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홈그라운드

含閒 2009. 1. 14. 16:16

홈그라운드



선생님이 성적표를 나눠주기 위해 학생 이름을 한 명씩 부릅니다.
자신의 성적표를 받아든 학생들 대부분이,
성적표를 보곤 (만족스럽다는 듯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유럽에서 공부 중인 우리나라 여고생이 전하는 한 교실의 풍경입니다.

처음엔 겨우 두 세 개만 틀려도 시험을 잘 못봤다며 유럽 친구들 앞에서
울상을 짓다가 거의 왕따 수준의 공격을 받을 뻔했던 한국 여고생은
이제는 그들을 이해하는 눈치입니다.

비단 교육에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믿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빛나는 특성을 순하게 인정하는 일에
더할 수 없이 인색합니다. 일부러 홈그라운드를 피해서 불리한
원정경기만 고집하는 ‘있다, 없다’할 때 그 ‘없다’ 운동팀과 비슷합니다.

이종격투기 선수가 자신의 주종목은 접어둔 채 상대방의 주종목에 맞춰
싸우면 이길 수 없는 게 자명합니다.
박태환을 축구장으로 데려가 박지성 만큼 뛰지 못한다고 욱박지르고
김연아에게 골프채를 쥐어주고 미셸위처럼 스윙을 못한다고 한숨쉬고
조용필의 글발이 양인자만 못하다고 혀를 차기 시작하면,
견뎌낼 장사가 없지요.

저는 비교적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잘 활용하는 편입니다^^*
지나치게 자책하지도 않지만 나에 대한 상대방의 칭찬도 의심하지 않고
순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럼에도 극심한 좌절감이나 열패감이 생길 때면
혹시 박태환이 축구장에서 헛발질하고 있는 건 아닌가,
김연아가 골프장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던 건 아닌가,
찬찬히 돌아봅니다.
그럼 그것으로 상황이 명료하게 정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던걸요,
저같은 경우엔 ^*^