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가면서(在生活裏)

살아있다는 게 축복입니다

含閒 2009. 1. 18. 13:57

남산편지에서 모셔 왔습니다.

 



남산편지 884 살아있다는 게 축복입니다  www.nsletter.net


 

"제 인생은 축생(畜生)의 삶과 다를 바 없죠. 제 손으로 밥 한 술 먹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누워서라도 해가 뜨고 지는 걸 볼 수 있으니 살아있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20년 전 교통사고로 경추 4·5번 척수가 손상된 황원교(50) 시인의 말입니다. 그는 어깨 아래를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는 오랜 재활 치료 끝에 어깨를 들썩일 수 있게 됐지만 팔의 감각을 느낄 수도, 손목을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그는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4남매의 맏이로 집안을 이끌어 왔지만 1989년 교통사고는 그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매제(妹弟)가 모는 차를 타고 가다 차가 개울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당시 그는 동아생명에 다녔고 결혼을 1주일 앞둔 때였습니다. 3년을 병원중환자실에서 보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병원 콘크리트 바닥에 자리를 깔고 숙식하며 아들에게 밥을 떠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밤낮없이 간호하던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갔습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사람을 잡을 수 없어서"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도 떠나보냈습니다.


 


절망 중에 그는 문학을 붙들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서 시를 쓰게 됐습니다. 그대로 있으면 숨 쉬는 시체와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위해 대나무 젓가락에 붕대를 감아서 입에 물고 자판을 눌려 시를 썼습니다. 입에 힘을 주니 목에 쥐가 나고 턱이 아파 밥도 제대로 씹기 힘들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져 A4 용지 한 장 치는 데 40분 정도 걸립니다.”


 


다행이도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운명처럼 들어선 사람이 아내 유 씨입니다. 1995년 봄에 자원봉사자로 유 씨가 황 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컴퓨터를 가르치려 꼬박꼬박 찾아오는 유 씨에게 황씨는 마음을 담은 쪽지를 건넸습니다.


 


'너는 한 그루 나무처럼 내게 왔다/ 피울음 절은 영육의 나날을 그늘 지우며/ 먼 훗날/ 어두운 무덤 속에서도/ 함께 잠들고 싶은/ 나의 반 토막.'


 


남다른 사랑을 이어간 지 7년,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유씨는 "남편이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누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해 보여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유씨가 돈을 벌려 직장에 나간 시간 동안 아버지가 아들의 곁을 지킵니다. 욕창을 막기 위해 2시간마다 한 번씩 아들의 자세를 바꿔 주고 물 컵을 들어 아들의 입에 갖다 대어 주고 비닐 백에 든 아들의 소변을 병에 담아 화장실에 갖다 버리는 것일 아버지 몫입니다. 185㎝에 75㎏인 황씨를 컴퓨터 앞에 앉혀주는 일은 매일 해야 할 일 중 아주 큰일입니다. 1996년 그는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2000년엔 계간지‘문학마을’에서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최근 황 시인은 산문집 '굼벵이의 노래'를 펴냈습니다.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고 자판을 눌러 토해낸 '생(生)의 찬가'라 할 것입니다. 금년 말쯤엔 소설을 한 편 내어 놓을 계획을 세웠답니다. 또 기나긴 시간 그의 입은 자판을 콕콕 눌러 한 장 한 장 작품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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