 미용에 얼마나 좋은데!"

그날 이후,
귤껍질 가루를 이용해서
온 가족이 마사지를 하고 있습니다.

피부에 얼마나 좋은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가득한 주름이 조금은 펴진 것도 같거든요.
참, 요즘 저희 집 밥상에는 온통 굴 반찬 투성이랍니다.

- 옮김*노용삼 (새벽편지 가족) -



동생을 생각하는 어머님의 마음,
그리고 어머님을 생각하는 딸의 마음!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닮는 것인가 봅니다.

라일락처럼 향기로운 사연에
마음 한 가득 꽃향기가 납니다.

- 사랑하는 마음은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